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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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저 혼란스러움만 남긴 작품. 사실 현실과 인생 자체가 애초에 이 작품처럼 혼란스러운 것 같다. 수많은 사건들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분명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의 질서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과, 결국 무질서를 깨닫고 느끼는 좌절감의 끝없는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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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 재미있고 감각적이고 잘 팔리는
김은경 지음 / 호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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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밑줄긋기

24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구체적인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에세이란 사적인 스토리가 있으면서 그 안에 크든 작든 깨달음이나 주장이 들어 있는 글입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막상 써보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은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누가 써도 상관없을, 관념적이고 뻔한 글을 많이들 씁니다. 인생을 즐겨라,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은 아주 작은 것이다 등 어디선가 많이 본 글들의 변형 버전을 말이죠. 물론 그중 훌륭한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이야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 술자리에서, 커피숍에서, 메신저상에서 지인들에게 그 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애초에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라면 어느 누가 그 글을 기억하겠으며 타인에게 어떻게 다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글을 굳이 타인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을까요?
자주 가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지금 접속해서 베스트 글들을 살펴봅시다. 전부 놀랍도록 열광적이고 사적이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요? 사람들이 열광한 글들 중 추상적이고 뻔한 글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 에세이를 쓰기 위한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단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는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으니 너무 거부감 갖지 마시길.
기억하세요.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나를 궁금하게 하는 유혹의 글쓰기‘이기도 합니다. - P24

195 괴로운 기억을 꺼내보는 용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굴욕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았다면 기억에서 빨리 지워버리고 싶겠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지독한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글로 풀어내보세요. 글에는 치유의 기능이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지를 고민하다 보면 그 사건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변화시켰는지를 깨달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아마 지금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질 것입니다. 또 이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피어나지요.
그런 마음은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더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어주지요.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시련이 없는 히어로물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요? 당신이 겪은 일들은 멋진 히어로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이제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만 남았지요. - P195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것도 에세이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주제의 글들이 있습니다. 《너의 세계를 스칠 때》라는 에세이집에 삽입된 <이메일을 만드는 미래의 딸에게>라는 글도 그 중 한 가지인데요, 이 글은 제목 그대로 이메일 주소 만드는 팁을 열거한 것이 전부입니다. 한영 키를 바꾸어 타자를 치도록 설정하지 말 것, 생일을 넣지 말 것, 좋아하는 연예인을 연상시키는 키워드를 넣지 말 것 등 생각보다 디테일한 조언을 꼽고 있는데요, 읽고 나면 주제의 신선함과 꽤 실용적인 팁의 조합에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별 생각 없이 회사 이메일을 설정해놓은 탓에 땅을 치며 후회 중인 직장인들이 읽어보면 좋습니다.
베스트셀러 《사는 게 뭐라고》에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욘사마가 나오는 DVD를 전편 구매한 이야기도 나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는 재미있는 러브호텔 이름을 나열한 것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헤어지던 당일의 기억을 100일 동안 글로 곱씹은 책도 있고, 자신의 찌질한 면만을 모아서 엮은 책도 있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뭐든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주제여도 좋습니다. 잘만 정리하면 세상 누구도 쓸 수 없는 독보적인 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이상하게, 더 신기하게 써 보는 겁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재미있게 읽히는가?‘

위의 조건만 충족할 수 있다면 과감히 도전하세요. 주제가 무엇이든, 위의 조건이야말로 좋은 에세이인지를 가늠하는 단 하나의 공식이니까요.

227 어떻게 작가가 될 것인가 3
출판사에 글을 투고하는 것만이 작가가 되는 길은 아닙니다. 매거진 투고를 통해 작가가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내일>에서는 매월 독자 투고를 받고 있고, 글이 채택되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간 에세이>나 <샘터> 같은 월간지에서도 독자 투고를 받고 있지요.
1회성이어도 좋으니 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문을 두드려보세요. 새 책 기획을 위해 위의 매거진들을 구독하고 있는 편집자도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 매거진을 보고 다른 매거진에서 원고를 의뢰할 수도 있고요.
지금 당장 어떤 반응을 얻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찰스 부코스키와 스티븐 킹 역시 수많은 반려의 답을 받은 작가들입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한, 내가 한 모든 노력은 민들레씨처럼 어딘가에 가서 반드시 싹을 틔울 것입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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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6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디테일이 살아야합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신은 세부에 깃든다”는 말을 남겼는데 정말 디테일이 살아숨셔야겠네요 근데 그게 힘들죠 ㅎㅎ

베텔게우스 2019-01-06 09:06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 좋은 아침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디테일한 주제를 글로 잘 풀어내는 연습을 차근차근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말에 다가갈수록 나아질거라 믿으며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06 09:10   좋아요 1 | URL
디테일은 투명성과 연결되는데 과연 우리가 얼마나 타인 앞에 자신을 노출시킬수 있을지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굿모닝요^^

