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보고 웃어본 적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사람 만화보고 쓰러지는 줄 알았다. 김.성.모 정말 존경(?)한다.
 

똥 마렵냐니.. 저게 아픈 사람한테 할 소린가. ㅋㅋㅋㅋ



멀고 험하다 ㅋㅋㅋㅋ




빵은 뭐냐.......................


 

진짜 무슨 소리냐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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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좋지만, 돼지라고 놀리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돼지라고 '순수'하게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ok, 하지만 그것을 '놀리는 것'은 싫어! ㅋㅋㅋ 음. 곱씹어 보면 맞는 말이네요. 인종문제나 소수자 문제에도 ^^;

푸하 2007-02-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요.^^;
 
 전출처 : 로쟈 > 지젝이 추천하는 라캉 필독서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돌아오니 책상에 작은 소포가 놓여있다. 물론 책이다(오늘도 세 개를 받았다). 아마존에서 온 걸 뜯어보니 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는 지젝의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007)가 들어 있다(*들은 바로는 국역본이 곧 나온다고 한다).

이미지보다 별로 크지 않은 '포켓북'이다(한동안 전철에서 읽을 책이 정해졌다!). 지난 3일에 주문을 했으니까 보름 정도 걸린 셈이다. 책값보다 배송비가 더 비싸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이지만(합계 21.9불이다), '지젝'이라서 참아두기로 했다(이 시리즈의 최신간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이며 나는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했다).  

Этика психоанализа. Семинары. Книга 7. (1959-60)

이런 입문서들이 대개 그렇듯이 색인 앞에 붙은 마지막 장은 추천도서 목록이다. 라캉에 대해서라면 물론 <에크리>와 <세미나>를 읽어야 한다. 지젝의 권고는 반드시 둘다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어느 하나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지젝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둘을 겹쳐서, 잇대서 읽어야 하다. 사위인 밀레르가 편집하고 있는 라캉의 <세미나>는 국내에 단 한권도 출간돼 있지 않지만 불어로는 절반 이상이 출간됐으며 영어로는 1-2년의 터울을 두고 계속 번역되고 있다. 러시아어로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세미나7: 정신분석의 윤리>(2006)이다.

 

 

 

 

지젝의 설명에 따르면 예컨대 이 <세미나7>과 <에크리>에 실려 있는 '칸트와 함께 사드를' 같은 글을 같이 읽어야 한다는 것(물론 우리로선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세미나>건 <에크리>건 번역돼 있지 않으니까. 몇 편의 글이 <욕망이론>(문예출판사, 1994)으로 번역돼 있으나 불어본 <에크리> 이상으로 읽기 어렵다(이루어지지 않는 게 욕망이라지만 라캉 읽기에 대한 욕망만큼 이를 실증해주는 게 또 있을까?). 거기에 비하면 지젝은 얼마나 경쾌하며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

이어서 지젝이 제시하는 최고의 2차 문헌들(지젝은 이하의 책들을 화끈하게 'the best'라고 소개한다). 몇 권은 그래도 국내에 소개돼 있어서 나의 손끝이 가볍다. 제일 먼저, 가장 짧은 최고의 입문서는 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 그리고 라캉 임상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는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정신의학>(민음사, 2002)과 다리언 리더의 <왜 여자들은 부치는 편지보다 더 많은 편지를 쓰는가?>(1996). 목록에서 내가 안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몇 달전에 도서관에 주문해놓았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언 리더는 국내에 소개된 <라캉>(김영사, 2002)의 저자이다.

 

 

 

 

라캉과 철학에 대한 에세이는 조안 콥젝의 <나의 욕망을 읽어봐>(1994)와 알렌카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 콥젝의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와 함께 근간 예정인 것으로 안다(콥젝의 글은 <성관계는 없다>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최고의 라캉주의적 독해는 에릭 샌트너의 <나만의 사적인 독일>(1996)과 믈라덴 돌라르의 <단지 목소리뿐>(2006). 돌라르는 알다시피 지젝의 단짝으로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의 이론정신분석학회 최초의 멤버 2인 중 한 사람이다. 

거기에 아직까지는 라캉에 관한 최고의 전기로 꼽히는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새물결, 2000). 이만한 분량으로는 유일한 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지젝에 따르면 몇몇 논란이 될 만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가장 방대한 전기적 자료를 제공해주는 책이라고.   

마지막으로 라캉에 관한 최고의 웹사이트, 는 여전히 www.lacan.com 이다.

07. 01. 19.

P.S. 지젝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 겸연쩍은 일이었겠지만, 내가 꼽는 최고의 라캉 입문서는 물론 지젝의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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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라깡을 공부하게 될 수도.. 왜냐하면 다시 알튀세를 공부하게 됬?때문이죠. 이는 다시 제임슨을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결국 그 라깡으로 간다면!!! -_-; 최대한 알튀세에서 멈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ㅎ

비로그인 2007-02-2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깡은 아직 건드려 보지도 못했는데..ㅋ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 전집만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재밌더군요. 3할 정도는 아직 못 읽은 듯.(언제 봐야 되는데..)

기인 2007-02-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2년은 라깡에 매였던 적이 있었는데. 공부하는 동안은 뭔가 잡히는 것 같다가, 또 2~3년 지나면 모든게 다 깜깜해지네요. ㅋ 남은 것은 RSI... -_-;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나는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 앞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곤란한 길을 거쳐야만 할 것인가.-6쪽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7쪽

디아스포라들은 이주한 땅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며 소수자다. 다수자는 대부분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온 토지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견고한 관념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안에 있는 한 다수자들에게는 소수자의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그 진정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이 글은 '나'라는 한 사람의 디아스포라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Kassel,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각각의 장소에서 접한 사회적 양상과 예술작품을 테마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탐색하려 한 시도다.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의 모습이 근대 특유의 역사적 소산이라고 한다면, 이 시도는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근대'를 다시 보는 것, 그리고 '근대 이후' 인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하다.-14-15쪽

소수의 입장에 서는 것. 내가 아는 유일한, 정의에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다.
학교에도 재일조선인 분이 계신데, 금요일날 뵙고 이야기도 많이 할 것 같다.
너무 무관심했다. 식민지를 공부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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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오마이뉴스] 8년 만에 재즈 앨범으로 돌아온 신해철을 만나다

아티스트이든,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대중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자신을 정립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대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신해철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 귀가 고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신해철의 이번 판은 별로더라... 가수는 노래로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신해철 같은 가수는 계속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존경스럽다.

