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동적인 영화였다. 진실이 담긴 영화였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고작 상영관 몇 군데에 걸려있을 뿐인지 의심스러웠다. 작품성 못지 않게 상업성도 적절히 갖추었다 생각되는 이 영화가 왜 시장에서 외면을 받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계의 거대 자본 롯데씨네마와 씨지비는 <콘스탄트 가드너>를 외면했다. 씨지비는 고작 강변과 인천 두 곳에 걸어놨을 뿐이다. 그것도 야간에만. 종로 3인방 역시 이 영화를 외면했다. 지금 극장가엔 <미션임파서블3>와 <다빈치코드>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 극장에 상영관 서너곳을 점령하고서.
언젠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아마도 한달전쯤, 신문에서 미국과 유럽의 거대 제약회사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에이즈 약 값을 높게 책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근래 같은 회사인지 모르겠으나 거대 제약회사 하나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대상으로 약을 실험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매일 아침 밥먹으며 간단간단하게 보는 신문인지라, 또 워낙 큰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는지라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그 기사 하나가 신문에 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랐을까 싶어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다행히도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이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하여 실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실제로 신문엔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하고 있으니깐. 영화 내용이 백퍼센트 오롯이 실화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아프리카의 모습만큼은, 제약회사들이 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실화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트 가드너>는 실화다.
콘스탄트 가드너(한결같은 정원사)는 극중 인물 영국 대사관 직원 저스틴 퀘일을 지칭한다. 그의 아내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음모를 파헤치겠다는, 아내가 못다이룬 일을 자신이 이뤄내고 말겠다는 한결같은 굳은 의지. 그는 한결같은 정원사였다.
* 테사와 저스틴. 두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였다. 테사의 죽음 앞에 무너져버린 저스틴의 평화로운 정원.
저스틴에게 있어서 테사는 집이었다. 테사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 고통받는 케냐인들을 위해 임신한 몸으로 밤낮으로 일하다 결국 그녀는 유산했고, 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정원가꾸기를 즐기는 조용하고 온화한 영국 외교관 저스틴과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인권운동가 테사의 만남은 곧바로 사랑으로 연결되었고, 결혼했다.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으로 발령받은 저스틴은 케냐에서의 테사의 변화된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함께 일하는 아돌드 역시 나의 친구이긴 하지만 의심스럽다. 근거를 알 수 없는 테사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이 돌고 저스틴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테사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다. 어느날 테사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저스틴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은 무너졌다.
로맨틱 스릴러라고 불리우는 <콘스탄트 가드너>는 로맨스와 스릴러 이전에 잘못된 것에 대한 심판이 앞서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제약회사는 겉으로는 인류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듯 하지만, 그것은 그네들의 국민들에게 해당할 뿐이다. 유럽인의 행복 이면에는 아프리카의 고통이 있나니, 이면에 숨겨진 부패와 비리를 까발리는 영화가 <콘스탄트 가드너>이다. 영화는 본래 2000년 존 르 까레 라는 작가에 의해 쓰여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허구로 이루어져있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겐 기사화 되어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사실이 기사화되기까지 그 이면에서 고생했을 이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우리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제작자 사이먼 채닝 윌리엄스는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못된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라고. <콘스탄트 가드너>는 숨겨진 진실에 대한 고발이다. 에이즈를 완벽히 치료해 낼 수 있는 약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는 약은 있다. 헌데 제약회사는 약에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는 이것을 구입해서 치료하라고 한다. 돈 많은 미국, 유럽인들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는 가장 많은데 돈은 한푼도 없는 아프리카 인들은 어쩌란 말이냐. 그러면 에이즈에 걸리지나 말았어야지, 라는 그네들의 대답은 인류를 위한다는 제약회사의 모토와 모순된다.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아프리카 인들이 그들 눈엔 보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들은 이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약의 실험을 위해 3년의 시간과 수백만 달러 대신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희생을 선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인류를 치료하기 위한 약을 만든다는 제약회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약을 실험하고, 테스트하고, 결국 실험대상이 된 아이들은 석회와 함께 땅에 버려진다. 약은 사람을 치료하라고 있는 것이지 죽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약이란 말이더냐. 영화를 보며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브라질 출신의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촬영장소로 좀더 여건이 나은 남아프리카를 선택하려고 했으나 케냐에 도착한 후 그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케냐의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감독의 생각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감독의 마음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그런 영화다. 진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속 저스틴의 말마따나 진실은 언제든 밝혀지게 되어있다. 은폐하고 조작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희생은 사람들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힘이 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 영화 속 결말처럼 현실에서도 기사에 등장한 제약회사가 심판을 받게 되길 바란다. 아침 신문에서 제약회사가 고발당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았으며, 에이즈 약을 아프리카에 무상제공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길 바란다.
* 하나 더
극중 저스틴 역을 맡은 랄프 라인즈와 테사 역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에 주목한다. 랄프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러브 인 맨하탄> <선샤인> <어벤져><잉글리시 페이션트><퀴즈쇼><쉰들러 리스트><폭풍의 언덕>과 같은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여 그의 섬세함을 드러내주었다. 레이첼은 캠브리지 영문학 전공자로 <미이라> <콘스탄틴><런어웨이><컨피던스><아바웃 어 보이><에너미 에 더 게이트><선샤인> <체인 리액션><스틸링 뷰티>에서 강하고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출연작을 알게 되니 그녀가 영화에서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 이제야 떠오른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것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며 <선샤인>이란 영화에서 이미 맞춘 바 있다고 한다. 아직 보지 않아 어떤 영화인지 모르지만 조만간 봐야겠다. 영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두 사람의 연기도 정말 멋졌다. 열정적이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레이첼은 내게도 매력있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