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이라는 이름의 오멜라스에도 지하실에 쌓인 묵은 쓰레기를 직면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한국 사회의 지하실에 묶여 고통받는 이들을 직면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살을 통해 한국을 떠난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권이다. 그들은 출산 거부를 통해 한국을 떠난다. 한국은 인구가 늘지 않아 OECD 국가 중에서 인구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르다. 자신이 속한 곳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마치 이직을 결심하듯이 사람들은 떠난다. 이민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 P-1

중년이 되고서야 깨닫는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인생은 늘 위기였는데 그저 중년이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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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 P-1

그렇다면 가혹행위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남자들이 가지는 폭력성? 일제 식민지 잔재? 그냥 군대문화? 어서 원인을 알려줘! 그것만 도려내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 같은데! 단일 원인을 찾아내어 단죄하려는 유혹은 강렬하다. 그러나 분명하고 단순한 원인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그런 것은 없다. 어떤 문제가 오래 잔존해왔다는 것은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원인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비극의 뿌리가 한국 사회 전체에 산포되어 있는 것처럼, 많은 문제의 원인은 대개 해당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 P-1

방관이나 총격이나 자살이 대안이 아니라면 무엇이 대안인가? 여기에 쉽고 확실한 답은 없다. 오히려 쉬운 답이 있는 것처럼, 자기는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문제 뒤에 어떤 거대한 음모가가 존재하고 그 음모가만 없애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 문제의 원인만 쉽게 도려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 다른 사람은 무관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막연하게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퉁치는 사람, 자기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약을 파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대안은 그 나름의 부작용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사람, 일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감안하고 있는 사람, 기회비용까지 고려하고 있는 사람, 일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러기에 다음 세대만큼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양질의 선택지를 마련해주려는 사람 말을 경청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좋은 선택지는 아마 이미 소진되어버렸음을 인정하면서. - P-1

한국이 고담시일지는 모르나 이곳에 배트맨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이라는 고담시를 위해서 한국의 하비 덴트는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 역시 예술처럼 픽션을 만들고 유지하는 체제일진대, 소위 진보적 민족주의 서사나 보수 우파적 서사가 미래를 위해 유용한 픽션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논란이나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모두 미래의 픽션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의 과거를 경쟁적으로 해석해왔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건, 최선을 다했고 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들, 어쩔 수 없었고 동시에 어쩔 수 있었던 일들, 성실했지만 꾸준하지는 못했던 일들,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그러나 때로는 과감했던 일들, 결핍이 있었으나 그 결핍을 메우고자 시도했던 시간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모를 참은 시간들, 저력과 무기력을 동시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이루지 못한 꿈과 대답을 듣지 못한 애착 때문에 미쳐간 시간들이 모두 이 땅의 역사 속에 있다. 문제를 느끼면서도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밤이 왔고,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일들은 벌어지고 있으며, 제대로 갈무리되지 못한 기억들은 베개 밑에 놓여 있다. 고이 접히지 못한 채 놓여 있다. 정치 공동체는 곧 기억의 공동체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떤 서사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 P-1

인간은 변하는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에 나오는 구 동독의 고위 관료는 말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인간을 자기 예측대로 통제하고 싶은 사람은 인간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이 변하지 않아야 예측하기 쉽고, 예측하기 쉬워야 통제하기 쉬울 테니까. 두고두고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사람도 상대가 좋게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가 변하지 않아야, 자신의 증오가 계속 정당화될 테니까. - P-1

비즐러라는 인간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나? 외로운 관료적 기계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그간 자신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이 상상한 예술가들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이제 비즐러의 마음에 무엇인가 온다. 이 변화의 순간이란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 것일까.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변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가르친다고 냉큼 오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계몽 프로그램에 참석한다고 후다닥 오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한다고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의외의 순간, 변화는 일어난다. 비즐러의 경우 가면을 벗은 예술가들의 모습에 직면했을 때 그 순간이 왔다. - P-1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 P-1

