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황라열 학생회장이 탄핵당했다. 기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반운동권 정서'였고 총회나 단학대회가 조직될 수 있었을까 우려했던 상황이라서,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잘된 일'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동기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연 이것이 '잘된 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노무현의 탄핵 때 불편해 했던 나와 달리 동기 형은, 오히려 이 때를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황라열의 탄핵 때는 위치가 정반대로 되고 말았다. 동기형은 '후폭풍'이나 탄핵을 처리할 능력을 갖춘 조직이 있을지 우려를 했고, 나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 투표권도 없는 OB들의 잡담(?) 수준이기는 했지만, 전학대회에서 학생들이 직접 뽑은 학생회장을 탄핵하는 것은 '절차상'은 학생회 조칙에 부합할지 몰라도, 걸리는 부분이 분명있다.

분명 총투표 상황으로 갔으면 무산되었을 것이 뻔하다. 학생회장 선거도 무산되는 판에, 탄핵선거라니.

그런데 탄핵 사유가 '도덕성 문제'에 있고, 전학대회에서 탄핵이 결의되고 통과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전학대회의 대표들도 학생들이 직접 뽑은 형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는 노무현때 국회의원들이 탄핵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 또 국민들이 노무현 탄핵을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학우들도 탄핵에 별반 관심이 없거나 반대한 학우들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권'에 대한 미움으로 탄핵을 정당화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꺼름칙 한 것이 사실이다. 또 동아리회장 또한 임기 중의 해결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탄핵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이 들어, 이 '탄핵'이라는 비상 절차가 남용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삼권분립으로 권력이 견제되는 것과 간접민주주의로 매개되면서 '민주주의'의 참 뜻이 흐려지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 황라열 '사태'는 '반운동권 정서'의 '대세화'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물론, 학우 대중의 뜻과 거시적이고 어쩌면 선험적일 수 있는(그래서 위험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의 길'이 충돌 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냐의 문제를 학생 사회에 남겨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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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소설 1
후지이 미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20대 중후반 남녀의 연애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대부분의 순정-연애 만화는 10대 소녀 취향이라 읽기가 꽤나 거북한데, 이 만화는 2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듯. (아니면 요즘 10대들은 성숙(?)했거나;;; )


20대 연애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직업과 연애 사이에서 갈등하고 삐지는 경우(너는 나보다 일이 항상 먼저니?) 성적인 문제(알아서 상상 ^^;; ), 결혼과 연애의 차이(연애는 두 사람만이 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그것이 아니다 등) 등을 깔끔한 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주인공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남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여성이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필요이상으로 차갑게 대한다. 이러한 여성의 마음에 점점 틈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6살 연하의 직장 동료. 뭐, 그 이후로는 연애스토리의 공식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20대에게 ‘공감되게’. 그 정도면 괜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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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갔다 오십니까? 문학과지성 시인선 213
성기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냉소적으로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연작을 통해 인생을 ‘문을 열고 들어가 서류 봉투를 받는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 계단을 움직’이며 차례대로 죽어나가는 것, ‘사소한 것으로 일관’하는 것, 이니셜화 된 이들의 무미건조한 행위(어느 예고편)로 규정한다. 깨어보니,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계단을 움직’이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여기서 ‘내리실 문은 없’다. 삶이란 그런 것. 그 계단을 차례대로 밟아가며 우리는 ‘사소한 것으로 일관’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몇 개의 문장으로 환원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행위’ 속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현대인이라는 이미지는 비만과 버려진 기계라는 이미지로 나아간다. 성기완은 냉장고(<냉장고>)가 되어 ‘나는 너무 거추장스럽고 뚱뚱하다/소화되지 않은 많은 음식들이 뱃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라고 말하며, ‘가장 번화한 유흥가의 뒷골목에는 너무 살이 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부랑자가 우물우물 기름진 피자 조각을 씹으며 앉아 젖꼭지를 내놓고 다니는 창녀들을 바라보며 자위 행위를 하고 있다’(<비만과 편견>)라고 한다. ‘어디서나 그들은 우울하고 내성적이며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때로는 변태적(<비만과 편견>)’인 현대인들의 자화상. 이는 다국적 기업과 자본에 의해 점유된 현실이다. (문명의 가을이다 다이어트 식품이 팔리고 小食이 권장되는 옆에선 오늘도 새로 들어온 다국적 치킨점이 생긴다 그들은 소식을 권장하는 지역 정부를 불공정 무역 혐의로 제소한다 <비만과 편견>)


이렇게 ‘소외’되어 기계화되어 버린 인간들을 시화하기 위해 그는 ‘소화되지 않은 많은 음식들’을 뱃속에 간직하고 있는 냉장고(<냉장고>)를 화자로 삼아 그 쓸쓸함을 노래하고, 서서히 부서져 내려가는 ‘눈 속의 폐차’(<눈 속의 폐차>)를 화자로 삼아 ‘천천히 드러눕고 있는’ 죽음을 노래한다.


