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의 기술 - ‘남을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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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며, 강준만 교수의 책은 앞으로도 출간된 그 해 읽는 것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분명 시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9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한때는 성공과 축복의 원인이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실패와 저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대변되는 국가 존망의 위기마저 불러왔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초월하는 ‘출산율 1.05’ 쇼크에 대해 ‘두려운 미래’, ‘또 하나의 핵폭탄’, ‘국가적 재앙’ 등과 같은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 양식은 여전히 평온을 적으로 여기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 P9

71 솔직을 빙자한 무례는 인간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엔 ‘솔직을 빙자한 무례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윌리엄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게 흥미롭다. "잔인한 사람은 자신을 솔직함의 본보기라고 말한다."
세상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걸까? 언제부턴가 솔직을 빙자한 무례가 너무도 당당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다룬 책이 리처드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이다.
공적 인간은 공적 영역에서 정해진 관습에 따라 행동하던, 옛 금기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을 말한다. 공적 인간은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내보이며 진정성 있게 행동하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가면을 쓴다. 그런데 감성과 진정성을 좇는 현대사회에서는 친밀함의 과대평가로 인한 ‘친밀함의 독재tyranny of intimacy‘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런 공손한 사회적 관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면을 쓰는 것이 정중함의 본질임에도 가면을 쓰는 행동은 진실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 - P71

91 민감한 사람의 모든 행동이 다 바람직하거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감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창의적이고, 세심하며, 협력적이고,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하다 보니 지나친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며, 남들의 반응에 무척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오래전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의 민감성을 본질적으로 병적인 성격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4분의 1을 병적으로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 P91

102 나는 글쟁이로서 가끔 우연한 기회에 독자들을 만나는데, 좀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글쟁이 역사가 30년쯤 되는데, 그간 나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은 옛날의 나만을 기억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사를 건네니 나로선 할 말이 없어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닌데도, 잠시나마 어제의 나로 행세해야 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누구든 한 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칵테일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안다는 건
우리가 그들을 알았던
순간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들은 그때 이후로 변했고
우리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라네.

이렇듯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도 과거 경험의 포로가 되어 현실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평가하는 오류를 가리켜 ‘정적 평가의 오류fallacy of static evaluation‘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왜 오류냐고 반문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일관성을 높게 평가하는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 P102

103 "어리석은 일관성은 편협한 마음의 유령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다."(오스카 와일드)
"사람들이 유일하게 진정으로 일관적인 때는 죽은 것이다."(올더스 헉슬리) - P103

122 소신, 고집, 아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없다. 모두 다 ‘신념’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소신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꼴통’의 광기로 보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며,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나의 의지는 굳다. 너는 고집이 세다. 그는 어리석을 정도로 완고하다."

영국 런던의 한 잡지사는 이와 같이 주어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변하는 유형들을 모집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당선작으로 뽑힌 것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나는 정의에 따라 분노한다. 너는 화를 낸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날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너는 변심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권혁웅은 1인칭과 3인칭의 평가 차이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이고 절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는 무모하고 단순하며 소심하고 욕정적이고 억압돼 있으며 분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다." - P122

131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는 논쟁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논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듯이 논쟁을 피하라. 논쟁은 열이면 아홉이 결국 참가자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전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논쟁에서 지면 당연히 지는 것이고, 만약 이긴다고 해도 그 역시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일까? 자, 당신이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그가 틀렸음을 입증해서 이겼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당신이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당신은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는 당신의 승리에 분개할 것이다." - P131

146 "용서처럼, 행위 자체는 드물면서 그토록 많이 쓰이는 말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용서가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처벌받으면 천운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된다. 용서는 판타지다. 용서만큼, 가해자 입장의 고급 이데올로기도 없다. 나는 용서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_정희진, 「용서?」,『한겨레』, 2016년 11월 5일. - P146

148 "‘사랑을 해봐야 용서한다’란 말이 있다. 나는 힘들게 힘들게 그들이 내 삶에 끼친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보니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안 변했지 않은가. 결국 저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다. 나는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

