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범우사상신서 30
자크 모노 지음 / 범우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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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리고 인간: 필연적이면서도 우연적인 존재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1985년 번역 출간)
 

 삶은 운명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연속일 뿐인가? 평생 한 번쯤 우릴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건 이 질문이 결국 ‘우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수 있나?’, 혹은 ‘우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나?’와 같은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고, 우리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행복한 삶과 관련이 있어서일 것이다.

 

 ‘라플라스의 도깨비’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1749-1827)가 19세기 초에 떠올린 것으로, ‘‘현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유추하는 존재'이다. 만약 이 누군가가 전 우주의 모든 원자들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다면 고전 역학의 법칙들로 그 원자들의 그 어떤 과거나 미래의 물리 값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출처: 위키백과)’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은 운동 법칙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과학적 결정론의 상징이다. 현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긴 하지만, 이 관점에서라면 삶도 운명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위 문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우선 저자는 노벨 생리·의학상(1965)을 받은 20세기의 과학자다. 바로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1910-1976). 이 책 『우연과 필연』은 프랑스에서 1970년에 출간됐다. 책에서는 현대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의 출현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삶은 어떨까?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모노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생명을 바라보는 두 개의 전통적 관점인 생기설과 물활설의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생기설은 ‘생물체는 무생물체와 성질상 다르다'는 관점이다. 여기에서 생명과 무생명의 구별은 합목적성(어떤 사물이 일정한 목적에 적합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성질.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곧 생명체는 무생물과 달리 분명한 목적을 갖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편 물활설은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혼,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이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생기설적 관점에서 ‘합리적 지성은 비생명 물질을 지배하는 데는 매우 적합한 수단이지만 생명 현상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47p)’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관점은 다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이미 모든 생명체가 가진 놀라울 정도의 구조적 동일성을 파악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인 저자 역시 생명에 있어서 ‘신비의 영역’은 이미 거의 소멸되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모든 생물의 화학적 기구는 단백질과 핵산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구조상 같으며, 대사 반응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과학적 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부터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학적 세계는 모든 것이 오직 객관성이라는 유일한 전제로 측정되는 세계다. 바로 이러한 특성 덕택에, 과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 내려오는 철학적 논쟁에 참여할 필요 없이 오직 모든 현상을 분석하여 불변성을 찾는 노력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철학적 논쟁들은 모두 ‘선험적인 것으로 제시되어 오기는 하였으나 실제로는 미리 품고 있던 윤리와 정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천적 구조물이었던 것이다(131-2p).’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과학 이전까지의 철학은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윤리와 정치를 위한 짜맞추기에 불과했단 것이다.

 

 이어 저자는 진화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현대 분자유전학에서 DNA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연구한 결과, 그러한 변화는 순전히 ‘우발적인 것이며 무방향적인 것(146p)’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목적없는 이런 우연한 변화가 생명체의 진화를 낳는 것이다. ‘그 변화가 유전의 텍스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이며, 이 텍스트가 생물의 유전적 구조의 유일한 저장물이므로, 그 결과 필연적으로 생물권에 있어서의 모든 신기한 것과 모든 창조의 원천은 다만 단순한 우연에만 있다고 할 수 있다(146-7p).’ 즉 저자가 책 제목에서 말한 ‘우연’은 곧 돌연변이를 뜻한다. 이는 양자적 구조가 원인이라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예견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한다. 더구나 책이 쓰여질 당시 ‘삼십 억에 이르는 인류는 각 세대마다 천억 내지 일조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다(157p)’고 하니, 유전정보의 우발적 변화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알수 있다. 결국 그는 진화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과학 분야의 모든 개념 중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주의를 파괴하는 것(147p)’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물론 인간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서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인 이상 우연의 영역에서 인본주의는 붕괴되었다. 그렇다면 책 이름에 쓰인 나머지 단어인 ‘필연’의 영역에서는 어떨까? 여기서도 인본주의는 처참히 무너진다. 우선, 어떤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당연히 그러한 행동을 한다. 놀라운 것은 학습된 행동조차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 행동을 발현시킬 거라는 게 미리 예정되어 있다. ‘프로그램의 구조가 학습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학습이라는 것도 종의 유전적 유산으로서 미리 만들어진 '형태' 속에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192p).’ 요컨대 유전자 및 모든 조상의 축적된 경험에서 우리의 행동이 유래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비교했을 때 하등 우월한 점이 없으며, 그 존재조차 우연적 산물이라는 점을 과학이 이토록 무자비하게 파헤쳤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토록 경계해마지않는 ‘인간 중심주의’의 불씨는 지금껏 거의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물질이 그 자체의 최고의 개화인 사고하는 정신을 비정(非情)의 필연성으로써 어느 날엔가 지구상에서 근절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더라도, 물질은 똑같은 필연성으로써 어떤 다른 장소, 어떤 다른 시대에 사고하는 두뇌를 재생시키고야 말 것이다(66p).’라고 역설하며 자연 변증법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창한 것, 그리고 소련 등 공산주의 진영이 자유주의와 냉전을 벌인 것은 각각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19, 20세기의 일이다. 인간 중심주의적 경향의 또 한 가지는 뇌와 정신이 실생활에서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뇌라는 관념과 정신이라는 관념과는 17세기의 인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실제 생활 체험 속에서 구별되고 있다(199p).’

