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절판


'한국적 사회과학'을 하자고 했더니 조선시대 연구로 돌아간 분들도 있었는데, 그것도 소중한 연구임엔 틀림없지만 '한국적'이라는 말에 너무 겁먹지 않으면 좋겠다. 최신 서양 이론을 수입해 소개하더라도 그 이론이 한국 상황에서 어떤 장점과 한계가 있다는 것만 분명히 밝혀준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 사회과학'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밑줄그은 이 주 : 강준만의 이러한 '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은 철학자 탁석산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서편제'보다는 헐리우드 기법을 가져다 쓰더라도 우리식으로 만든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적=전통적' 혹은 '한국적=민속적' 이라는 등식은 두 사람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5쪽

김영명은 한국이 처한 두 가지 '조건' 과 한국, 한국인의 다섯 가지 '속성'을 지적했다. 두 가지 조건은 단일성과 밀집성이고, 다섯 가지 속성은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이다. -7쪽

철학자 이정우는 '코드'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 지적하면서, "코드는 사물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 특히 무의식적 규칙"이지만, 오늘날의 코드 개념은 어떤 일반적인 무의식적 법칙의 의미보다는 숱한 집단들의 동일성을 형성하고 있는 사고 패턴들, 용어들, 정치적 입장들 등의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11쪽

'한국인 코드'는 본질주의에 근거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 부정도 아니다. 중간적 입장이다. 본질주의란 무엇이 되는 데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무엇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속성들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한국인 코드'는 한국인에 고유한 어떤 속성이 존재한다고 보지만 그것을 주로 상황의 산물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 유동성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하는 범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전략적 본질주의'로 보면 되겠다. -11쪽

"너나 잘하세요"는 자기성찰 없는 비판 문화가 드센 한국 사회를 향한 일침이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비리, 파렴치, 위선 행각이 그칠 줄 모른다. 염치마저 실종했다. 인간마저 실종된 것이다. 세상이 두렵다거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도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의존하는 최대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바로 냉소주의다. -19-20쪽

고영복은 냉소주의를 "현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기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비판하고 개선시켜 나가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고, 멀리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며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21쪽

민중
마르크스 : "그들은 자기가 하는 짓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
슬로터다이크 :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27쪽

윌리엄 번스타인 '이웃효과'

"우리 중의 부자들이 우리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도한 말은 안디ㅏ. 그들이 부유하면 할수록, 그들이 실제로든 전자매체를 통해서든 우리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비참하게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부의 불평등이 가장 작은 사회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타당할까? 그렇다. 주관적인 복합 복지척도의 꼭대기에 있는 나라들(아이슬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은 모두 공공연하게 재분배주의적 세금 정책을 갖고 있고, 소득분포가 협소하다." -68쪽

한국인의 상향의식에 주목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 이규태는 극단적인 증거로 유럽 사람들에 비해 하향을 하지 않으려는 하향억제의식이 별나게 강하다는 것을 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사람들은 상황이나 사정 또는 환경이 바뀌면 그게 맞추어 자연스레 하향을 하지만, 한국인은 사정이나 상황이 달라졌다 해도 하향은 끝내 하지 않으려 하며, 어찌할 수 없이 하향을 하게 될 때에는 처참하고 처절한 심경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70쪽

선진국과의 비교 중독증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늘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따라잡자는 전투성을 배양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적 자기모멸 또는 자학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92쪽

최상진은 정을 1. 역사성(오랜 세월, 추억, 어린 시절 등), 2. 동거성(동고동락, 같이, 가깝게 등) 3. 다정성(포근함, 푸근함, 은근함, 애틋함 등) 4. 허물없음(이해, 숫용, 믿음직, 든든 등) 등 네 가지로 구분하기도 했다. -114쪽

"사람들은 소외당하는 것을 영원히 두려워하며 산다. 그리고 어떤 의견이 커지고 어떤 의견이 줄어드는지를 알기 위해 환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만약 자기의 생각이 지배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견해가 지지기반을 잃고 있다고 판단되면 의견을 감추고 조용해지게 된다. 한 집단은 자신 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반면 다른 집단은 입을 다물기 때문에 전자는 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후자는 숫자보다 약해지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만들며, 나선형의 과정이 나타나게 된다."
(노엘레 노이만)-169쪽

