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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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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탁석산을 좋아한다. 그가 처음 대중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작은 책자를 통해서였다. 이 두 책들이 한꺼번에 인문학 베스트셀러로 달리면서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마침 이때 그는 우리학교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이라는 강의를 맡고 있었다. 굉장히 튀는 사람이었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말하는대로 글빨과 말빨이 탁월한 사람이었고, 이력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내내 책만 읽어 공부는 꼴지를 달리고, 재수 일년 동안 공부해 서울대 자연계열을 일년동안 다니고 때려치고, 군에 갔다가 제대 후에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장학생으로 입학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그냥 이력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신의 자유로움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는 책은 그의 가장 최근작으로, 책 제목 앞에 <탁석산의>라는 문구를 붙인 것과 그의 얼굴을 책 전면에 드러낸 것은 이제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그의 이름을 빌려 책 판매에 도움을 얻자는 상업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때문인지 이 책은 인문서 치고는 대단히 많이 팔렸다. 그리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 라는 말은 과잉 사용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민족'고대, '민족' XX과 라는 식의 학교이름이나 학과이름 앞에 '민족'이라는 말은 쉽게 달라붙고, 이는 수식되는 학교와 학과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교 이름이나 학과 앞에 '민족'이라는 말을 붙일 하등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탁석산이 토론 형식을 빌려 어려운 주제를 대중에 다가가기 쉽게 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형식의 책은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저자는 부득이 각 장마다 '강의'라는 꼭지를 만들어 각 장에 해당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덧붙이고 있다. 토론 형식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고, 뒤에 붙여진 저자의 생각인 '강의'는 이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크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잉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한국 민족주의의 장래를 전망한다' 라는 다섯개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문화공동체인가, 핏줄인가, 언어인가, 역사적 유산인가? 저자는 이 모든 것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민족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한 핏줄인 단일민족도 아니며,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민족이라 하지도 않으며, 역사적 공동의 유산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아니라고 한다.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에 따르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적당히 이용해먹을 필요는 있다고 한다.

 따라서 민족정신이란 공허한 것이며,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것 또한 잘못이라고 한다. 민족은 애초에 없는 것이기에 사라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수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민족주의는 근거도 희박하고, 이제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장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만 민족주의 지지자들이 지닌 진정성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겸손한 장례식'론을 끌어들인다.

 또한 민족주의는 사다리라고 하며,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왔으며 이제 사다리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는 우리가 힘들게 한칸 한칸 쌓아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향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그 목표점에 거의 다 도달해있으며, 마지막 한 칸을 남겨두고 있다.

 "민족이란 원래 실체가 없는 애매한 개념이라 그 기반이 취약하므로 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없어지면 그 효용이 이데올로기로 변하거나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명분 내지 핑곗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다" 이는 민족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과잉된 예로 일본을 들면서,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으로 인한 우리의 피해가 더 컸음에도 우리가 중국에게는 관대하고, 일본에게만 과잉반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을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대 민족 이라는 구도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때 민족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성격을 띤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 뿐 한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선한 민족이고, 일본은 본래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악한 민족이 된다. 도덕적 선의 문제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윤리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생각하며 자위한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강화해왔다. 즉 우리 민족은 선하다는 의식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악역을 맡은 일본의 이미지도 강화된다. 일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시기심이 우리의 민족주의를 견고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일본을 하나의 보통  국가로 바라보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족주의의 사다리에서 이제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전환하자고 하며, 국가의 소유물인 국민이 아닌 세계시민이 될 때에만 우리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이다. 의무만 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감시대상이며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다." 라며, 반면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 국가의 부속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를 결성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영자를 바꾸든가 국가체제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한말 이래 민족주의는 이 땅에서 너무 많은 일을 했고, 우리는 이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을 정리한다.

 그의 근거와 주장은 그를 통해 민족주의를 접하게 된 나로서는 더이상 뭐라 반박할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내공이 너무 적은 탓에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점은 잘못이지 않나 싶다. 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건 아니다. 오히려 국사과목의 우리중심적 사고방식을 객관적 사실관계로 바꾸어놓고 이를 학생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그가 지적한대로 국어는 한국어로 바꾸어야하듯, 국사 또한 한국사로 바꾸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주관을 객관으로 바꾸자는 것일 뿐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 더불어 세계사도 동등한 관계에서 다루면 될 일이다. 국사를 알아야하는 것이 국가주의과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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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1-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이 두권의 책이 나왔을 때부터 정체성, 주체성을 따져도 꼭 뭉쳐서 덩어리로 따지는구나 이런 거부감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는 분인데... 리뷰 읽고나니 이 책은 좀 읽어보고 싶군요. 권혁범 씨가 쓴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와 비슷한 맥락이 보여서...

