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오래전에 힛트치고 이제는 좀 거품이 빠져버린 베스트셀러다. 물론 여전히 잘 팔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 힛트를 치고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더불어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는 출판사와 작가의 명예와 돈방석으로 연결된다. 물론 '돈방석'까지 연결되려면 적어도 이문열이나 최인호, 김훈 정도의 인기는 누려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류의 서적들은 쓰기도 어렵고 내기도 어렵고 인기를 누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인기를 누려도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기껏해야 인문사회과학은 3천부 정도 팔리면 만족한다고 한다) '돈방석'과는 거리가 멀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이라는 책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의 다른 저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까지도 더불어 동반상승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마도 그의 전작들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팔려 돈을 더 벌 수 있었을텐데 그로서는 아쉽겠다.

  내가 파울로 코엘료를 접한 것은 어느 한 일간지의 서평란을 통해서였고 당시 그다지 유심히 읽지는 않았다. 이후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것은 봤지만 역시 관심 밖이었다.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소설류는 나의 관심밖이다. 물론 소설도 관심있긴 하지만 집에 켜켜히 쌓아둔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으려면 다른 분야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한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서점에서 그의 이름과 책 제목을 무수히 많이 접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전까지 그를 경영/실용서적의 저자로 알고 있었다. 왜냐면 <11분> <연금술사>라는 제목이 어쩐히 11분안에 또 뭐 끝내기, 기존의 것으로 새로운 것 창조해내기 정도로 치부해버려 아예 무시했기 때문이다. 난 실용서적에 대해서는 약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책들이 책의 내용에 비해서 지나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이내 못마땅하고 XX열풍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뽑아져나오는 책들은 책으로도 생각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야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좀 힘들더라도 아무 책이나 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코엘료를 코엘류 감독 동생쯤으로-헉 이건 아니다- 생각하거나 실용서 저자로 알고 있었고, 그가 소설가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전이다. 동생 방에-동생은 책을 잘 안읽는 나보다 더 안읽는데 요즘 얘가 책을 좀 사고 있다- 있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의 나이 지긋한 수염잘 뽑아진 아저씨(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그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수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난 이런 수염을 좋아한다.)가 쓴 소설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의 경험. 세 차례나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에서도 활동했던 그런 경험을 토대로 씌여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열정이 없는 일상에 비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이런 여기는 정신병원. 그녀는 곧 죽게된다는 의사의 말에 올히려 조금씩 생의 의지가 생겨나는데...

 그녀가 죽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젊음이 가고 나면 너무 뻔한 내리막길 인생이 눈에 선했고, 남는 것은 노쇠와 질병들 뿐. 살수록 오히려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두번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나쁜 일들을 그녀라는 개인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녀를 따라 자살해야한다. 어느 인간에게나 남은 것은 노쇠와 질병뿐이요, 한 개인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막을 힘이 없다. 무기려한 인간. 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이 느끼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본인의 모습을 느끼지만 다른 곳에서 생의 의지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이는 베로니카와 같이 자살을 결심한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고시에 매달리다 입사시험준비하다 나이먹고 나이제한에 걸려 그나마도 하던 짓 못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한다. 또 다른 직업 알아보자니 그 방면엔 내가 아는 바가 없고 능력도 없다. 장사를 하자니 장사는 아무나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세월보내고 어느 덧 나이는 40. 아 내가 뭐하는건가. 이 나이먹도록 뭐했나. 곧 지천명이라는 50살인데, 그러다 60, 70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내 주관이 없이 남들 사는대로 따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내가 뭘 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알고 있다. 베로니카는 이와 같은 무기력한 남의 인생을 따라가려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다. 그저 하루하루 세끼 밥먹고 시간보내며 밤이되면 자고 아침부터 다시 반복되는 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다 일년, 이년 시간 보내고 아 나이먹다 늙어 죽는 거다. 차라리 병에 걸려 죽을지언정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기를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그런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아 내가 너무 인생을 낭비하며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고 깨우치겠지. 죽을 때 생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생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는 베로니카에게 뻥쳤다. 베로니카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 있던 곳의 정신병원 의사는 그녀에게 당신은 4-5일안에 죽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이쿠. 그럼 날 왜 깨운거야? 그냥 죽게 하지? 의사로서 도리있나? 죽겠다는 사람도 살려야 의사지. 난 아무 잘못 없소. 의사는 잘못없다. 그가 잘못이 있다면 베로니카가 멀쩡한데도 4-5일 안에 죽는다고 말한 것일 뿐. 하지만 오히려 베로니카는 그 때문에 4-5일 안에 생에 대한 의지를 살려냈다. 멋지다 의사양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역자 이상해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이는 이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건 알지만 죽음을 실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이때 써먹어도 되는건가? 철학을 헛공부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사르트르의 이 말을 이 책의 부제로 달고 싶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