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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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보고서 괜찮다 싶어 코엘료의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다. <연금술사>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보다 2년여 먼저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책으로 인해 코엘료붐이 일었다는 점에서 <연금술사>를 먼저 볼껄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번역된 순서가 뭐 중요하랴.

 연금술사. 영어로는 Alchemist 라고 한다. 영어실력이 짧아 앞에 붙는 Al 이 어떤 역할을 해주는 지는 모른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 따르면, '연금술'은 "옛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유럽에 퍼진 원시적 화학 기술. 비금속을 금, 은 등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며, 또, 불로 불사의 영약을 만들려던 화학기술"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산티아고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어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하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산티아고는 여행을 통해 나를 찾고자 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생떽쥐베리의 세권으로 된 책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내용은 다르지만 두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같다. 또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생떽쥐베리의 유명한 저서 <어린왕자>이다. 이 책에서 산티아고는 마치 여러별을 여행하며 이런저런 물음을 묻는 어린왕자와도 같다. 코엘료가 <어린왕자>의 형태를 답습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그도 이 유명한 책을 읽지 않았을리 없다 -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맴도는 <어린왕자>의 환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연금술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물론 연금술사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등장하기는 한다. 이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소설이 끝난 뒤 '작가의 말'중에 드러난다.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다. 하나는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하나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이다.

 우리가 '연금술사'하면 떠올리는 사람들은 대개 첫번째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연금술은 사전에 정의된대로 값어치 없는 금속을 값어치 있는 금속으로 바꾸는 그런 마술을 하는 기술이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오히려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위 분류의 세번째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 자신으로서 연금술사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자아를 깨우친 사람들.

 산티아고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P142)

 산티아고는 연금술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이미 연금술을 깨우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금술사'라 불리우는 자는 산티아고가 스스로 그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나 자신을 깨우치고 있는가? 대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은 한다 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돈과 권력보다는 나의 자아실현을 꿈꾼다. 누군가가 내게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아직 내게는 직장이 없다. 난 학생이다 - 난 아닙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된 돈은 돈이고, 내가 기존에 하던 일은 계속 해야한다. 그것은 돈벌이를 위함이 아니라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니까 말이다.

 나는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기술은 원치 않는다. 그런면에서는 나는 첫번째 연금술사보다는 세번째 연금술사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나를 깨우쳤다고 결론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나는 연금술사는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고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연달아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지오웰의 <1984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연달아 읽음으로써 좀더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듯이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어린왕자>와 <연금술사>를 함께 읽음으로써 자아에 대한 사색에 좀더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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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도 같이 보실것을 권합니다.
오래전 읽었을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나 (오히려 지루...) 얼마전 그 와 유사한 환경 (며칠을 대륙을 가로질러 혼자서 드라이브한..)에서 극심한 고독과 함께 그가 무얼 애기할려는지가 가슴으로 오던군요...

마늘빵 2005-02-2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야간비행>은 잘 모르지만 김규항의 를 낸 출판사 이름이기도 하죠.

비로그인 2005-02-2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읔..
생떽쥐베리의 대표작입니당...

릴케 현상 2005-02-2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은 좋긴했지만^^한편으로는 거부감도 있었어요. 비행사의 죽음... 그의 죽음을 통해 인류는 더 많은 비행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로서 인류는 한발짝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진보의 사명을 띠고 물러서지 않고 저 심연 속으로 날아간다... '좀팽이처럼' 사는 저는 누군가 저를 부추기려고 할 때마다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게 되요. 헉 난 아냐 하고...

마늘빵 2005-02-2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야간비행을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소설인가요? 아니면 에세이?

릴케 현상 2005-02-2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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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13쪽

"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거지.' "-73쪽

"새로운 세계는 텅 빈 시장의 모습을 하고 그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광장이 삶의 활기로 가득 차 있던 순간을 이미 보았고, 그 살아 숨쉬던 광경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단검을 떠올렸다. 잠시 바라보기만 하는 데에도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76쪽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95쪽

마크툽
- 대개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는 아랍어로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여있는 말이다'라는 의미. '어차피 그렇게 될 일 이다'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옮긴이 주)-100쪽

"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142쪽

" '시간이 그 운행을 빨리하면 사람들의 행렬 또한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법이지' "-148쪽

"연금술사는 병을 열더니 손님의 컵에 붉은 액체를 따랐다. 포도주였다. 청년이 그때까지 마셔 본 것 중 가장 좋은 포도주였다. 하지만 포도주는 알라의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악이 아니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일세."
연금술사가 술을 권하며 말했다." -190쪽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야영 채비를 하면서 그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좋아.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네. 마음이 그대에게 말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중략...