 

 

"뮤지션 구박하는데 음악이 먹히겠나
대중이 달라져야 아티스트 시대 온다"
[인터뷰①] 8년 만에 재즈 앨범으로 돌아온 신해철을 만나다
    김작가(zakka) 기자   
8년 만에 솔로 앨범을 낸 가수 신해철과 대중문화평론가 김작가의 만남. 3시간에 걸친 두 사람의 대화를 두 편으로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 주>
▲ 8년 만에 솔로 재즈 앨범을 낸 가수 신해철
ⓒ 싸이렌

한국의 뮤지션, 아니 문화계 종사자 중에서 신해철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인물은 드물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알다시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화법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사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제나 말을 극도로 아끼는 우리 문화계의 풍토를 비춰본다면 그래서 더욱 이슈메이커로서 독보적인 자리에 있는 게 신해철이기도 하다.

그런 신해철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음악계의 도올 김용옥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삼국지의 관우에 비교하기도 한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끝없는 자신감, 혹은 거침없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드러냄에 있어서 일말의 주저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신해철이 8년 만에 솔로 앨범 < The Songs For The One >을 냈다.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오가며 음악 활동을 해온 그로서는 이례적으로도 재즈를 표방하는 앨범이다. 듣는 이에 따라 새로운 도전으로, 혹은 안전한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서울 공덕동에 있는 사이렌 뮤직을 찾아 스물 다섯번째 앨범에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속내를 들어봤다. 음악뿐 아닌,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도 그는 말발굽소리가 날만큼 거침없이 생각을 내뱉었다.

"재즈란 장르보다 로맨스 먼저 생각해"

- 오랜만의 솔로 앨범이자 첫 재즈 앨범이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무조건 좋다는 팬들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가며 괜찮다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는데 빨리 때려 부숴라, 나 기다린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즈라는 특정 장르보다는 로맨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만든 앨범이다."

- 부인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했다. 정작 부인의 반응은 어떤가.
"와이프한테 주는 앨범으로 되어있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아버지와 나'가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 얘기가 됐듯 이 앨범에서의 'One'도 나한테는 마누라지만 듣는 사람한테는 자신의 'One'이다. 내년에 듣는다 해서 촌스러워질 앨범도 아니고,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할 수 있는 음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오리지널 재즈 앨범이라기보다는 이지 리스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의 재즈라기보다는 재즈가 가장 대중에게 친근했던, 뉴올리언즈나 스윙 시절의 대중음악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히 이지 리스닝인데, 문제는 우리 대중들이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일단 가요 팬들은 브라스 섹션이 튀어나오면 당황스러워 한다. 가요 팬들에게는 어렵고 재즈 팬들에게는 가벼운, 타깃 없는 앨범이라고 본다."

- 레퍼토리 선정은 어떻게 했나. 특히 최희준의 '하숙생'은 의외의 선곡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거쳤다. 스탠다드 넘버와 리메이크 대상이 되는 우리 노래 수백 곡 중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한 노래가 아니면 다 쳐냈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중학교 때도 부르는데 어려움 없었던 노래들로 갔다. '하숙생'의 경우 당시 노래들 중 트로트가 아닌 귀한 곡이어서 들어갔다. 만약 최희준씨가 노래할 때 우리나라 음악계에 재즈가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가지 않았을까 한다."

"보컬 녹음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건 처음"

- 어느 앨범보다도 보컬리스트로서 역할에 충실한 작품이다. 프로듀서, 편곡, 연주를 다른 사람에게 전부 맡긴 첫 앨범 아닌가. 노래 부를 준비도 많이 했을 텐데.
"서양 사람들 앞에서 쪽 팔리기는 싫었으니 세 번 미리 불러보고 녹음했다. 생전 가장 노래 연습 많이 하고 녹음한 경우다. 원래 나는 레코딩 때 노래 연습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습관적으로 녹음 들어가기 직전에 가사를 쓰기 때문이다. 녹음하기 전에 커피나 녹차 시켜놓고 식기 전에 다 불러버렸으니. 멜로디도 윤곽만 잡아놓고 녹음 직전까지 안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넥스트 라이브 앨범 들어보면 오리지널 레코딩보다 좋다. 일단 연습이 되고 지방을 거친 후 서울 공연에서 녹음을 했기 때문에 원래 앨범보다 라이브 앨범에서 노래를 잘 불렀다. 기형적인 타입이지만 음악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래서 어쩔 수 없다."

▲ 최초 미디 음반을 낸 신해철이지만 '조립식 음반'에 지쳐 '한방 레코딩'을 마음먹었다.
ⓒ 싸이렌
- 밴드의 전면에 서 있는 게 보컬리스트인데 그렇게 무책임해도 되나.(웃음)
"어릴 때부터 보컬은 악기의 하나라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내가 보컬을 하게 된 계기가 가위바위보에서 졌기 때문이다. 우리 때는 기타가 최고고 음악은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악기가 없는 애가 하는 게 보컬이었다. 그래서 스쿨 밴드 처음 만들 때 보컬하라고 해서 분개했다. 애들 앞에서 기타를 막 치면서 이거 보라고, 우리가 기타가 두 명이지만 내가 리드 기탄데 왜 나보고 보컬하라고 하느냐 그러다가 가위바위보에서 졌다.(웃음)

심지어 '무한궤도' 이후 솔로 앨범 낼 때도 음악은 계속 해야지, 밴드는 계속 해야겠는데 상황은 안 좋지 그래서 전략적 방편으로 노래를 했다. 그러다 보니 보컬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프로듀서, 편곡 남한테 다 맡기고 노래만 불러보고 싶었다. 보컬 녹음하면서 재미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 6일 만에 녹음을 끝냈다고 들었다.
"첫날은 파티였으니까 정확히 믹싱까지 포함해서 5일이었다. 한방에 갔다."

