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시간은 흘러흘러 BC480년. 고대 그리스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었다.  아테네의 소크라테스(BC 469-399)가 태어나기 전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군이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해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키고 있다.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은 바다를 건너 이땅에 도착했고, 그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온갖 신기한 사나운 동물들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스를 위협했다. 300대 100만의 싸움은 보지 않아도 결말이 뻔하지만 그들은 용감히 맞서 싸웠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것이 대략적인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세번에 걸친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 전쟁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은 BC492년에서 BC479년까지에 이르는 BC480년의 테르모필레 전투, BC480년의 살라미스해전, BC479년의 플라타이아이전투를 일컫는데, 이 중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는 그리스가 승리를 거두어 페르시아를 물리쳤지만, 테르모필레 전투에서는 그리스 연합국의 맹주역할을 했던 스파르타의 레오다니스왕과 군인 300명이 전사했다. 시간상 가장 먼저인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 군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뒷날의 승리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시간을 벌었고, 이들이 전사한 뒤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 그리스는 페르시아에 대적했다. BC48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칼리아스 화약이라는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그리스의 맹주역할을 했고, BC431년부터 404년까지 진행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 세력 대 스파르타 세력의 싸움에서 아테네가 짐으로써 스파르타로 권력이 다시 넘어갔다.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철학을 모르는 이들도 스파르타 라는 말은 한번씩 접해봤다. 우리가 현재 '스파르타'와 함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는 '학원'이다. 스파르타식 학원.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우기 전에 난 스파르타를 접했고, 그건 학원 전단지를 통해서였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칩니다. 무슨 말일까. 단어가 의미하는 본래적 의미를 알기도 전에 나는 전단지를 통해 대략 눈치를 챘다. 아 졸라 빡센 학원이구나. 방학동안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모든 스케쥴을 관리받고 짜여진대로 열심히 공부한다. 그럼 성적이 오른다. 뭐 이런식.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던 나라로서가 아니라 빡센 기숙학원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 스파르타 전사 300명을 이끌고 장렬히 전사한 레오니다스 왕의 어린시절. 굶주린 늑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늑대보다 강렬했으며, 그의 행동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잽싸게 공격하는 늑대보다 민첩했다.

  스파르타가 이렇게 빡센 학원을 지칭하게 된 것은 스파르타의 교육관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체격의 정도와 건강함을 체크받고 약한 녀석들은 바로 버려진다. 오직 태어날때부터 강한 아기만이 스파르타의 국민이 될 자격이 있으며, 이들은 7세가 된 뒤에는 부모와 떨어져 엄격하고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받는다. 레슬링, 달리기, 창던지기 등등의 온갖 전투기술의 기본기를 익히고, 밖으로 내보내져 어두운 밤엔 늑대와 같은 야생동물과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남자들은 20살에서 60살까지 병역의 의무를 지고, 30살까지는 혼인을 했더라도 병영 막사에서 동료들과 지내야 한다. 모든 것이 국가수호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그만큼 국방력은 강했다. 흔히 스파르타와 비교되는 아테네의 경우 스파르타와는 달리 글과 문학, 음악, 미술 등의 교육에 막대한 시간을 투자했으며, 여기에서부터 비록 노예와 여성이 제외된 절반의 민주주의였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태동했다.




* 300명의 군인으로 100만대군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왼쪽 동료의 무릎에서 어깨까지를 보호하라. 단결된 300의 군사는 오합지졸 페르시아 군보다 훨씬 강했다. 절벽으로 떨어뜨리고, 놀래켜 떨어뜨리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자신을 감추었다 날렵하게 찌른다.

  영화는 페르시아 전쟁의 일부분인 테르모펠레 전투를 다룸으로써 스파르타 군인들에게 주목한다. 이 영화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검투사들의 이야기 <글레디에이터>나 <알렉산더>, <트로이> 등보다는 흥미가 떨어진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재현하는데 충실했으며, 이 과정에서 흥미나 곁다리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대개의 고대 역사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러브스토리가 있는데 비해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는 없고 러브씬만 잠깐 보인다. '<트로이>의 스케일, <글래디에이터>의 스펙타클, <매트릭스>의 영상혁명을 뛰어 넘는'다는 광고문구는 거짓은 아니지만, 흥미와 스토리는 없다고 보면 되겠다. 단순한 재미로 볼 영화라기보다는 역사의 한 장면을 영화로 재현해낸 것으로 만족할 영화.  역사교과서 속의 단 몇줄로 언급된 페르시아 전쟁을 눈으로 감상하는 재미란 이런 것. 스케일과 스펙터클함과 뛰어난 영상미에 푹 빠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뒷말 1 :  꽤나 잔인하다. 시뻘건 피가 난무할 것이다. 게다가 몸땡이 잘라지는 장면도 리얼하다. 씬씨티를 보신 분은 그 정도를 예상하면 될 것.

