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이 문을 열고 나가는데 다른 문으로 하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레빈은 하인에게 리자베타를 불러오라고 지시한 뒤 의사를 부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며 그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를 용서하소서!"라고 예기치 않게 입에 떠오른 말을 중얼거렸다. - P-1

그러나 그때는 슬픔이었고 지금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슬픔과 기쁨 모두 평범한 삶의 조건 너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마치 평범한 생활들 안에서 뚫려져 있는 구멍, 그것을 통해 뭔가 숭고한 것이 흘낏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 숭고한 무언가를 관조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높이로까지 한껏 고양되는 것이며 우리의 이성은 그 영혼을 따라갈 수 없어 한참 뒤쳐져 있게 되는 것이다. - P-1

하지만 둘 다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뿐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식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으며 브론스키는 자신이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미안함 때문에 괴로웠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른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게 불가능했고, 설사 그런 노력을 한다고 해도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안나에게 브론스키는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오로지 그녀만을 향해야 했다.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 사랑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때문에 그녀는 특정한 질투의 대상이 없이 그가 만나는 모든 여자들을 질투했다. 또한 그가 자신을 버리고 결혼하고 싶어할 만한 가상의 여인을 향하여 질투했다.
특히 브론스키가 조심성 없게도 자기 어머니가 자신을 소로키나 공작의 딸과 결혼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한 뒤로는 더욱 심해졌다. - P-1

브론스키에게 쏘아붙이면서 안나는 자신이 애당초 결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제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에게 질 수 없었다.
브론스키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난 뭘 자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요."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를 존중으로 채운 거 아닌가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고백해야 하지 않아요?"
"정말 참을 수가 없군!" 브론스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요?"
안나는 증오로 이글거리는 브론스키의 눈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려 외쳤다.
"당신이 도대체 내게서 뭘 원하는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소." 브론스키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의 사랑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게 사라졌어요. 모든 게 끝났어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그래, 모든 게 끝난 거야. 하지만 어떻게 끝을 내지?’
그녀는 거울 앞 의자에 앉아 계속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에게 갑자기 출산 직후 죽음을 앞두고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죽는 거야. 죽으면 이 치욕으로부터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죽으면 그이는 후회하면서 나를 다시 사랑하겠지. 그리고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겠지.’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그녀의 생각이 흩어졌다. 그녀는 반지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P-1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잠든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정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깨어난다면 그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가 자신을 얼마나 잘못 대하고 있는지 증명하려 애를 쓰게 되리라. - P-1

"만나뵈서 정말 반가워요." 키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키티는 안나를 향한 적개심과 그녀에게 잘 대해줘야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안나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마자 적개심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 P-1

내가 그에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달라졌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바로 그 때문에 그가 나를 혐오하고 나는 그를 미워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어. - P-1

그녀는 자신이 한 짓에 공포를 느끼며 생각했다.
‘나는 어디 있는 거지? 내가 뭘 한 거지? 왜?’
그녀는 일어나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거대한 그 무엇이 그녀의 머리를 때렸고 그녀를 끌고 갔다.
‘주여,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저항이 불가능함을 느끼며 기도했다.
농부 한 명이 뭔가 중얼거리며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희미한 빛에 그토록 수많은 비참과 사기, 고통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던 바로 그 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타올라, 전에는 어둠에 불과했던 것들을 환히 비추어주었다. 이어서 그 불빛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 P-1

마침내 석 달째가 되었을 때 그 책에 관한 본격 비평문이 어느 잡지에 실렸다. 하지만 필자는 교묘하게 책의 문장들을 악의적으로 인용하면서 그 책을 아예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책으로 만들어버렸다. 도대체 왜 그런 글을 썼는지 의아해하던 코즈니셰프는 언젠가 그 젊은이를 만났을 때 그의 무식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의 글에 대해 단어를 고쳐주고 다듬어준 적이 있음을 생각해냈다. 자신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한 일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고 앙심을 품었던 모양이었다. 코즈니셰프는 그 이후로 이른바 평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되었다. - P-1

