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된 자기 - 일본 근대성의 형성과 사소설담론
스즈키 토미 지음,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품절


히라노 켄은 '사소설의 이율배반'에서, 앞에서 본 이토의 분류를 발전시켰다. 즉 그는 '심경 소설'을 '조화자'의 문학으로, '사소설'을 '파멸자'의 문학으로 명명함으로써 양자를 대치시켰다.

사소설을 멸망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심경 소설은 구원의 문학이다. 사소설을 어쩔 수 없이 혼돈스러운 위기 자체의 표백이라고 한다면, 심경 소설은 벗어날 수 있었던 위기 극복의 결어이다. 전자가 외계와 자아의 이화감에 근거한다면, 후자는 그것의 조화감에 도달하려 한다. 인간 실존의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음이나 죄 많음에서 발생하는 생의 위기감과, 그런 위기감을 초극하는 데서 생기는 청명한 운명감의 조화, 전자는 그 구원을 예술 쪽에서 찾으려 하고, 후자는 실생활 쪽에서 찾고자 한다. 이런 징표의 상이가 나타나는 까닭은, 원래 전재가 무이상 무해결의 자연파에서 파생되었고, 후자는 이상주의적인 시라카바파에서 유래되었다는 데 있다. 즉 사소설은 파멸자 현세 포기자의 문학이고, 심경 소설은 조화자 현세 파지자의 문학이다. 치카마츠 슈코에서 가무라 이소타를 거쳐 다자이 오사무에 이르는 계열과 시가 나오야에서 다키이 고사쿠를 거쳐 오자키 가즈오에 이르는 계보가 거기서 자연히 구별되기 ‹š문이다.-116쪽

'파멸자의 사소설'과 '조화자의 심경 소설' 이라는 히라노의 분류는 상이한 두 가지 규준에 기초하고 있다. 즉 텍스트의 내적 주제적 측면과 상호 텍스트적 전기적 차원이 그것인데, 이때 양자는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히라노에 따르면, 파멸자의 사소설은 죄 많고 사악하고 부끄러울 만한 행위에 의해 야기된 위기를 묘사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해결이나 구워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조화자의 심경 소설은 위기를 극복한 결과로서 얻은 아양된 심경을 나타낸다. 전자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이고 운명론적인 태도를, 후자는 낙천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태도를 표현한다. 두 가지 유형의 차이점은 작가의 '실생활'과 '예술' 활동의 관계에도 기인하고 있다. 사소설 작가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구워을 찾고 개인적 위기의 해결을 꾀하는 데 비해서, 심경 소설의 작가는 실생활 안에서 개인적 위기의 해결이나 구원을 구한다. 전자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사람, 후자는 사생활을 최우선으로 하며 예술 작품 쪽은 개인적 위기를 극복한 결과이자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17쪽

나카무라는 1935년에 쓰여진 '사소설에 대하여'에서 고바야시 히데오의 '사소설론'에 호응,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 이래 사소설의 전통은 "실생활에 의해 초래된 그들의 생활 감정을 해석하거나 사회와의 대결을 통해 진정으로 객관화하지도" 못한 채, "사회와 교섭하지 않는 자신의 일상생활을...표현했다"고 비판하고 있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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