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개역판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1 들어가며 -마키아벨리와 저작

모든 저작이 그렇지만, 특히 이 저작은 이 글이 쓰여진 배경에 대한 주의가 요청된다.  마키아벨리가 공직생활에서 추방된 후 칩거해서 저술. 당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됨. 필사본으로 읽혀지다가 마키아벨리 사후 출간되었고, 교황처에서 금서로 됨.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헌정사의 마지막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위대하신 전하께서 그 높은 곳에서 어쩌다 여기 이 낮은 곳에 눈을 돌리시면, 제가 엄청나고 잔혹한 불운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부당한 학대를 겪고 있는가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10)


전체 글이나 헌정사의 맥락과도 잘 들어맞지 않는, 표나는 일탈. 헌정사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일까, 마키아벨리는 어떤 면모를 드러낸다. 섣부르게, ‘진심’이나 ‘가면’과 같은 어휘로 재단하지 말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책의 체제 검토 후에 들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1.2 이 책의 의의

일반적으로 이 책의 의의는 ‘정치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을 역설하여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최초 주장하였다는 데에 있다.

무엇을 ‘최초’로 하였기 때문에, 이 책이 고전이 되었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리는 쓸데없다. 적어도 나의 관심은 구체적인 곳에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저작이지만, 그 저작이 드러내는 마키아벨리라는 인간, 그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이를 매개하는 ‘사상’, 즉 책. 책은, 적어도 저자와 독자에게만은, 자아와 세계를 매개한다. 자아의 세계화, 세계의 자아화. 글쓰기...

또 이 책을 읽는 목적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기원을 따라감으로서, 그 기원 자체를 폭로하여 근본적으로 사유해보는데 있을 것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2. 마키아벨리, 또는 주체없는 주체성.

앞서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 최초 주장’했다는 데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이 글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주체’는 ‘군주’를 매개로 한 국가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집약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근대/주체’라는 것은 이 주체의 행위에 따라서, 즉 군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부국강병’ 할 수 있다는 것1)을 의미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마키아벨리가 강조하듯이 ‘운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이 해야될 것을 해야하고 이로 ‘운명’을 방비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주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군주가 전적으로 새로운 공국을 다스리는데 부딪히는 어려움은 그가 가진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39)

나는 본래 세상일이란 운명과 신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은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왔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인간은 어떠한 해결책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땀을 흘리며 애써 노력해보았자 소용없으며, 운명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이끌린다. (170~171)


이런 조심스러운 표현. 비록 번역문에 의지하기는 했지만, 이 표현에 마키아벨리는 매우 민감하다. 그 외 ‘현실주의’ ‘정치사상’이라는 키워드로 마키아벨리가 설명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그러면 이제, 이 저작은 그러면 이 ‘주체’ 즉 군주가 대결해야 하는 환경의 요소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이는 것이 목표가 된다. 우선은 ‘군주’의 종류가 있고, 4장에서 군주-가신, 군주-제후의 관계, 5장 군주에게 지배당했었나 자유로운 공화국이었나 등등의 여로 ‘환경’적 요소에 따른 주체의 대결방안에 대해서 서술한다. 이는 분명 ‘현실’을 단순화, 추상화한 것이지만, 이는 ‘이론화’의 필수적인 결과이다. 군주에게 필요한 매뉴얼은 필히 이론이다.


어떻게 군주국을 통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12p

특히 “새로 형성된 군주국” 14p


이렇게 1부(11장까지)는 상이한 종류의 군주국의 번역과 쇠퇴의 이유에 대해서 서술한다. 군주국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2부(12장부터)에서는 군주국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을 서술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마키아벨리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전제 한 후에 군주의 ‘직업’은 전쟁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신에게 불리하게 지연되는 것 (28p)

군주는 전쟁, 전술 및 훈련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일이든 목표로 삼거나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몰두해서도 안된다. 전쟁은 군주의 직업이다. (102p)


이러한 사상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가능하다. 우선 첫째로, 당대의 역사는 ‘정말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데, 이 ‘역사’가 ‘정말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라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앞서의 전제 ‘주체’의 결정가능성과는 어느정도 위배된다. 그렇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주체’관에 있어서 세계는 전쟁을 피할 수 없기도 한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주체’ 즉 ‘군주’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당대 이탈리아만 살펴보더라도 많은 공국들로 갈려져 여러 ‘주체’들이 서로의 이기심으로 충돌하고 있었고, 자신을 ‘주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주체’는 자신 이외를 자신에 대해서 ‘환경’으로 정립한다. 그러할 때 해결책은, 힘 뿐이다. 내가 환경이 되느냐, 주체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나도 주체이고 상대도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나도 주체가 아니고 상대도 주체가 아닐 수 있다는 지점. 또는 나도 상대도, 주체이기도 하고 주체가 아니기도 하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을 전적으로 반하는 명제. 우리는 여기서 ‘주체없는 주체성’으로, 상황에 따라서 분출되는 ‘주체성’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마키아벨리에게는 이러한 개념이 없었다. 앞서 다시금 그의 ‘주체’에 대한 조심스러운 대목을 살펴보자.