베텔게우스 2019-01-06 10:04   좋아요 1 | URL
음 뻔한 말씀이지만 결국 각자의 성향에 따르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했을때 얼마나 편하게 느끼면서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느냐... 가수로 예를 들면 서태지 같은 신비주의 컨셉도 있고 BTS처럼 활발하게 소통하는 이도 있듯이요. 글도 신문의 경우처럼 실명 기고를 해야 하는 곳도 있지만 익명 게시판도 있고.. ㅎㅎ 저도 이런저런 생각해보게 되네요~

카알벨루치 2019-01-06 10:47   좋아요 1 | URL
그래요 올 한해 제대로 써봅시다 ㅋㅋㅎ화이팅! ㅋㅋㅋ

:Dora 2019-01-06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를 드러내기 싫으면 좋은 에세이를 쓰기 어려운 걸까요? ㅎ;;;

카알벨루치 2019-01-06 15:31   좋아요 2 | URL
소설이나 에세이나 글은 자기자신을 발가벗긴다는 아니 에르노였던가? 김탁환의 <천년습작>에서였던가 본 것 같아요 ㅎㅎ

베텔게우스 2019-01-06 16:20   좋아요 1 | URL
에세이가 일상의 체험을 토대로 단상을 간단히 적어가는 형식이라고들 하는데, ‘나‘가 잘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래도 어떤 맥락에서 나온 생각인지를 몰라서, 글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대학내일을 종종 읽는데, 게재된 독자 에세이를 보면 글쓴이에 대해 드러난 정보 하나하나가 주제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되어줍니다. 여담으로 저도 대학내일에 에세이를 투고했다가 광탈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이 책을 읽으니 나를 너무 숨겼구나.. 싶더라구요 ㅋㅋ
 
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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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열 살부터 청소년으로서의 고뇌와 성찰을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때부터 싱클레어는 ‘한 세계’와 ‘다른 한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어색해한다. 싱클레어가 어릴 적 부모님의 집에서 경험한 밝은 세계는 신의 세계다. 부모님의 집은 경건함을 띠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성경에서의 신은 ‘선한 신’으로서 선함과 질서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곳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신이 명한 의무를 수행하고, 죄를 지었으면 뉘우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선량한 세계다.


 ‘다른 한 세계’는 질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어두우면서도 이상한 세계로, 악과 혼란, 금기가 있는 곳이다. 또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벗어나 있어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유발하기도 한다.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혹적이다. 싱클레어는 두 세계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느낀 혼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정말이지 기이한 일은 이 두 세계가 서로 맞닿아 있고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12p)

 한편 작품에서의 ‘두 세계’는 헤세가 살던 20세기 초 독일에 지배적이었던 ‘기독교적 가치관’과 하층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던 ‘개방적 태도’를 각각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데미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성장 소설로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수적 가치관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를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작품에 나타난 두 세계를 사회적·개인적 두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밝은 세계'는 엄격한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가리킨다. 이곳에서는 기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편, '어두운 세계'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던 하층 민중들의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곳은 상대적으로 무절제하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다음으로 개인적 측면에서 두 세계를 비교해보자. ‘밝은 세계’는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안정된 가정을 뜻한다. ‘다른 세계’는 밝은 세계에서는 금지된 다양한 욕구가 있는 곳이다. 가령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의 무리에 끼고 싶어서, 도둑질을 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꾸며낸다. 밝은 세계에서의 악행이 여기에서는 미덕으로 인식된다. 그는 이 거짓말로 인해 크로머로부터 고초를 겪다가 데미안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악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다. 단지 싱클레어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조건 없이 그를 도와주었다. 여기에서 데미안이 외부에 드러나는 밝은 세계를 이미 전혀 개의치 않아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도 싱클레어에게서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생겨나는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듯 청소년기의 고뇌와 성찰은 대체로 성장하면서 인식하는 자신의 욕망과 기존 사회의 질서와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사회적으로는 엄격한 도덕률로부터,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데미안』은 일관되게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긍정한다. 이는 ‘아브락사스’라는 거대한 새의 형상을 한, 선악을 초월한 상징적 존재로서 드러난다. 그러나 누구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면밀하게 탐구하는 것이라고 작품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찾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데미안』이 주는 메시지다. 이는 의존과 자립, 미성숙과 성숙 사이에 놓인 청년들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느껴진다. 나 역시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독립을 갈망하게 되었다. 내 경우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산 지 이제 4개월이 넘어간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는 못했다. 휴대폰 요금은 아버지께서 내주고 있고, 형에겐 가끔씩 돈을 빌리곤 한다. 이러한 의존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작년에 한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경제적 독립 없이, 인격적 독립 없다.”라는 말씀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참으로 공감하고 있다.