- 원 테이크 녹음은 사전 준비도 철저해야 하고 무엇보다 연주자들의 기량이 엄청나게 요구되지 않나.
"인프라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팝도 하고 클래식도 하고, 이런 사람들 끌어 모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일년내내 빅밴드만 하는 사람들과 하니까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 노상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리허설 과정에서 이미 밸런스를 맞춰버리고 레코딩에 들어간다. 녹음하다가 가수 컨디션 살펴보면서 '아, 그런 식으로 노래하려고? 야야 우리도 이렇게 가자' 이런 식으로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캐치해서 본 녹음에서 즉각즉각 맞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욕이 나올 정도였다. 선장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아서 한다."

"조립식 음악에 지쳐 '한방 레코딩'으로"

- 원 테이크 녹음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앨범이 어찌 보면 듣는 사람은 편한데 만드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녹음이야 5일 만에 끝났다고 하지만 사전 준비가 그만큼 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이 앨범이 어떤 면에서는 공격적이다. 첫째, 한방 레코딩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몽땅 미디로 찍어서 조립식으로 나오는 요즘 음악들에 나도 지쳤고, 듣는 이들도 지쳤다. 그리고 조립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걸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나다.(신해철의 솔로 두 번째 앨범 < Myself >는 미디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음반이다...필자주) 디지털 편집의 가능성이나 음악 수준을 상승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헌데 지금은 조립식이 아니면 나오는 앨범이 없으니까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음반 시장이 축소되니까 투자, 제작비도 줄어든다. 따라서 미디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싸게 가기 위해 미디를 사용한다. 그래서 일부러 28인조 밴드를 썼다. 인간이 연주하고,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식을 통해서 앞으로의 음악에 있어서 자양분이 될만한 게 있었나.
"앞으로는 넥스트 앨범 녹음을 원 테이크로 한 방에 가려고 한다. 물론 넥스트의 경우는 오버더빙없이 한 번에 모든 걸 만들기는 힘들지만 원 테이크를 기본으로 삼아서 가려고 한다. 그리고 조립이나 편집, 기술을 많이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그게 답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연주도 잘해야 하고 곡이 좋아야 하는 거니까. 어쨌든 끝까지 가봐야 뭐든지 알겠더라."

- <모노크롬> <비트켄슈타인> 등의 앨범으로 디지털의 끝까지 가보니까 오히려 아날로그가 답이었다는 얘긴가.
"이제 아날로그, 디지털의 장점을 다 취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잃은 것도 많다. 그래서 공부는 적당히 하라고 후배들에게 그런다. 좋은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언어학자가 되고 싶은지 구별하라고 한다. 기타 치는 친구들에게도 말한다. 검객으로 달빛 자르기를 완성하면 검도 선생이 되는 거다. 만약 칼을 들고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싸움에 뛰어들어라. 즉, 곡을 써야 한다.

내가 그 반대로 갔으니까 나 자신은 할 말은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얻은 보람은 있다. 록 음악에서 프로듀서란 음악에서의 크리에이션뿐 아니라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최종 단계에서 기계를 조작해서 믹싱까지 끝내주는 건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지 않나. 그런 단계까지는 간 것 같다. 스키조의 경우에도 사운드 디자인에서 믹싱까지 내 손으로 끝내줄 수 있었는데. 밴드들은 음악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 나한테 맡겨, 그럴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거 하나는 기쁘다."

- 앞으로 뮤지션이 아닌 프로듀서 신해철에 집중해야 하는 건가.
"어쩔 때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최대의 프로듀서일 수 있다. 피터팬 콤플렉스의 경우 간섭하지 않는 게 최선의 프로듀싱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프로듀서도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고, 인디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자본가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것도 내 할 일이다. 공연장 설립 사업도 계속 추진중이다."

▲ 신해철은 가수로서 뿐 아니라 가요계 이슈메이커로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싸이렌
"앨범이 사라진다는 건 내겐 사형선고"

- 90년대 정상을 맛봤던 가수들이 더 이상 앨범을 내지 않거나, 앨범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비슷한 세월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는지.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CD가 사라진다는 걸 결정돼있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싱글이 아닌 디지털 앨범도 가능하다. 히트곡을 위한 목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앨범 위주의 작가주의적 생각으로 가려는 사람은 끝까지 싸워야지.

CD를 사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날 때까지 CD를 내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패배할 게 뻔한 싸움이라도 마지막에 내 목에 칼이 들어와서 땅바닥에 꼬꾸라져야 끝나는 거지, 이미 끝났구나 싶어서 먼저 깃발 내려서는 안된다는 거다."

- 당신의 음악적 도박은 대체로 성공을 거둬왔다. 미디를 도입했고, 잘나가는 솔로 가수에서 밴드로 회귀했고, '도리도리'밖에 모르던 상황에서 테크노 앨범을 냈다. 시대 상황에 한걸음 앞서 왔던 셈이다. 음반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지금, 당신의 결의는 이제 대중들의 판정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다. 대중을 믿는 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을 가장 불신한다. 우리나라 대중은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서 면책을 받고 있다. 매스미디어, 뮤지션, 시스템 여러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무도 대중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대중이야말로 모든 사태의 원인이자 책임자다. 아티스트가 반성할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다. 뮤지션이 대중을 공격하면 싸가지없는 놈이 되거나 변명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20세기 이후의 대중이란 그 자체가 아티스트의 풀이다. 대중은 미래의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최종 소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중이라고 하는 음악의 토양도 생각해 봐야 한다. MP3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다른 나라 음반 시장도 작살나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가장 참혹하게 작살났다. 그게 오직 초고속 인터넷 때문일까. 과연 뮤지션의 역량이 떨어져서 음악을 조잡하게 만들기 때문 만일까.