나는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이끌린다. (171)


‘이끌린다’라는 것, 흥미롭게도 이는 ‘주체’ 홀로, 또는 ‘환경’ 홀로의 문제라기 보다는, ‘주체’와 ‘환경’ 사이의 짜임의 영역이다. 그리고 앞서 헌정사의 말미에 마키아벨리가 드러냈던 자신의 참담한 처지에 대한 고백과, 이를 알아달라고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받치는 헌정사를 보자. 주체로서의 마키아벨리는 책을 쓰지만, 또다른 ‘주체’인 로렌초 데 메디치와 만나는 접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단지 자신을 다른 주체에 대해 또다른 ‘주체’로서 요청을 할 수 밖에 없다. 두 주체 간의 ‘짜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그 미묘함이. 그 ‘이끌림’이 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스스로를 ‘주체’라고 ‘주체적’으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주인’인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체’라는 것의 함정은, 내가 ‘주체’이면 나머지는 모두 내 앞에서 ‘비주체’로 적립되기 때문이다. 내가 ‘주체’이면서 동시에, 나 아닌 것도 ‘주체’일 수 있는 삶, 또는 그런 삶의 자세.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도,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안의 타자를 인식하면서도, 상대방의 타자도 알아볼 수 있는 것. 그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우리는 이를 마키아벨리를 본받아서 서로에게 ‘이끌림’이라고, ‘사랑’이라고 생각해본다.


3. 맹자와 마키아벨리...
이러한 ‘이끌림’ ‘사랑’을 맹자와 함께 생각해보자.


맹자께서 양나라 혜왕을 찾아보시니,

양혜왕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 `왕께서는 하필 이만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인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이치)며, 의는 마음의 지음(제)이요, 일의 마땅함(의)이다. 이 두 귀절은 이 장의 큰 뜻이니, 다음 글에 자세히 말하였는데, 뒤에는 이것을 많이 모방하였다.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와 서인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면 나라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집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이니,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하는 것은 적은 것이 아니지마는 진실로 의를 뒤로 하고 이를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맹자를 보자. 그에게는 나도 주체요 너도 주체이다. 왕이 이롭게 하고자 하면, 대부도 이롭게 하고자하고 선비와 서인들도 이롭고자 한다. 마키아벨리에게도 모두가 주체이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군주만이 주체이고, 그리고 군주만이 주체라는 것을 다른 이들은 모르게 ‘위장’해야만 한다고 결론이 난다.

‘정치’란 무엇일까. 현실사회에서 여러 이익집단들 간의 갈등을 조정해고 희소재화를 분배하는 것. 그렇지만 미시적인 인간과 인간의 관계맺음 또한 우리는 ‘정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럴때, 이 정치에서 서로를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서로 ‘이끌림’. 오직 ‘인’과 ‘의’다, 라는 맹자의 말이 와 닿는다.


4. 결론과 소회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비조인 마키아벨리를 통해서, 그 균열지점을 통해서 오히려 ‘주체’의 불가능성, 내지는 ‘주체’를 어떻게 사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현실주의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도 주체고 너도 주체라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나도 주체고 너도 주체이든 상관없이, ‘우선’은 ‘내’가 주체이고 ‘너’안의 ‘비주체’적인 부분을 자극하고 이끌어내어 ‘이득’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총을 들던 들지 않던, 전쟁이다. 마키아벨리가 전쟁은 어짜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은 이를 의미한다. 나도 주체이고 너도 주체일 때, 중요한 것은 힘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전쟁이다. 우리는 이를 ‘현실주의’라고 부른다.

이의 변혁가능성을 사유하는 것. 일상의 미시적인 공간에서부터, ‘다르게’ 생활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거시-미시적으로 ‘현실’을 변혁하는 것. 행복을 사유하기. 사랑하기.

* 이러한 책읽기는, 내 현재 관심사를 반영한다. 계속 내가 가지고 있는 계몽-소통-주체의 문제와 더불어, 요즘은 내 일상적 관계맺음에서도 이러한 ‘계몽’적 태도를 내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어떠한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타자를 다른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 또한 ‘나’의 일부로 환원하였던 것. 내가 인간관계에 별 관심이 없고, 타인에 대해 알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읽자고 생각하고 또 생활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연대와 소통.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론으로 끝난다면, 이론은 유희일 뿐.

계몽을 넘어서, 소통으로....




1) 흥미로운 것은 마키아벨리와 맹자와의 비교이다. ꡔ맹자ꡕ에서 맹자는 양혜왕이 ‘리’ 즉 ‘부국강병’을 묻자, 왜 하필 ‘리’인가를 물으며, ‘인’과 ‘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와 정면 배치된다고도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3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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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6-2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내요,..대학1학년때 읽었는데 완전히 세속적인 방식으로 즉 통치테크닉으로만 읽혔습니다.안그래도 이런 주체형성의 문제와 관련된 몇 개의 글을 읽고 다시 읽어야겠다란 마음이 들었는데..제게 시의적절한 리뷰네요.^^ 사족으로 붙이신 말도 중요한 지점이네요.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 책은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라 2007-06-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런 우연이.. 저도 요새 막 군주론이랑 마키아벨리의 가면 읽었었는데요 기인님 리뷰를 통해 보니 또 반갑네요^^ 둘 다 너무 천재 스타일이라 감탄과 함께 좌절을 팍팍 안겨주던...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에게서 (억압적, 이데올로기적)국가장치의 이론, 인민의 편을 드는 계급투쟁의 이론을 발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던데요. 워낙 미묘하고 섬세한 글이라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기인님은 이미 읽으셨을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같이 얘기들려주시면 좋겠네요~ 위에 쓰신 주체없는 주체성이란 말씀에 곰곰히 새겨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인 2007-06-29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ㅎㅎ 감사합니다. 그람시,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 관해서도 정리해보고 싶은데..
항상 그렇듯이 일상에 쫓겨서 사느라... ㅜㅠ
쩝;; 이거 어떻게 쫌 해야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