한국인들의 강렬한 출세욕에 대해 최상진은, 한국인들은 사회적 존경과 세속적 출세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자기 실현을 좋은 의미의 출세와 연결시켜 왔다고 분석했다. "나는 무엇이다"보다 "나는 어떠해야 한다"가 한국인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자기실현에 대해 기술하라고 했을 때 그들이 기술하는 내용을 보면, 서구적 의미의 자기실현에 관계된 내용보다는 사회적 자기실현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또 한국인의 자서전을 보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직업과 위치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왔는가를 역사기술 식으로 열거하는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최상진은 한국인의 자기는 서구인의 셀프보다 미래지향적 목표 지향적이 크며, 사회현실과 본인이 처한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199-200쪽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닌다.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으며,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뒷사람을 이끌지 않으며,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라하지 않으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않는다." (<<대학>>)-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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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
김시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는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행복한 이기주의자>와는 달리 - 며칠전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읽고 혹평을 가한 일이 있었다 -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이기주의'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한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책들이 말하듯 지침을 주고 나를 따르라, 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해 깊이 있는 사색을 이끌어낸 다음 왜 이기주의자를 옹호하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것이 '이기주의'를 이야기하는 다른 책과 이 책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여러 철학자들이 옛 고전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읽어내려 한다. 이 책도 그와 같은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의 중국의 철학자들, 누구나 다 아는 공자를 비롯하여, 그의 후계자 맹자, 순자, 그리고 장자와 노자, 묵자와 한비자, 양주와 상앙 등등의 <중국철학사>에나 등장할 법한 굵직굵직한 주요 철학자들은 다 등장했다고 봐야한다. 저자 김시천은 이 많은 철학자들을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묵가학파와 양주이다. 이들은 당시 공맹의 유가철학에 딴지를 걸었지만 그네들의 파워가 너무나 큰지라 상대적으로 묻혀버렸던 인물들이다.

  우리는 지금껏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군자와 성인이 되라고 윗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크게 보고 크게 마음을 쓰고 큰 그릇 큰 사람이 되라고 들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딴지를 건다. 다 큰 사람이 되고자 하면 안된다. 도덕책에 나와있는대로 누구나 다 옳고 선하고 순수하고 남을 돕우며 사는 대인, 군자, 성인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현실적이다. 정말 그렇다. 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대통령, 국회의원, 우주비행사, 대기업 CEO, 변호사,  판사, 의사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다 될 수는 없다. 왜. 그럼 왜 안된다는거야. 

  거참 맹렬한 놈일세 아니 하겠다는데 왜 못하게 해. 그래 꿈은 다 꿀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되지는 못한다. 큰 인물은 큰 인물 다운 일을 해야하고, 작은 인물은 작은 인물 다운 일을 해야한다. 대인은 대인답게, 소인은 소인답게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마치 '대인=좋은 사람, 소인=나쁜 사람'이라는 등식으로 대인과 소인의 개념을 인식하며 살아왔고, 모두가 다 대인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안되는 데 되게  하려니 어렵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안되면 되게하라'이다. 안되는데 어떻게 되게 해. 이런 억지가 어딨어. 안되면 안되는거야. 안되는데 되게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며 스트레스 받는 이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안되면 하지마. 넌 너다운 길을 찾으면 돼. 소인의 삶을 찾아가라.

   이 책은 이기주의에 대한 옹호다. 우리는 도덕시간에 이기주의는 나쁜 것이고, 이타주의는 좋은 것이라고 배웠지만 - 도덕교사인 나부터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니 다들 그리 알 밖에. 이 책을 읽었으니 다음부터 조심해서 가르쳐야겠다. 그전에 도덕교과서부터 전면  개편해주면 안되나. 영 가르칠 때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양 가르치는거 같아 미안하네. 그거 싹 무시하고 내 맘대로 하려니 난 따로 닦아놓은 뭔가가 없고 이런걸 내공부족이라고 하지 - 결코 이기주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기주의가 왜 나빠. 나를 위해 살겠다는데. 나를 위해 살겠다는 이기주의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연결된다.

  나를 위하는 학문. <여씨춘추> 중기에는 이래 나와있다.

  "지금 나의 생명은 '나를 위해(爲我)'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 또한 크다. 나의 생명은 그 귀천을 논하자면 지위가 천자가 되더라도 비할 바가 못된다. 그 경중을 논하자면 부가 천하를 소유하는 것이라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그 안위를 논하자면 하루아침에 나를 잃게 되면 죽어서도 회복할 수 없다."

