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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상품화된 '책'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단편 35선'이라고 하면 타임기획에서 나온 책 말고도 지금껏 수십권을 나왔겠다. 그 책을 보나 이 책을 보나 다 똑같다. 내용은 모두 같단 말이다. 단지 어느 작가의 작품을 어떤 순서로 실었느냐 하는 것의 차이일 뿐. 그래서 한국단편을 이야기할 때는 상품이 되어 출간된 책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난 이 책에 담긴 35개의 단편 각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읽은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
내가 작가 현진건을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니었나싶다. 중학교에서 접한 것 같지는 않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진건, 이상, 황순원, 최인훈 등의 작가들을 중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닌 다른 기회를 통해 접하기는 힘들 것이다. 달리 이 책들을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미리 추천을 해줬다면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국어시간에 접했던 현진건과 지금 접한 현진건은 다르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그때 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비롯한 여러 소설과 수필을 껍질을 까발리고 회를 뜨고 내장을 뜯어내고 이건 무슨 효과네 저건 뒤에 나올 뭐시기를 위한 복선이네, 이 단어의 의미는 뭐네 하면서 철저히 까발리고 분석하고 뜯어 널었다.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란게 이렇다. 오늘날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연히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그 묘미가 들어올리가 없지. 국어만 이런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도덕도 마찬가지다. 난 도덕 교과서를 없애고 싶다.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되어 접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내게 꽤나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짧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내용이 아닌 현진건이란 작가에게. 이런 탁월한 놈.
현진건은 1900년에서 1943년까지 살았다고 하며,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그렇다니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거지 내가 그가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현진건을 분류하기로는 사실주의 작가로 뽑는데, 그들에 의하면, 사실주의라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 묘사하려는 태도, 창작방식을 말한다. 작가의 주관적 요소보다 객관적 현실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은 반리얼리즘적 조류(이상주의, 공상적 낭만주의, 형식주의)와 함께 예술의 발생 이래 양대 조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리얼리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반리얼리즘적인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리얼리즘은 근대 시민사회에 들어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확립되었다."
라고 한다. 그렇구나. 끄덕. 내래 알길이 있다. 그렇다니깐 그런가부다 하지.
현진건이 이 소설에서 드러낸 그 아이러니함. 그건 정말이지 탁월했다.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그토록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가 있던가. (하긴 내가 뭐 소설을 많이 읽어봤어야 나의 이러한 감상이 일반적으로 먹혀드는 거지. 난 소설을 잘 안읽는다.)
예전에 일기랍시고 쓴 나의 글에는 '운수좋은 날'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던 글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음. 1999년 혹은 2000년 쯤. 지금보니 그다지 효과적으로 표현한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땐 정말 나도 현진건과 같은 탁월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었다.
한편으로 운수 대박 터진 날이건만 한편으로 극도로 슬픈 날이구나. 치워라 치워라. 발로 팍팍 차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꿈쩍도 안하는 아내. 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