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황선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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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장미가 인정하지 못하거나 잘 모르는 게 있었다. 장미가 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누군가에게는 장미도 시선을 끄는 데가 있는 애라는 사실. 장미가 혼자 남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그나마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믿는 것과 달리 제법 괜찮은 애라는 인상을 주곤 했던 것이다. - P94

140 포만감이 날 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건 장미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청소부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 버렸다. - P140

199 "당분간만이야."
청소부가 딱 잘라 말하고 나갔다.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장미는 군소리 없이 청소부를 따라갔다.
김순영. 그녀가 병원비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묻지 않았고 당분간이 얼마 동안을 의미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통원 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녀가 곁에 있기로 했고 머물 곳이 그룹홈은 아니라는 걸 짐작한 게 다였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따르면서도 장미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청소부는 고모보다 먼 사람이었다. 내가 미쳤지, 라는 말처럼 언제든지 정신 차리고 타인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녀가 언제 돌아서든 상관없으려면 경계심을 가져야만 했다. 그게 언제든 덜 힘들게 괜찮을 수 있게. - P199

231 한밤중에 진주로부터 문자가 왔다.
-ok?
괜찮은지 묻는 듯했다. 붙잡히지 않고 무사히 왔는지.
-ㅇㅇ
-잘살아기지배야
-너두
-나이제너몰라안녕
안녕. 그 글자를 장미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숨 막히게 붙어 있는 글자들. 진주가 떠났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서 이걸 보냈을까. 이렇게 적으며 진주는 웃었을까. - P231

232 장미는 꾸역꾸역 밥그릇을 비웠다. 청소부는 장미가 짐작만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른이다. 고모도 꺼린 자기를 챙겨 주고 편이 돼 주고 옷을 사 주고 집에 들이고 택시비를 내준 사람이다. 장미에게 유일한 어른, 유일한 의지. 그렇다고 장미가 안심한 건 아니었다. 설명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다. 청소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믿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랐다. 간절히.
청소부가 식탁 귀퉁이에 놓였던 쪽지를 집어 들었다. 밤에 하티 분유를 타던 중에 장미가 적어 놓은 거였다. 제가 너무 나쁜 애라서 정말 죄송해요. 청소부가 마음을 풀고 용서해 주기를, 모든 걸 눈감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거였다. 경찰에 연락할 줄 알았으면 남기지 않았을.
청소부가 장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거야."
그 소리가 장미의 심장에 쿡 박혀 버렸다. 감당할 수 없게 몸이 떨려서 장미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말이 되지 못한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기어올랐다. 몸이 뜨거워졌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도망치는 장미를 청소부가 붙들었다. 그리고 숨도 못 쉬게 끌어안았다. 청소부의 앞자락에는 조금 전에 만든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장미처럼 뜨겁고 장미처럼 떨고 있는 가슴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 장미는 믿었다. 괜찮을 거야. 나쁜 일 아냐.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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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의 기술 - ‘남을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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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며, 강준만 교수의 책은 앞으로도 출간된 그 해 읽는 것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분명 시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9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한때는 성공과 축복의 원인이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실패와 저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대변되는 국가 존망의 위기마저 불러왔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초월하는 ‘출산율 1.05’ 쇼크에 대해 ‘두려운 미래’, ‘또 하나의 핵폭탄’, ‘국가적 재앙’ 등과 같은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 양식은 여전히 평온을 적으로 여기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 P9

71 솔직을 빙자한 무례는 인간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엔 ‘솔직을 빙자한 무례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윌리엄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게 흥미롭다. "잔인한 사람은 자신을 솔직함의 본보기라고 말한다."
세상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걸까? 언제부턴가 솔직을 빙자한 무례가 너무도 당당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다룬 책이 리처드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이다.
공적 인간은 공적 영역에서 정해진 관습에 따라 행동하던, 옛 금기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을 말한다. 공적 인간은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내보이며 진정성 있게 행동하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가면을 쓴다. 그런데 감성과 진정성을 좇는 현대사회에서는 친밀함의 과대평가로 인한 ‘친밀함의 독재tyranny of intimacy‘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런 공손한 사회적 관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면을 쓰는 것이 정중함의 본질임에도 가면을 쓰는 행동은 진실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 - P71