아니다. 돌밭에 모내기했으면 쌀이 안 열리는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 대중은 20세가 넘어서면 급격히 주류에 편입하려 무릎을 꿇으면서 음악 듣는 걸 멸시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쳐다보면서 '한때는…' 이러면서 피식 웃는다. 문화비가 없다면서 울부짖으면서 술값은 항상 있다. 딱, 그 수준밖에 안된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듣던 멜로디가 아니면 안 들으려고 한다. 집요할 정도다. 특이한 멜로디나 특이한 시도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작곡가들은 어디서 듣던 멜로디를 죽어라 찾아내야 하는데 확률적으로 나올 수 있는 멜로디가 뻔하니까 표절을 하게 되는 거다. 표절에 도덕적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왜 대중들은 죽어라고 어디서 듣던 멜로디만 들으려고 할까.

일본 대중음악 차트를 보면 깜짝 놀란다. 톱10 안에 들어있는 노래들을 보면 요상망측한 노래들이 있다. 영국은 멜로디도 리듬도 없는 노래가 넘버 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가? 자기들이 뻔한 노래만 좋아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다 면책받고 있다."

"팝과 단절되면서 대중도 하향평준화"

- 하지만 예전의 대중은 안 그랬던 것 같다. 넥스트의 2집,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같은 새로운 음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은 언제나 준비되어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90년대 대중과 지금의 대중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처럼 평생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삶의 일정 시기에만 음악을 듣는 토양에서는 10년쯤 시간이 지나가면 대중을 이루는 세대 하나가 완전히 소멸하고 다른 대중층이 와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20-30대도 음악을 듣겠지만 그들이 실제 필드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6.10항쟁 이후에 등장한 10대-20대 초반은 음악을 듣는 방식과 세계관이 다른 세대다. 결정적으로 라디오에서 팝의 공급을 끊어버리면서 팝에서 단절되어 귀가 하향평준화돼버린 게 지금의 대중이다. 우리나라 대중의 역사에서 가장 귀가 밑으로 떨어지는 게 지금이다. 이런 풍토에서 음악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지금 라디오가 가장 뒤처져있는 매체라고들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음악 초보자는 2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장르 구분과 명곡에 대한 기초를 배웠다. 해마다 초급반에 입학하는 애들은 다 김기덕으로 들어오고 중급반은 '황인용의 영팝스'로 가서 심장을 때리는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후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라는 마스터클래스로 넘어갔다. 이런 코스를 거치면서 팝과 가요를 동시에 듣는 세대가 90년대에 탄생한 거다. 팝을 듣던 그들이 왜 우리나라 음악은 그렇게 안되냐고 뮤지션들에게 압력을 가했던 거다.

넥스트가 앨범을 내고 성공할 수 있던 건 '우리나라에도 속주 기타를 칠 줄 아는 애가, 하이톤으로 빽빽 지르는 애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2집을 낼 때는 '팝에 비해 사운드가 밀리는데 해결해'라는 압력이 있었던 거고. 그래서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불러 와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대중의 힘이다."

- 들을 음악이 없다는 불만도 대중들로부터 끊임없기 제기된다.
"들을 게 없어서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그런 말 해도 된다. 그건 자기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다운로드 계속 받으면서 그렇게 얘기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는 그런 면에서 비겁하다. MP3와 함께 전멸한 건 아이돌 진영부터가 아니었다. 뮤지션 진영이 먼저 박살이 난 다음에 아이돌로 옮겨간 거다.

그나마 아이돌은 타격을 덜 받는다. 아이돌인 상대방과의 교감을 위해 직접 물건을 구매한다는 행위가 작용을 하니까. 하지만 아티스트 진영의 팬은 음악 내용만 있으면 되지 북클릿, 브로마이드 이런 건 필요 없거든. 소위 마니아들 포함해서 모두가 우리나라 음악에 칼을 꽂았다."

ⓒ 싸이렌

"음악하는 사람들을 구박하는 나라가 어딨나"

- 하지만 아직까지 뮤지션들의 앨범이 나오는 건 그걸 듣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이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앨범 때도 난 그랬다. '아직도 니들이 내 앨범 제작비를 댄다고 생각하냐. 나는 다른 재주 부려서 돈 벌어서 내 돈 퍼부어서 앨범 만든다. 그럼 나한테 말할 자격이 없는 거지'라고 얘기하곤 한다. 나처럼 구르는 재주라도 있는 사람은 좀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갑갑하다.

뮤지션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야 한다. 90년대는 그런 예우가 가장 높았던 시기다. 그 음악을 듣는 팬들은 자기 맘에 드는 아티스트들은 팝 아티스트들과 동급으로 대우해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 취급을 안 하려고 한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거나 이상한 얘기 찍찍 해대고. 칭찬은 못 들어도 좋다. 그렇지만 왜 침 뱉고 돌 던지는 거냐는 거지.

그나마 나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으니 보호막 역할을 해줘서 버티는데. 심지어는 음악한다고 자살까지 해야 하는 형편까지 갔으니까. 다들 죽으려고 한다. 실제 음악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대중들이 그들을 대하는 악독한 태도다. 음악 하는 사람들을 구박하는 나라가 어딨나.

외국에 여행을 가면 놀란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뮤지션이라고 하면 일단 활짝 웃는다. 짐도 안 열어본다. 런던에서 택시를 탔는데 뮤지션이라고 하니까 뒤돌아보면서 '오, 모든 사람이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죠' 이러더라. 우리나라는? 엄마한테 따귀맞는 것부터 시작한다. 풍토가 너무 다른 거다."