이렇게 우울한 시대상 속에 ‘쇼핑 갔다 오십니까?’라는 표제작은 ‘쇼핑’이라는 자본주의적 쾌락행위와 소통의 부재를 드러낸다.


쇼핑 갔다 오십니까?


그래, 왜?

아니, 그냥 (<쇼핑 갔다 오십니까?> 전문)


‘아니,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 이 시집의 매력은 이러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현대 자본주의에서 물화된 비만한 고깃덩어리와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해서 비난하면서도(<비만과 편견>), ‘아니, 그냥’이라고 냉소적으로 고개를 휙 하니 젖혀버리는 그 차가움. 이러한 대비 속에서도 유지되는 냉소. 그리고 간간히 죽어가는 기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 (<눈 속의 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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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자림 > [퍼온글] 청계천 8가

청계천 8가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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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1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내기때 좋아하던 민가. 얼마전에는 갑자기 '착한 사람들에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래, 노래의 힘이라.. 시의 본령.
 
쇼핑 갔다 오십니까? 문학과지성 시인선 213
성기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3월
품절


문명의 가을이다 다이어트 식품이 팔리고 小食이 권장되는 옆에선 오늘도 새로 들어온 다국적 치킨점이 생긴다 그들은 소식을 권장하는 지역 정부를 불공정 무역 혐의로 제소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를 쓰고 식물만 먹는 '베지테리언'이라는 기이한 변종이 양키의 도심에 서식하지만 그들은 식물 이외의 것은 날것으로 다 내다 버리는 버릇이 있다 병마개를 소재로 한 소비자의 무의식을 더 질끈 잡아맬 다국적 광고가 그 썩은 고기에 기생한다 백두산 꼭대기 천지에서도 그 병마개는 신비스러운 상징이다 호주의 시드니 거리에도 미국의 뉴욕 거리에도 파리에도 런던에도 가장 번화한 유흥가의 뒷골목에는 너무 살이 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부랑자가 우물우물 기름진 피자 조각을 씹으며 앉아 젖꼭지를 내놓고 다니는 창녀들을 바라보며 자위 행위를 하고 있다 어디서나 그들은 우울하고 내성적이며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때로는 변태적이다 늘씬한 다리는 언제나 상품이고 그 상품을 둘러싼 모든 것은 비만이다 기름 덩어리가 우적우적 씹히는 삼겹살처럼 겹겹이 더러운 비계가 늘씬한 다리를 거대한 빌딩의 옥상에 검은 스타킹을 신겨 올려보낸다-98쪽

그것이 방송광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비계의 공식적인 포스터다 늘 구도는 이런 식이다 권태가 가장 기본적인 저항의 방식으로 선언되고 차라리 비만을 거부하지 않는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반문명적'인 할리우드의 안티 할리우드 스타들이 영웅으로 받들어진다 그들에 의하면 비만은 편견이고 기만이다 그러나 그 기만은 자기 기만 미국 놈들은 남의 나라에 파는 닭에 성장 호르몬을 워낙 많이 주사하기 때문에 전세계의 소녀들은 일찍 어른이 된다 곧 있으면 포르노 시장도 개방하라고 할 것이고 청소년들의 건전한 생활을 권장하는 정부를 불공정 거래 혐의로 제소할 것이다 무역에는 분명히 방해니까 미국 놈들 위주의 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혐의를 인정하여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다 점점 살찌는 놈들의 자본 천고마비의 자본 헉헉대며 더 많은 피자 조각을 원하는 비곗덩이들 그들은 우울하고 내성적이며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때로는 변태적이다 그것이 그들의 예술이고 문화며 세련된 전위 문명이 그들 발 아래 있으므로 그들이 살찌는 가을은 문명의 가을이다 히스테리와 편집 자학 그리고 피학 절망적으로 거울을 바라보고 거울을 조작하고 거울을 깨고 울며 주인공은 외친다 "다 죽여!" 하긴 3편이 지나도록 람보는 죽지 않았으니까 그렇게들 위안을 삼지만 아무도 문명의 체중은 물어보질 않는다 그것이 예의니까-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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