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품절


"플래티넘 고객이래요. 뭐가 궁금하면 우선 책을 사요. 애가 말을 안듣는다 하면 교육에 관한 책을 사요. 요리를 해야겠다면 책부터 사서, 하고 싶은 거는 하고 요리 안할 것은 그냥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수영을 책으로 배워 접영까지 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책을 버릴 때는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는데,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심해서 넣죠. 요즘은 교도소에도 갖다 주지요." (공지영의 방 中)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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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 Mr. Know 세계문학 15 Mr. Know 세계문학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절판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서문)-23쪽

들판에 가을이 오면 꽃이 시들어 꽃대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 또한 그렇게 사라져 버릴 터인즉, 인간의 외양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보에티우스)-37쪽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 윌리엄 수도사)-190쪽

"수도원이 '세상의 거울'이라면 해답은 자명해졌을테지."
"사실이 그렇습니까?"
"세상에 거울이 있으려면 먼저 세상이 모습을 얻어야 할 것이다."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의 대화)
-227쪽

"말은 인간이 지닌 이성의 표징일 수 있으나, 인간은 말로써 하느님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 온당한 것이라는 법도 없지요. 웃는 자는, 자기가 웃는 대상을 믿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악한 것을 보고 웃는닫는 것은, 악한 것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요, 선한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은, 선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드러내는 선의 권능을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회칙에, <어리석은 자는 웃음 속에서 제 목청을 높인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열 번째 미덕은, 웃음이 해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호르헤 수도사)

"퀸틸리아누스는, 웃음이란 위엄을 차리고 칭찬해야 할 자리에서는 삼가되, 그 밖의 경우에는 장려해서 마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 플리니우스는, <인간이기에 ㄴ는 때로 웃고 익살을 부리고 논다>고 썼습니다." (윌리엄 수도사)-249쪽

"사랑이 무엇이냐? 이 세상 만물 중에, 사랑만큼 영혼을 흔드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그러하고, 악마에게도 그러하니 만상에 두루 그러할 것이다. 사랑처럼 가슴을 뜨거운 것으로 가득 차게 하고, 사랑만큼 가슴과 가슴을 하나로 열게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랑을 이길 무기가 없는 자는, 영혼의 사랑을 통하여 바닥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윌리엄 수도사)-432쪽

여자는 내게로 다가서면서 그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던 까만 보퉁이를 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조금 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도망쳐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내 귀에 예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자는, 마음은 원이로되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에게 미소를 뿌리고는, 암염소 같이 주름잡힌 소리를 내면서 가슴 위에 둘러져 있던 치마끈을 풀었다. 치마가 휘장처럼 걷히면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 앞에 선 하와 같은 모습으로 여자가 내 앞에 우뚝 섰다.
<아름다워라 젖가슴이여. 부풀어올랐으되 지나치지 아니하고, 자제하였으되 위축되지 않았도다>
나는 우베르티노에게서 들었던 말을 라틴 어 원문으로 읊었다. 여자의 가슴이 흡사 백합 꽃밭에서 뛰는 두 마리 새끼 사슴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꼽은 영원히 비지 않을 술잔, 배는 백합꽃밭에 놓인 밀가루 자루 같았다. -4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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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0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여러군데 연필 밑줄이 그어진 책이에요. 다시 보고 싶네요..

마늘빵 2006-07-0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문구 하나하나 새겨가며 읽고 싶지만 그렇게 읽으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렇게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 놓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어요.
 

 

 

 

 

  영화로 본 <오만과 편견>에 이어, 소설로 본 <오만과 편견>, 그리고 마지막으로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이다. 그야말로 <오만과 편견>의 완결편.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고, 그리고 BBC 드라마를 봤으면 했지만 영화를 먼저 본 걸 어쩌랴. 어찌되었든 마지막에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을 본 것은 잘한 짓이다. 왜냐면 제일 좋았으니깐.

  BBC <오만과 편견>은 영국 BBC 방송국에서 제작한 것을 두 개의 디비디에 담아낸 것이다. 기존에 6부작으로 나눠 방송하던 것을 두 편에 담았지만, 각각의 드라마 한편 한편 끊어지는 부분이 그대로 느껴진다. 드라마 시리즈 6편을 연달아 본 것이나 마찬가지. 덕분에 엄청 긴 러닝타임을 견디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 한번에 보는 바람에 - 그래도 한 편 보고 멈출 수가 없는지라 내리 다 봐버렸다.

