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민주노동당 당원입니다. 그렇지만, 날라리 당원이지요. 당원게시판은 한달에 한번쯤 들어가 볼까하고, 당의 일에 별로 나서는 일도 없습니다. 열성 당원들이 많은 민주노동당에서 저와 같은 날라리 당원은 어쩌면 골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당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소위 NL세력에도 상당부분 많은 반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즘 당의 행보에 더욱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는 김종철 후보를 찍을 것입니다. 오늘 토론회에서도 저는 김종철 후보가 가장 확고한 입장 하에 명쾌한 대책을 내세웠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문제를 원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1가구 1주택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이를 오세훈 후보는 자유시장경쟁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택'을 시장에 거래되는 일반 물품과 같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필수적인 '의, 식, 주' 문제는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 세계11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것의 보장이 가능합니다. '의' 와 '식'의 보장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 즉 주택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부자가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집을 10채 심지어 몇십채를 갖고 가난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이 없이 살고, 온 평생 일해야 겨우 자신의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본권의 문제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로 당연히 '의, 식, 주' 문제는 보장되어야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집 말고도 다른 것으로 투기해서 잘 먹고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또 교육문제에 관해서도 다른 후보들은 강남북의 격차를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주장했지만, 김종철 후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마인드를 갖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기본적인 이념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대학간의 격차가 고등학교, 중학교 공교육을 입시중심으로 획일화합니다. 적성이 아니라, 점수에 맞추어서 대학을 고르고 전공을 선택하는 세상입니다. 여기에 어떠한 행복이 있겠습니까. 자신이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전공과 그 전공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있는 대학으로 가게 해야 합니다.

이는 공대, 자연대, 의대와 같은 경우는 설비의 문제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인문계는 도서관과 의자만 있으면 되니까 문제의 해결이 쉽습니다. 공대, 자연대, 의대와 같은 경우 우선 의대는 대학병원 및 국시립 병원을 대학병원 식으로 이 또한 통합하여 관리하면 자연스럽게 의대 안의 서열문제도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대와 자연대의 경우에는 몇 개의 학교를 지정해서 공대, 자연대 전문 학교를 건립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서열철폐와 적성에 맞는 전공 확립은, 기본권 보장이 확실히 이루어지면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론회를 보면서, 김종철 후보가 정말 서울시 시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지지자들은 또 어쩌면, 오세훈 후보와 강금실 후보의 막판 대립과 열린우리당 쪽의 호소로 '안티-한나라당' 세력으로 집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투표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서민이 자기 목소리를 얼마나 낼 수 있고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왠지, 이번 5.31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김종철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좋게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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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5-0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다가 말았는데요, 제가 이명박의 개발주의에 질렸던 사람인데 강금실도 하는 얘기가 다 아파트 짓고 어쩌고...더군요....

기인 2006-05-06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실 tv 토론회를 통해서 가장 손해가 많은 사람이 강금실 전장관인 것 같습니다. 조금 조급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세훈 후보는 여유가 넘쳤는데 말입니다. 오늘 또 김종철 후보가 나온다기에 내일 다운해서 볼 예정입니다. 생각보다 재미있던 데요. ^^; 사실 우리 서울시 유권자들 보라고 하는 토론회이니까, 열심히 볼 예정입니다 ^^
 
나의 첫 번째 티셔츠
야코프 하인 지음, 배수아 옮김 / 샘터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굳빠이 레닌>이라는 영화가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의 상황 속에서 젊은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종의 '성장 영화'를 만든 것이다. 배수아가 옮긴 이 소설도 이와 유사하다. 보다 덜 휴머니즘적이고 훨씬 냉소적인 부분은 차이가 있다.

이 소설을 중반까지 읽을때,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쓰는가라고 불평했다. 구동독 사회주의에 대해서 불평불만에 가득찬 소년-청년의 삶.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공산주의 세계를 비난, 비판, 냉소하는 화자.

어린이도서관에는 동독 코미디언의 레코드가 있긴 했지만 모두 삼십 년은 족히 된 것들이었다. 분명히 이 분야의 재주는 이미 멸종되어 버린 유물로 간주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라면, 사람들은 그들이 넘쳐나는 행복 때문에 어차피 하루 종일 웃기만 해야 할 테니, 뭔가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그 특별한 존재란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11면)

이러한 동독에서의 삶은 언제나 감시받고 통제받는 사회이다. 무엇보다도 공산주의 이념은 인민들의 동의와 소통 하에 체제 이념으로 수립된 것이 아니라, '당'과 '당원'들의 일방적인 계몽과 통제 하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폭력적 계몽의 또다른 이름은 바로 파시즘이다.