뒷말 2 : 만화와 영화는 1백만 대 300명의 싸움이라 했지만, 역사기록에 따르면 실제로는 페르시아군이 15만 정도로 추정되고, 스파르타군은 300명에 수행하인의 수까지 더해 600명 정도로 추산된다.

P.S. 함께 보면 좋을 저 동네 역사 영화들.

대로마 제국을 뒤 흔든 노예 반란 사건을 다룬 <스파르타커스>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을 그린 호머의 서사시 <일리야드>를 스크린으로 부활시킨 <트로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싸움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킹덤 오브 헤븐>
고대 로마 시대의 검투사를 소재로 한 <글래디에이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불리우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그려낸 <알렉산더>
어린 시절 만화로 접해 익숙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전설 <킹 아더>
'아더왕의 전설' 중 기사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삼각 관계를 다룬 <카멜롯의 전설>
토마스맬로리의 원작 '아서의 죽음'을 바탕으로 아더왕과 엑스칼리버를 소재로 한 중세시대극 <엑스칼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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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랭크 밀러의 만화 '300'의 영화판인 모양이군요.
이틀전에 아이들에게 이 만화를 사줬답니다..


마늘빵 2007-02-2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그게 원작이라 들었습니다. ^^ 전 만화는 못봤어요.

마늘빵 2007-02-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책이 원작이라는 것만 알았지, 만화인것도 몰랐고, 씬시티의 만화가 프랑크 밀러가 그린건지도 몰랐어요.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씬씨티를 떠올린건 이상한게 아니었군요. 영화 씬씨티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했어요. 색감이 특히나요.

비로그인 2007-02-2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t's right. 아프락사스님.


백년고독 2007-02-2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잔뜩 기대하고 있답니다 ^^, 만화가 원작이었군요.

마늘빵 2007-02-2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습니다. 잔인함이 괜찮다면. 씬시티를 먼저 보시고 이 영화를 보셔도 좋을 듯 해요. 둘 다 만화같은 영상으로 재현해는 기법이 탁월합니다.
 



* 스포일러 경고

  4편째 시리즈물을 시도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매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터미네이터>, <에이리언>, <매트릭스> 등등은 첫작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업적으로 이윤을 획득할 만큼은 좌석을 채웠다. 다른 영화들이 하나의 일관된 제목을 가지고 관객에게 어필하는 반면, 이 시리즈물은 제목이 제각각이다. 또한 영화의 제작순서가 시리즈의 줄거리를 시간순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영화 속 시간에 따르면, 엄연히 이번에 개봉하는 <한니발 라이징>이 가장 우선이 될 것이고, 이어서 <레드드래곤> <양들의 침묵> <한니발>이 따라올테지만, 실제 제작순서는 91년에 <양들의 침묵>이, 01년에 <한니발>이, 02년에 <레드드래곤>이, 그리고 07년에 <한니발 라이징>이 따라간다.



* 이 잘생긴 꽃미남이 잔인한 살인마라니. 한번 나쁜 놈으로 찍히면 영원히 나쁜 놈이 된다. 이런걸 낙인효과라고 한다지.

  영화제 사상 최소 출연(16분)으로 9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안소니 홉킨스는 불행히도 이번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한니발 라이징>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소니 홉킨스의 나이가 이제 우리나이계산으로 70세에 이르렀으니 2차 대전을 겪은 꼬마를 열연하기엔 너무나 나이가 많지 않은가. 안소니 홉킨스의 카리스마를 대신할 청년으로는 가스파르 울리엘이라는 배우가 낙점되었다. 84년생 프랑스 출신의 이 배우는 <인게이지먼트>로 데뷔하여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니발 역을 따냈다. 전작을 보신 분들은 전작의 안소니 홉킨스 못지 않은 그의 살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가족들이 독일군에 의해 몰살당하고 그때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한니발은 처참에게 살해당한 동생 미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기억을 떠올려 그들을 추적한다. 버려진 옛 집터엔 그들의 인식표가 남아있고, 이를 토대로 한명씩 찾아가 피의 복수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워낙 침착하고 머리가 비상한지라 경찰의 거짓말탐지기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프랑스의 의대에도 최연소 합격하였다. 이 모든 것이 복수를 위한 사전작업이다. 하지만 본능에 가깝다. 그의 치밀한 복수장면은 아주 깔끔하지만 처참하다. 머리를 동강내고, 척추를 베고, 볼따꾸를 버섯과 함께 꼬치구이 해먹는다. 그 누구도 한니발을 막을 수 없다.

