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6년 7월
품절


독일일들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한국의 근대현대 100년은 일제의 신민통치와 독재정치로 이어져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독재체제 아래서 자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독재 성향에 젖어들게 된다. 우리 또한 권력의 반인간적 행위에 대해 눈감고 침묵했던 탓에 이런 비극이 일어났던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한다.
(해제 : 기억하지 않는 비극은 되풀이 된다 中) -267쪽

학교 전체로 퍼져나가는 '파도'에 아이들 대부분은 열광하지만, 여기 속하지 않는 소수는 배척 당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난무한다. 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총회가 열리고, 전국파도연합 지도자가 화면에 등장하니, 그는 나치의 독재자 히틀러. 집단광기에 휩쓸린 채 너도나도 이성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던 나치 독일의 과거, 그 작동 방식과 파시즘의 원리를 배우려다 엉뚱한 길로 빠져든 학생들은, "파시즘은 역사상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 안에도 똬리를 틀고 있다"는 벤 로스 선생님의 설명과 실험의 요지를 깨닫고 환각 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난다.
(역자 후기 中)-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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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구판절판


다윈이 이른바 생존 경쟁이라고 말한 데 있어서 경쟁하고 있는 단위가 종이라고 한다면 개체는 장기판에서 졸로 볼 수 있다. 졸은 종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각 개체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종 내지는 종내 개체군과 같은 집단은, 각 개체가 자기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경쟁자 집단보다 아마도 절멸의 위험이 적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자기 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이 대부분 점령하게 된다. 이것이 '그룹 선택설'이다. -50쪽

노쇠는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축적되는 현상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이들 치사 및 반치사 유전자는 단지 휴기에 작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 선택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게 허락되어 온 것이다. -102쪽

유전자 풀은 유전자의 장기적인 환경이다. '우수한' 유전자란 맹목적으로 선택되어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관찰된 사실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동어 반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전자가 우수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첫 시도로서 유전자가 우수하다는 것은 유능한 생존 기계, 즉 몸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진술에 단서를 달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 풀은 하나의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 세트이다.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도 침입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돌연변이 재조합이나 이입에 의해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벌을 받아 즉시 도태되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때때로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하여 유전자 풀 내에 퍼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드디어 하나의 새롭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조합을 이룬다. 작은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격전략의 예에서 말한 것처럼 개체군에는 둘 이상의 대체 가능한 안정점이 있어서 때때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갑자기 비약이 일어나기도 한다. 진화란 부단한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수준에서 안정된 수준으로의 계기적인 불연속의 전진인 것 같다.
-168-169쪽

즉 개개의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증대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개개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도와 주고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유전자가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172쪽

"......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자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지 않은가." -336쪽

컴퓨터를 사용해 본 독자는 컴퓨터의 연산 시간과 기억 용량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잘 알 것이다. 많은 대규모의 컴퓨터 센터에서는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사용자에게 초 단위의 사용 시간과 '문자' 단위의 기억 용량을 각각 일정량씩 할당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이다. 거기서는 시간이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한 인간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젼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다. -342-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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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2-1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기적 유전자 읽고 계신모양이네요. 다시 읽어봐야되는데...

비로그인 2007-02-1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셨다면,
다음에 읽을 책으로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본성에 대하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적 behavior의 근저에 존재하는 본능의 작동 메카니즘을 이해하면
현실적 삶의 양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프락사스님께서 요즈음 '열심히'에 일등이신듯.. 하하


마늘빵 2007-02-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 / 네 다 읽었어요. 저도 가자 오래된 초판본을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때 구입하고 제대로 안봤더랬는데, 이번에 30년판 다시 사봤습니다.
한사님 / 아 추천 감사합니다. 보관함에 바로 넣겠습니다. 전 이 책 다음으로 주문한 책이 최근에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고 나왔던거 같은데, 이 책이 이기적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함의와 비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해서요.

비로그인 2007-02-1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슨의 저서를 같은 맥락에서 추천했답니다.
아시다시피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대부'격인 인물이지요.