 

 독서량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생명과학의 발견 간의 충돌’을 우려하는 주장이 뇌과학 연구 성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에서뿐 아니라 1970년 출간된 이 책에서도 이미 등장하였다는 사실이 꽤 신기하게 다가왔다. 오늘날 유발 하라리와 같은 유명 저술가들의 주장과 유사하게, 저자 또한 이러한 간극의 원인을 ‘두뇌와 정신의 이원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영혼 속에 비물질적인 '실체'를 인정한다는 환상을 단념하는 일은 영혼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전적·문화적 유산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개인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풍부함·측량할 수 없는 깊이 등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 개개인의 정신보다도, 집단으로 이어져 내려온 '호모 사피엔스' 종의 총체로서의 인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17세기 과학혁명으로부터 촉발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서 과학주의로의 전환은 오늘날까지 큰 진전을 이루어내고 있으나,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여전히 한 시대 안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함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가깝게는 자연계열 전공자와 인문계열 전공자 간의 소통 문제부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나아가 종교와 과학계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근대적 형벌 제도가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상치된다는 뇌과학계의 주장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2015)에서 지적했듯,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감옥제도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묘사했습니다. 그 핵심은 절대왕정 시대의 잔학한 형태에서 규율 훈련을 토대로 정신을 교정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때 전제가 되는 것은 이성적 판단 능력을 가진 개인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푸코 자신도 깨달았듯, 이런 근대적 형벌제도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중략)…

뇌과학 연구는 근대적 형벌제도의 전제에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정말로 이성적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범죄자의 경우, 뇌 속 회로에 원인이 있어서 범죄를 일으킨 게 아닐까요? 흉악범이나 약물중독자의 뇌가 종종 사례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아직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뇌과학자는 뇌가 원인이 되어 범죄행위가 일어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범죄의 원인이 그 사람의 뇌에 있다고 말하는 날도 머지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당연히 처벌 형태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처럼 형무소에 수용해도, 범죄의 원인을 치유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대적 처벌을 대신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을 구상해야 할 시기가 머지않아 도래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근대적 처벌제도는 이제 황혼을 맞이하는 듯합니다.”

 

_오카모토 유이치로,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생각하는가』(2018), 147p.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조와 생명과학의 최근 발견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간극을 그다지 오래 무시하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정치·사법제도는 모든 개인이 신성한 내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누거나 바꿀 수 없는 이 본성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근원이 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개인의 내면에 자유롭고 영원한 영혼이 거한다는 전통 기독교 신앙의 환생이다. 하지만 지난 2백 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이런 믿음을 철저히 약화시켰다.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내적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기서 아무런 영혼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침팬지, 늑대, 개미의 행동을 결정하는 바로 그 힘 말이다. 우리의 사법 정치체계는 그런 불편한 발견을 대체로 카펫 밑에 쓸어 넣어 숨겨두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2015), 334p.