"한 남자로서 내가 쓸모가 있다면, 내게 삶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을 물리치건 내가 쓰러지건 적진에 뛰어들 힘이 충분하기도 합니다. 내 목숨을 그 무언가를 위해 바칠 수 있다니 정말 잘 됐습니다. 쓸모없을 뿐 아니라 혐오스럽기만 한 내 목숨을 말입니다."
"당신은 분명 회복될 것입니다. 형제들을 압제에서 구출해 내는 일은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시길."
코즈니셰프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브론스키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저는 무기로서는 아직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이미 다 끝난 몸입니다." - P-1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면 살아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알 도리가 없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 죽음에 그 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삶이, 이 세상이, 무의미한 거짓과 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악을 피하고 악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죽음이었다.
아내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남편이며, 행복한 아버지이고, 더없이 건강한 남자인 레빈이 몇 차례 자살의 문턱에서 서성거렸다. 그는 스스로 목을 맬까봐 두려워서 밧줄을 감추었으며 권총으로 자살할 것이 두려워서 총을 지니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레빈은 자살하지 않은 채 삶을 지속해나갔다. 형 코즈니셰프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레빈의 그 번민이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 P-1

그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동정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포카니치 영감(표트르는 플라톤을 그런 식으로 높여 불렀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그 영감이 일꾼들 가죽을 벗겨요? 돈을 빌려주고 그 빚을 탕감해주기도 하는데요."
"아니, 왜 빚을 탕감해주는 거지?"
"나리, 세상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키릴로프처럼 오로지 자신의 배만 불리기 위해 사는 사람이 있지요. 하지만 포카치니 영감은 올바른 분이지요. 그 양반은 영혼을 위해 살아요. 그분은 하느님을 잊지 않고 있지요."
"하느님을 잊지 않는다니!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산다니!"
레빈이 거의 외치다시피 했다.
"그거야 진리에 따르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거지요. 사람들은 다 제각각이에요. 아, 나리만 해도 그 누구에게든 좋게 해주려고 하시잖아요."
"그래, 그래, 잘 가게."
레빈은 그 말을 한 뒤 지팡이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흥분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플라톤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진리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표트르의 말을 듣는 순간 뭐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너무 중요한 생각들이 레빈의 영혼 속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것 같았다. 그 생각들은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있었으며 그의 정신 속에서 휘몰아쳤고, 그 광휘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 P-1

레빈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혼의 상태에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농부의 말들이 그에게 마치 섬광과도 같은 효과를 냈으며 그동안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던 단편적이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단 하나의 ‘전체’로 묶어주었다.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느님을 위해 산다? 우리가 정의 내릴 수 없는 하느님을 위해 산다? 도대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어디 있는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명확하며 명료하지 않은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했고, 그 말의 뜻을 그와 똑같이 이해했다.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이해했던 그 무엇보다 완전히, 확실하게 이해했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것을 의심한 적이 없는 것이며, 또한 의심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세상 전부가, 이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이것 외에는 의심 없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농부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이 문제로 고민한 현자들이 모두 똑같이 이 ‘분명하지 않은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무엇이 좋은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굳건한 ‘앎’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앎’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앎’은 이성을 초월하며 거기에는 그 어떤 인과(因果)도 개입될 수 없다. 만약 선(善)에 원인이 있다면 그건 이미 선이 아니다. 선의 결과 그 어떤 보상을 받게 된다면 그 역시 선이 아니다.’
레빈에게 일어난 이 기적은 현자건 바보건, 아이건 노인이건, 농부건 지주건, 무식한 사람이건 지식인이건, 거지건 황제건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레빈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귀에 신비스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정녕 신앙일까?’
레빈은 자신에게 이런 행복이 왔음을 믿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레빈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눈에 가득한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며, 기쁨에 젖어 외쳤다. - P-1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이냐고 묻는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이란 책이 있다. 오르한 파무크를 비롯한 최고 작가들이 『안나 카레니나』를 꼽았다.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무인도에 딱 책 한 권을 들고 가게 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느냐는 물음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꼽은 적도 있다. 우선 분량이 만만치 않으니 무인도에서 시간 보내는 데 제격이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재미가 있고 스토리도 단순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 책을 꼽은 진짜 이유는 그 섬세한 심리묘사에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텔레비전 프로에서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길게 설명하기 어려우니 ‘섬세한 심리묘사’라는 압축적인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 마음을 읽는 공력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 번지르르 겉에 덧대고 있는 위선을 읽어내게 될지도 모르고, 진짜 질투라는 게 저런 것이로구나, 감탄할 수도 있으며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에 공감하며 대리 연애를 경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남자인 작가가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읽어낼 수 있었는지! - P-1