드팀전 2007-02-1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결코 '똘레랑스'할 수 없는 가치 중에 하나가 '사회진화론'입니다.특히 '의식의 척박성과 취향의 고급성'은 가슴 속 밑에서 무언가 불끈 올라오게 합니다.
계보적 근원을 밝히는 것과 사회적 적용함의는 다릅니다.푸코의 계보학에 대한 근원적 비판이 되기도 하지요.인간이 근원적으로-유전자적으로-이기적일거라고 생각합니다.개체보존의 본능은 무엇보다 우선할테니까요...그런데 인간의 역사에는 경제학이나 생물학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타적 인간이 나타납니다.
이기적 유전자들이 왜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에서는 작동하지 않을까?...혈연선택가설이라는 것도 등장하더군요.개체보존과 확산을 위해 '혈연'을 위한 이타적 행동도 크게는 이기적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이라는 측면이겠지요..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타적 행동이 존재합니다.인간이나 동물이 게폼잡느라 그랬을까???
학문적으로 인간의 이기적 동인과 이타적 행동들에 의문을 품고 공부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분명히 할 것 이 있지요. 현재의 가진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기적 개인'을 주장하는 것은 현 토대의 부정의와 왜곡된 분배구조를 은폐하기 위한 저열함이 보입니다.결국 능력있 개인의 승리..그러지 못한 건 당신들의 무능함.못가진자들의 징징거림....
....고담준론과 관념론의 허우적을 걷어내고 이것 한가지만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최근에 본 책의 서문에 나오는 말인데..
"우리의 풍요를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대우"........'우리' 대신에 여러가지 이름을 넣어보면 아주 직접적입니다.우리사회의 특권층 역할을 하려면 국가와 사회가 특권행사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보장해주어야 합니다.선생님이시니 선생님의 안정성이 어떻게 보장되느지 아시겠지요? 또 어떤 제도적 변용으로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지도? 의사도 마찬가지고 변호사도 마찬가지입니다.그 틀(토대)의 규정에 대해서는 생득권처럼 받아들이며 그것이 개인의 능력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라고만 생각한다면...글쎄요.진중권이 비판한 한국식으로 하지말고 서구식으로 하지요."참..유감스럽습니다"
아프락사스님의 리뷰에 달린 댓글을 보다 결국 긴 댓글을 썼습니다.죄송 아프님.
게임이론으로 풀어본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의 내용이 담긴 <이타적인간의 출현>도 기회닿은다면(벌써 보셨을 수도 있구요...그 책은 인간 사회가 이기적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의를 통한 이타적 인간들에 의해 변화해 왔다고 말합니다.)

마늘빵 2007-02-1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팀전님 이렇게 긴 댓글로 의견을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한문장 한문장 읽으면서 다른 시각을 제게 전해주시는군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예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그런 예들의 경우 다 읽지 않고 넘겼답니다. 아직 이 책에 대한 비판서는 한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전부터 보관함에 있던 책이기도 하고, 최근 본 복거일씨의 몇몇 책에서 복거일이 자기주장의 근거로서 어떤 경제학자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을 자주 들먹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생긴 김에 바로 구입해 봤죠.

드팀전님 마지막에 추천하신 <이타적인간의 출현>은 아직 못봤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가 현재 주문배송중에 있는데, 추천하신 책도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이에 대한 책도 많이 못봤고, 생각도 많이 안해봐서, 제 생각이 어떤지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드팀전님의 댓글을 토대로 다른 시각에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천자문 2007-02-1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주장이 복거일 같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리처드 도킨스가 안다면 매우 크게 화를 낼 것입니다.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진화심리학 이론이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는 것에 명백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화심리학 이론을 좌파들의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에 이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진화심리학 이론이 객관적인 진리이냐 아니냐' 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이용되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겠지요. 저는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해낸 이론 가운데 진화심리학 만큼 인간본성을 완벽에 가깝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준 이론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천자문 2007-02-1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혹시 영어 잘하시면 복거일이 도킨스를 인용한 부분을 번역해서 도킨스 박사 이메일로 한번 보내보세요. 도킨스 박사가 복거일이한테 개망신을 주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켁. ㅎㅎ

마늘빵 2007-02-1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애리님 / ^^ 그러게요. 그쪽 사람들이 사회진화론을 주장하는 것과, 그것이 이용되는 건 엄연히 다르지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글쎄 아직 잘 판단이 안섭니다만, 헛점이 많아 보입니다. 관련된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지요.