  BBC 드라마를 본 많은 사람들이 영화보다 드라마가 훨씬 낫다고들 이야기한다. 영어가 들리는 사람들은 영화에서의 발음보다 드라마에서의 발음이 좀더 정확한 영국식 발음이라 그렇다고들 하지만 나야 뭐 그냥 영어도 안들리니깐 그런건 알 바 없고, 영화보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과 배경이 더 소설에 충실하고 그 시대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좀더 촌티나는 다섯 자매들과 좀더 거만하고 딱딱한 다아시, 그리고 콜린스 씨. 아 정말 대박 콜린스. 영화와 드라마는 소설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조금씩 느낌이 달랐다. 영화가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좀더 세련되고 대중적인 모습을 그리려 했다면,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하려 노력한 듯 했다. 영화보다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며 소설의 느낌을 세밀하게 잡아내려 한 흔적도 무시할 수 없다. 소설을 보며 속으로 큭큭대던 그 장면들이 그대로 눈앞에 벌어지는 꼴이란. 다시 본다 해도 혼자 좋다고 재밌다고 큭큭 대며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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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06-07-0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죠? ebs에서 해줄때 이거 보려고 시간 맞춰서 집에 들어왔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stella.K 2006-07-0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언제 했었나요? 오늘 방송한다고 하던데...BBC 버전인가?
 

  족히 금방 떠오르는 대형 사건들만 나열해도 우리나라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청소년 수련회 화재 사건, 대구 지하철 폭발 사건,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태, 유럽 어느 나라에선가 열차 탈선 사고 등이 떠오른다. 이런 대형 사건들은 꾸준히 일어났었고, 그것이 자연의 힘에 의해서 일어났건, 사람의 실수로 인해 일어났건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난 사람들은 있었으며, 그들은 때로는 운으로, 때로는 운+본인의 끈질긴 생명에 대한 의지로 위기를 모면했다.



* 영화 속의 열차 탈선 사고. 한 명 빼고 다 죽었다.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영화다. 영화 속에서 열차 탈선 사고, 비행기 폭파 사고 등등의 대형사고들이 일어났고 거의 대부분이 다 죽었지만, 단 한명만이 생존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끔 신문에서 보면 아파트 13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했더라 하는 기사들을 볼 수 있다. 행운인지 운명인지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데이비드 던, 그는 살아남았다. 한때 잘 나가는 풋볼 선수였으나 자동차 사고 이후 이를 그만두고 같이 사고를 당했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경기장 경비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신체장애의 어떤 흑인이 내게 메모를 남기고, 그의 말도 안되는 가설을 들으며 황당해하지만 이내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제 영웅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난 범죄를 미리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살리고 살인범을 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남았으니.

  마치 이 영화의 설정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영화들 - 가령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등 - 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단지 예를 든 영화들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언브레이커블>에서는 그것이 현실임을 이야기한다. 나같이 맨날 넘어지고 깨지고 부러지는 녀석이 있다면 그 대칭점에는 넘어져도 맞아도 사고나도 다치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할 것이다라는 가설. 듣고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엘리야는 가상의 그를 찾기로 하고 결국 그는 나타났다. 그는 배트맨도 슈퍼맨도 <매트릭스>의 네오도, 세일러문도 아니지만 정말 무적인 것만 같았다. 아니야 나는 어릴적 수영장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그래? 그건 영웅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단점일 뿐이야. 그래. 끄덕끄덕.

  영화는 반전을 통해 가상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선이 있다면 악이 있고, 찬 것이 있으면 더운 것이 있고, 하얀 것이 있으면 검은 것이 있다. 맨날 아픈 놈이 있으면 결코 아프지 않을 놈이 있다. 여기엔 반대개념과 모순개념이 범벅되어있지만 영화가 설정하고자 하는 가설은 대립개념이니 굳이 반대와 모순을 구분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가상에서 현실로 돌아왔지만 아직 영화를 보고 있는 나는 가상세계에 머물며 생각을 확장하고 있다.



*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데이비드 던과 엘리야. 강자와 약자? 영웅과 악당? 완벽한 자와 결점투성이인 자?