- 뮤지션이 예우받았던 90년대는 자기 노래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이 중심이었다. 심지어 댄스 뮤직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노이즈 같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기획사 시대가 시작되면서 뮤지션의 자리가 위축됐다는 생각이다. 싱어송라이터를 필두로 한,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 산업의 변방에 있고 기획상품들이 미디어를 다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산업구조가 대중이 음악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단초가 아닐까.
"기획상품이 미디어랑 결합하고, 그게 블록화하면 아티스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게 순서대로 간다. 라디오가 그 순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나라 라디오가 지위를 잃은 건 뉴미디어 탓도 있겠지만 자기 발을 자기가 찍은 게 더 크다. 라디오가 TV워너비가 되면서 아이돌을 끌어들여 DJ를 시키고 팝송을 끊었다. 그 결과 최약체 미디어로 전락했다. 하지만 외국은 여전히 라디오가 강력한 매체다.

TV 음악프로그램은 오로지 풍선 든 10대들만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이돌만 데리고 놀았다. 요즘 어떤가.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 안 나오고 망해간다. 하지만 EBS의 스페이스 공감 같은 경우는 어떤가. 그런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갔는데 성과가 나오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장기전략이나 고민없이 유행만 따라 왔다갔다하니까 순서대로 작살이 나고 있다. 아티스트들을 중심축에 뒀을 때 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 다시 아티스트들이 음악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시기가 올까.
"매스미디어가 다시 열리는 시기가 되면 창구가 올 수 있다. 다만, 그저 싱어송라이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뭔가가 있어야지. 심지어 서태지도 아이돌 댄스팀이란 형태를 취함으로써 대중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을 뚫었고, 듀스도 본인들이 댄서 아닌가. 넥스트의 경우는 무대에서 벌이는 퍼포먼스의 정도가 백댄서 데리고 나오는 아이돌 댄스팀에 비해 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넥스트가 1집 내고 TV에 한번도 안 나가다가 몇 년 만에 나가게 되니까 PD가 백 댄서를 세우려고 했다. 그룹사운드는 연주 말고는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백댄서 세웠다가는 우리 기타에 맞고 코피 터지니까 치우라고 그랬다. 기타를 돌리고 이빨로 물어뜯고 하는 김세황 앞에서 무슨 백댄서가 필요하겠나. 쇼적인 측면과 아티스트는 반비례라 생각하는 인식은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인디 밴드들과 얘기할 때 가끔 그런다. 홍대에서 클럽에 모여있는 관객 300명을 질질 싸게 못 만들면서 TV 앞에 있는 400만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라디오헤드처럼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끌 수 있는 포스가 있던가, 아니면 머틀리 크루처럼 '생쑈'를 하던가. 뭐든지 해야 한다.

차력을 하던 뭘 하던 관객의 눈을 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넥스트는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차력단이었다. 음악만 열심히 하는 걸로 된 게 아니었다. 우리 슬로건이 '연주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받아도 액션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못한다'였다.(웃음)"

- 솔로시절부터 넥스트, 모노크롬 등 당신의 음악적 여정을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상업적, 비평적 찬사와 함께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평단의 지지를 그리 못 받았다. 그리고 시장에서도 팬의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기존의 팬층에 머물러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보다는 발언이 더 화제가 되는 상황이다. 뮤지션으로서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평론가들이 좋아할지는 예측이 된다. 하지만 97년부터 더 이상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넥스트를 해산할 때 더 올라갈 곳이 없어서 해산한다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상의 평가와 판매를 원한 적이 없다. 그 이후부터는 철저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97년까지의 내가 인기있는 소설가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논문을 썼던 셈이다.

모노크롬은 레코딩 테크놀로지 실험이었고 비트켄슈타인은 미디가 어쿠스틱의 영역을 어디까지 잠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음반 자체의 구조와 예술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거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누굴 위해, 뭣 때문에 그걸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거지. 그런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90년대에 조성되어 있던 분위기 정도는 되어야 거기에 따라갈 텐데 그렇지 않으니 나 좋은 거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스타가 등장했을 때 팬덤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꾸로다. 팬덤이 형성된 후 그들이 요구하는 스타가 나온다. 그것도 비슷한 수천의 후보에서 한명이 간택되어 탄생한다. 간발의 차이로 너바나의 업적이 펄잼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한 건 너바나였듯 말이다. 디스코가 난리 치고 다른 음악이 전멸할 때가 됐을 때 록이 파티 음악화되면서 LA메탈이 출연했다. 그 임무가 다하자 그 뒤를 이어 너바나가 등장했다. 그렇게 보면 미디를 무기로 등장했던 우리 세대의 등장이나, 서태지의 등장도 대중들의 요구가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 튀어나온 거다."

"돈을 아끼려는 순간 뮤지션은 죽는다"

- 시대가 뮤지션을 낳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보면 지금은 더 비관적인 상황 아닌가.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BGM(배경음악)이 됐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비관론은 음악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 늘 있어왔다. 언제 뒤집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악은 비주얼 없이 오디오만 존재하는 매체기 때문에 다른 예술과 결합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매체다. 그런 면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화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자꾸 일회적이고 상업적인 매체와 결합해서 그렇지. 깊이 있는 다른 예술과 결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서 핑크 플로이드가 영화 <더 월>이나 콘서트에서 보여준 종합예술과의 결합이 아니었으면 단순한 변칙 블루스 밴드로 끝날 수도 있었을 거다. 단지, 지금 방법을 못 찾고 있을 뿐 결합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지않는 건 아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여러 토양이 필요하다.

우선 아이돌에 대항하는 아티스트의 축을 이루기 위해서는 콘서트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콘서트에서 아이돌은 라이브를 중심으로 하는 아티스트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거다. 미국에서 스톤 템플 파일럿츠 공연을 2만원이면 봤다. 국내 가수를 보려면 8만원을 내야한다. 당연히 공연 사업이 안되는 거지.

여기서 화살은 정부에게 돌아간다. 콘서트는 최약체 산업이다. 여기서 무슨 세금을 뜯어간단 말인가. 면세 정책도 될까 말까 한데.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건 싸움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총탄이다. 그러나 돈을 벌면 몽땅 음악에 투자할 각오가 돼있는 뮤지션한테조차도 대중들은 돈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거리의 악사가 없는 이유는 단속도 구속도 아니다. 거리에서 공연해도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션에게 나가는 돈은 아낄 수 있는 한 아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뮤지션은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음악을 하는 것밖에 없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영악해 봐야 소용없다. 제작자들이 영악해져야지. 너무 영악하면 음악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띨띨하면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손에 넣지 못하고. 적당히 띨띨해야 한다.

