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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ㅣ 나의 대학 사용법
이범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5월에 나온, 아직은 따끈따끈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교육평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범. 청소년 및 청년층을 타깃으로 하여 창비에서 펴낸 '나의 대학 사용법'이라는 시리즈의 일환이다. 4차 산업 혁명의 불안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지금, 본서는 먼저 현재의 한국 교육계 및 노동시장의 현실을 진단한다. 이어 미래 변화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려는 개인 및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학벌과 스펙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실력과 전문성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에 대한 근거로서 먼저 대학 서열이 학벌로 발전하게 된 매커니즘을 먼저 제시하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현대사가 흘러오면서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대학 서열이 뚜렷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때 높은 서열의 대학을 채우는 부류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험형 인간'이라는 것. 아래에 저자가 시험형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을 짧게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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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사람이 가진 능력 중에 시험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부분적입니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은 인간형 자체가 좀 남다르지요. 저는 농담 삼아 ‘시험형 인간’이라고 부르는데요, 인정 욕구와 성취욕이 강한 편이고 지능도 높은 편이고 약간 강박적 성향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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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알라딘 카드리뷰)
입시가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여 최상위권 대학이 이런 시험형 인간으로 채워지게 되고, 또한 고시 제도에 힘입어 정부 인재 풀 역시 명문대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에 따라 민간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산업화 시절부터 민간 또한 명문대 출신을 중심으로 인재 풀이 형성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 경제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고, 저자는 이를 이후 1,000대 상장사 CEO의 SKY대학 출신 비율이 점차 감소하는 경향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시험형 인간'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학벌 형성 과정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참 흥미롭고,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 나라 개혁을 위해 첫 번째 해결책으로 제시한 '애국 진보(청년세대가 애국주의 국가관을 가진 진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우선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현재의 파국적인 저출산 문제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문제 인식에서 나온 해결책이 '애국 진보'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애국심을 기초로 한 연대 의식을 통해 협력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인지하고, 모두가 애국심을 가진 진보주의자가 되자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애국 진보의 길에 놓인 걸림돌로 한국 진보주의의 '개인의 자유·자율과 시장을 옹호하는 특성'을 든다. 그 특성의 원인으로는 한국 진보주의가 과거 정통성을 북한에 두었고, 국가주의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념이었다는 역사주의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선 한국 진보주의가 과거 정통성을 북한에 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적어도 신자유주의 이후 행정학적 관점에서의 최근 한국 진보주의적 국가관은 그가 설명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국민들은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에 이어 점차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도 이에 따라, 보편적 복지 정책 등에 의한 국가의 사회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는 추세에 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국민들은 삶의 더 많은 부분을 국가에 의지하고자 하며, 그에 따라 국가가 책임지는 부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즉 현재의 한국 진보주의가 개인의 자유, 자율과 시장을 옹호한다기보다는 개인·시장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조화시키려 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저자가 청년층이 함양하기를 바라는 애국심 자체가 현재로서는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거 과도한 국가주의 시절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이지,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 나라 청년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일부 내용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학벌의 영향력은 취업시장에서 감소할 것이라 본다. 학벌과 업무능력 간 관련성에 의구심을 갖는 여론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나본 유명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도련님, 공주님의 증가'를 호소한다고 한다. 스펙 좋고 허우대 멀쩡해서 뽑았는데, 수동적이고 자기만 알아서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전문성과 업무 능력만 뛰어나다면 학벌과 스펙에 굳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 외에 희소성 있는 능력,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쓰는 것 또한 저자가 꼽는 탈학벌 시대의 대응 전략으로 꼽는다.
책의 내용을 전부 소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18년간 교육 평론가로 일한 경력답게 저자의 분석과 해결책은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통찰력이 있다. 우리의 직업과 미래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참신하여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없인 실행되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든다. 과연 정책 담당자들이 그의 제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할 상상력을 가지고 있을지……. 어쨌든 주목할 만한 책이다. 앞으로의 우리나라 사회 변화와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50 미국은 계급 문제와 인종 문제가 결합되어 있고 굉장히 풀기 어려운 상태지요. 미국에는 ‘교육열’의 ㄱ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지역이 굉장히 많아요. 길거리에서 버젓이 마약을 파는 동네에서 교육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니 오바마에게 어떤 정치적 상징이 필요했고, 그 상징으로 한국이 채택된 거지요. 왜? 한국은 교육열이 높으니까요. 또 우리는 미국보다 계급 분화가 덜 진행되어서 아직은 경제적 형편이 좋은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이나 모두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미국의 백인 중산층 이상에게는 한국 교육열을 본받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이들은 이미 교육열이 높거든요. 물론 우리와 교육열의 색깔이 좀 다르긴 하지요. 오바마가 한국 교육열을 본받자고 하니까 미국 교육을 잘 모르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에서도 어지간히 교육열이 있는 지역에서 앞서 말한 교육을 충실히 받은 학생들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고급스러운 교육을 받은 거예요. - P50
57 요새 4차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에르네스트 만델이라는 경제학자가 했던, "너 내일 살아 봤냐?"라는 말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인공 지능에 의한 자동화니까 과거에 있었던 변화들과 질적으로 다를 거라고들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1차 산업 혁명부터 시작해서 여태까지 자동화는 여러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총 일자리 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습니다. - P57
58 저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그토록 공포스럽다면, 지금부터 아예 역발상으로 자동화가 안 될 만한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요새 대학 진학률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고,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부모가 사회적으로 상당히 명망 있는 분인데도 자녀가 대학에 안 간 경우가 점점 많이 보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서울대 교수인 분이 있는데, 큰아들이 대학에 안 갔어요. 중학교 때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방송에 관심을 보이길래 방송과 관련된 특성화고에 보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적성에 맞아서 그런지 잘 배우고 금방 취업해서 지금은 승진도 많이 했대요. 생각해 보면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잖아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채널이라고는 공중파 서너 개에 케이블 몇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방송이 큰 산업이 되었죠. 게다가 방송 제작 과정 중에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이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을 겁니다. - P58
87 대학들의 수준이 고르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대학들의 수준이 서로 엇비슷하고 편차가 적다는 의미에서 평준화되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독일에서는 어느 대학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학을 졸업할 때 우수 논문상을 받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 P87
158 ‘탈스펙’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은 뭘까요? 전문성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을 잘 들여다보면서 좀 더 능동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앞에서 제가 몇 가지 팁을 드리기도 했는데 ‘탈스펙’은 개인적인 대응이 가능해요. 반면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개인적 대응이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애초에 ‘금수저’이거나 로또에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말이죠. 양극화는 정치적,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긴급한 이유가 바로 심각한 양극화로 인해 사회가 피폐해지고 여러분 개개인의 미래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에요.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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