 

 이러한 의문에 저자는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그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가치와 지식의 통합’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측한다. 따라서 과학이 점차 발달하면서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사는 최근의 시대를 관찰해 볼 때, 그가 말하는 과학에 의한 가치와 지식의 통합은 가능성 높은 미래로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에서 유물 변증법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물활설의 전통은 가치, 도덕, 의무, 권리, 금지의 기초를 신화적 내지는 철학적 개체 발생에서 구하고 있었던 것인데 과학은 이 모든 것들을 파멸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216p)."

 

 한편 이와는 대조적인 관점으로, 과학 또한 다른 철학과 마찬가지로 특정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과학사를 살피면,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란 신화는 무너지고 만다. 어느 시대가 낳은 과학이론은 과학자의 인생관, 자연관은 물론 당대의 시대사조나 사회·경제·문화적 제반 요소들이 상당히 긴밀하게 상호작용한 총체적 산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느 시대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어떤 과학이론을 출현시키는가 하면, 그 배출된 이론이 다시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되먹임 되어 직접 또는 간접의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사회적 다윈주의가 출현한 것은 그 가장 극적인 예이고, '엔트로피 법칙'이 현존 과학기술 문명에 깔린 발전 개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틀이 되는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_「국어」, 『2010년 대한민국 국가직 9급』, 4번 지문(원전을 찾지 못해 해당 출처로 표기)

 

 그러나 모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위 주장도 지식의 영역에 속한 과학을 무분별하게 가치의 영역에 대입해 버린 것에 불과하다. 즉,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의 힘을 물활론적 가치지향 사회에서 객관성을 결여한 채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위 주장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란 신화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말하는, 가치와 지식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현대인의 영혼의 질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래가 항상 예측한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며 주저 『사피엔스』를 마무리 지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는 달리, 자크 모노는 과학자로서 ‘필연’이라고 믿는 미래의 도래를 역설한다. 그것은 지식과 가치의 원천이 과학으로 일치되는 미래다. 이것이 그가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는 이를 ‘구약’을 폐기하고 ‘신약’을 만들어내는 일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현대 이전의 어떠한 사회도 이와 같은 분열을 경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이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킬 것이며, 이것이 ‘진정성의 탐구가 도달하는 필연적 결론’이라고 말한다. 그 유토피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인간의 마음은 진화가 축적된 산물이기에, 과학으로 가치와 지식을 통합시키면 필연적으로 과학의 힘 자체가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자크 모노는 말하고 있다. 만일 실현된다면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그 이상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마치 다른 차원의 우주를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서론에서 제시한 삶의 행복과 관련된 고민 따위는 전혀 의미를 가지지 않는 세상일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이 우연과 필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는 건 결국 앞일을 있는 대로 예측해 놓고서도, 미래는 항상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유발 하라리의 다소 어정쩡한 결론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능성 높은 미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돌연변이라는 우연적 요인에 의하여 결국 인간은 여전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한 까닭이다. 비록 38억 년 동안 축적된 유능한 시뮬레이션 장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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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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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

88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완벽한 결과물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은 영화감독 봉준호가 <괴물>을 찍으면서 했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생시키다니 ‘나는 분명 지옥에 갈 것‘이라는 괴로움의 웅덩이에 수백 번은 빠지고 나서야 지나가는 것이다. 또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그의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정신병자처럼 환청에까지 시달리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 P88

127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을 만든 감독 데이빗 O. 러셀은 말했다. "모든 실수 뒤에 항상 새로운 기회가 뒤따른다는것을 상기시키는 것,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도희야>와 <비긴 어게인>은 결국 그런 이야기다. 실수, 또는 실패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실패를 주홍글씨처럼 이마 위에 새긴 채로 세상을 등질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 P127

135 달리기로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은 땀을 흘려 전보다 피부가 좋아진 것이나 온몸에 군살이 사라진 것 체력이 좋아진 것을 빼고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 살면서 살아 있다고 느낄때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달리다 보면 고통스럽기만 할 때가 태반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고통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배가 몸부림 치고 종아리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 P135

