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이선민.최홍렬 엮음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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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는 조선일보에 2004년 8월 10일부터 2005년 3월 1일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나야 조선일보를 보지 않으니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책으로서 대했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별로다. 이 책의 내용들이 조선일보 연재물 이었기 때문에,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이 책은 대담집이고 나는 대담집을 좋아한다. 대담집의 장점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현장에서 엿듣고 있는 거 같은 사실감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말을 하더라도 대화이기 때문에 - 대화란 곧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에 가깝다 -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일전에 읽은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도 세계의 문학의 특별기획으로 구성된 대담집인데,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은걸 배웠고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 고민이 풀리면서 또다른 더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책이기에 '대담집'에 대한 내 감정은 더욱 호의적이다. 참고로 이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 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이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를 접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들의 대화가 좀 진행이 된다 싶으면 금방 끊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문지면의 연재물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대화를 하다마는 느낌이다. '잠깐 인터뷰' 형식이랄까. 제자가 스승을 만나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승이 이에 대해 답하고 여기서 대화를 주고 받는 이 형식과 과정은 참으로 좋은데, 볼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일보 연재 당시엔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신문 연재물이 책으로 옮겨진다고 해서 반드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잡지에 기고하기엔 퍽 좋은 글이 묶여져 책으로 냈을 때 별거 아닌 책이 되는 이치와 같달까. 글은 성격에 맞게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다. 인기있던 신문 연재물이라 해서 책으로 묶어서 '괜찮은 책'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걸 책으로 묶고 싶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면, 대담 분량을 더 늘려서 묶었어야 할 것이다. 이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뭔가 시각이 트인다거나 삶의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하는 뭔가가 있어야 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이 내게 전해준 것은 잘 몰랐던 많은 이들을 접했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하나 더. 대담이 조선일보 연재물이라 그런지 이 안에 대담에 참여한 이들 중 다수가 조선일보식의 사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사건이나 경제문제나 교육문제, 친일청산문제에 대해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선일보식 사고방식과 그 사람들의 평소 가치관이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마저도 왜 조선일보의 계략이라 생각되는거지.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관점을 떠나 대담까지도 '조선일보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 속이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정치성이야 잘 모른다쳐도 김호기와 임지현이 대담자 리스트에 들어있는 것은 참으로 거시기허다.

  유일하게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것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김용구의 말이다.

  "저는 후학들이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이 되길 바랍니다. 지식인은 활자나 기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여 그 사회의 문화 향상에 영향을 주는 사회 계층을 지칭합니다. 교수와 언론인, 종교인이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국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식인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술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강대국 국제 정치 이론을 충실히 전파하는 집단인데, 이들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대국 이론을 전달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전달 자체가 자기 해석이 결부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념 전달자 또는 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 집단의 명분을 선전하는 집단인데, 그들이 지탱하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고 이른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의 그들 역할도 상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너무 많은 교수들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국제 정치학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셋째,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처한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설정해 이에 대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입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런 지식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에게는 자연히 뒤따라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p.s. 리뷰를 쓰다 전에 읽었던 두 대담집을 검색해보았다.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 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가 절판되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은 둘 다 판매중이다. 절판되어 참 아깝다고 생각했던 두 책이 다시 보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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