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
김시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절판


지금 나의 생명은 '나를 위해(爲我)'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 또한 크다. 나의 생명은 그 귀천을 논하자면 지위가 천자가 되더라도 비할 바가 못된다. 그 경중을 논하자면 부가 천하를 소유하는 것이라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그 안위를 논하자면 하루아침에 나를 잃게 되면 죽어서도 회복할 수 없다.
(<<여씨춘추>><중기>) -52쪽

온전한 삶(전생)이 가장 좋고, 모자라는 삶(휴생)이 그 다음이다. 그 다음은 차라리 죽는 것이고, 핍박받는 삶(박생)은 가장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온전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온전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타고나는 욕망이 적절하게 충족되는 삶이다. 모자라는 삶이란 그런 욕망 가운데 반만 충족되는 삶이다. (......) 핍박받는 삶이란 그런 욕망 모두 충족되지 못하고 모두 싫어하는 것만 얻는 것이니 굴종적이고 치욕스런 삶이다. 그래서 핍박받는 삶이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여씨춘추>><귀생>) -55-56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들은 제 몸을 위해(爲己) 공부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논어>><헌문>)-106쪽

'자신을 위한다(爲己)'는 것은 배운 바를 신중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고, '남을 위한다(爲人)'는 것은 배운 바를 말로만 한다는 뜻이다.
(<<논어집해>>)-107쪽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고, 남을 위한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공부한다는 뜻이다.
(<<논어집주>>)-108쪽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국가나 사회는 바로 각 '개인'이 행복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대 이기주의의 원리이다. 그러한 이기주의 원리가 제도화된 것을 우리는 '권리'라고 한다. -112쪽

큰 사람의 큰 이기주의는 의무이자 책임이지만, 작은 사람의 작은 이기주의는 권리이다. -120쪽

<논어>가 천하를 위한 이기주의를 걸어간 성인 공자의 행적이라면, <장자>는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도를 펼치는 강호의 이기주의를 설파한 지도이다. 이기주의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공자는 이기적이었고 장자는 더욱 이기적이었다. 하지만공자가 걸었던 길은 같은 보통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천하를 위한 이기주의였고, 장자가 발견한 길은 크긴 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강호의 이기주의였다. 도?왜 이런 것을 이기적이라 말하는가?
고전을 읽을 때 그 내용이 얼마나 철학적으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훌륭한가 하는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에 무언가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와 수사는 필요한 사람의 몫이다. <논어>의 말은 진솔하고 평범하지만, 그에 따라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장자>의 말은 난해하고 복잡한데다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끌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공자나 장자나 걸어간 길은 대인들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204-205쪽

당신의 이기주의는 이렇게 소박하고 작은 것이다. 당신의 생명이 해침을 당하지 않으려는 작은 이기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기주의를 요즈음 말로 '권리'라고 부른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속되게 말하면 먹고 살려는 몸부림이고, 고상하게 말하면 행복해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다. 그래서 괜찮다. 얼마든지 이기적이어도 상관없다. 당신의 이기주의는 기껏해야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220쪽

현대 인도 사회에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현실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의 지도층은 여전히 카스트 계급의 최상층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에 간 어떤 학자가 최하층 계급에 속했던 사람에게 전통 카스트 제도를 인정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 같으면 그러고 싶겠소?"
이기주의를 변명한다는 것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중략 ... 주권이 없고 권리가 없는 세상에서 나를 위한다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반역, 국가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우리는 길들여져왔다. 나를 위해 민족과 국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죄악이고, 오로지 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의무만 부과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이기주의라는 말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그것은 누구든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입장일 뿐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또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기주의란 단어를 들으면 공연히 권위의 그늘 속에서 만들어진 그릇된 연상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이고, 악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순자의 성악설은 통속적으로 인간은 약한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인간은 본성이 이기적이다"라는 것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물론 그 어떠한 입론을 거치더라도 본성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동서양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이로운 것, 즉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이하게도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말이 어떤 근거에서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인가? -238-239쪽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악'을 인간의 이기적 본성으로 치부하는 것, 혹은 어느 한 개인의 이기심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의 원인은 그 사람의 이기적 본성보다는 삶의 문제, 사회적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악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단되고, 해결책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기주의라는 어떤 철학적 입장이나 모든 개인이 갖는 몸의 이기적 본성도 악의 궁극적 원인은 아니다. -241쪽

이기주의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바탕으로 하여 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우리 사회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일 뿐이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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