  그는 왜 잔혹한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본래부터 선하게 태어난다거나, 악하게 태어난다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는 그런 인간의 본성에 관한 설들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 순진하고 착하기만 하던 어린 녀석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2차 대전 중에 가족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한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살점을 씹어먹는 체험까지 해야했다. 영화 속 그루터스의 말처럼 그는 어쩌면 자신이 여동생의 살점을 먹었다는, 고깃국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내 여동생을 죽인 녀석들을 찾아 복수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들에게 가하는 복수라기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가하는 복수다. 

  밤마다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며 잠을 설치고 괴로워하는 나에 비해, 나치로 활약한 그때의 이름을 감추고 귀여운 아들, 딸 잘 낳아 번듯한 레스토랑도 하나 차리며 그럭저럭 윤기나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아무도 그들을 처벌해주지 않는다. 법으로도 안되고, 도덕적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라면, 나만이 응당한 댓가를 치뤄줄 수 밖에 없다. 복수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을 죽임으로써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가해진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 오직 피만이 그대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양들의 침묵 시리즈라고 해야할까, 한니발 시리즈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부르건간에 이 작품들은 모두 잔혹하지만 깔끔하고 신사적인 범죄자를 다룬다. 비상한 머리와 고통을 가하는 다양한 살해방법, 게다가 인육을 먹는 설정까지. 이 모든 것들은 영화의 원작을 집필한 소설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괴물은 한니발이 아니라 토마스 해리스다. 토마스 해리스는 은둔 작가로 알려져있다. 온갖 인터뷰와 대외활동요청을 거부한 채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해온 이 사람은,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샐린저의 은둔생활은  영화 <파인딩 포레스트>를 통해서도 다뤄졌다.   

  토마스 해리스는 영화 한니발 시리즈의 모든 원작을 집필한 작가이다. 스릴러 소설로 먼저 완성이 되고, 이후에 이것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감독 피터 웨버는 이전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섬세함과 절제된 감성을 선보인 바 있다. 92년부터 시작된 한니발 시리즈는 조나단 드미로, 리들리 스콧(대표작 글레디 에이터), 브렛라트너의 손을 거쳤고, 피터 웨버를 통해 한니발의 성장과정에서의 상처와 치유, 분노를 드러낼 수 있는 섬세한 심리묘사를 완성시켰다. 토마스 해리스는 유일하게 피터웨버에게만 집을 개방했고, 그와 수없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도움을 줬다고 전해진다.

  더이상의 한니발은 이제 없다. 한니발의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작품이 나왔으니 이후 한니발을 만나기는 힘들다. 이번 작품은 안소니 홉킨스의 <양들의 침묵>만큼은 아니지만, 젊은 한니발 가스파르 울리엘을 통해 깔끔한 피의 복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잔인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니발'에게 있어서 '생각보다'임을 말해두고 싶다.