"저자의 목을 쳐라!" 세상에 여러 악연이 있겠지만, 목을 베는 사람과 목이 베이는 사람 간의 악연만 한 것도 드물다. 저 사람을 딱히 미워할 것도 없는데, 망나니는 이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목을 쳐야 한다. 죽을 사람은 망나니가 직업상 할 수 없이 자기 목을 베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망나니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목 베인 이의 자식이 그 망나니를 길에서 마주치면 어떨까. 과연 아무 감정 없이 지나칠 수 있을까. 이 원한은 대를 이어 지속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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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 법.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쓰레기를 모아 태우다가 그만 할머니는 그해의 결실이 모여 있는 창고에 불을 내고 만다. 뇌졸중으로 몸을 빨리 움직일 수 없어서 불타는 창고를 망연히 보고 있어야만 한다. - P-1

삶에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행동의 결과를 다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기피하고, 쉽게 단정하는 이들을 의심하며, 만병통치약을 파는 이들을 경계하고, 쉽게 확신하는 이들을 불신한다.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미나리>는 "버티라"고 말한다. 미나리는 버티는 식물의 대명사다. 실로, 삶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아이러니가 있기에 희망도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불행이 있는 만큼 예상치 못했던 선물도 있다. 아칸소주 시골로 이사 왔을 때, 그 환경 변화가 손자의 심장 상태를 개선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쁜 일만 있는 게 삶이라면 삶은 예측 가능하리라. 삶은 예측 가능하지 않기에, 좋은 일도 있다. 삶의 아이러니는 좌절할 이유도 되지만 버틸 이유도 된다. - P-1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한 모리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산과 사회적 지위를 거는 사랑의 모험에 나선다. "영혼을 잃고서 작고 갑갑한 상자들만을 소유한 수백만 겁쟁이들"의 사회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오랜만에 맛보는 정직의 맛이었다." 환희에 찬 모리스를 보며, 클라이브는 사회적 지위는 유지했지만 뭔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열패감에 휩싸인다. - P-1

어떤 점에서 2021년은 한국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연간 기준 주민등록인구가 역사상 최초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등록 인구는 5182만 9023명이다. 이는 일 년 전보다 2만 838명(0.04퍼센트) 감소한 숫자다. 대규모 재해나 전쟁 없이 인구가 이토록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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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구를 믿을 수 있다. 미천한 인간 세계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할 수 있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길을 가다가 어떤 압도적인 귀여움과 마주치면 가끔 인간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오늘도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다. - P-1

저항 세력이 권력자가 되어 개혁의 예리함을 잃어갈 때는 곧 정치적 냉소가 자라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나 약속했던 새 시대가 금방 도래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특정 정권의 행태로 환원되지 않을 정도로 뿌리 깊은 것임이 드러난다, 부패한 기득권을 질타하며 집권한 세력 역시 적지 않게 부패했음이 드러난다, 이리하여 정치적 유토피아는 다시 한번 유예된다. 그 유예된 공터에서 예술가들은 도래할 정치적 유토피아에 집착하는 대신 허무와 심연을 보곤 한다. - P-1

이 비극을 끝내는 것이 바로 재앙신으로부터 상처 입은 아시타카,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아 인간을 저주하게 된 모노노케 히메라는 점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처받은 인간만이, 자신을 넘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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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대의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주권이라는 허구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허구가 필요하다. 성욕을 매개로 번식을 거듭하던 존재가 기어이 사랑이라는 픽션을 만들어냈듯이, 비루함으로 가득 찬 세속에서 기어이 신성(神性)을 발명해냈듯이, 허구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하다.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하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삶이 허구를 버릴 수 없다면 허구와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허구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거짓말이나 궤변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허구는 삶의 필요가 요청한 믿음의 대상이다. 허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허구를 믿어야 한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픽션도 그렇지 않던가. 보고 읽으며 울고 웃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의 진위를 따져 묻기를 그만두고 일단 이야기의 전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야기의 세계를 ‘마치 그러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속을 유영(遊泳)해야 그 허구를 즐길 수 있다. 허구를 믿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허구와 더불어 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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