"제 마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말들을 쉬게 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때,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 걸 원치 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마음도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210쪽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212쪽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212-213쪽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216쪽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인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218쪽

"진정한 연금술사들을 나는 알고 있네. 그들은 실험실에 틀어박힌 채 자신들도 마치 금처럼 진화하고자 노력했지. 그래서 발견해낸 게 '철학자의 돌'이야. 어떤 한 가지 사물이 진화할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더불어 진화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걸세."-223쪽

'사랑은 매가 너의 모래땅 위를 나는 것과 같은 거야. 매에게는 네가 푸른 초원이지. 너의 그 푸른 초원에서 매는 늘 먹이를 얻어 돌아가지. 매는 너의 바위들과 모래언덕들, 너의 산들을 알고 있고, 너는 늘 매에게 관대하지.'

'그래. 매의 부리는 언제나 나의 조각들을 떼어가. 몇 년에 걸쳐 나는 매의 먹이들을 길러내고, 내가 가진 조금뿐인 물을 나누어주고, 어느 곳에 먹이가 있는지 보여준 셈이야. 내가 나의 모래 땅에서 기른 생명들에 저이라도 들라치면 정말 귀신처럼 하늘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싹 낚아채버린단 말이야.'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네가 그 생명들을 기른 거잖아. 매에게 먹이로 주려고. 그럼 매는 사람의 먹이가 되고 또 사람은 언젠가 네 모래의 먹이가 되는 거지. 그럼 거기서 또다시 매의 먹이가 태어나는 거고. 만물은 그렇게 순환하는 거야.'-234쪽

'그게 바로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241쪽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스승의 대답이었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작가의 말 중)-271쪽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일은 곧 우리 각자에게 예정된 진정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일 것이고, 코엘료는 그것이 바로 삶의 연금술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역자 후기 중)-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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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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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오래전에 힛트치고 이제는 좀 거품이 빠져버린 베스트셀러다. 물론 여전히 잘 팔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 힛트를 치고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더불어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는 출판사와 작가의 명예와 돈방석으로 연결된다. 물론 '돈방석'까지 연결되려면 적어도 이문열이나 최인호, 김훈 정도의 인기는 누려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류의 서적들은 쓰기도 어렵고 내기도 어렵고 인기를 누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인기를 누려도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기껏해야 인문사회과학은 3천부 정도 팔리면 만족한다고 한다) '돈방석'과는 거리가 멀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이라는 책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의 다른 저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까지도 더불어 동반상승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마도 그의 전작들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팔려 돈을 더 벌 수 있었을텐데 그로서는 아쉽겠다.

  내가 파울로 코엘료를 접한 것은 어느 한 일간지의 서평란을 통해서였고 당시 그다지 유심히 읽지는 않았다. 이후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것은 봤지만 역시 관심 밖이었다.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소설류는 나의 관심밖이다. 물론 소설도 관심있긴 하지만 집에 켜켜히 쌓아둔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으려면 다른 분야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한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서점에서 그의 이름과 책 제목을 무수히 많이 접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전까지 그를 경영/실용서적의 저자로 알고 있었다. 왜냐면 <11분> <연금술사>라는 제목이 어쩐히 11분안에 또 뭐 끝내기, 기존의 것으로 새로운 것 창조해내기 정도로 치부해버려 아예 무시했기 때문이다. 난 실용서적에 대해서는 약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책들이 책의 내용에 비해서 지나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이내 못마땅하고 XX열풍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뽑아져나오는 책들은 책으로도 생각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야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좀 힘들더라도 아무 책이나 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코엘료를 코엘류 감독 동생쯤으로-헉 이건 아니다- 생각하거나 실용서 저자로 알고 있었고, 그가 소설가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전이다. 동생 방에-동생은 책을 잘 안읽는 나보다 더 안읽는데 요즘 얘가 책을 좀 사고 있다- 있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의 나이 지긋한 수염잘 뽑아진 아저씨(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그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수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난 이런 수염을 좋아한다.)가 쓴 소설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의 경험. 세 차례나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에서도 활동했던 그런 경험을 토대로 씌여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열정이 없는 일상에 비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이런 여기는 정신병원. 그녀는 곧 죽게된다는 의사의 말에 올히려 조금씩 생의 의지가 생겨나는데...