마늘빵 2005-01-3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탁선생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어쨌든 안티세력이 생긴다는건 또 그만큼 그 사람이 생산해내는 주장의 의미가 새롭다는 것이겠지요. 전 권혁범 씨의 그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권혁범 교수도 예전부터 관심갖어왔던 분인데.

히피드림~ 2005-02-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사놓고 바빠서(?) 아직 읽지도 못했네요. 서두에 학교얘기 하시길래 교수님인줄 알았네요.^^ 글도 잘 쓰시구요. 이 리뷰읽으니까 어서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구 서재 한번 둘러봤는데 정말 잘 꾸며 놓으셨네요.

마늘빵 2005-02-0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무리 토론형식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죠. 그래서 저도 한동안 사놓고 놔두고 있다가 읽었어요. 저도 님 서재 가볼게요~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
가토 히사다케 지음, 표재명 외 옮김 / 서광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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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보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지불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관심가는 책이 눈에 띄더라도 흥분된 마음을 자제하고 집에 묵혀둔 책들로 눈을 돌리곤 한다. 갈수록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사고픈 책들은 많은데 양자 사이에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대 윤리에 간한 15가지 물음> 이라는 책은 99년에 내가 경제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뒤 들은 첫학기의 수업 '윤리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교재는 아니었고, 단지 수업중 교수님께서 잠깐 언급했을 뿐이었지만 처음 철학에 입문한 나는 뭘 읽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수업중 언급되는 책들을 중심으로 사보기 시작했다.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은 가토 히사다케라는 일본의 철학교수가 지은 책을 그의 제자인 경북대 윤리교육학과 출신 김일방, 이승연씨가 번역하고, 고려대 철학과 표재명 교수가 최종적으로 검토해 출간한 책이다.

가토 히사다케는 본래 도쿄대학 철학과를 나와 헤겔철학을 전공했으나, 이후에 윤리학에 관심을 보이며, 생명윤리, 환경윤리, 응용윤리 등 각종 윤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군.

본래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원고로 읽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인데, 일단 일본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혹은 윤리학을 다루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는 현실이 부럽다. 방송에서 이렇게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이 방송 프로그램을 들을 만한 청자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라디오 방송의 원고를 듣는 형식이 아닌 읽는 형식으로 바꾸어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썼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대중이 이를 얼마나 알아들을지가 의문이었다. 이 책의 단점은 첫째가 그것이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하기 위해 각종 다양한 예시를 들은 것에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윤리학적 이론의 지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점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책이라고 하기엔 무리이지 싶다.

두번째 단점은 번역상의 문제다. 이 책에는 쉽게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면서 철학자들만이 알아듣는 단어 사용을 한 곳이 곳곳에 눈에 보인다. 일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 프리오리(A priori)'라는 단어로 이는 본래 라틴어로서 '보다 앞선 것으로부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말로는 '선천적'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는 이 개념은 좀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논리학의 형식적 규칙들이 아프리오리하게 인식되는 유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아프리오리한 요소에 근거를 둔다. 대상은 이 형식 안에 주어지며, 인식은 오성의 아프리오리한 개념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대상을 사유하고 경험을 조직한다. 칸트에게 아프리오리는 '선험적'과 '초월적' 두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독일어 tranzendental은 칸트에게 '선험적'이란 뜻이며, 이는 tranzendence 인 '초월'과 '경험'의 중간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뭐 '아프리오리'라는 개념의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 때문에 칸트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칸트가 언급되는 부분이 아니니 '선천적'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책은 별로 추천하고픈 책은 아니다. 언급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의 부적절한 위치나 번역상의 다소간의 문제점, 그리고 각각의 15가지 질문들과 대답이 엮어내는 체계성과 완결성의 부족함으로 썩 읽고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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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쇼
데이비드 에드워즈 지음, 송재우 옮김 / 모색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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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쇼>는 '세상의 모든 자유는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 <트루먼쇼>를 모방한 것으로 보여진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일개 세일즈 맨이었으나, 이 세계를 떠나 집필과 교육에 열중하여, 이후 여러 저널과 잡지에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이다.