  나를 위해 공부를 했다. 공자는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제 몸을 위해(爲己) 공부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논어), " '자신을 위한다(爲己)'는 것은 배운 바를 신중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고, '남을 위한다(爲人)'는 것은 배운 바를 말로만 한다는 뜻이다. "(논어집해),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고, 남을 위한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공부한다는 뜻이다." (논어집주)

   옛 사람들은 나를 위해 공부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하라고 배운다. 공부해서 남주라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타인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고,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위해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배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는 이래 배우지만 집에서는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지 않나. 집안 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돈돈돈 들어있는걸 보면 그것이 가정교육의 여파가 아닌가 싶다. 분명 학교에서 돈 많이 벌라고 가르치진 않았으니까.

  이기주의의 본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듯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국가나 사회는 바로 각 '개인'이 행복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대 이기주의의 원리이다. 그러한 이기주의 원리가 제도화된 것을 우리는 '권리'라고 한다. "(P112) 이기주의는 곧 근대 민주주의의 권리인 셈이다. 사람들의 이기주의적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물론 이때의 이기주의는 엄격히 구분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를 위한 행동이기는 하되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행동. 그렇게 보면 도덕시간에 배운 이기주의의 의미와도 어느정도 일치한다고 봐야하나.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이렇게 소박하고 작은 것이다. 당신의 생명이 해침을 당하지 않으려는 작은 이기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기주의를 요즈음 말로 '권리'라고 부른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속되게 말하면 먹고 살려는 몸부림이고, 고상하게 말하면 행복해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다. 그래서 괜찮다. 얼마든지 이기적이어도 상관없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기껏해야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P220)

  그래 이 정도 선에서는 얼마든지 나는 이기적이어도 상관이 없다. 내 '이기'라고 해보야 고작 이런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깐 말이다. 이기를 위해 타인을 해치고 피해를 주는 정도의 선까지가게 되면 이는 이기주의가 아니라고 봐야한다. 그것이 저자의 이기주의에 대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그 정도 선은 이기주의를 넘어서 '인간답지 못함'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의 저자의 말을 읽어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악'을 인간의 이기적 본성으로 치부하는 것, 혹은 어느 한 개인의 이기심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의 원인은 그 사람의 이기적 본성보다는 삶의 문제, 사회적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악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단되고, 해결책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기주의라는 어떤 철학적 입장이나 모든 개인이 갖는 몸의 이기적 본성도 악의 궁극적 원인은 아니다. "(P241)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기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린다. " 이기주의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바탕으로 하여 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우리 사회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일 뿐이다." 대인의 삶이란 것은 그 자리가 큰 것이지 사람이 큰 것이 아니라 한다. 맞는 말이다. 제 그릇이 아닌 자가, 솔직히 말해 소인의 그릇 밖에 안되는 자가, 대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앉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 자리가 커질수록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악"이 많아지게 된다. 이를 막아야 한다. 고로 소인은 소인답게 살자는 것이다. 안되는 그릇에 몸에 좋은 귀한 약을 담고 담다가 넘쳐흐르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릇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그 그릇은 늘어날 그릇이 아니고, 늘어나더라도 시일이 필요하다. 왜냐. 안되는 그릇을 억지로 늘이려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대인은 대인답게, 소인은 소인답게 라는 모토는 선천적으로 제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있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생긴 의문점은 그것이었다. 그러면 제 그릇의 크기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면, 또 정해져있다 해도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면, 언제쯤 그 그릇의 크기를 알아볼 수 있을까. 15살? 20살? 30살? 의문이다. 언제쯤부터 '대인은 대인답게, 소인은 소인답게'를 적용시켜야 할지. 이런 의문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이기주의'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대인이 대인의 삶을 꿈꾸는 것은 대인의 이기주의요, 소인이 소인의 삶을 꿈꾸는 것은 소인의 이기주의다. 그리고 이때의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며 나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나의 이익에 관심을 갖고 나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이기주의이다. 공자왈 맹자왈 대인이 어쩌느니, 군자가 어쩌느니 그런 말보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인의 삶이 아닌가 싶다. 고전의 재조명이란 것은 바로 이런 뒤집기가 아닐런지. 바른 말 백번 하는 것보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게 해주는 이런 글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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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6-11-2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참 꼼꼼하게 쓰셨네요. 추천도 누릅니다.^^ 저에게도 기쁜 소식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
김시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절판


