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절판


피리소리가 깊고 깊은 한숨처럼 끝없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끊기고 만다. 주변의 나뭇잎들이 쏴아 하고 물결친다. 내 눈길이 나무에 붙어 있는 한 매미에게 가 닿는다. 고치가 길게 찢어져 열린 곳에서 투명한 몸이 빠져나오고 있다. 떨림들로 관통된 그 새로운 생명은 스스로를 펼치고, 늘리고, 꼬고 흔들어댄다. 나는 그것이 자신의 껍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을 기다려 내 손가락 위로 기어오르도록 부추긴다. 환한 달빛 아래, 막 태어난 매미는 솜씨 좋은 장인이 옥을 깎아 만든 조각품처럼 보인다. 두 날개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이슬방울처럼 비단같이 매끈한 살 위에서 쭉 펴진다. 나는 벌레의 배 끝을 살짝 건드린다. 내 손가락이 스치자마자, 그의 혈관들이 와해되고 투명함이 변색된다. 벌레가 잉크색의 액체를 내뿜는다. 그의 몸이 함몰된다. 날개 중 하나가 점점 부풀어오르더니 끝내는 터져 검은 눈물로 퍼진다.
나는 우리 일본군에 의해 먼지로 변하고 말 중국 소녀와 중국을 떠올린다.-243쪽

샨사는 중국 소녀와 일본 군인들을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내세운다. 둘은 중국 광장에서 때로 만나서 바둑을 둔다. 흑돌 한번 백돌 한번, 예외는 없다. 바둑처럼, 소녀의 이야기가 한 번, 일본 군인의 이야기가 한 번 응수를 한다.
일본 군인의 '죽음의 심미화'에 대해서, 그 심리를 잘 풀어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