 결국 우리에게 어린 시절은 ‘잃어버린 낙원’(78p)이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144p) 알을 깨고 나온 자는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 없고 불안할 때가 많다. 싱클레어가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리라 느꼈으며, 나도 나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았다.’(109p)고 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자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어색하기만 하다. 문득 앞서 언급한 교수님께서, “나는 결코 20대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언젠가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가진 돈도 많지 않고, 직업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 무척 불안했다는 것이다. 이를 듣고 비슷한 상황에서의 불안을 나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자연히 사라질 불안감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을 표현하는 두 가지 명칭이다.”(133p) 고유한 자신의 심성(타고난 마음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운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운명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본성은 결코 나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가져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이후 내가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경험과 이로 인해 떠올린 생각들 또한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유일무이한 것이다. 누구도 내가 겪은 경험들을 완전히 똑같이 겪지 않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즉 나 자체가 완벽하게 고유한 맥락을 가진 하나의 복잡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다.’(9p) 결국 주어진 본성을 인정하면서 생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을 통해 의미를 찾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착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을 정직하게 대하는 인간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몇 달 전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서도 이와 비슷한 결심을 했었는데, 이번에 『데미안』을 읽으면서 다시금 삶에 대한 생각을 다듬을 기회를 얻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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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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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참신함만으로도 이 책에는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스스로가 무해한 사람이라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느낌뿐이다.

57 종국에는 특별한 뜻이 없는 은지의 말과 행동이 비수가 되어 이경에게 날아왔다. 은지가 뒤돌아 누워 있는 것조차도 이경을 슬프게 했다. 은지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이경을 상처 입힐 수 있었다. - P57

175 그때의 나는 내가 졸업 이후에도 변변한 일자리를 잡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원에 입학하게 될 것도, 그곳에서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졸업과 취직을 하고, 오래 연애한 남자와 파혼하고 한동안은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리라는 것도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서른 살의 허들을 넘고 원래 그 나이로 살아온 사람처럼 능청을 떨게 될 것도, 최승자의 시집을 읽으며 간신히 버티던 스물셋의 가을 같은 건 어린 날의 유약한 감상이었다고 과거의 나를 평하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 P175

181 당시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 P181

223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 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 번으로 사라지듯이.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그저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실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도 교묘한 트릭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언젠가 다른 마술들처럼, 마술사의 손길이 닿아 영영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새와 꽃이, 토끼가 나타난다면. 무대 뒤에 또다른 무대가, 역행의 마술이 가능한 무대가 있다면 어떨까. - P223

324 작가의 말_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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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1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연말이 되어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올해의 남은 시간이 조금 남았고, 이제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해가 새로 시작됩니다.
새로 시작하는 날들에는 좋은 일들과 기쁜 소식 자주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과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베텔게우스 2018-12-31 22:3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방문 감사해요!! 한 해 동안 알라딘 서재에서 교류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서니데이님께 2018년은 어떠셨나요? 저는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많았지만 결국 모두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리고, 어찌어찌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네요. 그래도 좋았던 추억은 해를 넘어가도 잊지 않고 부디 잘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18-12-31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게도 2018년은 좋은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어떻게 여기까지는 왔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어요. 네, 좋은 일들은 계속 이어지고, 더 좋은 일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인사 감사해요. 따뜻한 밤 되세요.^^

AgalmA 2019-01-01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저도 새해 인사 하러 왔어요^^ 서재에 뜸하게 나타나다 보니 자주 못 왔던 점 섭섭해하셔도 됩니다😂;
2019년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길 바라고 건강하고 알찬 한해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9-01-01 23:57   좋아요 1 | URL
AgalmA님. 제 서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섭섭하기보다도 쓰시는 좋은 글들. 특히 과학 서적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올해는 여러 과학서적을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AgalmA님께서도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행복한 한 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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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밑줄긋기

46 지난 수십 년 신경과학과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 결과 음식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좋은 운전사, 은행원, 변호사라고 해서 교통이나 투자, 협상에 관한 마술적 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부주의한 보행자나 부적격 대출자, 부정직한 사기꾼을 알아보고 피할 뿐이다. 또한 인간 두뇌의 생화학적 알고리즘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뇌는 어림짐작이나 손쉬운 방법, 그리고 현대의 도시 정글보다 아프리카 초원 시절에 맞춰진 시대착오적 신경회로에 의존한다. 좋은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조차 때로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게 당연하다. - P46