185 ​사랑에 실패했는데 왜 연애가 아닌 심리에 관한 책을 고르는 걸까? 이제 우리는 사랑의 문제가 다른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를 계속해서 갈아치우는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에 실패한 이유는 성적 매력이나 외모의 아름답고 추함, 물질적인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인간적 결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야 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 P185

212 10대일 때 부모의 품이라는것은 그저 구속이었겠지만, 성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우리는 그 품이 얼마나 안전했는지를 깨닫는다. 까밀은 그것을 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의 인생이 얼마나 벅찬지를. 그래서 때로 어떤 어른들은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을. 자신의 인생도 실패했다는 것을. 까밀은 모든 걸 되돌리고 싶다. 남편과 사랑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엄마가 죽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도 달라질 것 같아서다. 그런 면에서 40대의 카밀은 아직 덜 자란 어른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픔‘과 ‘기쁨‘의 조화를 익히지 못한 어른 말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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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나의 대학 사용법
이범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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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에 나온, 아직은 따끈따끈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교육평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범. 청소년 및 청년층을 타깃으로 하여 창비에서 펴낸 '나의 대학 사용법'이라는 시리즈의 일환이다. 4차 산업 혁명의 불안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지금, 본서는 먼저 현재의 한국 교육계 및 노동시장의 현실을 진단한다. 이어 미래 변화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려는 개인 및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학벌과 스펙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실력과 전문성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에 대한 근거로서 먼저 대학 서열이 학벌로 발전하게 된 매커니즘을 먼저 제시하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현대사가 흘러오면서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대학 서열이 뚜렷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때 높은 서열의 대학을 채우는 부류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험형 인간'이라는 것. 아래에 저자가 시험형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을 짧게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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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사람이 가진 능력 중에 시험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부분적입니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은 인간형 자체가 좀 남다르지요. 저는 농담 삼아 시험형 인간이라고 부르는데요, 인정 욕구와 성취욕이 강한 편이고 지능도 높은 편이고 약간 강박적 성향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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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알라딘 카드리뷰)


 입시가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여 최상위권 대학이 이런 시험형 인간으로 채워지게 되고, 또한 고시 제도에 힘입어 정부 인재 풀 역시 명문대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에 따라 민간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산업화 시절부터 민간 또한 명문대 출신을 중심으로 인재 풀이 형성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 경제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고, 저자는 이를 이후 1,000대 상장사 CEO의 SKY대학 출신 비율이 점차 감소하는 경향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시험형 인간'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학벌 형성 과정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참 흥미롭고,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 나라 개혁을 위해 첫 번째 해결책으로 제시한 '애국 진보(청년세대가 애국주의 국가관을 가진 진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우선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현재의 파국적인 저출산 문제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문제 인식에서 나온 해결책이 '애국 진보'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애국심을 기초로 한 연대 의식을 통해 협력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인지하고, 모두가 애국심을 가진 진보주의자가 되자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애국 진보의 길에 놓인 걸림돌로 한국 진보주의의 '개인의 자유·자율과 시장을 옹호하는 특성'을 든다. 그 특성의 원인으로는 한국 진보주의가 과거 정통성을 북한에 두었고, 국가주의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념이었다는 역사주의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선 한국 진보주의가 과거 정통성을 북한에 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적어도 신자유주의 이후 행정학적 관점에서의 최근 한국 진보주의적 국가관은 그가 설명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국민들은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에 이어 점차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도 이에 따라, 보편적 복지 정책 등에 의한 국가의 사회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는 추세에 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국민들은 삶의 더 많은 부분을 국가에 의지하고자 하며, 그에 따라 국가가 책임지는 부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즉 현재의 한국 진보주의가 개인의 자유, 자율과 시장을 옹호한다기보다는 개인·시장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조화시키려 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저자가 청년층이 함양하기를 바라는 애국심 자체가 현재로서는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거 과도한 국가주의 시절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이지,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 나라 청년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일부 내용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학벌의 영향력은 취업시장에서 감소할 것이라 본다. 학벌과 업무능력 간 관련성에 의구심을 갖는 여론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나본 유명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도련님, 공주님의 증가'를 호소한다고 한다. 스펙 좋고 허우대 멀쩡해서 뽑았는데, 수동적이고 자기만 알아서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전문성과 업무 능력만 뛰어나다면 학벌과 스펙에 굳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 외에 희소성 있는 능력,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쓰는 것 또한 저자가 꼽는 탈학벌 시대의 대응 전략으로 꼽는다.