  통계학에는 정규분포곡선이라는 것이 있고, 이는 평균치에 가까울수록 빈도가 높고 양극단으로 갈수록 빈도가 낮아지는 모양의 곡선을 의미한다. 우생학이라고 하여 정규분포곡선의 아랫부분을 인위적으로 잘라내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아래쪽 곡선을 아무리 잘라내도 나머지 곡선에서 다시금 꼬리가 다시 형성되기 때문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아래 곡선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돌연변이 혹은 변종으로 간주되지만 이들이 없이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잘 사는 사회라는데 이견이 없을테지만 그때의 행복이라는 것은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온전한 중간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규분포곡선의 아랫쪽에 위치하는 이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극복하고 행복할 수 있으며 때로는 중간곡선, 상위곡선에 있는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경우들도 많다. 우리는 이들을 잘못된 개체로 취급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어쩌면 인간종의 진화에 있어, 생존에 있어 기여할 수도 있다.

  과거 공룡이 어떤 이유로 멸종되고 말았지만 조그만 벌레녀석들은 살아남았다. 그 녀석들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인간 역시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이후의 인간 존재에 있어 발전과 생존에 기여할 수도 있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역사를 돌아봤을 때 지나친 엘리트주의를 앞세우며 인위적인 도태를 시도하였던 집단은, 다양성을 인정했던 집단에 비해 융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무결점주의는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더 낮은 단계의 사회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 이상 사회라는 것은 모든 것이 정말 완벽하고 결점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다양성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회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섭리이다. 영화 속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지닌 신체적 단점을 비극이라 느끼며 살아왔지만 결국 그러한 생각은 비뚤어진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금의 내 처지가 남들보다 못하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 없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왜 하필 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겠지만, 비극을 극복한 뒤에 올 행복은 저 위에 있는 이들보다 더 갚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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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0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고딩 때 영화감상반에서 본 것 중 하나네요. 상당히(실은 대단히) 지루했었죠.

마늘빵 2006-07-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조금 지루한 면도 있는데 생각해 볼 여지는 많은 영화였어요.
 

* 스포일러 경고

  "유하 감독,  주연 조인성."  이것만으로 충분히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라는 영화의 실패로 차기작까지 한참을 허송세월해야했던 유하 감독은 이후 <결혼은 미친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대박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비열한 거리>까지 보고 나오며 유하 감독만의 냄새가 느껴졌다. <바람부는...>은 못봤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비열한 거리> 세 영화에서는 유하 감독만의 색채감과 스토리 진행 방식이 보였다. 뭐랄까 그의 영화는 진한 초코릿이 녹아 끈적끈적해져 입에 넣어 짝 달라붙는 느낌이다. 먹을 수 있게 적당히 딱딱한 초콜릿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녹아 마셔버릴 수 있는 액체도 아닌 녹다 만 달짝지근한 초콜릿. 그를 스타반열에 올려준 세 영화는 모두 실제로 끈적끈적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타액으로 끈적했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피로 끈적했고, <비열한 거리>는 피와 땀과 때로는 진흙으로 더더욱 끈적거렸다. 총알 맞고 쏟아내는게 아니라 맞고 맞고 맞아서 터지고 새나오는 피다. 이런 실제적인 끈적함뿐 아니라 그의 영화는 그 자체가 끈적거린다.

   조폭에 대한 영화. 정말 제대로 쓴 조폭 영화. 영화 속 민호가 쓰고 싶었던, 민호를 띄워줬던 그런 조폭 영화다. 성공하고 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렷다. 그리고 이를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공에 간한 관념과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성공하고 잘 살고 싶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개념을 '돈'과 연관짓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구나 잘 살고 싶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도 그렇다.

* 너무 멋있는거 아녀 이녀석. 어떻게 망가지면서도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어. 부럽잖아.



*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녀를 보자 내 가슴은 쿵쾅쿵쾅. 그녀 앞에선 난 더이상 조폭이 아닙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하고 수줍게 다가가던 그가 결국 너무나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대뜸 차에서 내려 기습키스를.