 그녀가 죽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젊음이 가고 나면 너무 뻔한 내리막길 인생이 눈에 선했고, 남는 것은 노쇠와 질병들 뿐. 살수록 오히려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두번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나쁜 일들을 그녀라는 개인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녀를 따라 자살해야한다. 어느 인간에게나 남은 것은 노쇠와 질병뿐이요, 한 개인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막을 힘이 없다. 무기려한 인간. 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이 느끼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본인의 모습을 느끼지만 다른 곳에서 생의 의지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이는 베로니카와 같이 자살을 결심한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고시에 매달리다 입사시험준비하다 나이먹고 나이제한에 걸려 그나마도 하던 짓 못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한다. 또 다른 직업 알아보자니 그 방면엔 내가 아는 바가 없고 능력도 없다. 장사를 하자니 장사는 아무나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세월보내고 어느 덧 나이는 40. 아 내가 뭐하는건가. 이 나이먹도록 뭐했나. 곧 지천명이라는 50살인데, 그러다 60, 70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내 주관이 없이 남들 사는대로 따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내가 뭘 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알고 있다. 베로니카는 이와 같은 무기력한 남의 인생을 따라가려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다. 그저 하루하루 세끼 밥먹고 시간보내며 밤이되면 자고 아침부터 다시 반복되는 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다 일년, 이년 시간 보내고 아 나이먹다 늙어 죽는 거다. 차라리 병에 걸려 죽을지언정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기를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그런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아 내가 너무 인생을 낭비하며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고 깨우치겠지. 죽을 때 생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생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는 베로니카에게 뻥쳤다. 베로니카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 있던 곳의 정신병원 의사는 그녀에게 당신은 4-5일안에 죽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이쿠. 그럼 날 왜 깨운거야? 그냥 죽게 하지? 의사로서 도리있나? 죽겠다는 사람도 살려야 의사지. 난 아무 잘못 없소. 의사는 잘못없다. 그가 잘못이 있다면 베로니카가 멀쩡한데도 4-5일 안에 죽는다고 말한 것일 뿐. 하지만 오히려 베로니카는 그 때문에 4-5일 안에 생에 대한 의지를 살려냈다. 멋지다 의사양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역자 이상해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이는 이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건 알지만 죽음을 실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이때 써먹어도 되는건가? 철학을 헛공부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사르트르의 이 말을 이 책의 부제로 달고 싶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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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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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죽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쪽지를 남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이유가 명확했으므로.
첫번째 이유,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 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철학적인 것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젼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17-18쪽

" '솔직히 난 믿지 않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인간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만 해. 불의, 탐욕, 비참함, 고독일 뿐인 이러한 혼돈을 창조한 건 바로 신 자신이잖아. 신의 의도는 훌륭한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형편없어.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보다 일찍 이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한 피조물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야 해. 아니, 오히려 우리가 이 땅을 거쳐가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몰라' "-19쪽

"누군가 말한 것처럼, '통제된 광기'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 위에서 자신의 정신이 그 모든 어려움을 비웃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녀는 세상의 모든 정상적인 인간들처럼 울 수도, 근심에 빠질 수도, 화를 낼 수도 있었다."-82쪽

각주
원어는 Amertume. 일차적인 의미로는 '쓴맛'을, 은유적으로는 '회한, 쓰라림, 슬픔' 등을 뜻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독의 한 종류로, 그 형용사형인 아메르 Amer는 그독에 중독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130쪽

각주
Lunatique. 달의 영향으로 정신이상이 된 사람, 달이 뜨면 몽환에 빠지는 사람. -187쪽

각주
coprophagie. 배설물에서 성적 쾌락을 얻는 병적 성향.
coprolalie. 배설물에 관한 말을 함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병적 성향.-204쪽

"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옮긴이의 말)-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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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풍림명작신서 17
헤밍웨이 / 풍림 / 1993년 1월
절판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고 비로소 자기의 고독을 통감했다. 그러나 그는 거무스레한 깊은 물 속에 일곱 가지 색의 프리즘을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눈 앞에는 줄이 곧바로 뻗어 있고, 조용한 해양의 기분 나쁜 꿈틀거림이 보인다.
무역풍을 따라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앞쪽을 보니 들오리 한 떼가 하늘에 그 모양을 새겨넣은 것 같은 그림자를 뚜렷이 보이며 물 위를 건너간다. 한 순간 그림자가 엷어진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다시금 뚜렷한 모양을 취한다.
바다 위에 고독은 없다. 이렇게 노인은 새삼스레 생각했다"-65쪽

"노인은 이제는 병신이 되어 버린 고기를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흡사 자기의 몸이 도려내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소중한 고기의 원수를 갚아, 상어를 때려죽인 것이다. 제기랄,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덴쯔소였다. 큰 놈을 어지간히 많이 보아온 나지만서도."-108-109쪽

"좋은 일이란 오래 가지를 않는 법이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꿈이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이제와서는 그렇게 생각된다. 고기 따위 잡지 못하는 편이 좋았을걸. 그리고 혼자 침대에서 신문지 위에 누워 있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져 있진 않아.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109쪽

"노인은 노를 바꾸어 쥐고는 상어 아가리에 칼을 꽂아 주둥이를 찢어내듯 후볐다. 상어는 털썩 미끄러져 내렸다. 노인은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잘가라 가라노, 바다 밑까지 일마일의 여행이야. 친구에게 안부 전하게. 아니면 그건 네 엄마였냐?"-116쪽

"소년은 노인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고 그 두 손을 보고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커피를 가지러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도중에도 그는 연거푸 눈물을 흘렸다."-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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