 책의 내용을 전부 소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18년간 교육 평론가로 일한 경력답게 저자의 분석과 해결책은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통찰력이 있다. 우리의 직업과 미래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참신하여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없인 실행되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든다. 과연 정책 담당자들이 그의 제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할 상상력을 가지고 있을지……. 어쨌든 주목할 만한 책이다. 앞으로의 우리나라 사회 변화와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50 미국은 계급 문제와 인종 문제가 결합되어 있고 굉장히 풀기 어려운 상태지요. 미국에는 ‘교육열’의 ㄱ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지역이 굉장히 많아요. 길거리에서 버젓이 마약을 파는 동네에서 교육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니 오바마에게 어떤 정치적 상징이 필요했고, 그 상징으로 한국이 채택된 거지요. 왜? 한국은 교육열이 높으니까요. 또 우리는 미국보다 계급 분화가 덜 진행되어서 아직은 경제적 형편이 좋은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이나 모두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미국의 백인 중산층 이상에게는 한국 교육열을 본받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이들은 이미 교육열이 높거든요. 물론 우리와 교육열의 색깔이 좀 다르긴 하지요. 오바마가 한국 교육열을 본받자고 하니까 미국 교육을 잘 모르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에서도 어지간히 교육열이 있는 지역에서 앞서 말한 교육을 충실히 받은 학생들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고급스러운 교육을 받은 거예요. - P50

57 요새 4차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에르네스트 만델이라는 경제학자가 했던, "너 내일 살아 봤냐?"라는 말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인공 지능에 의한 자동화니까 과거에 있었던 변화들과 질적으로 다를 거라고들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1차 산업 혁명부터 시작해서 여태까지 자동화는 여러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총 일자리 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습니다. - P57

58 저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그토록 공포스럽다면, 지금부터 아예 역발상으로 자동화가 안 될 만한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요새 대학 진학률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고,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부모가 사회적으로 상당히 명망 있는 분인데도 자녀가 대학에 안 간 경우가 점점 많이 보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서울대 교수인 분이 있는데, 큰아들이 대학에 안 갔어요. 중학교 때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방송에 관심을 보이길래 방송과 관련된 특성화고에 보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적성에 맞아서 그런지 잘 배우고 금방 취업해서 지금은 승진도 많이 했대요. 생각해 보면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잖아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채널이라고는 공중파 서너 개에 케이블 몇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방송이 큰 산업이 되었죠. 게다가 방송 제작 과정 중에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이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을 겁니다. - P58

87 대학들의 수준이 고르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대학들의 수준이 서로 엇비슷하고 편차가 적다는 의미에서 평준화되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독일에서는 어느 대학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학을 졸업할 때 우수 논문상을 받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 P87

158 ‘탈스펙’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은 뭘까요? 전문성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을 잘 들여다보면서 좀 더 능동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앞에서 제가 몇 가지 팁을 드리기도 했는데 ‘탈스펙’은 개인적인 대응이 가능해요. 반면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개인적 대응이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애초에 ‘금수저’이거나 로또에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말이죠. 양극화는 정치적,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긴급한 이유가 바로 심각한 양극화로 인해 사회가 피폐해지고 여러분 개개인의 미래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에요.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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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난해하다. 미국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배경 지식의 부족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낯선 자연물의 이름들, 그리고 수많은 은유적 표현 등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다. 또한 다른 번역본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소담출판사의 《월든》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알라딘 리뷰가 몇 개 보였다.