지금 나의 생명은 '나를 위해(爲我)'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 또한 크다. 나의 생명은 그 귀천을 논하자면 지위가 천자가 되더라도 비할 바가 못된다. 그 경중을 논하자면 부가 천하를 소유하는 것이라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그 안위를 논하자면 하루아침에 나를 잃게 되면 죽어서도 회복할 수 없다.
(<<여씨춘추>><중기>) -52쪽

온전한 삶(전생)이 가장 좋고, 모자라는 삶(휴생)이 그 다음이다. 그 다음은 차라리 죽는 것이고, 핍박받는 삶(박생)은 가장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온전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온전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타고나는 욕망이 적절하게 충족되는 삶이다. 모자라는 삶이란 그런 욕망 가운데 반만 충족되는 삶이다. (......) 핍박받는 삶이란 그런 욕망 모두 충족되지 못하고 모두 싫어하는 것만 얻는 것이니 굴종적이고 치욕스런 삶이다. 그래서 핍박받는 삶이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여씨춘추>><귀생>) -55-56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들은 제 몸을 위해(爲己) 공부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논어>><헌문>)-106쪽

'자신을 위한다(爲己)'는 것은 배운 바를 신중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고, '남을 위한다(爲人)'는 것은 배운 바를 말로만 한다는 뜻이다.
(<<논어집해>>)-107쪽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고, 남을 위한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공부한다는 뜻이다.
(<<논어집주>>)-108쪽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국가나 사회는 바로 각 '개인'이 행복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대 이기주의의 원리이다. 그러한 이기주의 원리가 제도화된 것을 우리는 '권리'라고 한다. -112쪽

큰 사람의 큰 이기주의는 의무이자 책임이지만, 작은 사람의 작은 이기주의는 권리이다. -120쪽

<논어>가 천하를 위한 이기주의를 걸어간 성인 공자의 행적이라면, <장자>는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도를 펼치는 강호의 이기주의를 설파한 지도이다. 이기주의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공자는 이기적이었고 장자는 더욱 이기적이었다. 하지만공자가 걸었던 길은 같은 보통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천하를 위한 이기주의였고, 장자가 발견한 길은 크긴 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강호의 이기주의였다. 도?왜 이런 것을 이기적이라 말하는가?
고전을 읽을 때 그 내용이 얼마나 철학적으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훌륭한가 하는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에 무언가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와 수사는 필요한 사람의 몫이다. <논어>의 말은 진솔하고 평범하지만, 그에 따라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장자>의 말은 난해하고 복잡한데다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끌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공자나 장자나 걸어간 길은 대인들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204-205쪽

당신의 이기주의는 이렇게 소박하고 작은 것이다. 당신의 생명이 해침을 당하지 않으려는 작은 이기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기주의를 요즈음 말로 '권리'라고 부른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속되게 말하면 먹고 살려는 몸부림이고, 고상하게 말하면 행복해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다. 그래서 괜찮다. 얼마든지 이기적이어도 상관없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기껏해야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220쪽

현대 인도 사회에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현실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의 지도층은 여전히 카스트 계급의 최상층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에 간 어떤 학자가 최하층 계급에 속했던 사람에게 전통 카스트 제도를 인정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 같으면 그러고 싶겠소?"
이기주의를 변명한다는 것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중략 ... 주권이 없고 권리가 없는 세상에서 나를 위한다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반역, 국가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우리는 길들여져왔다. 나를 위해 민족과 국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죄악이고, 오로지 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의무만 부과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이기주의라는 말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그것은 누구든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입장일 뿐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또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기주의란 단어를 들으면 공연히 권위의 그늘 속에서 만들어진 그릇된 연상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이고, 악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순자의 성악설은 통속적으로 인간은 약한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인간은 본성이 이기적이다"라는 것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물론 그 어떠한 입론을 거치더라도 본성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동서양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이로운 것, 즉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이하게도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말이 어떤 근거에서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인가? -238-239쪽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악'을 인간의 이기적 본성으로 치부하는 것, 혹은 어느 한 개인의 이기심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의 원인은 그 사람의 이기적 본성보다는 삶의 문제, 사회적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악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단되고, 해결책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기주의라는 어떤 철학적 입장이나 모든 개인이 갖는 몸의 이기적 본성도 악의 궁극적 원인은 아니다. -241쪽

이기주의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바탕으로 하여 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우리 사회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일 뿐이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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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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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 사회의 위대한 규칙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결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진 무언가를 사랑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르면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맞선에서 만난 비뇨기과 의사를 대관절 '왜' 사랑하느냐는, 재인을 향한 유희의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7-18 쪽