91 민감한 사람의 모든 행동이 다 바람직하거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감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창의적이고, 세심하며, 협력적이고,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하다 보니 지나친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며, 남들의 반응에 무척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오래전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의 민감성을 본질적으로 병적인 성격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4분의 1을 병적으로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 P91

102 나는 글쟁이로서 가끔 우연한 기회에 독자들을 만나는데, 좀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글쟁이 역사가 30년쯤 되는데, 그간 나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은 옛날의 나만을 기억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사를 건네니 나로선 할 말이 없어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닌데도, 잠시나마 어제의 나로 행세해야 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누구든 한 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칵테일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안다는 건
우리가 그들을 알았던
순간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들은 그때 이후로 변했고
우리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라네.

이렇듯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도 과거 경험의 포로가 되어 현실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평가하는 오류를 가리켜 ‘정적 평가의 오류fallacy of static evaluation‘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왜 오류냐고 반문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일관성을 높게 평가하는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 P102

103 "어리석은 일관성은 편협한 마음의 유령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다."(오스카 와일드)
"사람들이 유일하게 진정으로 일관적인 때는 죽은 것이다."(올더스 헉슬리) - P103

122 소신, 고집, 아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없다. 모두 다 ‘신념’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소신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꼴통’의 광기로 보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며,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나의 의지는 굳다. 너는 고집이 세다. 그는 어리석을 정도로 완고하다."

영국 런던의 한 잡지사는 이와 같이 주어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변하는 유형들을 모집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당선작으로 뽑힌 것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나는 정의에 따라 분노한다. 너는 화를 낸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날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너는 변심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권혁웅은 1인칭과 3인칭의 평가 차이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이고 절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는 무모하고 단순하며 소심하고 욕정적이고 억압돼 있으며 분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다." - P122

131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는 논쟁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논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듯이 논쟁을 피하라. 논쟁은 열이면 아홉이 결국 참가자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전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논쟁에서 지면 당연히 지는 것이고, 만약 이긴다고 해도 그 역시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일까? 자, 당신이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그가 틀렸음을 입증해서 이겼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당신이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당신은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는 당신의 승리에 분개할 것이다." - P131

146 "용서처럼, 행위 자체는 드물면서 그토록 많이 쓰이는 말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용서가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처벌받으면 천운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된다. 용서는 판타지다. 용서만큼, 가해자 입장의 고급 이데올로기도 없다. 나는 용서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_정희진, 「용서?」,『한겨레』, 2016년 11월 5일. - P146

148 "‘사랑을 해봐야 용서한다’란 말이 있다. 나는 힘들게 힘들게 그들이 내 삶에 끼친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보니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안 변했지 않은가. 결국 저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다. 나는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

_오병상, 「작가 한수산 씨: "믿음의 글쓰기로 제2의 인생 출발"」,『중앙일보』, 2000년 9월 8일, 13면; 배문성, 「고문의 악몽…결국 나를 위해 그들을 용서했다"」,『문화일보』, 2000년 8월 4일, 17면. - P148

152 그런 일엔 특히 걷기가 도움이 된다. 걷기보다는 산책이라는 단어가 더 멋있게 들리니 산책이라고 하자. 웬만한 철학자들치고 산책의 힘을 역설하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산책은 사색에 큰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 P152

158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지닌 생각은 모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서 우리가 터득하는 것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절도 망각증kleptomnesia‘에 사로잡히기 쉽다."

_애덤 그랜트(Adam Grant), 홍지수 옮김,『오리지널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한국경제신문, 2016), 22~23쪽. - P158

158 이에 대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창성에 대한 말들이 이렇게 많지만 그게 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이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어쨌든 에너지, 힘, 의지를 제외하면 실제로 무엇을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_해럴드 불룸(Harold Bloom), 양석원 옮김, 『영향에 대한 불안』(문학과지성사, 1973/2012), 123쪽. - P158

161 빌 게이츠Bill Gates가 독창성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라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한 가지 정도의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뿐이며, 거의 모든 해법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다만 그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재능은 이러한 해법을 발견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개발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 P161