 어쨌든 다 읽었다. 9일이 걸렸다. 보통 하루에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비슷한 분량의 책은 2-3일이면 다 읽는다. 그러니 이 책은 꽤나 진도가 안 나갔던 셈이다. 저자의 주장이 드러난 부분은 의미가 명료하게 파악되어 수월하게 읽혔지만, 월든 호숫가의 정경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 낯선 농경 사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나 설명이 서술된 부분, 그리고 과학적 사실이 기술된 부분 등은 어렵고 지루하여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가 덮은 경우에는 다시 펼치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다. 읽다가 덮은 이유는 잠 때문인 경우도 많았다. 수면 유도제다. 아마 읽다가 잠든 적이 세 번은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편안한 느낌을 받았던 책이다. 뭐, 그래서 잠도 왔겠지만... 침착하고 담담한 문체와 자연 묘사에서 풍겨오는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한 《월든》을 읽는 시간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직면하길 원하는 소로우의 단호한 결심은 삶을 진실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내용은 소로우가 자선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부분이었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주장이라 좀 낯설었다. 하지만 몇 번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놀라운 통찰이라고 느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소로우는 자선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선은 인간의 존경받고 싶어하는 이기심 때문에 벌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선이 인류에게 축복을 안겨준 다른 모든 이들에 비해 높은 대우를 요구받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좀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 들지 말고 현재 있는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대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유복하게 살고 있을 때가 오히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경우라는 그의 말은, 멀쩡히 지내던 사람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책을 다 읽고 읽은 도서 목록에 《월든》을 추가하면서, 다른 번역본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것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해 두었다. 추후 반드시 읽어 볼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월든》이 나에게 주는 지혜 또한 풍부하게 더해질 것으로 믿는다.


14 교리문답식 표현을 이용해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과 진실로 필요한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일부러 평범한 삶을 선택한 듯이 보인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기 때문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민한 정신과 건강한 기질의 소유자들은 선명하게 떠오른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 편견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아무 증거도 없이 남의 사상이나 업적을 믿을 수는 없다. 모두들 오늘까지 참된 것으로서 되뇌이거나 묵과하고 있는 것들도 내일이면 한낱 실체 없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단비를 뿌려 줄 구름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선인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 것도 지금 시도해 보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임을 알게 된다. - P14

90 나는 자선에 의당 따라야 할 찬사를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인류에게 축복을 안겨준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기를 요구하는 것뿐이다. 나는 인간에게서 고결한 행위와 자비로운 마음을 가장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데, 그것들은 이를테면 인간의 줄기와 잎에 해당한다. 그 풀이 시들면 사람들은 환자를 위한 비천한 용도로, 그것도 주로 돌팔이 의사들이 애용하는 약초로 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꽃과 열매다. 인간의 향기가 내게 풍겨 오기를, 그 성숙함으로 우리들의 인간 관계에 풍미를 더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인간의 선함이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늘 남아도는 것, 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은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죄를 감춰 주는 박애다. 자선가 자신이 헤어난 슬픔에 대한 기억으로 마치 공기처럼 인간을 감싸면서 그것을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용기를, 질병이 아니라 건강과 안정을 함께 나눠야 하며 질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P90

130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지금까지의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책이 우리를 위해 어딘가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어딘가에 표현돼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를 혼란케 하고 어리둥절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과거의 모든 현자들도 직면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한 문제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현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삶으로 그 문제들에 해답을 주었다. 나아가서 우리는 책에서 지혜와 더불어 관대함도 배우게 될 것이다. 콩코드 교외 농장에서 고용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그는 제2의 탄생과 독특한 종교적 체험을 거쳐 자신의 신앙에 따라 말없는 엄숙함과 배타성을 신조로 삼게 된 사람인데)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천 년 전 조로아스터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체험을 했지만, 그럼에도 현명한 그는 그 일이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고 그에 따라 이웃을 대하고 하나의 종교를 창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살이를 하는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조로아스터와 벗삼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모든 위인들의 관대한 감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도 알도록 해주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교회’라는 말은 아예 떼어 버리도록 하면 어떨까? - P130