"잘 모르는 남자와, 아니, .......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혼자 금 밖에 남겨진 자의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잠깐 이성을 잃었었다는 핑계는 대지 않겠다. 저지르는 일마다 하나하나 의미를 붙이고,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실수였다며 깊이 반성하고, 자기발전의 주춧돌로 삼고, 그런 것들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면, 미안하지만, 어른 따위는 영원히 되고 싶지 않다. 성년의 날을 통과했다고 해서 꼭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껴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 -43쪽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내가 유준을 만나러 온 이유는, 어쩌면 고백하기 위해서였다. 애정 문제와 관련된 카운슬링엔, 맑고 담담한 사이의 이성이 제격이니까. -106쪽

쇼핑과 연애는 경이로울 만큼 흡사하다.
한 개인의 파워를 입증하는 장 일 뿐더러, 그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취햐을 가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서적 안도감을 느낀다.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이 있을 때는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고, 경제력이 생겼을 때는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114쪽

'어리다'는 말이 반드시 생물학적 연령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섬세하고 복잡한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리다는 것은 얼마든지 꿈을 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꿈의 대부분이 몹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 비록 제 딴에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외칠 것이다. "왜 안 돼? 하면 돼. 나는 나니까!" 맞다. 그것이 스물 다섯 살에 어울리는 세계관이다. 스물 다섯 살이므로,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당연하지, 다 잘 될 거야' 라고 마냥 북돋워줄 수가 없는 건, 내 인생의 시계추를 다시 칠 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188쪽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용가리 말야. 한 번 결혼했다 왔으면서 어떻게 그 실력은 하나도 안 늘 수가 있니?"
"그렇게 못해?"
"응. 죽음이야. 첨부터 끝까지 딱 정상체위. 오직 피스톤 운동. 헤어진 와이프랑 섹스리스였다더니 진짠가봐."
이럴 때보면, 유희가 발랑 까진 척하지만 실은 꽤나 멍청하고 순진하던 스무 살에서 그대로 멈춰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야 그걸 믿냐? 그럼 그 집 애는 어디 황새다리 밑에서 주워왔을까 봐? 그런거 다 뻥이고 그 남자는 다만 '원래 잘 못할' 뿐이야"라고 일러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사실 옛날에 내가 뭘 알았겠니. 하지만 그동안 나도 자연스럽게 학습해온 부분이 있잖아? 그런 거 다 무시하고 걔한테 맞춰서 하향 평준화시키려니까 아주 좀 쑤셔 미치겠다. 미적분 다 떼고 나서 다시 일차방정식 푸는 기분이야."
-232쪽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나는 일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316쪽

어쩌면 우리들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한 가지씩 개인적 불문율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자신의 규칙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들 때 발생하낟. 자신의 편협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ㅇ러진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고 단죄하는 일이 가능할까. 사랑에 대한 나의 은밀한 윤리감각이 타인의 윤리감각과 충돌 할 때, 그것을 굳이 이해시키고 이해받을 필요가 있을까. 유희가 만나는 남자가 이혼남이든 유부남이든 수도승이든 내가 터치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한 다스의 남자를 만나든 한 두름의 남자를 만나든 유희 식의 윤리로 재단되고 싶지는 않았다.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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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며 많이 서늘했어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구절 한 구절 마음 속에 박히더라구요.

씩씩하니 2006-10-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4,316,330이..저랑,,,,일치해요,,ㅎㅎㅎ
솔직한 문장들이 가슴에 와닿았던 책 같애요...