당원들은 조국의 축제에 함께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매번 기입해 놓았다.                                          몇몇은 그냥 적어놓기만 했지만 또 다른 경우는 초인종을 눌러서 깃발을 다는 것을 단지 잊어버린 것인지, 물어보는 수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나중에 신문이나 백과사전 판매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런 경험은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들이 가버리고 나면 황급하게 숨겨졌던 동독 탈출계획서가 다시 부엌 탁자 위에 펼쳐졌다. (86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맑스의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자본'주의의 무한한 '자본'의 자기 증식의 파국에 대한 지적은 정작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들에게는 따분한 '공자님 말씀'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실천과 함께 노동자 계급의 진정한 벗이 되어야할 당원들과 노동자계급을 위한, 그들에 의한 '당'은 인민의 증오와 야유를 받는다.

무언가 많이 들어본, 많이 보아온 광경이 아닌가. 노동자 계급 또는 인민을 '시민'으로 바꾸고 '당'을 '정권'으로 '당원'을 '정치인'으로 바꾼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 아닌가. 오늘 아침 평택에 '특공대'를 투입하지를 않나, '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조롱거리가 되는 국회의원의 모습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이제 그래도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뒷다마 정도는 어느정도 '대놓고'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고, 일상적인 규율권력 또한 '그들' 앞에서 조롱되고 무시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 동독은 아직 그러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80년대 중후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때의 일부 '진보적'인 대학생 지식인들은 '장벽' 너머의 세계에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었다. 북한에 '정통성' 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곳의 인민들은 순박하고도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서독 텔레비전의 모든 것들은 더 아름다워 보였고 모조리 더 좋아 보였다. (124면)

'진보적 청년'들은 일어판 자본론을 열심히 읽었고, 달력 뒷장으로 제본한 '주체 사상'들을 탐독했다. 그들은 억압적인 파시즘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고, 이러한 정부에 비판점을 마련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마련하기 위해 '저쪽'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이것을 절대적으로 맹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불법적인 팸플릿들과 <<1984년>>을 읽었고 라이프찌히에서 열리는 펑크 페스티발에도 갔다. 서서히 우리의 외모가 달라져갔다. 머리카락은 점점 더 길어지고 색색으로 물들었으며 신발은 발목이 점점 더 올라가고 점점 더 더러워져갔다. 자신의 운명을 발견한 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인민경찰 한 명으로부터 나는 '반사회주의적 외모'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181면)

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그들. '반사회주의적'과 '반사회적' 사이의 거리와 그 유사성!

세 사람 이상이 모이는 것은 '비밀집회'로 간주되고 있었다. 체포는 관공서 용어로 '수송'이라고 불렸다. 어떤 사실이 확증 될 때까지는 무조건 24시간 동안까지는 경찰서에 수송되어 있을 수 있었다. 대개 우리는 어딘가의 관할경찰서로 끌려가고 그들이 우리 소지품을 샅샅이 뒤질 수 있도록 옷을 벗어야 했다. 진술서의 내용은 하나하나의 사실 여부가 모두 검토되었으며 카세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청취되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그 옆에서 거의 다 벗은 채로 서 있어야 했고. (187~188면)

지금 작가는 80년대 중후반 동독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유신시절이나 전두환정권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소설 중후반까지 읽어가면서,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종의 '불편함'이었다. 학부시절부터 나에게 '진보'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의미했다. 자본주의 비판은 당연한 것이었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믿어졌다.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의 인권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리카 문제 등등과 비교해 볼 때, '같은' 층위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한쪽만 부각시키는 '부르주아 언론'에 대해서만 공격했다.

그러나, 내 태도 또한 편향되어있었다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들기 시작한다. 둘 다 함께 비판되어야 한다는 것을.

<굿바이 레닌>을 보았을 때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에게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구소련에서 온 유학생들과, 베트남,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나는 집요하게 그들의 현실을 물었고, 중국을 여행하면서도 지금 '인민'들의 삶의 '행복지수'가 그래도 대한민국보다는 괜찮지 않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유학생들은, 나와 의견을 달리했다. 그들은 모택동을 읽지 않았고, 맑스는 너무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진보'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였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였다. 나는 우리도 이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이는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오래된 속담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주의라는 이상향을 세워놓고 우리의 단점들을 비판하고, '그들'은 이제는 붕괴되어버린 공산주의 체제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서 '자본주의'라는 '저쪽'에서 어쨌든 굴러가고 있는 체제를 이상향으로 삼는다고...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라고 인정하고 말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숙제다. 왜 국가 사회주의는 몰락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땅의 인민들은 왜 그렇게 체제에 넌더리를 내는지, 그럼에도 왜 나는 아직 '맑스'를 좋아하는지, 그럼에도 최근의 '자율주의'등의 '맑스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는지. 어떻게 우리는 새로운 '진보'를 말할 수 있는지. 숙제를 내어준 책이라는 점에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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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2006년 5월 평택 계엄령



 

 

 

 

 

 

 

 

 