354 만약 우리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있다면, 어느 한 지점에서의 모든 특수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사실 또는 실제 현상 한 가지에 관련된 기술만 알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불과 몇 가지 법칙밖에 알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의 추론 결과는 무효인 셈이다. 그것은 물론 자연의 혼란이나 불규칙성 때문이 아니라 계산에 필요한 인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범칙과 조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부분 우리가 밝혀낸 사례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핏 상충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치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법칙에서 우러나온 조화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운 것이다. 특수한 법칙은 길을 가는 나그네의 눈에 매 걸음마다 산의 윤곽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마련인데, 그것은 원래 절대적인 단 하나의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무한대의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산을 쪼개거나 구멍을 뚫는다 해도 전체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 P354

400 자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설혹 구빈원이라도 유쾌하고 신나며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양의 햇살은 부자의 저택에서나 구빈원의 창문에서나 똑같이 눈부시게 빛난다. 구빈원의 문 앞에서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눈이 녹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이라면 구빈원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궁전에서처럼 유쾌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종종 가난하게 사는 마을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어쩌면 아무 의심 없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자기가 마을의 부양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 중에는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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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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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판 <지하로부터의 수기 외>에 해당하는 리뷰임을 밝힙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인간실격 이후 최고로 인상깊었던 소설
인정하긴 싫지만 지하생활자의 모습은 때론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죽음의 집의 기록>
작가의 유형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소설이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가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나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키워드와 문장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439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건대,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 병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으며 사실 어디가 아픈지조차 잘 모른다. 의학과 의사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나는 치료를 받고 있지 않으며 치료를 받은 적도 결코 없다. - P439

439 수기의 작가와 <수기> 자체는 물론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수기의 작가와 같은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를 형성한 환경들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 P439

441 그런데 여러분, 내 증오심의 주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당신네들은 알고 있겠죠? 그렇다. 모든 문제는 내가 악하지도 않고 못된 인간이 될 수도 없으며, 내가 자주 심지어는 가장 화가 났을 때조차도, 단지 참새들만을 쓸데없이 놀라게 해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심과 함께 자각한다는 데 있으며, 여기에 바로 가장 추악한 것이 담겨 있다. 내가 입에 거품을 물 때, 나에게 위안이 될 인형을 가져온다거나 설탕을 탄 차라도 한 잔 준다면, 나는 아마도 진정될 것이다. 심지어는 평안한 영혼을 소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 다음 스스로에게 이를 갈고 수치심 때문에 몇 달 동안 불면증으로 고통은 받겠지만, 이게 내 습관이니 어떡하랴. - P441

25 어둠이 깃들자 우리는 모두 밤새도록 빗장이 걸리는 옥사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우리의 옥사로 돌아오는 일은 내겐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옥사는 유지로 만든 양초가 희미하게 비추고 있고, 숨막힐 듯한 무거운 냄새로 가득 찬, 길고 좁고 후텁지근한 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내가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평상 위에 나의 몫이란 세 장의 판자뿐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의 모든 공간이었다. 이 방 안의 평상에만도 30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찍 빗장을 지르는 까닭에 모두들 잠들 때까지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웃음, 욕설, 쇠사슬소리, 악취와 그을음, 삭발한 머리들과 낙인 찍힌 얼굴들, 남루한 의복, 이 모든 것이 욕설과 혹평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렇다,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 P25

31 더욱이 여기에는 어떤 표면적인 겸손, 말하자면, 관등상의 어떤 조용한 달관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파멸한 민초인 우리들은.> 그들은 말했다. <자유의 세상에서 살 수 없으니, 이제 푸른 거리는 그만 하고, 줄이나 잘 서세>, <어머니와 아버지 말씀 듣지 않았으니, 이제 북가죽소리나 들으세>, <금실 잣기가 싫다더니, 이제 망치로 돌이나 깨야 하는구나>. 모두들 이따금씩 교훈이나 일상적인 속담과 경구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말하곤 했지만, 결코 심각한 생각에서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말뿐이었다. 과연 그들 중의 한 명이라도 자기의 죄를 마음속 깊이 새기는 사람이 있었을까? 만일 유형수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에게 죄수들의 범죄를 비난하도록 해본다면(비록 러시아적인 정신에서 죄수를 비난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죄수들의 욕설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들 모두는 얼마나 욕설의 명수들인지!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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