  영화는 성공하고 잘 살고픈,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는 한 녀석에 관한 이야기다. 조폭 세계에 발들여놓고 이제 어느덧 중간보스 정도되었건만 사는 것이 쉽지 않구나. 변변찮은 아파트 좁은 공간에 사내 열 정도 거느리고 있는 병두는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누리고자 하나 이건 맨날 라면이다. 고기 좀 먹게 해주세요, 돈 좀 주세요, 정말 힘듭니다, 보스에게 가서 말해보아도 먹히지 않는다. 시키는 다 했는데도 돈을 안준다. 결국 그는 괜찮은 물주 만나 상철을 배반한다. 푹푹 쑤시고 담그고 죽어가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처음 사람을 죽였다. 기분 더럽다. 괴롭다. 갑자기 나타난 친구 민호. 영화를 하겠단다. 그래 도와주마. 친구 아이가. 조폭에 대한 영화를 찍겠다고. 오냐 좋다. 마음껏 보고 물어봐라. 하지만 말해선 안되는 거였다. 그래선 안되는 거였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할 말이 따로 있는 거였다. 실수는 결국 죽음을 불러온다.

  친구 민호는 겉은 서글서글하고 친절할지 모르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 녀석이다. "두고 봐라. 내 죽이는거 하나 갖고 온다" 그래 민호는 그걸 병두에게서 가져왔다. 그리고 병두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또, 자신이 믿었던 종수에게 결국 당하고 만다. 믿었는데. 식구가 뭐이가. 같이 함께 밥을 먹는 사이 아니가. 하지만 그 식구가 나를 배반할 줄이야. 순수하게 사람을 믿었던, 자신을 다 내보였던 병두는 결국 이 비열한 거리를 떠난다. "내 편 맞지? 우린 친구지?" 세상에 니 편은 없다.

  유하 감독은 <비열한 거리>를 통해 자신이 80년대에 겪었던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탐구를 영화로 내보였다 했다. 폭력 탐구 시리즈 첫편이 <말죽거리 잔혹사>였다면, 이 영화가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학생의 학생에 대한 폭력을 보여줬다면, 두번째 작품인 <비열한 거리>를 통해서는 조폭 세계의 폭력을, 그리고 좀더 근원적으로는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주려 했다.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주먹의 폭력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통해 때리고 부수고 맞고 담그는 수많은 잔인한 장면들이 연출되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그저 폭력에 대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폭력이란 인간의 내면성에서 표출 되는 것인 만큼 주먹만을 봐서는 안된다. 믿었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배신은 또다른 폭력이다. 병두는 그런점에서 겉은 조폭이지만 내면만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 순수함을 가지고 사랑을 하려 했다. 그리고 믿음을 줬다. 그리고 사랑을 얻었다. 치고 박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비열한 거리>만큼은 감독의 의도대로 인간의 내면적인 폭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생각한다.

 

* 이 영화에는 조인성과 유하 감독 이외에도 다른 탁월한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민호 역할로 나왔던 '남궁민'. 어쩜 그리도 순수하고 따뜻한 인상을 가지고 그토록 차갑고 날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유하 감독은 그의 눈에서 냉혹함을 봤다고 한다. 병두가 사랑하는 여인 현주로 나왔던 '이보영'. 티비 사극을 통해서 다소곳하면서 똑 부러지는 역할을 맡았던 그녀가 순수한 병두의 첫사랑으로 다가왔다. 아 어쩜 그리도 이쁜지. 그리고 진구. 병두의 오른팔 종수역으로 나왔던 배우다. 그의 연기에서 난 원빈을 보았다. 원빈 만큼의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원빈 만큼의 카리스마와 구수함을 지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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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6-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보고프네요.. 주말에 친구랑 갈까봐요..

마늘빵 2006-06-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어요. ^^ 아 역시 남자가 봐도 조인성 멋집니다.

릴케 현상 2006-06-2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한 장면 나오면 안보는데,아프락사스님이 등급을 매겨줘요. 볼지말지^^

마늘빵 2006-06-2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한 장면은 나오는데, 막 칼을 담궈요. -_-

책방마니아 2006-07-01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속에서 민호가 찍었다는 영화의 주인공 말이야.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랑 싸우던 선도 부장이더라구. 1974년생이고 유하 감독과 마찬가지로 상문고 출신이었던 것으로 기억남. 아마 말죽거리 잔혹사가 상문고 배경이었을 꺼다. 영화 음악 만든 사람도 상문고 출신 김진표였을 꺼야.
글구 말이야. 남궁민은 저번에 해피 투게더 프렌즈에 나온 적 있었는데, 나도 그 때서야 남궁민이 누군지 첨 알았당

마늘빵 2006-07-01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맞아. 나도 기억해. 그때는 비중이 컸는데 이번엔 그냥 우정출연식으로 했나봐. 나도 남궁민은 이 영화 통해 처음 알았다. 두 얼굴의 사나이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