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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샨사는 중국 소녀와 일본 군인들을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내세운다. 둘은 중국 광장에서 만나서 바둑을 둔다. 흑돌 한번 백돌 한번, 예외는 없다. 바둑처럼, 소녀의 이야기가 한 번, 일본 군인의 이야기가 한 번 응수를 한다.
일본 군인은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서 사고한다. 죽음에서 자유로운 것 같지만, '천황'을 위해서 죽어야한다는 강박은 그에게는 자신의 숨소리와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중국 여성은 여느 사춘기 중국 소녀와 다를바 없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좋아하고, 이에 몰두하였다는 것.
이 둘은 어느날부터 만나서 바둑을 둔다. 서로는 이름도 모르고, 중국 소녀는 일본 군인의 국적도 모른다. 그는 중국 테러리스트 스파이 색출을 위해서 광장에 나가 바둑을 둘 뿐이다. 소녀는 그녀의 연애와 가족사로 일상이 진행되고, 군인도 마찬가지로 그의 일상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끝은 난다. 평등하게, 한번씩 번갈아 두는 바둑처럼. 누군가는 이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바둑이라는 게임은 얼마나 잔인한가. 전쟁에 비유되어, 나의 군대가 적의 군대를 포위해서 사로잡는다. 바둑돌 하나하나는 대국자를 위해 몸을 던진다. 천황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본 군인들처럼.
대국자는 경기가 끝나면, 바둑돌을 쓸어담아 자리를 떠날뿐. 왜 서양의 체스, 동양의 바둑 장기등은 '전쟁'을 유비하여 게임을 만들었을까. 지상 최고의 게임이 전쟁이라서?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왕들이 즐기는 게임이라서?
아니면, 인생이란 그렇게, 죽고 죽이다 돌연 인사하고 떠나는 것이라서?
이 소설 또한, 바둑처럼. 돌연 그렇게 끝난다. 샨사의 전작 '천안문'의 갑작스럽고 시적인 결말은 다른 형태로 이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천안문'에서 보여주었던 지적인 대학생 여주인공 또한 '바둑 두는 여자'에서 지적인 고등학생 여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페르소나는 언제나 결말에서 비약한다.
마치 바둑처럼. 죽고 죽이던 바둑돌들은, 경기가 끝나고 집을 세면 돌연 모두 통에 담기고 만다. 급작스럽게.
우리의 삶도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다. 예고없이, 급작스럽게. 비약하고 만다. 언제나 그렇게. 끝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