살아 있는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정작 죽음이 코앞에 닥치면 아주 덤덤하게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 앞에 안달을 한다. 아무리 장수(長壽)를 하더라도, 아무리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죽음 앞에서 초연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해탈했다고도 하고, 삶과 죽음을 초월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보면 인간과 달리 여타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 P-1

그는 무지에서 깨어나 ‘앎’을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앎’은 머리로, 이성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홀연 기적처럼 그의 전 존재가 체득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머리로 획득한 지식은 그 지식을 획득한 사람만의 소유물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현자건 바보건, 아이건 노인이건, 농부건 지주건, 무식한 사람이건 지식인이건, 거지건 황제건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 전부가 받아들이고 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공통의 진리이다. 신비스러운 초월의 경험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인류 공통의 진리이지만 그걸 체득하는 기적은 순전히 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그 기적은 남과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그 이야기를 키티에게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친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 때문이다. - P-1

그리하여 레빈처럼 그 소중한 삶을 지탱해줄 가치가 너무 간단한 단어라고 해서 실망하지 마라. 착할 선(善). 얼마나 순진하고 쉬운 단어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라. 가끔 결심하고 착한 행동을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내 지향점이 된다는 것, 지고지순의 목표가 된다는 것, 아니 내 생각과 삶 전체를 물들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하긴 이런 게 다 필요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그에 푹 빠진 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를 삶 자체라고 평한 문학가가 있다. 그러니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고 삶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보다는, 이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보다는 『안나 카레니나』를 온전히 살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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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는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도 그렇고 그의 어조도 신경에 거슬렸다. 더욱이 그와의 대화가 남편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경험이 없고 순진해서 대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관심 때문에 거북해하면서 동시에 기뻐하는 표정을 감출 줄도 몰랐다. 그녀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건 남편이 곡해할 것을 알고 있던 때문이었다. - P-1

그녀는 지난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임신, 입덧,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고, 무엇보다 추해지고……. 출산과 산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 수유(授乳)와 불면의 밤, 이어지는 힘든 일들……. 아이들이 번갈아 아프고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나날들……. 이어서 아이들 가정교육……. 아이들 못된 버릇 고치기……. 아이들 학교 교육, 라틴어……. 정말 너무 힘들어. 게다가 아이가 죽었을 때는…….’
그녀는 호흡 곤란으로 젖먹이 때 죽은 아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이어서 생각했다.
‘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거지? 이렇게 해서 게 결국 뭐가 오게 되는 거지? 한순간도 평화로울 때가 없이 삶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늘 화를 내고 툴툴거리고 남편을 혐오하면서……. 게다가 살림도 너무 빠듯해. 지금 처지만 봐도 그래. 키티네 집에서 지내지 않았다면 이번 여름을 보낼 방도도 없었잖아. 하지만 언제까지 레빈과 키티에게 기댈 수는 없어. 아빠도 우리를 도와주실 수 없어. 아빠 몫으로 남은 게 거의 없으니까. 어쨌든 남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무사히 넘긴다고 쳐. 운이 좋다면 그럭저럭 아이들을 무사히 키울 수 있게 되겠지. 아이들이 조신하게 자라주는 게 최선일 거고……. 그래,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그 정도를 이루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큰 고생을 해야 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 그러다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거야!’ - P-1