내 경우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내가 솔로앨범 두 장을 내고 밴드로 전환했을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오래 못 갔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결과론적인 얘기다. 솔로 두 장이 대박이 터지니까 '이제 회사에서 뭐라고 못하겠지. 자, 하자' 이렇게 된 거다. 사전에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리고 모노크롬을 내고 다시 풀 밴드로 돌아간 것도 '아, 막 두드려야지 이게 뭐냐!'는 욕구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결론적으로는 가장 영악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신을 잃지 말아야지. 좋은 음악을 만들고 그걸 대중에게 보여주면 반응할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것. 그게 내가 사이렌뮤직을 설립한 이유다. 싱어송라이터이고 사람들이 들을만한 음악을 만들지만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빠져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메이저로 흡수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러다 보면 뭔가 바뀌겠지."

"인디는 수권능력 없는 약체 야당의 난립"

- 사이렌뮤직에도 스키조, 피터팬 콤플렉스 같은 팀들이 있지만 고스트 스테이션을 통해서도 인디 음악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최근 인디 뮤지션들의 흐름이 어떻다고 느껴지는지.
"굳이 인디라 할 것 없는 사람들도 인디로 몰린다. 댄서블하고 상업적 음악을 만들지만 얼굴이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댄서블한 음악을 들고 인디 신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사노바 뮤지션도 인디다. 디스코 뮤지션도 있다. 외국 같으면 메인스트림에서 놀아야 할 뮤지션들이 다 인디에 머물러 있다. 매스미디어가 철저하게 폐쇄적이기 때문에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디가 된다. 인디의 풀이 대단히 다양해진 건 이런 상황에 대한 역설적 결과다.

R&B 아이돌 진영이 더 이상 히트를 내지 못하는 무능한 집권 여당이라면 인디펜던트는 수권 능력이 없는 약체 야당의 난립이라 볼 수 있다.(웃음) 정권교체를 하려면 인디 뮤지션들을 묶어 세력화하고, 콘서트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매스미디어로 뚫고 들어가야지. 제일 문제는 자신감의 결여다.

인디 뮤지션들이 자기 노래를 안 틀어줄 거라 생각해서 방송사에서 음반 심의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노래 괜찮아서 틀어보려 하면 심의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심의실로 가지고 가서 심의받아서 튼다. 만약 언젠가는 록 스타가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으면 그런 일은 안 생기겠지.

고스트 네이션에 게스트 출연하면 웬만하면 검색어 1위는 한다. 일반 음악 듣던 사람에게는 인디가 너무나 신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라디오 3사에서 아이돌 틀어봐야 아무 메리트 없다는 거 깨닫고 몽땅 인디 음악만 틀면 인디는 순식간에 세력화될 수 있다."

"인디 세력화 필요... 매스미디어도 거부 못해"

- 음악계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얘기만 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는 가능성, 혹은 징후는 느끼지 않나.
"최소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20세기 후반 들어 홈스튜딩 테크놀로지가 보급되면서 대중에게 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 넘어왔다. 컴퓨터가 한편으로는 뮤지션을 잡아먹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뮤지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쌓이는 메탄에너지가 결국 지금의 메이저를 밀어낼 거라고 본다.

방송사 PD들도 변했다. 옛날처럼 기세등등한 상황이었다면 스키조나 피터팬 콤플렉스 같은 팀들 TV에서 안 받아 줬을 거다. 우리 회사에서 프로모션할 때도 인디 밴드가 나와서 반응 있었던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녹화 현장에서 반응이 나온다. 윤도현 러브레터에 피터팬 콤플렉스 나왔을 때 검색어 1위하고 홈페이지는 방문자 폭주로 다운됐다.

그 사람들도 생각을 바꿀 기회가 있어야 한다. 당장 한 주 한 주 시청률이 나와야 프로그램을 계속 할 수 있는 입장이니 모험은 할 수 없어도, 만일 매스미디어에 진출한 인디 뮤지션이 대중의 관심을 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 하지만 방송국의 턱이 높다. 당신이 갖고 있는 루트와 여타 인디 레이블들이 가진 루트는 차원이 다르다. 인디 레이블 제작자들은 PD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이렌에 소속된 팀들이 방송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니 사업 방향이 여러 가지다. 우선 여러 곳에서 인디를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거리와 클럽에서 시작해서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각 단계의 길을 건설하려고 한다. 긍극적으로는 그 길이 건설돼도 뮤지션이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하는 일이 벌어져야 하지 않겠나."

- 뮤지션이 방송에서 활동할 때 가장 문제되는 게 립싱크다. 밴드 사운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열악한 방송환경에서 립싱크는 필요악이라는 얘기도 있다.
"립싱크에 대한 편향적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외국은 우리랑 다르다. 분명히 돈을 내고 보는 공연에서 립싱크를 하면 문제가 된다. 콘서트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라이브라는 게 누구나의 상식이니까. 그러니까 법적으로 콘서트에서 립싱크를 할 경우 별도 표시를 하라는 거지 TV에서의 립싱크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 비틀즈,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도어스, 너바나. 다 TV에서는 립싱크했다. 그게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립싱크란 프로덕션 기획 상품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연예인을 구박하기 위한 용도에 불과하다. 진짜 음악을 사랑해서 라이브를 보려면 돈을 내야하는 거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이렇게 기브 앤 테이크 교육이 안 돼 있는지 모르겠다."

- 음반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MP3를 유료로 다운받아도 바보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우리나라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 아닌가. 나는 우리 민족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보는데, 그들 말을 받아들이자면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얘긴데 그래서 피곤하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바보다. 우리나라 인구 중 천만명만 바보면 행복해진다. '우리 애들 영어과외 안 보내고 조기 교육 안시킬 거다. 때 되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딱 천만명만 되면 우리나라 행복지수 올라간다."