 p.s. 이런 시리즈물은 영화 속 시간순서대로 한번 쭉 훑어줘야 제맛인데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따로 즐겨도 무방하겠다. 전작을 전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재밌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뒤 <양들의 침묵>을 보면 어떨까 싶다. 아무래도 안소니 홉킨스를 먼저보고 젊은 한니발을 만나는건 강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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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4-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의 글은 참 편안하네요.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ㅡㅡ: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 중에 책을 썼다. 덕분에, 평소엔 서로 바빠 얼굴조차 볼 수 없던 동료들이 무릎을 맞대고 옛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직 선배들도 찾아와 얘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겁도 없이 까불었는지, 또 서로를 얼마나 격렬하게 부딪치며 갈등했는지,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살렸다. 그 얘기들을 모든 이 책에는 '기자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고통과 보람이 모두 녹아있다. 전현직 기자 23인에게 시사저널이란 매체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시사저널 사태가 시작된지 벌써 8개월이다. 이 사태를 접한건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의 그동안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이 책은 2006년 6월 16일에 있었던, 시사저널 870호의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전횡을 다루던 3쪽 짜리 기사를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몰래 들어내면서 시작되었다. 편집장의 사표수리와 이후 계속되는 기자들에 대한 감봉, 정직, 대기발령 등의 징계조치는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타 언론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몇몇만이 사태에 대한 언급을 했을 뿐. 메이저 신문사들은 모두 침묵했다. 동종업계 종사들이 당한 무자비한 테러 앞에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 책 속의 누군가에 따르면 이는 언론계의 불문율이라 한다. 타사의 편집권이 어떻게 운영되든 그건 그 회사만의 일이라는게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나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끈질기고 깡따구가 쎄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송을 통해 밀린 월급을 죄다 돌려받고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해본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시사모)의 대표 고종석씨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라고 말했다. 고로 고종석은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고 결론 내린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종석의 시각은 그가 시사모의 대표라는 주관적 입장을 불식시키고도 남는다. 어떻게 70-80년대 군사정권도 아닌, 대통령이 농담따먹기의 대상이 되고 개그프로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 시점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가 점점 더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굳건하게 발붙였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독재정권에 의한 압박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압박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독재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의 민주화일 뿐, 우리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지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삼성의 힘은 막강하다. 이 책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취재를 위해 스파이짓(?)을 하던 기자들의 활약상(?)이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최강, 세계에서는 소니에 맞먹는 이 기업은, 오로지 개발과 돈벌기에 주력할 뿐, 스스로의 위치에 걸맞는 존경을 받고 싶진 않은 듯 하다. 삼성에 조금이라도 안좋은 기사가 나가려들면 홍보부와 회장단이 압력을 가하거나 돈을 바르는 식으로 어떻게든 막아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안되면 해당 기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위해 후속기사를 내보내도록 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신경을 썼지 안은 잔뜩 곪아있다. 김훈은 이를두고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책은 그간의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파업기자들의 현장스케치와 생각을 담아내고 있으며, 다른 한편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시사저널의 작금의 사태에 대한 브리핑과 더불어 '기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손석희는 뒷날개를 통해 절반의 축하를 보낸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이들이 편집권을 되찾는 날 해주고 싶다며. 책을 낸건 축하할 일이나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내기 위해 책을 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1지망 철학자, 2지망 기자, 3지망 교사, 4지망 출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지망은 아주 막연하게 다가가고 있고, 3지망은 직업이 되었으며, 4지망과 2지망은 머리에서 지웠다. 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사하고 준비하던 때 기자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체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워보였고,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기자로서의 삶을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난 여기 한꼭지씩 글을 쓴 23명의 시사저널  기자들이 존경스럽다. 부디 그들이 편집권을 되찾아 다시금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히며,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하길 바란다. 시사저널의 정기구독자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꼬박꼬박 구입하던 성실한 독자도 아니지만, 진정 한국의 타임이라 생각하던 불량독자로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시사저널 기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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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마늘빵 2007-0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듯해요. ^^

얼음장수 2007-02-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시길. 잘 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7-07-1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이 글 시사서포터스 카페(http://cafe.daum.net/SISALOVE)에 '기자로 산다는 것...을 읽고' 게시판에 올려도 되나요.. 가능하면 직접 올려주시면 좋고.. 허락해주시면 제가 올릴게요^^ 이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이벤트 추진해서 1년 구독권 걸고 대회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ㅋㅋ

마늘빵 2007-07-17 22:17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 이거 이메일로 확인안했으면 못 볼 뻔 했는걸요. 오래된 글에 대한 댓글은 브리핑이 안되는지라. 넵 이거 가져가셔도 됩니다. 근데 참언론실천시사기자모임에서 이벤트 할 예정인건가요. :) 아 그리구요, 승주나무님께서 감사하실 일은 아니에요. 시사저널 사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갖고 분노를 느끼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구판절판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자유아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한다'
(시사저널 좌표)-10쪽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이것은 30년 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인 것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재산에 귀속하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했고, 인식의 진화가 없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집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기자에 속한 것이냐, 편집인에 속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 자체가 저급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논의를 할 게 아니라, 그 편집권이 작동된 방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문제삼아야죠. 편집인에게는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이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 중략 ... 30년 전의 착각이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참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4-225쪽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일본 소니와 맞먹는 기업이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과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 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의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난 생각해요. 이건 삼성을 위해서 하는 얘기에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삼성은 유능하고 소중한 기업이죠. 달러를 벌어 오고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어째서 사회와의 관계나 언론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있는지... 이러면 그 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되기 어렵잖아요. 이번 일이, 삼성이 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8쪽