돌리는 안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변한 모습에 새삼 놀랐다. 그녀의 얼굴은 여자가 누군가 사랑할 때만 나타나는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미묘한 변화였지만 안나를 잘 알고 있는 돌리는 그 변화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에 오면서 돌리에게 떠올랐던 생각들 덕분에 그 아름다움은 곧바로 돌리의 눈에 띄었다. 마치 안나 자신이 그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뽐내는 것 같았다. - P-1

그와 병원을 구경하면서, 그리고 각 시설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돌리는 여러 번에 걸쳐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표정을 깊이 살펴보며 스스로 안나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했다. 그의 열정, 그의 활달함에 매료된 그녀는, 안나가 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P-1

다음 날 아침 돌리는 브론스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났다. 바르바라나 남자들은 그녀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섭섭해하지 않았다. 오직 안나만이 슬퍼할 뿐이었다. 이제 돌리가 떠나고 나면 이곳의 그 누구도 어제 돌리와 대화하면서 떠올랐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을 건드리는 게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것이 그녀의 영혼의 진수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떠나면 그것은 그녀가 영위하는 생활 속에 묻혀버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P-1

브론스키가 선거하러 떠나는 날 안나는 브론스키의 눈길에서 그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결코 볼 수 없던 시선이었다. ‘그래, 그이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처럼 사랑으로, 자신의 매력으로 그를 붙잡아두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식을까봐 두렵기만 했다. 그녀는 밤마다 모르핀을 먹고서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를 사랑으로 붙잡아두는 것이 어렵다면 자기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그의 곁에 머무는 것이다. 바로 이혼과 결혼이었다. 그녀는 이혼을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고, 브론스키나 스티바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즉시 승낙하겠다고 결심했다. - P-1

"당신 마치 나를 협박하는 것 같아. 나는 오로지 당신과 헤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인데……."
브론스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시선에는 냉기뿐 아니라 성가신 일을 겪어 잔인해진 사람의 기색이 나타나 있었다. 안나는 그의 시선을 보고 그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순간적인 느낌일 뿐이었지만 그 느낌은 안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 P-1

"그런 말 마오. 나는 결혼한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소."
레빈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 묻는 듯한 그녀의 다정하고 진실된 눈을 바라보고는 자신도 진심을 담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생각했다. - P-1

모스크바에 온 이래 레빈은 대학 동창인 카타바소프 교수와 친하게 지냈다. 레빈은 카타바소프의 판단력을 존중했지만 그의 명료한 세계관은 영혼이 빈곤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사고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그에게 지적(知的)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타바소프의 명료함이 레빈의 마음에 들었고 레빈의 다양하고 유연한 생각들이 카타바소프의 마음에 들어서 둘은 친하게 지냈다. - P-1

부부는 새벽 3시까지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제야 진정으로 화해하고 잠들 수 있었다. - P-1

그녀는 비록 무의식적이긴 했지만 레빈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상대가 레빈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 젊은 남자를 만나면 언제나 그랬다. 그녀는 성실한 기혼자에게서 바랄 수 있는 정도의 목적을 달성했고 또 레빈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레빈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 P-1

안나는 자신의 불행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준다는 무기(武器)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는 그 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들을 묶어주고 있는 사랑 곁에, 싸움을 부추기는 사악한 정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마음에서는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에서는 더욱더 그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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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스로에게도 용서가 안 될 정도로 너무 행복했으며, 브론스키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의 성격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군복을 벗어던진 그의 모습은 전보다 더 매력적이었으며 그의 말과 생각, 행동은 언제나 고결했다. 그에게서 도무지 나쁜 점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어서 안나는 겁이 날 정도였다. 그녀에게 브론스키는 나라를 위해 뭔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도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 사람,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늘 자신을 배려하는 사람이 바로 브론스키였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완벽히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 소망이 실현됨으로써 얻은 것이라고는 행복이라는 거대한 산 가운데 겨우 모래 한 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믿고 있는 것, 즉 욕망의 실현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평민복을 입고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는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자유를 맛보았고, 사랑의 자유를 맛보았다. 그리고 그는 만족해했다. 하지만 그 만족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마음속에 욕망을 향한 욕망, 즉 권태가 고개를 들고 있음을 느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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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카와 몇 번 눈길이 마주친 키티는 그녀에게 이상한 호감을 느꼈으며 바렌카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때마다 알 수 있었다. - P-1