172 레베가 코스타Rebecca Costa가 잘 지적했듯이,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책임의 개인화’ 현상이 문명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옳다거나 불가피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완화하기 위해선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거시적으로만 접근하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려는 ‘우도할계牛刀割鷄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자기계발 붐은 ‘능력주의memritocracy‘라고 하는 신화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보다는 오히려 능력주의의 허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게 나은 대안일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욕하는 대신 그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 P172

176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의 명단엔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이 14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도 이름을 잘 아는 존 D. 록펠러1839-1937, 앤드루 카네기1835-1919, J. P. 모건1837-1913을 비롯한 14명은 모두 1830년대에 출생했다. 왜 그럴까?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시기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가 등장했으며, 전통적인 경제를 지배하던 규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184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면 그는 이 시기의 이점을 누리기엔 너무 어리고, 반대로 1820년대에 태어났다면 너무 나이가 많다.
개인컴퓨터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1975년이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다. 실제로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들은 거의 대부분 그 시기에 태어났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밋 등은 1955년생이며 다른 거물들도 1953년에서 1956년 사이에 태어났다. - P176

193 "내가 연구 대상으로 만난 대학생의 65%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교 야구잠바를 볼 때 ‘일부러’ 학교 이름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학교 야구잠바가 신분 과시용 소품이라는 방증이다. 실제로 야구잠바를 입는 비율도 이에 따라 차이가 나서, 이름이 알려진 대학일수록 착용 비율이 높았다. 낮은 서열의 대학 학생들이 학교 야구잠바를 입고 다니면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라 신촌으로 놀러오는 그쪽 대학생들은 자신의 야구잠바를 벗어서 가방에 넣기 바쁘단다. 심지어 편입생의 경우엔 ‘지가 저거 입고 다닌다고 여기 수능으로 들어온 줄 아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 야구잠바는 대학 서열에 따라 누구는 입고, 누구는 안 입으며, 누구는 못 입는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개마고원, 2013), 163쪽. - P193

199 강원국은 이어 "직장인은 인문학 열풍에 너무 깊숙이 빠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에게 나를 찾으라는 주문은 가혹하다. 과연 나를 찾은 사람이 직장 생활에 몰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 그 반대다. 인문적 직장인은 일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상사 앞에서 쩔쩔매지 않는다. 동료와 거래처에 관대하다. 후배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조바심과 경쟁심을 부추겨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에 부적합하다. 모난 돌이다. 결국 정 맞는다." - P199

206 자신에겐 키우고 활용할 만한 강점이나 잘 하는 게 없다고 버티면 하는 수 없긴 하지만, 문제는 약점을 감추려고 애쓴다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일 뿐이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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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1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계속해서 더운 날씨예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8-07-17 22: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이제야 대댓글 다는 방법을 알았네요.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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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홧김에 김지영 씨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P139

149 의사는 모니터에 뜬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훑어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P149

151 김지영 씨가 결혼하던 해에 자연주의 출산 관련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되고, 이후로 관련한 책들이 출간되면서 자연주의 출산 붐이 있었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아이와 엄마가 주체가 되어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자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김지영 씨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병원을 선택했고, 출산 방법은 부모의 가치관과 사정에 따른 판단일 뿐 어느 것이 더 낫고 말고 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언론에서 병원의 처치와 약물들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악영향을 언급하며 죄책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 P151

180(작품 해설)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에 여성에 대한 대표성을 지니는 캐릭터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에는 ‘나답게‘ 사는 것, 그래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개인의 과제가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좀처럼 ‘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내가 구성되는데, ‘나‘를 구성할 만한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정체성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험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정체성들 중에서도 자기 정체성의 핵심은 ‘성‘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한국인의 절반은 상당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성에 기반한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모든 공적 영역에 작동하는 강력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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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범우사상신서 30
자크 모노 지음 / 범우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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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리고 인간: 필연적이면서도 우연적인 존재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1985년 번역 출간)
 

 삶은 운명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연속일 뿐인가? 평생 한 번쯤 우릴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건 이 질문이 결국 ‘우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수 있나?’, 혹은 ‘우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나?’와 같은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고, 우리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행복한 삶과 관련이 있어서일 것이다.

