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 P-1
그렇다면 가혹행위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남자들이 가지는 폭력성? 일제 식민지 잔재? 그냥 군대문화? 어서 원인을 알려줘! 그것만 도려내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 같은데! 단일 원인을 찾아내어 단죄하려는 유혹은 강렬하다. 그러나 분명하고 단순한 원인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그런 것은 없다. 어떤 문제가 오래 잔존해왔다는 것은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원인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비극의 뿌리가 한국 사회 전체에 산포되어 있는 것처럼, 많은 문제의 원인은 대개 해당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 P-1
방관이나 총격이나 자살이 대안이 아니라면 무엇이 대안인가? 여기에 쉽고 확실한 답은 없다. 오히려 쉬운 답이 있는 것처럼, 자기는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문제 뒤에 어떤 거대한 음모가가 존재하고 그 음모가만 없애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 문제의 원인만 쉽게 도려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 다른 사람은 무관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막연하게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퉁치는 사람, 자기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약을 파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대안은 그 나름의 부작용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사람, 일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감안하고 있는 사람, 기회비용까지 고려하고 있는 사람, 일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러기에 다음 세대만큼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양질의 선택지를 마련해주려는 사람 말을 경청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좋은 선택지는 아마 이미 소진되어버렸음을 인정하면서. - P-1
한국이 고담시일지는 모르나 이곳에 배트맨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이라는 고담시를 위해서 한국의 하비 덴트는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 역시 예술처럼 픽션을 만들고 유지하는 체제일진대, 소위 진보적 민족주의 서사나 보수 우파적 서사가 미래를 위해 유용한 픽션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논란이나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모두 미래의 픽션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의 과거를 경쟁적으로 해석해왔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건, 최선을 다했고 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들, 어쩔 수 없었고 동시에 어쩔 수 있었던 일들, 성실했지만 꾸준하지는 못했던 일들,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그러나 때로는 과감했던 일들, 결핍이 있었으나 그 결핍을 메우고자 시도했던 시간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모를 참은 시간들, 저력과 무기력을 동시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이루지 못한 꿈과 대답을 듣지 못한 애착 때문에 미쳐간 시간들이 모두 이 땅의 역사 속에 있다. 문제를 느끼면서도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밤이 왔고,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일들은 벌어지고 있으며, 제대로 갈무리되지 못한 기억들은 베개 밑에 놓여 있다. 고이 접히지 못한 채 놓여 있다. 정치 공동체는 곧 기억의 공동체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떤 서사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 P-1
인간은 변하는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에 나오는 구 동독의 고위 관료는 말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인간을 자기 예측대로 통제하고 싶은 사람은 인간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이 변하지 않아야 예측하기 쉽고, 예측하기 쉬워야 통제하기 쉬울 테니까. 두고두고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사람도 상대가 좋게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가 변하지 않아야, 자신의 증오가 계속 정당화될 테니까. - P-1
비즐러라는 인간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나? 외로운 관료적 기계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그간 자신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이 상상한 예술가들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이제 비즐러의 마음에 무엇인가 온다. 이 변화의 순간이란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 것일까.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변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가르친다고 냉큼 오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계몽 프로그램에 참석한다고 후다닥 오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한다고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의외의 순간, 변화는 일어난다. 비즐러의 경우 가면을 벗은 예술가들의 모습에 직면했을 때 그 순간이 왔다. - P-1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 P-1
"저자의 목을 쳐라!" 세상에 여러 악연이 있겠지만, 목을 베는 사람과 목이 베이는 사람 간의 악연만 한 것도 드물다. 저 사람을 딱히 미워할 것도 없는데, 망나니는 이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목을 쳐야 한다. 죽을 사람은 망나니가 직업상 할 수 없이 자기 목을 베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망나니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목 베인 이의 자식이 그 망나니를 길에서 마주치면 어떨까. 과연 아무 감정 없이 지나칠 수 있을까. 이 원한은 대를 이어 지속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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