편집권 수호 투쟁으로 보낸 7개월의 시간, 괴로웠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나에게 감동받건 말건 어쨌거나 나는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재열,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름다운 고통의 날들 中)-237쪽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 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 중략 ...
비록 사기업이 공급한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띠고 있다. 오로지 시장 기구에만 맡겨 놓기에는, 한 공동체의 총체적 위생을 위해 너무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기사라는 재화다. 그래서 나는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
(고종석, 한국 저널리즘의 명예 시사저널에 달려있다 中)-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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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2-2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낼 이책이 온답니다.^^ 모두들 잘못되었다는걸 알면서도
이토록 해결되지 않는. 이 말도 안되는 사태에 답답함이 느껴지네요.

마늘빵 2007-0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춤추는 인생님 생각났습니다. 김훈에 대한 언급이 많거든요. ^^
 

2007. 2. 22 예스24 영화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4446&ref=33&m_type=1




* 스포일러 경고

  그냥 이렇게 묻혀지기엔 아까운 영화다. 상영하는 곳이 전국에 몇 군데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언제 간판을 내릴지 모르는 비주류 영화인지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보고 후회하지 않는 영화.  내 인생의 영화 5편 안에 까지는 아니더라도 10편 안에는 포함시킬 수 있는 영화.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했었고, 사랑할 사람이라면, 또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영화를 추천하고 그래, 라고 툴툴 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 '비포 선라이즈' 보다 솔직담백하고, '비포 선셋' 보다 가벼운 영화' " 

  <낯선 여인과의 하루>와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은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지만 통하는 면이 있다. 분명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확실히 <비포 선라이즈>보다는 솔직담백하고, <비포선셋>보다는 가볍다. 동시에 두 영화와 비교할 수 있다는 건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서부터 <비포 선셋>에 이르기까지의 9년의 공백 후의 만남과 헤어짐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말. 



 

  작년 한해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었더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와 <우리는 사랑일까>는 그의 작품 중 탁월하다. 에세이라 보기에도 어렵고, 연애소설이라 보기에도 어려운, 또 철학서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 셋의 어느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인데, 에세이나 연애소설이나 철학서, 셋 중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셋 중 어느 '한 가지만'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두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들을 두고 전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읽었음 좋겠고, 후자는 20대 중후반즈음의 나이에 어느 정도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고, 이별의 쓴 맛을 경험한, 연애의 시작과 끝이 어느 정도 익숙한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슷하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실제로 9년간의 텀이 있는 만큼, 전작을 본 후 9년 뒤에 다시 보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들도 9살을 더 먹었고, 9년 만에 다시 만나 연기를 했으며, 영화 속 설정 또한 9년 뒤의 모습이다. 20살과 29살은 매우 다르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20살과,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아는, 그리고 만남에서 헤어짐의 과정이 반복되는 학습효과로 인해 더이상 생소하지 않은 29살은... 다르다.  한편,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비포선셋>보다 조금 더 세월을 타고 간다. 그것은 영화의 주연배우의 물리적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사랑의 느낌이 지니는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 분홍색 꽉끼는 신부 들러리복 입고 삐딱하게 외딴남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잘입은 양복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삐딱한 외딴녀를 바라보는 남자.


  영화는 어느 결혼식 피로연 파티장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랑과 신부에게로 집중되어 있는 이때, 카메라는 외딴 두 남녀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훤칠하게 잘 생긴 외딴 남자가 핑크색 들러리 드레스를 입은 외딴 여자에게샴페인 한잔과 말을 건넨다. "고맙지만 됐어요"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 친절한 사양과, 작업과 딴지의 어느 중간쯤 있는 멘트로 시작된 두 외딴 남녀의 대화는 우리를 어느 호텔방으로 안내한다. 그래 원나잇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흔히 20대에는 사랑을 배우고, 30대에는 사랑을 안다고 말하던가. 그것은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느냐,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하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사랑은 섹스가 아니고, 섹스도 사랑이 아니다. 스킨쉽의 농도를 가지고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안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차원 낮은 사고방식이다.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30대 중후반의 남녀의 사랑을 그려내지만, 사랑을 배우는 20대와 사랑을 아는 30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외딴 남녀 간의 쉴새없는 수다는 피로연장에서 호텔방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장소의 바뀜에 굴하지 않고 수다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 "고맙지만 됐어요" 하던 여자와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고 하며, 재치넘치는 대화를 수고 받던 두 사람은 이제 온힘을 다해(?) 키스하고 있다. 