영어는 ... -_- 거의 문맹에 가깝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거의 손도 안댔습니다. 시험 볼 때만 했죠. 대학에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기본적인 스펠링조차 기억도 안납니다. ^^

승주나무 2007-02-2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의 서재에 들어오면 이렇게 커닝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이기적 유전자는 군대에서 읽었는데, 지금도 도킨스 병에 걸려서 남은 저작들에 눈길을 주고 있답니다. 저도 책의 목록들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도킨스의 숙적이자 동료인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는 도킨스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면서도 도킨스와 세트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마치 오월동주나 와신상담과 같은 성어처럼요.
이 둘의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은 '악마의 사도'였습니다. 도킨스의 에세이라기보다는 편집자가 도킨스의 동의에 의해 신문사설이나 서평 같은 것을 모았는데, 제이 굴드에 관한 인상이 있어서 '인간적'인 느낌을 갖게 한답니다.
앞서 댓글을 단 분들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도킨스였습니당~~

마늘빵 2007-02-21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을 읽다보니, 어떤 논쟁에서는 도킨스와는 굴드가 대립하지만, 또 다른 논의에서는 이 둘이 연합전선을 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 꼼꼼히 안읽어서 제대로 안들어옵니다. 승주나무님 말씀하시는거 보면 관련 책 많이 보신듯 합니다. 저는 더 진행 안하고 여기서 멈췄어요. 더 읽고 싶은데 이러다간 다른 책들을 또 못볼거 같아, 다음번에 다시 한번 도킨스가 땡길 때 보려고 합니다.

kleinsusun 2007-02-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댓글들이 정말 잼있군요.^^
보관함에 넣었어요. Thanks to할께요.
근데....요즘 책 정말 열씨미 읽으신다. 아프님 쵝~오!

마늘빵 2007-02-2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밑줄긋기에 이렇게 진한 댓글 달리긴 처음이에요. 제가 아직 이 책 리뷰를 쓰지 않아서 여기에 다셨나봅니다. 근데 저 책 실적은 요새 부실해요. 영화만 들입다 많이 봤어요. 정말 한해 볼 영화의 1/3을 두달동안 본거 같아요.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6
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 책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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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게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꼬마 아이들은 방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으며, 우리가 봤던 동화책과 만화를 보며 자란다.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와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단지 '이상한'이 '신기한'으로 번역되었을 뿐.  

 얼마전 영화 <매트릭스>를 오랫만에 다시 보고선 두 동화가 떠올랐다. 이것들을 단순히 동화라고 지칭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지만,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가 그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참으로 다양한 텍스트들을 짬뽕시켰으며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떠올리건 그건 자연스러울 것이다. 내가 <매트릭스>를 통해서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오른 것도 그 다양한 '떠오름' 중의 하나이며, 그 덕분에 다시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검색하면 몇 가지 번역본이 있다. 먼저 검색어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했을 때 시공주니어와 북폴리오, 삼성출판사, 중앙출판사, 지경사, 길벗이지톡, 아이즐북스 등이 나오고,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쳤을 때는 책세상 것 밖에 나오지 않는다. '신기한'과 '이상한'의 번역차이지만 어쨌든 검색해서 나오는 책 모두가 루이스 캐럴의 원본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본 책은 책세상 문고의 것으로, 다른 책들이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에 비해 이 책은 하나의 문학소설의 뽀대를 띠고서 태어났기에 꼬레 또 어른이라고 이 책을 골라잡았다.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더 쉬운 말로, 그리고 모든 것을 담아내지 않고 축약하거나 발췌하여 골랐을 공산이 크기에 위험부담이 없이 책세상의 것을 구입했다.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읽어싶어졌는데 이건 시공주니어 어린이용과 넥서스, 북폴리오 세 군데 것이 있다. 같이 책세상에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읽게 된다면 천상 북폴리오 것을 읽게 생겼다. 넥서스는 '중학교 영어로 다시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 이기에 부적합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북폴리오인데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모두 담겨있어 부피도 크고 가격부담도 좀 있다. 애초 두 책을 다 읽을거라면 책세상문고보단 북폴리오를 구입하는게 이득이다.

