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 중에 책을 썼다. 덕분에, 평소엔 서로 바빠 얼굴조차 볼 수 없던 동료들이 무릎을 맞대고 옛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직 선배들도 찾아와 얘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겁도 없이 까불었는지, 또 서로를 얼마나 격렬하게 부딪치며 갈등했는지,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살렸다. 그 얘기들을 모든 이 책에는 '기자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고통과 보람이 모두 녹아있다. 전현직 기자 23인에게 시사저널이란 매체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시사저널 사태가 시작된지 벌써 8개월이다. 이 사태를 접한건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의 그동안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이 책은 2006년 6월 16일에 있었던, 시사저널 870호의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전횡을 다루던 3쪽 짜리 기사를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몰래 들어내면서 시작되었다. 편집장의 사표수리와 이후 계속되는 기자들에 대한 감봉, 정직, 대기발령 등의 징계조치는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타 언론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몇몇만이 사태에 대한 언급을 했을 뿐. 메이저 신문사들은 모두 침묵했다. 동종업계 종사들이 당한 무자비한 테러 앞에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 책 속의 누군가에 따르면 이는 언론계의 불문율이라 한다. 타사의 편집권이 어떻게 운영되든 그건 그 회사만의 일이라는게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나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끈질기고 깡따구가 쎄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송을 통해 밀린 월급을 죄다 돌려받고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해본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시사모)의 대표 고종석씨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라고 말했다. 고로 고종석은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고 결론 내린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종석의 시각은 그가 시사모의 대표라는 주관적 입장을 불식시키고도 남는다. 어떻게 70-80년대 군사정권도 아닌, 대통령이 농담따먹기의 대상이 되고 개그프로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 시점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가 점점 더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굳건하게 발붙였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독재정권에 의한 압박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압박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독재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의 민주화일 뿐, 우리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지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삼성의 힘은 막강하다. 이 책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취재를 위해 스파이짓(?)을 하던 기자들의 활약상(?)이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최강, 세계에서는 소니에 맞먹는 이 기업은, 오로지 개발과 돈벌기에 주력할 뿐, 스스로의 위치에 걸맞는 존경을 받고 싶진 않은 듯 하다. 삼성에 조금이라도 안좋은 기사가 나가려들면 홍보부와 회장단이 압력을 가하거나 돈을 바르는 식으로 어떻게든 막아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안되면 해당 기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위해 후속기사를 내보내도록 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신경을 썼지 안은 잔뜩 곪아있다. 김훈은 이를두고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책은 그간의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파업기자들의 현장스케치와 생각을 담아내고 있으며, 다른 한편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시사저널의 작금의 사태에 대한 브리핑과 더불어 '기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손석희는 뒷날개를 통해 절반의 축하를 보낸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이들이 편집권을 되찾는 날 해주고 싶다며. 책을 낸건 축하할 일이나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내기 위해 책을 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1지망 철학자, 2지망 기자, 3지망 교사, 4지망 출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지망은 아주 막연하게 다가가고 있고, 3지망은 직업이 되었으며, 4지망과 2지망은 머리에서 지웠다. 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사하고 준비하던 때 기자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체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워보였고,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기자로서의 삶을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난 여기 한꼭지씩 글을 쓴 23명의 시사저널  기자들이 존경스럽다. 부디 그들이 편집권을 되찾아 다시금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히며,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하길 바란다. 시사저널의 정기구독자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꼬박꼬박 구입하던 성실한 독자도 아니지만, 진정 한국의 타임이라 생각하던 불량독자로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시사저널 기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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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마늘빵 2007-0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듯해요. ^^

얼음장수 2007-02-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시길. 잘 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7-07-1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이 글 시사서포터스 카페(http://cafe.daum.net/SISALOVE)에 '기자로 산다는 것...을 읽고' 게시판에 올려도 되나요.. 가능하면 직접 올려주시면 좋고.. 허락해주시면 제가 올릴게요^^ 이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이벤트 추진해서 1년 구독권 걸고 대회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ㅋㅋ

마늘빵 2007-07-17 22:17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 이거 이메일로 확인안했으면 못 볼 뻔 했는걸요. 오래된 글에 대한 댓글은 브리핑이 안되는지라. 넵 이거 가져가셔도 됩니다. 근데 참언론실천시사기자모임에서 이벤트 할 예정인건가요. :) 아 그리구요, 승주나무님께서 감사하실 일은 아니에요. 시사저널 사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갖고 분노를 느끼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