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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평점 :
삶은 예측 불가하다. 어떤 때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신과 세상이 싫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엔 평온함이 찾아오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지나간 때를 회상하며 부끄러움에 젖기도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상스러운 것이 바로 삶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이겨낼수록 지혜로워진다고들 하지만, 그 말은 삶이 계속해서 고난을 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런 삶의 풍랑 속에 잠시나마 희망을 품게 하고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제법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아가 세상에 그 이로움이 미칠 수도 있겠다. 불만과 욕망, 자기 연민은 모든 파괴적 행위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게 『월든』은 그런 책이었다. 평온하고 침착하고 담담하게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이런 마음의 지속이 단지 며칠뿐이라도 괜찮다. 『월든』의 구절들은 삶의 길목에서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며, 내 책장에 영원히 꽂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틈날 때마다 책을 펼쳐 위안과 평온을 얻을 것이다.
18장으로 구성된 『월든』은 미국의 저술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2년여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 채를 지어 홀로(15p)’ 살던 때의 생활 내력, 호숫가의 자연 묘사, 그리고 그 생활에서 저자가 느낀 생각들을 한데 담아낸 수필집이다. 책의 핵심 주제는 ‘날 것 그대로의 삶에 직면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수풀을 폭 넓게 잘라내고 잡초들을 베어내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간 다음에,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서 그 결과 인생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성의 적나라한 전부를 확인하여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며, 만약 인생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 숭고성을 스스로 체험하여 다음번의 여행 때 그에 대한 참다운 보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139p)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 소로우는, 먼저 삶의 기본적인 요소를 성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이 온대성 기후에서는 인간 생활의 필수품은 식량, 주거 공간, 의복, 연료의 항목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겠다. 이것들을 확보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자유와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인생의 진정한 문제들을 다룰 준비가 되는 것이다.(29p) ……(중략)…… 나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현재 이 나라에서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도구, 즉 칼, 도끼, 삽, 손수레 따위이며, 학구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면 램프, 문방구 그리고 몇 권의 책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소한 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다.(31p)”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파악했으면 다음 단계는 그것들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다. 소로우는 아무것도 없는 월든 호숫가에 왔기 때문에 우선 집을 짓는다. 옷은 있던 것을 그대로 입는다. 먹을 것은 농사로써 스스로 얻는다. 처음에 말한 소박한 삶의 원칙대로 소로우는 이 모든 것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절하게 해결한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정착하고 생활하는 과정을 따라 읽으며,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에 크게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첫째는 ‘삶의 핵심 기술을 숙달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먼저, 삶의 핵심 기술은 소로우와 같은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 공부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82-3p) ……(중략)…… 다음 두 학생 중 한 달이 지난 다음에 어느 쪽이 더 발전해 있을까? 즉 한 학생은 관련 서적을 두루 읽으면서 자신이 직접 쇠붙이를 캐고 녹여 주머니칼을 만들었고, 다른 학생은 대학에 나가 야금학 강의를 들으면서 아버지로부터 ‘로저스 표’ 주머니칼을 선물받았다면 말이다. 둘 중에 누가 더 손을 잘 베이겠는가?(83p) ……(중략)…… 가난한 학생들까지도 정치경제학만 공부하고 강의받고 있을 뿐, 철학과 동의어 관계에 있는 생활의 경제학은 대학에서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와 세의 경제학 서적을 읽고 있는 동안 그 학생은 자기 아버지를 헤어날 수 없는 빚 구덩이에 몰아넣고 마는 것이다.(83-4p)“
나는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만 흥미를 기울였지, 정작 그 목적이 되는 ‘필요’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화폐는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지만, 인간이 삶에 응당 가져야 할 관심을 빼앗아간다. 스스로를 화폐 그 자체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그런 삶은 무기력함을 주고 자기 주도감을 앗아간다.
사치품에 재산을 소모하지 않는 것은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편 중 하나이겠지만, 나는 삶의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즉 의․식․주에 관련된 웬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한 인간이 성숙해지는 데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목공․건축․요리․농사에 필요한 기술 말이다. 꼭 써먹지 않더라도 자신감을 줄 것 같다. 이는 성공적인 개인주의적 삶과도 연결될 것이다. 생활의 독립성은 삶을 자신의 원칙대로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소로우의 이런 면모는 대상에 대한 집중력과 관찰력, 그리고 거기로부터 나오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가 얼음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가장 흥미 있는 대상은 역시 얼음 그 자체이다. ……(중략)…… 얼음이 아직 비교적 단단하고 거무스레한 동안에는 얼음을 통해서 물이 보인다. 이들 공기 방울은 지름이 1인치의 80분의 1부터 8분의 1까지의 여러 크기이고,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얼음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368p)”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법한 얼음을, 소로우는 흥미롭게 관찰한다. 이런 세심한 집중력과 관찰력에서 자연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어떤 한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소로우가 월든 호수 및 호수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개발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욕망을 가지지 않는 절제하는 삶을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평안함을 깨는 것은 보통 과도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만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 만물에 대해 마음을 연다. 호숫가에서 경험하는 자연이 모두 그의 친구와도 같았다. 다람쥐, 되강오리, 개미, 집에 사는 거미들을 포함해 숲을 지나다 우연히 찾아오는 손님들조차 그는 꺼려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서 나아가 인간을 도구화시키는 흑인 노예제도에도 역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당연히 무분별한 자연 개발에도 반대하는데, 자연 개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세기에, 미국인이었던 소로우가 보여준 이러한 태도는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로우는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2년 2개월을 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 이에 반해 나는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삶에 직면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세상의 권위에 삶에 대한 해석을 내맡기려던 경향이 컸던 것 같다.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알 수 있는 기회를 내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누구인가는 고민하지 않고 중요한 것들을 방치해왔다. 물론 스스로의 삶에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을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기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아래의 구절에서 느껴진 소로우의 담담한 태도에 큰 감동을 얻었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484-5p)”
한편, 『월든』에서와 같은 소박한 삶을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로우는 모두가 월든 호숫가의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도 평생을 월든 호숫가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소박한 태도를 갖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다.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집과 옷……. 단순히 의식주만 해결하기에는 인간은 바라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또 소박한 삶을 방해하는 불가피한 사회적 관계도 많다. 이를테면 소로우는 가정이 없는 독신자였다. 만일 그에게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었다면, 그는 대범하게 월든 호숫가로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들어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도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 과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을까? 요새 귀농하는 인구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쉬운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월든』을 읽으면서 삶의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고 나자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장경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불필요한 요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소박한 삶, 그러한 삶에서 오는 평온,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삶에 연민 없이 직면하는 용기를 가지기를 꿈꾼다. 삶과 인간, 나아가 자연을 더욱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 역시 샘솟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월든 호숫가에서 소로우의 이야기를 듣는 이 며칠이 내겐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완성하고 노트북을 닫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