64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재훈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끝없는 격변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변화는 늘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21세기 초 세계는 미친 듯 바빠지면서 온 지구는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을 앓고 있다. 고용 시장과 개인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현실에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사피에스의 정신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가 큰 스트레스 경감 기술ㅡ약물부터 뉴로피드백neuro-feedback(뇌파 측정을 통한 조절 훈련-옮긴이), 명상에 이르기까지ㅡ이 필요할 것이다. 2050년 ‘무용’ 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에는 일자리의 절대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결여뿐 아니라 정신 근력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 P64

71 그러니 인간이 생산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의 육체적 생존과 정신적 안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우리가 해답을 찾기 시작하기 전에 위기가 전면적으로 분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때쯤이면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전례 없는 기술적, 경제적 파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이런 모델들은 일자리보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많은 일자리들이 따분한 고역이고 구제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아무도 현금출납원을 평생의 꿈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보호하는 일이다. - P71

280 오늘날 과학자들은 도덕성이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나왔으며, 그 뿌리는 인류가 출현하기 전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늑대, 돌고래, 원숭이 같은 사회적 포유류는 모두가 윤리 규약이 있으며, 이는 진화 과정에서 집단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가령, 늑대 새끼들이 함께 놀 때에도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있다. 새끼 한 마리가 놀이 상대를 너무 심하게 물거나 상대가 배를 보이고 누워 항복을 표시했는데도 계속해서 물면 다른 새끼들이 끼어들어 놀이를 막는다.

침팬지 무리에서도 우월한 개체들은 보다 약한 개체들의 소유권을 존중해야 한다. 만약 어린 암컷이 바나나를 발견하면 심지어 우두머리 수컷조차 대개는 자기가 먹으려고 훔치려 들지는 않는다. 이런 규칙을 어기면 자신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유인원들은 무리 안의 약자를 이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미국 밀워키 카운티 동물원에 사는 키도고라는 이름의 피그미침팬지 수컷은 심장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몸도 허약한 데다 어리벙벙했다. 키도고는 처음 이 동물원에 왔을 때 적응은커녕 관리사들의 지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키도고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는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종종 키도고의 손을 잡고 어디든지 그가 가야 할 곳으로 이끌었다. 키도고가 길을 잃었을 때는 큰 소리로 조난 신호를 보내면 다른 개체들이 달려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키도고의 주요 조력자들 중 하나는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수컷, 로디였다. 로디는 키도고를 안내했을 뿐 아니라 보호해주기도 했다. 무리의 구성원은 거의 모두 키도고를 친절하게 대했지만, 머프라는 이름의 나이 어린 수컷 한 마리만 자주 키도고를 무자비하게 놀려대곤 했다. 그런 행동을 알아챈 로디는 머프 녀석을 쫓아내거나 팔을 바꿔가며 키도고를 감싸서 보호할 때가 많았다.

훨씬 더 감동적인 일은 코트디부아르의 정글에서 일어났다. 오스카라는 별명의 어린 침팬지는 어미를 잃고 혼자서 힙겹게 살고 있었다. 다른 암컷들은 자기 새끼를 돌보느라 아무도 오스카를 맡아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스카는 갈수록 몸무게가 줄었고 건강과 활력을 잃어갔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인 프레디가 오스카를 ‘입양’했다. 이 우두머리 수컷은 오스카의 먹을 것을 확실히 챙겼고, 자신의 등에 오스카를 태우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를 해봤지만 프레디와 오스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엇이 이 무뚝뚝한 나이 많은 리더로 하여금 어미 잃은 젖먹이를 돌보게 만들었는지 우리로서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 유인원 리더들은 무리 중에서 약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 고아가 된 구성원을 돕는 성향을 발전시켜왔다.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과부나 아비 없는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출애굽기 22장 22절)고 가르치고, 선지자 아모스가 사회 지도층을 향해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학대한다"(아모스 4장 1절)고 책망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다.

고대 중동 지역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들 중에도 성경 속 선지자들보다 앞선 사례가 있었다. "살인하지 말라"와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수메르 도시 국가들과 파라오 이집트, 바빌로니아 제국의 법과 윤리 조항으로도 유명했다. 주기적인 휴식의 날도 유대인의 안식일 전통보다 훨씬 앞서 존재했다. 선지자 아모스가 이스라엘 지도층을 향해 압제적인 행동을 꾸짖기 1,000년도 전에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는 위대한 신들이 자신에게 가르쳐주기를 영토 내에 정의를 증명하고, 악과 사악함을 분쇄하며,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 P280

307 그렇다면 세속주의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세속주의의 가치는 진실이다.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을 말한다. 세속주의자들은 이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이야기에 대한 강한 믿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심리와 유년기, 뇌 구조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때 강한 믿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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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24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차가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베텔게우스 2018-12-25 19: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