 



 

 

 

 

 

 

 

 

 

절망입니다.
제 생애 다시는 이런 광경 안볼거라 여겼어요
믿고 싶었지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시는, 다시는 이 땅에 저네들의 완전무장이 압도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거라
그런 시대가 어렵지만 천천히 오고 있는거라 여기고 싶었습니다.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꿈, 희망, 자유, 평등,자존 이런 단어들이 동토의 땅에서 피어나는 성에낀 이끼처럼
작고 낮게나마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자 그저 '바램'에 불과했어요

1980년대
뜨거운 길을 관통했습니다.
여적 가슴팍에 그 때의 상처가 가끔 도집니다.
공존하는 세상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까요?
절망의 아침입니다.
태양은 떠올랐지만 과연 저 태양은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절망하는 아침,
하지만 주먹에 힘이 더 쎄게 들어가는 아침입니다.
개새끼들이라고 욕하면 개들에게 모욕이니
'악마의 새끼들'이라고 욕해주렵니다.

-평택 대추리 군병력 투입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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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높은 분께 결례를 저지르다

 

 

 

 

한국 사회는 마무리가 약하다. 일단 터뜨리고 나면 수습은 언제나 국민들 몫이다. 정부나 언론에서 언제 “에...또...지금부터는 만두를 드셔도 됩니다.”라고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그냥 알아서, 달리 먹을 게 없으니까, 더 중요한 이유로 맛있으니까 만두를 먹었다.


김치파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생충 뉴스로는 보기 드물게 신문 1면 톱을 장식했던 김치 파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잊혀졌고, 사람들은 다시 “요즘 기생충이 어디 있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먹을 때 약간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기생충알이 있다는데 정말 김치를 먹어도 되는가? 난 김치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먹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쓴 게 바로 오늘 한겨레에 실린 ‘김치, 이제 용서해 줍시다’란 글이다.


하지만 난 결정적 실수를 했다. 그 글에서 감히 국회의원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버린 것. 너무 높은 분이라 차마 존함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김치에서 기생충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터뜨린 분이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노릇 아닌가. 물론 난 그 국회의원 나리에게 책임을 묻진 않았다. “국감에서 한 건을 터뜨리는 게 생활화한(된으로 써야 하는데) 국회의원은 그럴 수 있다 치자.”라면서, 진짜 책임은 식약청과 언론, 그리고 아무 일도 안한 우리 학회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원님은 열을 받으셨다. 왜? 척박한 국민건강을 향상시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한 걸 ‘한건을 터뜨린다.’고 폄훼했기 때문에. 아, 나는 어쩜 그리 경솔하고 무지하며 아무 생각이 없었던가. 어찌하여 나는 정치판 욕하는 게 무슨 지식인의 첩경인 양 높으신 의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가.


고명하신 그 의원님의 충성스런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아,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구나. 그래서 난 “소송을 걸려고 준비 중이니, 알아서 글 고치고 사과해라.”는 그분께 나도 모르게 “싫어요.”라고 해버렸다. “그 글만으로도 명예훼손 거리가 되는 거 아시죠?”란 질문에도 내 마음과 달리 “몰라요.”라고 해버렸으니, 난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나보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천안 명물인 호도껍질을 잔뜩 싸가지고 의원님을 찾아뵈야 할까. 진정으로 반성하는 빛을 보이기 위해 연구실 캐비닛에서 5년간 썩은 반바지를 입고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었다. 높은 분들은 자기의 충정을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겁나게 서운해한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나랏일로 바쁘신 그분이 전화를 돌리고 돌려 미천한 내 연구실까지 전화를 했겠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추신: 그 보좌관 나리도 엄청 바쁘긴 한가보다. 10시에 전화를 걸더니 “12시까지 답을 주라”고 하신다. 그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좀 바쁘다고 했더니 “그럼 오늘까지”라고 연장을 해준다. 그 관대함에 하마터면 “형님”이라고 할 뻔 했는데, 겨우 참았다. 오늘까지라, 그럼 밤 12시 쯤 전화걸면 되겠지요, 보좌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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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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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다시금 반성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맑시스트적 대중문화관은 대중들이 대중문화에 의해 지배 이데올로기로 착취당하게 된다는 비판적 인식이다.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대중문화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대중문화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대중'이라는 수식어와 연결된다. 나는 끊임없이 대중을 그리워하고, 그 곳에 길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면 어디로 갈 것인가!

마누엘 푸익은 전복적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짜아갔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대사들과 보고서로 이루어져 있는 새로운 서사이다. 그리고 대사의 대부분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대중영화를 자기의 감상대로 변형시켜서 전달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각주들은 동성애에 관한 과학적 담론들이다!

아아 역시 '현대, 중남미 문학'하고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흥미롭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것에 다시 감탄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그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대중과 만나기 위해서는 대중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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