역자는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획득, 동국대학교 아나키즘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프리덤쇼>라는 책이 아나키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해서 이를 번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프리덤쇼>는 어떻게보면 음모론이다. 우리가 당연하다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에 딴지를 걸고 이것은 음모라고 말한다. 물론 '음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가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음모론적인 시각이다.

그는 책에서 노암촘스키를 자주 인용하며, 그의 미국에 대한, 환경에 대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그의 입을 빌어서 음모론을 전개한다. 또 그의 지적들이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부터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 받아들이기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개 회사원치고는 참 여러분야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권위있는 지식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는 점은 그의 한계로 지적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고, 학위를 받지 못한 저자로서는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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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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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우선 제목이 참 길다. 하지만 매우 땡기는 제목이다. 제목만 보기에는 일종의 편가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하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책 안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가 원 제목이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책의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이 본 제목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보다는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책의 메시지와 더 가깝다고 생각해 저자와의 협의하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봤을 때도 원제 <아들아... >로 했을 경우 책의 첫 몇몇 글들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이후의 다른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되지 못한다. 저자는 본래 자신의 아들이 이 글을 봐주기를 바라며 썼던 것 같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달랐을 것이다. 책을 판매하는데 있어서도 본래의 제목보다는 나중의 제목이 훨씬 낫다. 나 또한 본래 제목을 달고 있었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김훈은 본래 한국일보 기자였고, 나중에는 시사 주간지 기자를 지냈다. 그리고 나이먹은 지금에 와서 쓴 소설 <칼의 노래>가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 기간 동안에 청와대에서 칩거하며 읽은 책이라 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리게 되었다. 물론 순전히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해서 이만큼의 판매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책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으로 인해 김훈은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늦게 독자들에게 다가간 셈이다.

 나는 <칼의 노래>는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 <현의 노래>는 읽었다. 그의 소설 속 문장들은 확실히 개성적인 그만의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설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문체를 지닌 소설가는 드물다고 본다. 그런데 김훈은 그의 첫 소설에서 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른 여타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 나도 <현의 노래>를 통해서 그의 문체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소설을 쓰기 전에 언론기자 생활을 하며 써두었던 칼럼모음집인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 문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은 굉장히 짧지만, 힘이 있고, 은유적이면서,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삶에 기반한 생생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문장은 고대 중국의 고전 속 문장을 읽는 듯 이리저리 휘돌아다니며 정곡을 찌른다. 아마도 그의 이런 짧고 강한 문장은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익히게 된 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이성적이지만 '머리'에 기반하기보다는 '가슴'에 기반하고 있다. 이 말은 어찌보면 모순적이다. 보통 머리로 사유한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가슴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감성적이라는 뜻인데, 그는 분명 '가슴'으로 사유하면서도 그의 문장에는 이성적 논리가 담겨져있다. 그의 모든 글들이 그가 발로 직접 뛰며 경험한 것들이고,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는 넓고 깊은 사유를 전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나의 가슴을 자극한다.

 그는 얼마전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굳이 말하자면 '중도 우파'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야. 회색과 중도가 깃발을 꽂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어려워져. 그 깃발 아래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러면 희망이 있어. 중도란 인간의 상식이지.”

 그는 또한 그들은 물적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좌익과 좌파가 세상을 맡아선 안된다고 하며 물적토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우익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도좌파' 혹은 '좌파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물론 그의 이런 발언들이 못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상을 꾸려나가는 것은 낭만주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에는 김훈이 그 당시의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여, 혹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주변의 일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때로는 욕을 하듯 강렬하게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듯 고요하게 사색을 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글들에서 느껴지는 바는 '생생함'이다. 그는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아직 그의 머리와 가슴은 기운이 넘치고, 그의 문장과 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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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구판절판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 <말하기의 어려움> 중)-65쪽

"몸속에는 산소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하고 몸은 늘 민감하고도 정확하게 반응하는 감각들로 살아 있어야 한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 닿을 때 그의 글은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부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 <외로운 맹수, 소설가의 생존방식> 중)-138쪽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은 집안을 편안케하고 의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성이 같은 것이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신경준 <도로고>)-163쪽

"길은 그 위를 가는 자에게는 통로이지만, 길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풍경이다. 그 풍경은 인간과 자연의 사이를 비집어가면서 가늘게 이어진다." (<길>)-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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