   루이스 캐럴은 일찍이 예술적인 재능을 드러냈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고 청력이 좋지 않았으며 이런 장애 때문인지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집 밖의 다른 이들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집 안의 동생들과 놀다보니 동화를 집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의 직업은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이고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 동화로 더 알려져있으니 동화작가로서 그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참으로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 시절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학장으로 온 헨리 리델의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서 배를 타고 놀며 그네들에게 재밌는 이야기 한 편을 해줬는데,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태가 되었다. 앨리스는 그때 배를 타고 있던 세 아이 중 한 아이의 이름이었는데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즉석해서 말로 환타지 소설을 쓴 셈이다. 이후 이것을 책으로 내려고 마음 먹으면서 이야기에 이것저것 덧붙이고 새로 꾸미고 하며 지금과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앨리스란 아이가 토끼를 발견하고는 따라가다 굴로 떨어지고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체험하기도 하는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책은 동화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환타지 소설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각종 장면들이 이후 곳곳의 소설과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환타지는 "현실의 타자로서 현실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현실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지금, 그의 소설이 여기저기에 적용되고 드러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매트릭스> 또한 그 많은 시도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린 시절 무심코 읽고 받아들였던 것을 제법 자란 지금에 와서 다시 살펴보는 일은 즐겁다. 생각하지 못한 채 주는대로 넙죽넙죽 받기만 했던 시절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이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금, 내가 현재 읽고 있는 다른 것들, 받아들이고 있는 다른 것들이, 또 내가 한참 자란 뒤에 다르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분명 다를 것이다. 코흘리개 찔찔이가 읽었던 동화는 이제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환타지 작품으로서, 다른 문학과 영화의 재료로서 다가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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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2-0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적 앨리스를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ㅠ.ㅠ ;; 이제라도 읽어봐야겠어요.
책세상 문고본 관심두고 있었는데... 책이 괜찮았나 보군요. 뺘쑝님 멋져용~!

마늘빵 2007-02-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카님 / ^^ 아 본적 있는데 기억 못하시는거 아녀요? 만화든 동화든 보셨을텐데. 이번에 한번 보세요.

mind0735 2007-02-0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나온걸 잠깐 봤는데.. 그것도 드문드문 봐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그나저나.. 이상한 나라의, 와 신기한 나라의, 는 정말 어감이 틀리군요. 어느것이 정답인지... 네. 꼭 읽어보겠습니다. ^^

마늘빵 2007-02-0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onderful 을 번역한건데, 머 어느 걸로 하든 의미는 괜찮은거 같아요.

가넷 2007-02-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리오에서 나온 걸 살려고 했었는데... 다들 리뷰에 올리신것이나 다른 곳에서 관련 정보를 볼때 편집이나 번역에 문제가 있는 듯 해서... -_-; 안 그랬으면 사버렸을텐데 말이죠..ㅜ; 그런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값이 아주 착한 것 같네요.ㅋㅋ

마늘빵 2007-02-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격이 그냥 부담없이 낼 수 있는 정도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판도 좋아하는데, 싸고 휴대하기 좋게 나오는거 같아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2007-04-09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이선민.최홍렬 엮음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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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는 조선일보에 2004년 8월 10일부터 2005년 3월 1일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나야 조선일보를 보지 않으니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책으로서 대했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별로다. 이 책의 내용들이 조선일보 연재물 이었기 때문에,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이 책은 대담집이고 나는 대담집을 좋아한다. 대담집의 장점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현장에서 엿듣고 있는 거 같은 사실감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말을 하더라도 대화이기 때문에 - 대화란 곧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에 가깝다 -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일전에 읽은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도 세계의 문학의 특별기획으로 구성된 대담집인데,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은걸 배웠고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 고민이 풀리면서 또다른 더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책이기에 '대담집'에 대한 내 감정은 더욱 호의적이다. 참고로 이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 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이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를 접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들의 대화가 좀 진행이 된다 싶으면 금방 끊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문지면의 연재물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대화를 하다마는 느낌이다. '잠깐 인터뷰' 형식이랄까. 제자가 스승을 만나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승이 이에 대해 답하고 여기서 대화를 주고 받는 이 형식과 과정은 참으로 좋은데, 볼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일보 연재 당시엔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신문 연재물이 책으로 옮겨진다고 해서 반드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잡지에 기고하기엔 퍽 좋은 글이 묶여져 책으로 냈을 때 별거 아닌 책이 되는 이치와 같달까. 글은 성격에 맞게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다. 인기있던 신문 연재물이라 해서 책으로 묶어서 '괜찮은 책'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걸 책으로 묶고 싶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면, 대담 분량을 더 늘려서 묶었어야 할 것이다. 이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뭔가 시각이 트인다거나 삶의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하는 뭔가가 있어야 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이 내게 전해준 것은 잘 몰랐던 많은 이들을 접했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하나 더. 대담이 조선일보 연재물이라 그런지 이 안에 대담에 참여한 이들 중 다수가 조선일보식의 사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사건이나 경제문제나 교육문제, 친일청산문제에 대해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선일보식 사고방식과 그 사람들의 평소 가치관이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마저도 왜 조선일보의 계략이라 생각되는거지.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관점을 떠나 대담까지도 '조선일보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 속이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정치성이야 잘 모른다쳐도 김호기와 임지현이 대담자 리스트에 들어있는 것은 참으로 거시기허다.