 

 ‘라플라스의 도깨비’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1749-1827)가 19세기 초에 떠올린 것으로, ‘‘현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유추하는 존재'이다. 만약 이 누군가가 전 우주의 모든 원자들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다면 고전 역학의 법칙들로 그 원자들의 그 어떤 과거나 미래의 물리 값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출처: 위키백과)’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은 운동 법칙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과학적 결정론의 상징이다. 현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긴 하지만, 이 관점에서라면 삶도 운명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위 문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우선 저자는 노벨 생리·의학상(1965)을 받은 20세기의 과학자다. 바로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1910-1976). 이 책 『우연과 필연』은 프랑스에서 1970년에 출간됐다. 책에서는 현대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의 출현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삶은 어떨까?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모노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생명을 바라보는 두 개의 전통적 관점인 생기설과 물활설의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생기설은 ‘생물체는 무생물체와 성질상 다르다'는 관점이다. 여기에서 생명과 무생명의 구별은 합목적성(어떤 사물이 일정한 목적에 적합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성질.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곧 생명체는 무생물과 달리 분명한 목적을 갖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편 물활설은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혼,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이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생기설적 관점에서 ‘합리적 지성은 비생명 물질을 지배하는 데는 매우 적합한 수단이지만 생명 현상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47p)’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관점은 다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이미 모든 생명체가 가진 놀라울 정도의 구조적 동일성을 파악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인 저자 역시 생명에 있어서 ‘신비의 영역’은 이미 거의 소멸되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모든 생물의 화학적 기구는 단백질과 핵산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구조상 같으며, 대사 반응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과학적 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부터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학적 세계는 모든 것이 오직 객관성이라는 유일한 전제로 측정되는 세계다. 바로 이러한 특성 덕택에, 과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 내려오는 철학적 논쟁에 참여할 필요 없이 오직 모든 현상을 분석하여 불변성을 찾는 노력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철학적 논쟁들은 모두 ‘선험적인 것으로 제시되어 오기는 하였으나 실제로는 미리 품고 있던 윤리와 정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천적 구조물이었던 것이다(131-2p).’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과학 이전까지의 철학은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윤리와 정치를 위한 짜맞추기에 불과했단 것이다.

 

 이어 저자는 진화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현대 분자유전학에서 DNA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연구한 결과, 그러한 변화는 순전히 ‘우발적인 것이며 무방향적인 것(146p)’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목적없는 이런 우연한 변화가 생명체의 진화를 낳는 것이다. ‘그 변화가 유전의 텍스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이며, 이 텍스트가 생물의 유전적 구조의 유일한 저장물이므로, 그 결과 필연적으로 생물권에 있어서의 모든 신기한 것과 모든 창조의 원천은 다만 단순한 우연에만 있다고 할 수 있다(146-7p).’ 즉 저자가 책 제목에서 말한 ‘우연’은 곧 돌연변이를 뜻한다. 이는 양자적 구조가 원인이라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예견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한다. 더구나 책이 쓰여질 당시 ‘삼십 억에 이르는 인류는 각 세대마다 천억 내지 일조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다(157p)’고 하니, 유전정보의 우발적 변화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알수 있다. 결국 그는 진화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과학 분야의 모든 개념 중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주의를 파괴하는 것(147p)’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물론 인간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서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인 이상 우연의 영역에서 인본주의는 붕괴되었다. 그렇다면 책 이름에 쓰인 나머지 단어인 ‘필연’의 영역에서는 어떨까? 여기서도 인본주의는 처참히 무너진다. 우선, 어떤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당연히 그러한 행동을 한다. 놀라운 것은 학습된 행동조차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 행동을 발현시킬 거라는 게 미리 예정되어 있다. ‘프로그램의 구조가 학습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학습이라는 것도 종의 유전적 유산으로서 미리 만들어진 '형태' 속에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192p).’ 요컨대 유전자 및 모든 조상의 축적된 경험에서 우리의 행동이 유래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비교했을 때 하등 우월한 점이 없으며, 그 존재조차 우연적 산물이라는 점을 과학이 이토록 무자비하게 파헤쳤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토록 경계해마지않는 ‘인간 중심주의’의 불씨는 지금껏 거의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물질이 그 자체의 최고의 개화인 사고하는 정신을 비정(非情)의 필연성으로써 어느 날엔가 지구상에서 근절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더라도, 물질은 똑같은 필연성으로써 어떤 다른 장소, 어떤 다른 시대에 사고하는 두뇌를 재생시키고야 말 것이다(66p).’라고 역설하며 자연 변증법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창한 것, 그리고 소련 등 공산주의 진영이 자유주의와 냉전을 벌인 것은 각각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19, 20세기의 일이다. 인간 중심주의적 경향의 또 한 가지는 뇌와 정신이 실생활에서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뇌라는 관념과 정신이라는 관념과는 17세기의 인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실제 생활 체험 속에서 구별되고 있다(199p).’