마늘빵 2006-10-2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 ^^ 아 저 정이현한테 반했어요.
씩씩하니님 / ^^ 네. 역시 좋은 문장은 누구나 다 알아보는 법이죠. 참 좋았어요. 즐겁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고.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W. 다이어 지음, 오현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자기계발서 따위의 것들을 투덜투덜 거리며 읽건만 또 다시 내 손에 이 따위의 자기계발서가 잡히는 것은 어인 일일꼬. 그래도 베스트셀러라고, 독자들로부터 별 다섯개의 평가를 받는다고, 믿고서 없는 독서시간 투자하여 읽어줬건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실망이요, 투덜거림이다.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되는 것들 중에서 나를 만족시킨 것은 에스콰이어에서 나온 <남자생활백서> 일뿐. 이거 자기계발서 맞지?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녀석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가장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 만족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과감히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서는, 이기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당당히 외치고 있으며, 그의 주장은 흔히 우리가 도덕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민족과 겨레와 이웃과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어찌해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어거지성 주장을 내놓는 것에 비하면 솔직하고 현실적이어서 좋다. 나는 말이지 도덕을 가르치면서도 저 따위의 '민족' '국가' 겨레' '사회' 란 단어들만 보면 치가 떨린다. 저 멀리 어느 땅에서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말고, 개인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했지만 미쳤냐. (나 또 흥분. 도덕윤리 교과서라고 하는 것들은 이제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개인이 온전히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등의 고민들로 가득차야 한다고 주.장.)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참 맘에 들지만, 그가 '행복'을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라고 하는 것들이 영 못마땅하올시다. 어쩌면 지금 내가 말하려는 바는 '자기계발서'라는 모든 책들에 대한 '못마땅함'일 수도 있겠다. 이런 류의 책들은 꼭. 반드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똑같다. 개인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떠어떠한 지침들이 있고, 이 규칙을 지켜야한다. 규칙을 지키기위해서는 지금의 너의 행동방식들은 이러이러해서 문제가 있고, 이렇게 고쳐야 한다. 뭐 이런거. 도.대.체.가. 스스로 고민과 사색을 거침으로서 뭔가를 얻게 만드는 법이 없다. 그냥 명령하고 지시한다. 그게 자기계발서가 자기주장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런거 말고, 정말 '행복'에 대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깨우침을 주려면 말이지, 이 딴 책 말고 일상의 철학함을 담아놓은 사색적인 글들이 훨씬 낫지 않겠어? 책을 읽으면 뭔가 좀 남아야하는데 말이지 남는게 없어. 개인을 변화시키자면 명령이나 지시 이런 것들보다는 책을 읽는 이의 머리와 마음을 움직여야할거 아니겠어? 나만 그런가? -_-

  하여간 영 맘에 안들어 이런거. 내 돈 주고 본 책이 아니니 그나마 덜 억울하지. 적어도 시간과 돈 중에 돈은 버리지 않았으니깐. 아 버렸구나. 동네 책방에서 빌려 본 값. 내 돈 내놔.

  * 보기 싫으면 너 혼자 곱게 보지 않을 것이지 왜 싫다면 봐 놓고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냐고 말한다면 할 말 없다. -_- 그러나 난 이런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런 현실이 영 못마땅하다. 그건 이 책과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자기계발서 만의 문제는 아니잖아. 그러니 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거라고.  하나 더. 근데 여기 미샤 3종 화장품은 왜 들어가. 쟤랑 무슨 관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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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별 하나도, 별점을 넣지 않으면 리뷰 등록이 되지 않아 넣으신 것이지요? 그 맘 잘 압니다.

이매지 2006-10-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기개발서 엄청 싫어해요. 내 돈 들여서는 절대 안 사는-_-;

비연 2006-10-2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

비로그인 2006-10-2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없이 리뷰를 쓰는 건 안되나봐요? 저는 쓰고 싶지 않은 건 안 써서 몰랐어요.

비로그인 2006-10-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님의 입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네요. 뚜렷한 지침을 제시해주고 고치라는 거, 생각하기 싫어하는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거죠. 전 지금 독서시간 안배에 대해 고민중에요. 내 생각과 다른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지 말지.. 님은 끝까지 읽고 리뷰까지 써주는 친절을! (사실 저도 시작하면 아까워서 그럴 것 같긴 해요.) 나쁜 것을 경험하는 것도 내 의견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것 같다는 위로~가 되려나?

비로그인 2006-10-2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자기개발서류를 싫어하지만 늘 똑같은 상술(?)에 넘어가곤 한답니다. 그만큼 지금의 제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고, 여태까진 속았어도 이번만은 다를지 모른다는 엉뚱한(?) 믿음도 약간은 있는 거 같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담고 있는 거 같아 보이는 녀석들도 제 zero 에 가까운 실천력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는 제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별은 다른 분들 리뷰를 따라 주게 되더라고요. 이런 데서 나타나는 소심한 성격;; (아마도 유일하게[?] 별 하나 준 책이 있는데, 다름 아닌 이문열의 <선택>이랍니다. 읽음서 '쓰레기닷!!!'라는 생각을 했던--+)

lovelyhi 2006-10-2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신기하네요. 저는 이 책 읽고 정말 많이 느끼고 너무 좋았는데. 다 각자 다를 수 밖에 없지만..저에게 따끔하게 충고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실비 2006-11-0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자기개발서를 사서 보는데 그래도 볼수록 좋은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책은 영 맞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