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절판


'한국적 사회과학'을 하자고 했더니 조선시대 연구로 돌아간 분들도 있었는데, 그것도 소중한 연구임엔 틀림없지만 '한국적'이라는 말에 너무 겁먹지 않으면 좋겠다. 최신 서양 이론을 수입해 소개하더라도 그 이론이 한국 상황에서 어떤 장점과 한계가 있다는 것만 분명히 밝혀준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 사회과학'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밑줄그은 이 주 : 강준만의 이러한 '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은 철학자 탁석산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서편제'보다는 헐리우드 기법을 가져다 쓰더라도 우리식으로 만든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적=전통적' 혹은 '한국적=민속적' 이라는 등식은 두 사람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5쪽

김영명은 한국이 처한 두 가지 '조건' 과 한국, 한국인의 다섯 가지 '속성'을 지적했다. 두 가지 조건은 단일성과 밀집성이고, 다섯 가지 속성은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이다. -7쪽

철학자 이정우는 '코드'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 지적하면서, "코드는 사물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 특히 무의식적 규칙"이지만, 오늘날의 코드 개념은 어떤 일반적인 무의식적 법칙의 의미보다는 숱한 집단들의 동일성을 형성하고 있는 사고 패턴들, 용어들, 정치적 입장들 등의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11쪽

'한국인 코드'는 본질주의에 근거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 부정도 아니다. 중간적 입장이다. 본질주의란 무엇이 되는 데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무엇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속성들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한국인 코드'는 한국인에 고유한 어떤 속성이 존재한다고 보지만 그것을 주로 상황의 산물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 유동성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하는 범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전략적 본질주의'로 보면 되겠다. -11쪽

"너나 잘하세요"는 자기성찰 없는 비판 문화가 드센 한국 사회를 향한 일침이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비리, 파렴치, 위선 행각이 그칠 줄 모른다. 염치마저 실종했다. 인간마저 실종된 것이다. 세상이 두렵다거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도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의존하는 최대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바로 냉소주의다. -19-20쪽

고영복은 냉소주의를 "현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기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비판하고 개선시켜 나가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고, 멀리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며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21쪽

민중
마르크스 : "그들은 자기가 하는 짓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
슬로터다이크 :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27쪽

윌리엄 번스타인 '이웃효과'

"우리 중의 부자들이 우리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도한 말은 안디ㅏ. 그들이 부유하면 할수록, 그들이 실제로든 전자매체를 통해서든 우리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비참하게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부의 불평등이 가장 작은 사회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타당할까? 그렇다. 주관적인 복합 복지척도의 꼭대기에 있는 나라들(아이슬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은 모두 공공연하게 재분배주의적 세금 정책을 갖고 있고, 소득분포가 협소하다." -68쪽

한국인의 상향의식에 주목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 이규태는 극단적인 증거로 유럽 사람들에 비해 하향을 하지 않으려는 하향억제의식이 별나게 강하다는 것을 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사람들은 상황이나 사정 또는 환경이 바뀌면 그게 맞추어 자연스레 하향을 하지만, 한국인은 사정이나 상황이 달라졌다 해도 하향은 끝내 하지 않으려 하며, 어찌할 수 없이 하향을 하게 될 때에는 처참하고 처절한 심경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70쪽

선진국과의 비교 중독증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늘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따라잡자는 전투성을 배양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적 자기모멸 또는 자학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92쪽

최상진은 정을 1. 역사성(오랜 세월, 추억, 어린 시절 등), 2. 동거성(동고동락, 같이, 가깝게 등) 3. 다정성(포근함, 푸근함, 은근함, 애틋함 등) 4. 허물없음(이해, 숫용, 믿음직, 든든 등) 등 네 가지로 구분하기도 했다. -114쪽

"사람들은 소외당하는 것을 영원히 두려워하며 산다. 그리고 어떤 의견이 커지고 어떤 의견이 줄어드는지를 알기 위해 환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만약 자기의 생각이 지배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견해가 지지기반을 잃고 있다고 판단되면 의견을 감추고 조용해지게 된다. 한 집단은 자신 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반면 다른 집단은 입을 다물기 때문에 전자는 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후자는 숫자보다 약해지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만들며, 나선형의 과정이 나타나게 된다."
(노엘레 노이만)-169쪽

한국인들의 강렬한 출세욕에 대해 최상진은, 한국인들은 사회적 존경과 세속적 출세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자기 실현을 좋은 의미의 출세와 연결시켜 왔다고 분석했다. "나는 무엇이다"보다 "나는 어떠해야 한다"가 한국인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자기실현에 대해 기술하라고 했을 때 그들이 기술하는 내용을 보면, 서구적 의미의 자기실현에 관계된 내용보다는 사회적 자기실현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또 한국인의 자서전을 보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직업과 위치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왔는가를 역사기술 식으로 열거하는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최상진은 한국인의 자기는 서구인의 셀프보다 미래지향적 목표 지향적이 크며, 사회현실과 본인이 처한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199-200쪽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닌다.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으며,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뒷사람을 이끌지 않으며,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라하지 않으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않는다." (<<대학>>)-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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