ⓒ 싸이렌
"다시 정치할 생각 없다"

-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의 문제가 된다. 올해가 대선의 해다. 지난 대선 때처럼, 이번에도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할 생각인가.
"생각 없다. 그때도 생각 없다가 갑자기 한 거고 이번에는 갑자기 할 것 같지도 않다. 정치할 거라는 의심을 많이 받고 있어서 이번에 한 번 더 얽힐 생각하면 끔찍해진다. 벌써 다음 대통령를 뽑는 해가 됐는데 지난번에 노무현 진영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현기증 날 정도로 증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꽤 되니까."

- 얼마 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기사를 봤는데 악플이 엄청 나더라.
"조선일보니까. 조선일보 독자들은 신해철을 철천지원수로 알고 있는데 그 신문에 내 기사가 나오니까 밉겠지. 음악 얘기만 했는데 거기서 노빠, 이런 얘기는 대체 왜 나오는거야.(웃음)"

-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명사들을 대상으로 네티즌에게 궁금한 걸 묻는 이벤트를 벌였다. 하고 많은 질문 중 당신은 악플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라. 악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그 중에서는 악플이 하나의 비판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나.
"단어 자체의 사전적인 의미를 좀 알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적절한 수위 이상을 훨씬 벗어난, 이미 비판의 의미를 상실한 걸 악플이라고 부르지 않나. 단지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얘기를 했다고 악플이라 부르지는 않는단 말이다. 인권을 침해하고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수준 의 악플을 왜 비판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악플러가 판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서도 악플이 근본적인 민족성인 발로냐고 했다. 최근 10년 동안 대중이 처음으로 스스로 쪽 팔리다는 걸 깨달은 건 이번 악플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현재 인터넷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조성된 게 이번이 처음 아닌가. 지금 같은 경우는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하는 여론이 대세화되는 조짐이 보인다. 하지만 전에는 부정적이었다. 이것만 해도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로 봐야지. 사실 그 자체가 부끄러운 거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실명제라는 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니 말이다.

우리 국민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고, 우수한 것도 아닌데 자꾸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가르치는 게 문제다. 계속 허풍을 떤다. 지금 우리 국민성이 좋을 수가 없다. 생각해봐라.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가 몇 년 됐나. 동족상잔전쟁이 일어난 게 이제 반세기. 찌들대로 찌들고 고생할 대로 고생하고, 사회 이념이라고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이념은 잘 먹고 잘 살자, 하나밖에 없다.

경제 얘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정권이나 정부의 치적의 포커스가 경제로만 몰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이 우리처럼 불행하게 사나.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수명이 정해져 있는 사이보그에게 얘기한다.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떠냐.' 우리는 그런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낙오와 도태, 끊임없는 경쟁에 대한 공포. 원론적인 얘기지만 인간은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 없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경제지수에서 결정난다는 것 자체가 무지막지한 착각이다. 선진국 다니면서 느끼는 게 당황스러운 친절을 길거리에서 받았을 때, 우호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를 봤을 때다. 우리의 거리는 적대적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이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겠나.

도로교통에서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난다. 차선 변경할 때 보자. 앞차가 아무 이유없이 막는다. 내 차선 막는다고 빨리 가는 게 아닌데도.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가 있나. 무의식적으로 딴 놈이 내 앞으로 오는 게 싫다, 양보하는 게 싫다, 그런 심리가 깔려있는 거다. 런던에 있을 때 운전하고 다녔다. 유럽은 우리와 차선도 반대고 핸들도 반대다. 얼마나 힘들겠나. 그런데 한국보다 편했다. 내가 깜빡이 켜주면 뒤차는 무조건 서주니까."

"한민족 우수성 교육이 배타적 문화 만들어"

- 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을까. 개발독재,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였을까.
"박정희, 전두환보다 뿌리가 깊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무지막지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토양이 잡혀 있으니까 그 분위기에 올라탈 수 있었던 거지. 이승만이 국부 운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럴 토양이 있었던 것이니 굉장히 오래된 얘기다. 지금만 해도 끊임없이 경쟁심을 부추기지 않나. 아마 내 속에 있는 얘기 다하면 아마 길거리에서 맞아 죽을 것이다.(웃음)"

- 우리가 배타적이라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만 봐도 그렇고.
"근본적으로 한민족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게 한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데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민족에 대한 존중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 인식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허구한 날 국악의 우수성 운운하는데 미치겠다. 물론 국악 우수하다. 하지만 태국음악, 인도음악, 일본음악 다 우수하긴 마찬가지다.

서양사람들이 국악 공연 보고 기립박수 치고 립서비스 차원에서 '원더풀!' 그러는 건데 생각해보면 그들은 세련된 거지. 듣도 보도 못한 음악에 기립박수 치는 건데. 그걸 보고 국악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악이라고 하면 미쳐버리지. 지독한 콤플렉스가 지독한 오만으로 표출되는 거다. 꼭 우리 조상이 우수해야 2007년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건가. 하여간 초중고 12년간 선생들한테 남대문의 선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내용을 듣느라 죽는 줄 알았으니까."

- 그런 내용을 제도권 교육에서 군대까지 거치면서 받다 보니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당신의 아이가 크면 제도 교육을 받게 할 건가.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없다.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시킬 수 있다. 자기 오류를 수정할 기회는 나중에 스스로 찾는 거니까. 나만 해도 남존여비 집안에서 마초, 극우적인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스무살 때 내가 택한 길은 다른 거였다. 지금도 인터뷰 기사 뜨면 '신해철, 이 노빠! 전라디안!'하면서 난리 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난 오리지널 경상도거든. (웃음) 나 대구 못 간다. 온 집안 친척들이 다 죽이려고 해서."