 

 독서량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생명과학의 발견 간의 충돌’을 우려하는 주장이 뇌과학 연구 성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에서뿐 아니라 1970년 출간된 이 책에서도 이미 등장하였다는 사실이 꽤 신기하게 다가왔다. 오늘날 유발 하라리와 같은 유명 저술가들의 주장과 유사하게, 저자 또한 이러한 간극의 원인을 ‘두뇌와 정신의 이원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영혼 속에 비물질적인 '실체'를 인정한다는 환상을 단념하는 일은 영혼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전적·문화적 유산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개인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풍부함·측량할 수 없는 깊이 등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 개개인의 정신보다도, 집단으로 이어져 내려온 '호모 사피엔스' 종의 총체로서의 인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17세기 과학혁명으로부터 촉발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서 과학주의로의 전환은 오늘날까지 큰 진전을 이루어내고 있으나,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여전히 한 시대 안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함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가깝게는 자연계열 전공자와 인문계열 전공자 간의 소통 문제부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나아가 종교와 과학계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근대적 형벌 제도가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상치된다는 뇌과학계의 주장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2015)에서 지적했듯,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감옥제도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묘사했습니다. 그 핵심은 절대왕정 시대의 잔학한 형태에서 규율 훈련을 토대로 정신을 교정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때 전제가 되는 것은 이성적 판단 능력을 가진 개인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푸코 자신도 깨달았듯, 이런 근대적 형벌제도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중략)…

뇌과학 연구는 근대적 형벌제도의 전제에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정말로 이성적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범죄자의 경우, 뇌 속 회로에 원인이 있어서 범죄를 일으킨 게 아닐까요? 흉악범이나 약물중독자의 뇌가 종종 사례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아직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뇌과학자는 뇌가 원인이 되어 범죄행위가 일어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범죄의 원인이 그 사람의 뇌에 있다고 말하는 날도 머지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당연히 처벌 형태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처럼 형무소에 수용해도, 범죄의 원인을 치유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대적 처벌을 대신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을 구상해야 할 시기가 머지않아 도래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근대적 처벌제도는 이제 황혼을 맞이하는 듯합니다.”

 

_오카모토 유이치로,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생각하는가』(2018), 147p.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조와 생명과학의 최근 발견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간극을 그다지 오래 무시하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정치·사법제도는 모든 개인이 신성한 내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누거나 바꿀 수 없는 이 본성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근원이 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개인의 내면에 자유롭고 영원한 영혼이 거한다는 전통 기독교 신앙의 환생이다. 하지만 지난 2백 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이런 믿음을 철저히 약화시켰다.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내적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기서 아무런 영혼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침팬지, 늑대, 개미의 행동을 결정하는 바로 그 힘 말이다. 우리의 사법 정치체계는 그런 불편한 발견을 대체로 카펫 밑에 쓸어 넣어 숨겨두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2015), 334p.

 

 이러한 의문에 저자는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그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가치와 지식의 통합’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측한다. 따라서 과학이 점차 발달하면서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사는 최근의 시대를 관찰해 볼 때, 그가 말하는 과학에 의한 가치와 지식의 통합은 가능성 높은 미래로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에서 유물 변증법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물활설의 전통은 가치, 도덕, 의무, 권리, 금지의 기초를 신화적 내지는 철학적 개체 발생에서 구하고 있었던 것인데 과학은 이 모든 것들을 파멸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216p)."

