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별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가끔은 필요하다.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 기준이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선택 기준으로 이렇게 네 가지를 언급해 볼 수 있다. 첫째, 내 돈 투자해가며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 둘째, 비디오가 나오면 볼 영화. 셋째, 편히 쉬다가 티비 켜고 채널 돌리는데 우연히 마주친 영화. 넷째, 우연히 마주쳐도 보지 않을 영화. 영화에 대한 만족도와는 달리 이와 같은 기준은 영화를 보기 이전에 이루어진다. 선택한 영화가 내게 얼마만큼의 만족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근래 1년에 90여편의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쉬는 동안에 케이블 티비 영화 채널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영화들이 상당수다. 이 영화를 봐아겠다 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밥먹다가 쇼파에 앉아 쉬다가 리모컨으로 깔짝깔짝 채널 돌리다가 만나는 영화들이다. 이런 나날이 많아지면 가끔 예기치않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접하기도 하고, 전엔 몰랐는데 참 괜찮은 영화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 <미이라>는 뇌 비워놓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어쩔 땐 그런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휴식'이라 생각하면 그런대로 썩 괜찮은 시간이다. 쉬고 싶은데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나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볼 순 없지 않은가. <미이라>는 그런 영화다. 머리 비우고 즐길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 1세의 아내 앙크수나문과 승정원 이모텝이 사랑에 빠졌고, 잉크수나문은 자결했으며, 이모텝은 홈다이에 처해졌다. 산채로 석관에 갇힌 채 조금씩 살을 갉아먹는 풍뎅이들과 함께 영원히 산채로 살아야 하는 형벌이 홈다이다. 그리고 3천년이 지났다. 황금이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하무납트라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오로지 한명이 살아남았으며, 몇몇이 다시 뭉쳐 하무납트랄의 보물사냥에 나선다. 이후의 사건이야 말하지 않아도 예상되는 일.
고대 이집트, 미이라, 피라미드, 잉카문명 등등 고대문명의 중심지를 배경으로 놓고 만들어지는 영화의 주인공들의 목적은 보물사냥이다. 고고학자와 고대어 전문가, 그리고 돈에 눈먼 몇몇이 한팀이 되어 온갖 현대판 화기로 무장하고 흙먼지 뒤집어 쓴 채 보물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고대 문명의 희귀한 문화재를 발견하고, 이것이 또 열쇠가 되어 결국 보물이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드벤쳐 영화에 꼭 첨가되는 것은, 장소는 찾되 보물은 손에 쥐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욕심 부리지 말지어다. 벌 받는다. 그래서 꼭 팀원 중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자는 안에 갇혀 못나오고, 욕심을 버린 자들은 살아 나온다. 또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지. 욕심을 버리고 살아 남은 자들에겐 그들이 챙기지 않은 보물이 하나씩 들어있다는 것.
* 앙크수나문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녀를 제물로 삼았다. 자 이제 마지막 단계. 주문을 외워라. 야발라야히야. 야발라바히야.
대개의 뇌 비우는 영화들은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다. 거꾸로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는 영화들은 뇌 비우는 영화다, 라는 명제도 성립한다. 대개 생각거리를 던져주거나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영화들은 - 예를 들면 메멘토나 나비효과 같은 - 한 장면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전개되어가는지도,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관객은 눈 부릎뜨고 머리칼 쭈뼛 세우고 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영화들은 뇌를 비워놓을 수 없다. 반대로 모든 것이 예상가능한 영화들은 헤벌레 입 벌리고 드러누워 어디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나보자 정도의 생각을 하거나, 혹은 이 정도도 부담스럽다면 그냥 눈만 뜨고 화면만 보고 있으면 된다.
<미이라>는 뇌 비우고 즐길 영화 중에서는 꽤 괜찮은 영화였고, 스릴도 있고, 볼거리도 있으며, 흥미롭기도 했다. 특히나 지하동굴(?)의 고대 유령들과 풍뎅이 등의 CG효과는 칭찬할 만하다.감독 스티브 소머즈는 영화를 만들 때 "더 크고 더 재미있게"를 자신의 모토로 삼는다 한다. <미이라>는 이런 신조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이는 후속편과 <반헬싱>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모든 이들이 신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 그것이 뇌 비우기 영화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