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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 박태원 수필집
류보선 엮음 / 깊은샘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일반적으로 박태원은 이상의 친구로, 구인회의 맴버이자 모던의 첨단을 달렸던 모던보이로 우스꽝스러운 머리스타일과 함께 기억된다. 그리고 구인회는 카프에 대한 대타항으로 '모던'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던'스러움은 '기교'주의로 폄하되기 쉽다.
물론 그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우리는 그 기교의 현대적 감각과 실험정신에 놀라게 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나 <천변풍경>에서의 영화적 기법, <방란장 주인>에서 단편소설을 단 한 문장으로 써낸 것 등등.
그의 수필도 마찬가지로 ‘기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인다. 문장부호, 된소리, 여성적 문체 등에 대한 장인적인 섬세함. 그는 ‘문예감상이란, (늘 하는 말이지만) 구경, 문장의 감상이다. 까닭에, 만약, 어느 작품의 문장으로서, 오즉 그 내용에 잇서 전체적 관념을 표현할 뿐이요 그 음향으로 그 의미 이외의 분위기를 비저내는 것이 못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작품에 흥미를 가질 수는 업다.’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또 당대 이 글이 알게 모르게 겨냥할 수 밖에 없었던 카프 진영을 염두에 둔다면 박태원을 ‘기교주의’로 몰기는 쉽다.
그러나 카프라는 대타항을 잠시 접어두고 박태원의 수필들을 읽어본다면, 이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혹은 지금 우리가 해방전 박태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만큼의 ‘기교중심’으로 읽기는 힘들 것이다. 그가 ‘문장부호’ ‘된소리’ ‘여성적 문체’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을 위한 노력이다. 그는 깊은 관찰력으로 주위를 바라보고 세부를 보다 엄밀히 재현하기 위해 힘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창작에 잇서 우리는 자유로웁게 또 솜씨잇게 기교를 구사하여야지 기교의 지배를 우리가 바더서는 안된다.’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기교를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한 단초는 ‘심경소설’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심경소설’을 ‘본격소설’과 구분하며 ‘본격소설’은 ‘넓이’ 심경소설은 ‘깊이’라는 장점을 지닌다고 한다. (본격/대중의 이분법과 다른다) 그리고 한 소설가가 가장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내면이고, 이 내면을 솔직하게 남들 앞에서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작가의 훌륭함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자에 대한 ‘솔직함’을 전제로 한다. 즉 앞의 ‘기교를 넘어서는 그 무엇’은 ‘진정성’이다. 진부한 것 같지만, 소설가로서 박태원의 삶은 이 ‘진정성’이라는 어휘로 설명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심경소설'론은 동시대 카프의 뛰어난 소설가 김남천의 '고백문학'론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박태원이었기에, 일제말기 역사소설과 북한으로 건너가서 유수한 역사 대하소설들을 써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