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구판절판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자유아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한다'
(시사저널 좌표)-10쪽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이것은 30년 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인 것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재산에 귀속하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했고, 인식의 진화가 없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집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기자에 속한 것이냐, 편집인에 속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 자체가 저급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논의를 할 게 아니라, 그 편집권이 작동된 방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문제삼아야죠. 편집인에게는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이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 중략 ... 30년 전의 착각이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참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4-225쪽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일본 소니와 맞먹는 기업이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과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 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의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난 생각해요. 이건 삼성을 위해서 하는 얘기에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삼성은 유능하고 소중한 기업이죠. 달러를 벌어 오고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어째서 사회와의 관계나 언론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있는지... 이러면 그 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되기 어렵잖아요. 이번 일이, 삼성이 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8쪽

편집권 수호 투쟁으로 보낸 7개월의 시간, 괴로웠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나에게 감동받건 말건 어쨌거나 나는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재열,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름다운 고통의 날들 中)-237쪽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 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 중략 ...
비록 사기업이 공급한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띠고 있다. 오로지 시장 기구에만 맡겨 놓기에는, 한 공동체의 총체적 위생을 위해 너무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기사라는 재화다. 그래서 나는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
(고종석, 한국 저널리즘의 명예 시사저널에 달려있다 中)-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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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2-2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낼 이책이 온답니다.^^ 모두들 잘못되었다는걸 알면서도
이토록 해결되지 않는. 이 말도 안되는 사태에 답답함이 느껴지네요.

마늘빵 2007-0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춤추는 인생님 생각났습니다. 김훈에 대한 언급이 많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