 

 한편 이와는 대조적인 관점으로, 과학 또한 다른 철학과 마찬가지로 특정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과학사를 살피면,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란 신화는 무너지고 만다. 어느 시대가 낳은 과학이론은 과학자의 인생관, 자연관은 물론 당대의 시대사조나 사회·경제·문화적 제반 요소들이 상당히 긴밀하게 상호작용한 총체적 산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느 시대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어떤 과학이론을 출현시키는가 하면, 그 배출된 이론이 다시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되먹임 되어 직접 또는 간접의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사회적 다윈주의가 출현한 것은 그 가장 극적인 예이고, '엔트로피 법칙'이 현존 과학기술 문명에 깔린 발전 개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틀이 되는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_「국어」, 『2010년 대한민국 국가직 9급』, 4번 지문(원전을 찾지 못해 해당 출처로 표기)

 

 그러나 모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위 주장도 지식의 영역에 속한 과학을 무분별하게 가치의 영역에 대입해 버린 것에 불과하다. 즉,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의 힘을 물활론적 가치지향 사회에서 객관성을 결여한 채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위 주장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란 신화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말하는, 가치와 지식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현대인의 영혼의 질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래가 항상 예측한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며 주저 『사피엔스』를 마무리 지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는 달리, 자크 모노는 과학자로서 ‘필연’이라고 믿는 미래의 도래를 역설한다. 그것은 지식과 가치의 원천이 과학으로 일치되는 미래다. 이것이 그가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는 이를 ‘구약’을 폐기하고 ‘신약’을 만들어내는 일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현대 이전의 어떠한 사회도 이와 같은 분열을 경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이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킬 것이며, 이것이 ‘진정성의 탐구가 도달하는 필연적 결론’이라고 말한다. 그 유토피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인간의 마음은 진화가 축적된 산물이기에, 과학으로 가치와 지식을 통합시키면 필연적으로 과학의 힘 자체가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자크 모노는 말하고 있다. 만일 실현된다면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그 이상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마치 다른 차원의 우주를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서론에서 제시한 삶의 행복과 관련된 고민 따위는 전혀 의미를 가지지 않는 세상일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이 우연과 필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는 건 결국 앞일을 있는 대로 예측해 놓고서도, 미래는 항상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유발 하라리의 다소 어정쩡한 결론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능성 높은 미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돌연변이라는 우연적 요인에 의하여 결국 인간은 여전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한 까닭이다. 비록 38억 년 동안 축적된 유능한 시뮬레이션 장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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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는 것이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

88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완벽한 결과물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은 영화감독 봉준호가 <괴물>을 찍으면서 했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생시키다니 ‘나는 분명 지옥에 갈 것‘이라는 괴로움의 웅덩이에 수백 번은 빠지고 나서야 지나가는 것이다. 또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그의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정신병자처럼 환청에까지 시달리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 P88

127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을 만든 감독 데이빗 O. 러셀은 말했다. "모든 실수 뒤에 항상 새로운 기회가 뒤따른다는것을 상기시키는 것,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도희야>와 <비긴 어게인>은 결국 그런 이야기다. 실수, 또는 실패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실패를 주홍글씨처럼 이마 위에 새긴 채로 세상을 등질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 P127

135 달리기로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은 땀을 흘려 전보다 피부가 좋아진 것이나 온몸에 군살이 사라진 것 체력이 좋아진 것을 빼고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 살면서 살아 있다고 느낄때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달리다 보면 고통스럽기만 할 때가 태반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고통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배가 몸부림 치고 종아리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 P135

185 ​사랑에 실패했는데 왜 연애가 아닌 심리에 관한 책을 고르는 걸까? 이제 우리는 사랑의 문제가 다른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를 계속해서 갈아치우는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에 실패한 이유는 성적 매력이나 외모의 아름답고 추함, 물질적인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인간적 결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야 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 P185

212 10대일 때 부모의 품이라는것은 그저 구속이었겠지만, 성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우리는 그 품이 얼마나 안전했는지를 깨닫는다. 까밀은 그것을 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의 인생이 얼마나 벅찬지를. 그래서 때로 어떤 어른들은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을. 자신의 인생도 실패했다는 것을. 까밀은 모든 걸 되돌리고 싶다. 남편과 사랑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엄마가 죽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도 달라질 것 같아서다. 그런 면에서 40대의 카밀은 아직 덜 자란 어른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픔‘과 ‘기쁨‘의 조화를 익히지 못한 어른 말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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