  "당신 피부 푸석푸석해" "당신은 냄새나. 그리고 배도 나왔네?" 아니 이게 처음 만난 외딴 두 남녀가 호텔방에서 섹스를 하며 나눌 말인가. 서로의 신체에 대해 칭찬을 퍼부으며 서로의 몸을 탐닉해야 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비방 아닌 비방을 하고 있다. 아니 원나잇하러 호텔방 들어왔는데 하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뭘?)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나 솔직하고 꾸밈없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를 서로에게 내뱉는 두 사람은, 어느새 나의 과거에 대해, 당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그날 우리의 만남과 첫 키스, 사랑, 첫 섹스, 그리고 갑작스런 이별. 모든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떠났다. 남은 자는 놀랐고 울었으며 괴로웠다. 떠난 자도 남은 자도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고, 현실을 받아들였으며, 각자의 인생을 걸었다.

  그 남자는 옷 잘 차려입은 변호사이고, 뮤지컬(?)을 하는 이쁘고 아름답고 나이 어린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 여자는 능력 좋은 심장전문의를 만나 결혼했고, 그의 아이를 키우며 그럭저럭 인생을 살아왔다. 그 남자는 전보다 배가 나왔고, 긴 머리는 짧은 머리로 변했으며, 여전히 열정을 가진 매력남이었고, 그 여자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빠꾸놓은 8명의 예비들러리들을 제치고, 9번째 들러리로 식장에 들어선, 담배 뻑뻑 피워대고 피부는 윤기를 잃었지만 여전히 도도하고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외로운 남녀가 뭘할까" 하고 작업을 걸줄도 아는 용기(?)도 가졌다.   

  <비포선라이즈>와 같은 원나잇이지만, 그들의 어색함과 풋풋함이 아닌, 농후하고 진하며 어색하지 않고 가볍다. 원나잇을 처음 해보는 자와 원나잇을 여러본 해본 자의 경험상의 차이는 절대 아니다. 제시와 셀린이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 이름없는 이 두 남녀가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는 나는 모른다. 모두가 경험자일수도 모두가 초짜일수도 있다. 무엇이 이름없는 두 남녀의 호텔방을 그리 만들었을까. 서로에게 농을 던지고, 솔직하게 못난 신체에 대해 말할 줄도 아는, 위트와 재치가 어우러지는 이들의 대화 아니면 수다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만났고 사랑했고 함께 했지만 헤어진 남녀는, 만났고 대화를 나눴고 하룻밤을 함께 했다. 그리고 여자는 집으로, 남자도 집으로. 헤어진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해뜬 아침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다. 공허한가. 허무한가. 왜, 라고 질문하고 싶은가. 모든 의문을 참아주기 바란다. 그것이 사랑했다 헤어진, 지금은 각자의 자리를 가진 남녀의 사랑일지니. 세월은 그와 그녀에 대한 기억력을 훼손시켰고 우리는 서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일치된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그건 파란색 땡땡이 원피스였어, 아니라고 나는 검정색 나비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줄무늬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떻고 니트면 어떻고 일반 넥타이면 어떠랴. 내가 사랑한건 너였고, 니가 사랑한건 나였잖냐. 그럼 됐잖냐. 영화를 통해 당신의 헤어진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그리고 현재 당신이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남은 것은 그것뿐. 여기까지.  
 
 

* '칼럼'이라고 붙여져있지만, 형식에 얽매이는 글을 쓰진 않습니다. 칼럼이면 칼럼이고, 리뷰면 리뷰고, 것도 아니면 아닌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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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보고싶었지만,,,흐흑

마늘빵 2007-02-2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몇 군데 안해요. 아직도 하나 모르겠습니다.

백년고독 2007-02-25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 비포선라이즈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이 영화 무조건 봐야겠네요. 게다가 알랭드보통 책과의 비교가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2-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선라이즈 와는 느낌이 많인 다를거에요. ^^ 나이먹은 유부녀, 유부남들의 원나잇인지라. 풋풋함보다는 농후함이죠. 둘 다 아주 능수능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