_오병상, 「작가 한수산 씨: "믿음의 글쓰기로 제2의 인생 출발"」,『중앙일보』, 2000년 9월 8일, 13면; 배문성, 「고문의 악몽…결국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문화일보』, 2000년 8월 4일, 17면. - P148

152 그런 일엔 특히 걷기가 도움이 된다. 걷기보다는 산책이라는 단어가 더 멋있게 들리니 산책이라고 하자. 웬만한 철학자들치고 산책의 힘을 역설하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산책은 사색에 큰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 P152

158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지닌 생각은 모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서 우리가 터득하는 것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절도 망각증kleptomnesia‘에 사로잡히기 쉽다."

_애덤 그랜트(Adam Grant), 홍지수 옮김,『오리지널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한국경제신문, 2016), 22~23쪽. - P158

158 이에 대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창성에 대한 말들이 이렇게 많지만 그게 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이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어쨌든 에너지, 힘, 의지를 제외하면 실제로 무엇을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_해럴드 불룸(Harold Bloom), 양석원 옮김, 『영향에 대한 불안』(문학과지성사, 1973/2012), 123쪽. - P158

161 빌 게이츠Bill Gates가 독창성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라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한 가지 정도의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뿐이며, 거의 모든 해법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다만 그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재능은 이러한 해법을 발견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개발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 P161

172 레베가 코스타Rebecca Costa가 잘 지적했듯이,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책임의 개인화’ 현상이 문명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옳다거나 불가피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완화하기 위해선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거시적으로만 접근하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려는 ‘우도할계牛刀割鷄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자기계발 붐은 ‘능력주의memritocracy‘라고 하는 신화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보다는 오히려 능력주의의 허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게 나은 대안일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욕하는 대신 그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 P172

176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엔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14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도 이름을 잘 아는 존 D. 록펠러1839-1937, 앤드루 카네기1835-1919, J. P. 모건1837-1913을 비롯한 14명은 모두 1830년대에 출생했다. 왜 그럴까?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시기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가 등장했으며, 전통적인 경제를 지배하던 규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184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면 그는 이 시기의 이점을 누리기엔 너무 어리고, 반대로 1820년대에 태어났다면 너무 나이가 많다.
개인컴퓨터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1975년이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다. 실제로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들은 거의 대부분 그 시기에 태어났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밋 등은 1955년생이며 다른 거물들도 1953년에서 1956년 사이에 태어났다. - P176

193 "내가 연구 대상으로 만난 대학생의 65%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교 야구잠바를 볼 때 ‘일부러’ 학교 이름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학교 야구잠바가 신분 과시용 소품이라는 방증이다. 실제로 야구잠바를 입는 비율도 이에 따라 차이가 나서, 이름이 알려진 대학일수록 착용 비율이 높았다. 낮은 서열의 대학 학생들이 학교 야구잠바를 입고 다니면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라 신촌으로 놀러오는 그쪽 대학생들은 자신의 야구잠바를 벗어서 가방에 넣기 바쁘단다. 심지어 편입생의 경우엔 ‘지가 저거 입고 다닌다고 여기 수능으로 들어온 줄 아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 야구잠바는 대학 서열에 따라 누구는 입고, 누구는 안 입으며, 누구는 못 입는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개마고원, 2013), 163쪽. - P193

199 강원국은 이어 "직장인은 인문학 열풍에 너무 깊숙이 빠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에게 나를 찾으라는 주문은 가혹하다. 과연 나를 찾은 사람이 직장 생활에 몰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 그 반대다. 인문적 직장인은 일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상사 앞에서 쩔쩔매지 않는다. 동료와 거래처에 관대하다. 후배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조바심과 경쟁심을 부추겨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에 부적합하다. 모난 돌이다. 결국 정 맞는다." - P199

206 자신에겐 키우고 활용할 만한 강점이나 잘 하는 게 없다고 버티면 하는 수 없긴 하지만, 문제는 약점을 감추려고 애쓴다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일 뿐이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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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1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계속해서 더운 날씨예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8-07-17 22: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이제야 대댓글 다는 방법을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