하지만 그녀가 남자들에게 매력이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말하자면 아직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는 있지만 그 꽃에 향기가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 외에 그녀가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이유는 또 있었다. 그녀는 키티에게는 넘쳐흐르는 것, 즉 눌려 있는 스프링과 같은 생명의 불꽃과 자신의 매력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바렌카는 언제나 남을 헌신적으로 돌보느라 바빴고 그 때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키티가 보기에 바렌카는 분명 자신과 정반대였고 바로 그 때문에 그녀가 키티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었다.
키티의 눈에 그녀는 분명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 키티는 바렌카에게서, 그녀의 삶의 태도에서 자신이 지금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의 본보기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 P-1

하지만 이런 성가신 일들과 걱정거리가 돌리에게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런 걱정거리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제는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 생각을 하며 괴로움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행복했다. - P-1

아이들은 레빈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게 다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어머니가 그를 반기는 모습을 본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레빈에게는 어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선의 흔적이 없던 때문이었다. 위선이란 종종 아주 똑똑한 사람까지 속여 넘길 수 있는 무기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 법이다. 레빈에게 결점은 있을지 몰라도 위선이라고는 없었다. - P-1

"자네는 나와 동갑이야. 그렇지만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여자를 알았겠지. 그렇다고 나보다 여자에 대해 더 잘 알까? 난 기혼자야. 누군가 이런 말을 했지? 사랑하는 아내를 한 명 알게 되면 수천 명의 여자를 만난 것보다 여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고." - P-1

"자, 내 의견을 말해주지. 여자는 사내의 경력에 걸림돌일 뿐이라네. 여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사랑이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밖에 없어. 이걸 어떻게 쉽게 비유할 수 있을까? 그래, 짐을 들고 가면서 뭔가 일을 하려면 그 짐을 등에 붙들어 매는 수밖에 없지? 그게 바로 결혼인 거야."
그러자 브론스키가 말했다.
"자네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꼭 명심하게.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물질적이야. 우리는 사랑 때문에 뭔가 대단한 짓을 저지르지. 하지만 여자들은 언제나 세속적이야." - P-1

만일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모든 걸 버리고 나와 떠나요!"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녀는 기꺼이 모든 것을, 심지어 아들까지 포기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그녀가 기대했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마치 무슨 모욕이라도 당한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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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는……." 안나는 장갑을 벗으며 대답했다. "사람 머릿수만큼이나 많은 의견이 있듯이 사람 마음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랑이 있다고 봐요." - P-1

그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1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당신 말대로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나를 편하게 내버려둬요."
그의 얼굴이 빛났다.
"정말 모르십니까? 당신이 내 삶의 전부인 것을? 나는 지금 내가 절대로 편하지 않기에 당신을 편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과 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평온은 없습니다. 절망과 불행만이……. 아니면 무한한 행복이……. 아, 그건 어떤 행복일까요?"
안나는 이성의 힘을 총동원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를 향해 사랑의 눈길을 던지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P-1

"당신, 키티에게 정말이지 나쁜 짓을 했어요. 그건 정말 나쁜 짓이에요."
"제가 나쁜 짓 한 걸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누구 때문에 제가 그런 짓을 했는데요?" - P-1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그녀의 시선을 맞받으며 대담하게 말했다. 그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당황한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그건 당신에게는 심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예요."
안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그에게 심장이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방금 제게 나쁜 짓이라고 하신 건 제 실수에 대해서이지, 제 사랑에 대해서는 아닙니다." 브론스키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 내 앞에서 그 단어를 쓰지 말라고 금지했던 걸 잊었나요?" 안나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금지’라는 그 단어 자체가 거꾸로 그가 자신 있게 ‘사랑’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게끔 그를 격려했음을 그녀는 몰랐다. 그 단어를 씀으로써 그녀가 그에 대해 그 어떤 권리를 갖고 있음을 그녀는 인정한 것이다. - P-1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애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투로 말을 했다. 그는 아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마다 버릇처럼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그런 빈정대는 어조를 갖고 그녀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 P-1