- 다시 한번 묻자면, 정말 정치할 생각은 없는 건가? (웃음)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정치 안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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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처럼 2007-02-2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전출처 : 로쟈 > "6.25전쟁은 복합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전쟁(기사에서는 '6.25전쟁'이라고 표현)을 보는 시각은 전쟁의 발발원인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느냐, 외부에 있었느냐에 대한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정통주의: 대리전(국제전), (2)수정주의: 내전 (3)절충주의: 복합전. 이 중 세번째 입장의 시각을 강화시켜주는 논문/책이 출간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 놓는다.

문화일보(07. 02. 20) "스탈린 동의 안했다면 6·25 없었다”

6·25전쟁은 내전인가, 아니면 국제전인가. 한국전쟁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전쟁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6·25전쟁은 복합전’이라는 내용의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명인문화)에서 수록문 ‘6·25전쟁은 복합전으로 시작되었다-내전설과 남침유도설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이 1950년 1월30일 김일성의 남침에 대해 동의했으므로 전쟁이 일어났다”면서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경충돌에 그쳤을 뿐 대량살상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내전적 상황은 전면전 발발에 있어 ‘종속 변수’에 불과했으며, 전쟁의 직접적 발발 원인은 소련·중국·북한 등 3국 국제공산주의자들의 공모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쟁의 근본적 책임은 미·소에 있다”며 “6·25전쟁은 ‘국제전적 내전’이 아니라 ‘내전적 상황을 이용한 국제전’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둘러싼 논쟁 =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캄보디아 방문 도중 가진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왔는데 대통령이 돼서 보니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음날 국내 언론에서 문제가 됐다. 바로 ‘6·25전쟁은 내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문화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좌파적 역사관을 비판했다.



1980년대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이른바 수정주의사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속속 제기됐다. 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또한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른바 ‘남침유도설’이다.

수정주의사관이 등장하기 전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이라는 게 6·25전쟁에 대한 정통 견해였다. 이는 곧 한국전을 미·소간 양대 진영이 맞붙은 국제전으로 파악하는 시각이었다. 한때 수정주의사관에 밀리던 이 같은 견해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1990년 중반 무렵 구 소련 문서가 대거 비밀해제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소련과 북한 정권 사이에 오고간 문서자료들은 수정주의사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지만, 러시아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가 여러 권 나와 있다. 번역/소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6·25전쟁은 복합전’ = 이 교수는 수록문을 통해 “처음에는 내전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분단이 그 근본적 배경이었고 스탈린의 승인이라는 외인이 (전쟁) 발발의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복합적인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내전과 국제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복합전쟁이었고,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적인 성격이 강화됐으므로 국제전적 요소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논지다. 따라서 종합적으로는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전’이라고 이 교수는 결론내렸다.

그는 또 전쟁 발발 이전 분단 과정에 대해서도 “민족 내부의 좌우대립(내인)과 외적 규정력(외인)은 분단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며 “외인이 없었다면 무조건 통일됐을 것이며, 내인이 없었다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외인이 내인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약 내인이 없었고, 미·소가 우리를 강압적으로 분단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분단의 성격에 대해서도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형 분단’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내전적 배경과 국제전적 요인은 6·25전쟁 발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며 “따라서 이 전쟁은 복합전이었으며, 내전이라거나 국제전이라거나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이 두 요인이 결합된 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번기자)

07. 02. 20.

 

 

 

 

P.S. 작년 여름에 출간된 정병준 교수의 노작 <한국전쟁>(돌베개, 2006)에서도 저자는 "전쟁은 특정 시점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창조·결정된 산물이 아니라, 미소·남북·좌우의 대립과 길항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물이었다. 즉 전쟁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햇던 미소라는 세계 패권국가의 대립, 남북한 간의 지역적 분립, 좌우익 간의 이념적 대결 등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한국의 국내적·국제적 갈등 투쟁을 반영한 작은 우주의 빅뱅이었다."라고 적었다. 이완범 교수는 과연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연구서/연구자들의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영어권의 새로운 연구서로는 윌리엄 스튝의 <한국전쟁 재고>(프린스턴대학출판부, 2002)가 눈에 띈다(태극기는 왜 엉뚱하게 그려져 있나?). 제목에 'Rethinking'이 들어간 것은 저자가 이미 <한국전쟁>(1995)이란 노작을 쓴 바 있기 때문. 커밍스의 시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최근에 나온 국내 저자들의 <한국전쟁>에도 인용돼 있을 듯하다). 

참고로 스튝의 <한국전쟁>은 러시아판(2002)으로도 나와 있다. 생각난 김에 러시아책들을 인터넷서점에서 둘러봤는데 눈에 띄는 책 서너 권에 대해 몇 자 적어둔다. 먼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의 경험을 토대로 이고르 세이도프 등이 쓴 <'세이버'의 재난: 한국전쟁의 에이스>(2006). 576쪽 분량이고 같이 나온 책 <미그 대 세이버>(2006)와 함께 한국전쟁 관련서로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다(제목의 '에이스'는 적기를 많이 격추한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미그'는 소련/러시아가 자랑하는 전투기 '미그기'를 가리키지만 '세이버'는 무엇인가?

Гроза "Сейбров". Лучший ас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Миги" против "Сейбров"

동아일보(06. 11. 08) 기사에 따르면,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세이버'란 그 미군의 '쌕쌕이' F-18을 가리킨다.

한국전쟁은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간 교전이 이루어진 전쟁으로도 기록될 터인데, 결과는 어떠했을까?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에 대한 (평균적인)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주로 미군의 세이버기와 교전한 미그기와 그 소련군 조종사들에 가 있다는 걸 알겠다.

Загадочная война: Корейский конфликт 1950-1953 гг.Корейская война (1950-1953) и ООН

보다 '정통적인' 연구서는 토르쿠노프의 <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의 충돌 1950-1953>(2001)이 있다(왼쪽). 표지만 봐도 어떤 성격의 책일지 짐작된다. 오른쪽은 새로운 경향의 책인데, 바닌이 쓴 <한국전쟁과 유엔>(2006)이다.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두루 참조할 만한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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