  유일하게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것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김용구의 말이다.

  "저는 후학들이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이 되길 바랍니다. 지식인은 활자나 기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여 그 사회의 문화 향상에 영향을 주는 사회 계층을 지칭합니다. 교수와 언론인, 종교인이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국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식인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술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강대국 국제 정치 이론을 충실히 전파하는 집단인데, 이들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대국 이론을 전달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전달 자체가 자기 해석이 결부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념 전달자 또는 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 집단의 명분을 선전하는 집단인데, 그들이 지탱하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고 이른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의 그들 역할도 상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너무 많은 교수들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국제 정치학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셋째,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처한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설정해 이에 대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입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런 지식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에게는 자연히 뒤따라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p.s. 리뷰를 쓰다 전에 읽었던 두 대담집을 검색해보았다.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 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가 절판되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은 둘 다 판매중이다. 절판되어 참 아깝다고 생각했던 두 책이 다시 보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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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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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언제나 지속된다. 마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놓고 매번 다른 대답들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삶은 진행 중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를 찾고 있는 중 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모색 중이다. 결국 아마도 난 자연히 나이가 들어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연령에 도달하는 즈음에서 죽어가는 시점에서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복거일은 '세속적으로 현명한' 보다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것이 삶의 본질에 맞다고 이야기한다. '세속'과 '현명'은 '삶'을 똑같이 수식해주지만, 똑같은 질감으로 삶을 수식하진 않는다. '세속적으로 현명한 삶'과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분명 다르다. 영국의 시인 콸스는 어느 싯구절에서 "현명하게 세속적이어라. 세속적으로 현명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복거일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 처신으로 시종하면, 무언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맞는 방식과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고, 당연히 우리는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한편 모두 세속적 성공에 대해서 또 약간의 진정한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자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지만, 그들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존경을 받는 너무 낮은 자리를 차지하면 당장 살기 어렵고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뜻하고자 하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공산이 크다. 고로 여기서 "현명하게 세속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거일이 말하는 "현명하고 세속적인 삶"을 지칭하는 것은 기업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공무원, 관료 등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위치재는 "가치의 큰 부분이 특수한 위치 덕분에 생긴 재화"를 가리키는데, 이는 더 생산될 수 없고 재분배 될 수만 있다는 것이다. 위치재에 대한 다툼은 치열하고 이를 향한 경쟁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는 없다. 그러나 기업 등의 상업활동은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위치를 높일수도 있으며, 아울러 물질적 가치를 창출해 사회에 공헌하므로 권장할만하다. 위치재와는 다르게 높은 사회적 성공에 따르는 부러움과 존경도 받을 수 있고, 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복거일에게서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바로 이를 뜻한다.

  더불어 그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삶에 도달한 뒤에는 회사나 기업의 이름으로 자선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재산으로 기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의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사회적 공헌과 함께 나 개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다면 내 이름으로 내 재산을 털어 자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소 복거일의 발언내용이나 다른 책을 통해서 접했던 그의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복거일은 친기업적이고, 친시장적인 발언을 자주했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라 믿는 사람이다.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기업인의 삶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도 그의 평소의 생각과 같다. 그는 한국의 지식인 지도에서 '자유주의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과 그의 몇몇 책들을 살펴본 결과, 그의 자유주의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그럴 듯 하고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아갔을 때는 다르게 바라봐야 할 듯 하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그것을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 적용했을 때의 차이랄까.  

  책 몇 권 읽었다고 복거일과 그의 생각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하면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는 꽤나 굳건하게 꾸준히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 논변을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메세지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책에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기업인으로서의 삶'과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작은 소제목이 그 하나요, 이 책 전체를 통해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복거일의 눈으로 본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또 하나다. 짧은 글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읽으며 생각할 거리들은 꽤 많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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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게 세속적인.. 보통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양상일 것입니다.
복거일의 책은 유행하는 '왜곡된 평등'에 대한 일종의 'rebound'일 것입니다.
세상이 노멀이라면 무의미한 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