‘사랑한다고? 저이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워서 알지 못했으면 절대로 저 말을 할 수 없었을 거야.’ - P-1

모스크바로부터 돌아온 후 처음 며칠 동안, 청혼이 거절당한 일을 상기하고 얼굴이 벌게지면서 치가 떨릴 때마다 레빈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대학에서 물리과목 낙제점을 받았을 때도 좀 절망했었나? 하지만 결국 다 잘됐잖아.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걸 뭐 그리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야. 세월이 지나면 잊힐 거야. 세월이 약이야." - P-1

하지만 세 달이 지났어도 그 일은 쉽게 잊히지 않았고, 그때 일이 계속 떠올랐으며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그래도 세월은 역시 세월이었다. 게다가 바쁜 시골 일에 몰두하다보니 키티를 떠올리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레빈은 그녀가 시집을 갔거나 곧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는 그 소식이 마치 앓던 이를 뽑듯 자신을 완전히 치유해주리라 기대했다. - P-1

레빈은 키티가 그녀를 버린 남자 때문에 병이 났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레빈을 버렸고 브론스키는 그녀를 버렸다. 결국 브론스키는 레빈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게 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적이 된 것이었다.
물론 레빈이 이 모든 것을 찬찬히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일에서 뭔가 모욕감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 P-1

자네는 봉급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없어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내 노동으로 일군 것을 귀하게 여긴다네. 맞아, 우리가 귀족이지 브론스키 같은 사람들이 귀족이 아니야. 이 세상에서 힘깨나 있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걸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저 푼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 아니라고. - P-1

"자네, 지금 누구를 공격하는 건가? 어쨌든 나는 자네 말에 동의해." 레빈이 푼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말한 범주에 자신도 속한다는 것을 느끼며 오블론스키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레빈이 생기를 되찾은 것이 반가워서 즐거운 어투로 말했다. - P-1

그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론스키의 연애는 이미 도시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둘 사이의 연애가 안고 있는 난관,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를 부러워한 것이었다. - P-1

"안 돼.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카테리나(키티)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람이야. 그녀는 이제 내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일 뿐이야. 다 끝난 일일세." - P-1

한편 안나를 질투하며 누군가 안나가 정숙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입을 삐죽 내밀었던 젊은 여성들은 자기네 짐작이 맞았다며 기뻐했다. 그녀들은 안나에 대한 사교계의 평판이 모멸로 바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며 기꺼이 진흙덩어리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P-1

게다가 둘의 관계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아들의 연애는 그녀가 환영해마지않는 멋진 사교계 연애가 아니라 베르테르적인 절망적 정열에 이끌리는 연애로 보였다. 사람들이 그가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었던 것이다.
브론스키의 형 역시 그에게 불만이었다. 현역 대령인 그는 이 사랑이 오래 갈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인지 그저 일순간의 불장난인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출세를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의 행실에 찬성하지 않았다. - P-1

그는 장애물 경주를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연애 와중이었지만 두 정열은 상충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에게는 연애와는 별개로 심취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를 그토록 흥분시키는 격렬한 열정을 잠시 잠재우고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 P-1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지독한 불행을 맛보았다.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불행이었으며 그가 직접 초래한 불행이었다. - P-1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나는 정말로 절망했던 거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난 당신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해요. 나는 그를 사랑해요. 난 그 사람 애인이에요. 나는 당신을 견딜 수 없어요. 당신이 두려워요. 당신을 증오해요……. 이제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는 마차 구석에 몸을 던지고 흐느꼈다. 카레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은 마치 죽은 자의 시선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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