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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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런데 그때 문득, 번쩍 하고 스치는 생각은, 사실 대부분의 역사가 바로 그것 아니었느냐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생애의 상당 부분을 휴일에 관해서, 새로 구입한 그물침대에 관해서, 또는 길 건너편에 멈춰선 전차에서 내린 젊은 아가씨의 발목이 얼마나 예쁜지에 관해서 생각하며 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이런 것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같이 우연적인 것으로, 즉 진지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미주리 협약이나 장미전쟁에 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런 반면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하는 것, 재미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의 역사를 배우거나 또는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받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가?

(중략)

그리하여 나는 집 안을 한번 여행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그 각각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될 것이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가 될 것이고, 뭐, 그런 식이었다. 결국 나는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었다.

(중략)

집이란 놀라울 만큼 복잡다단한 일종의 보고였다.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뭔가를 발견하건, 뭔가를 만들건, 또는 뭔가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건 간에-이런저런 방식으로 결국 누군가의 집에서 끝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전쟁. 기근, 산업혁명, 계몽주의 등등. 이 모두는 누군가의 소파와 서랍장 속에 들어 있었으며, 누군가의 커튼 주름 속에, 누군가의 베개의 푹신한 부드러움 속에, 누군가의 벽에 칠해진 페인트 속에, 누군가의 배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속에 들어 있었다. 따라서 집 안 생활의 역사는 내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처럼 단순히 침대와 소파와 부엌 난로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혈병과 구아노와 에펠 탑과 빈대와 시체 도둑질을 비롯해서 지금껏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에 관한 역사였다. 결국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책의 서문 중 일부이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먼저 쓰고 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우주에 대해 논했지만, 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는 일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망원경을 가지고 이 세계에 대해 파노라마식 서술을 한다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현미경을 가지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만, 분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제목만 보아서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또한, 평소 가지고 있던 관심사나 기본 지식에 따라 재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각 장에 대한 재미도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독파한 이후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영국 하녀들의 이야기가 나온 제5장을 읽을 때 집중도가 높았고, 제9장 지하실에서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드윗 클린턴이 뉴욕 주를 관통하여 이리 호수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가리켜 '클린턴의 폴리(Clinton`s Folly)'라고 불렀다면서 "어리석음"이라는 뜻과 함께 "큰 돈을 들여서 만드는 쓸모없는 건축물"이라는 뜻이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 중 'Dead Man`s Folly'라는 소설이 있으며, 이 소설 또한 그 두 가지 의미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장 전체에 대한 재미가 올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요즘 셜록 홈즈를 읽고 있는데, 제10장 복도에서 미국의 벼락 부자들이 현금에 굶주린 유럽의 귀족들을 찾아내서 자기 딸을 그쪽으로 출가시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운 결혼이 유행을 넘어 증후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이 셜록 홈즈의 단편에 나와 있다. 시리즈 1권에서 다룬 『셜록 홈즈의 모험』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독신 귀족」에서 영국의 몰락한 귀족이 미국의 부유한 여성을 신부로 맞고 나서, 결혼식 후 실종된 신부를 찾아달라며 홈즈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석에서는 당시의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영국의 여성들이 신랑감을 미국 여성들에게 뻇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는 설명도 있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이 책은 꼼꼼하며, 알차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묘사는 생생하며, 지식은 풍부하고, 서술은 유려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러모로 딱 맞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이 책은 입문서로는 좋은 책이지만, 왠지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새롭게 업데이트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문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학설은 또 바뀔 것이기에. 재미로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고, 여기 나와 있는 상식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히 책 값 이상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

제1장 연도
제2장 배경
제3장 홀
제4장 부엌
제5장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제6장 두꺼비집
제7장 거실
제8장 식당
제9장 지하실
제10장 복도
제11장 집무실
제12장 정원
제13장 보라색 방
제14장 계단
제15장 침실
제16장 화장실
제17장 육아실
제19장 다락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역자 후기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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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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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책의 시작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스토너는 주인공의 이름이며, 이 책은 스토너의 일대기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지만,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부귀영화에 큰 욕심이 없는 그는 평생 학문에만 열중하고, 교수가 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세상을 떠난다. 크게 튀는 부분이 없는,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의 이야기는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21세기에 들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수많은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왜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어쩌면 나 또한 나이가 들면 이 소설이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소설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평범한 삶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대체 평범한 게 있기나 한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고, 이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 조차도 사실 열심히 노력해야만 가능한 삶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은,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청혼하여 결혼하였으며, 사랑스러운 딸을 두었고, 심지어 중년에 뜨거운 사랑도 경험하였으며, 평생 현역으로 살다가 노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체 이 사람의 인생 중 어디에 내가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지나치게 냉정한 탓일까?

 

가난했지만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의 전공을 바꾸었으며, 큰 무리 없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장 생활을 했다. 경제적 격차가 있는 집안의 여자와의 결혼도 여자의 부모가 그렇게 반기지 않았을지언정 결국 성공했으며, 실제로 결혼 후 처가로부터 약간 도움도 받는다. 사랑스러운 딸의 결혼 생활은 늘 장밋빛은 아니었지만, 평생 딸은 시댁과의 관계가 원만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시련이 없었으며 손자까지 낳으며 나름 만족하고 산다. 죽을 때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중년에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연하의 여성과 열렬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평생 미주리주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결국 보내야했기 때문에? 학과장이나 총장 등 크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체 어디에서 슬픔을 느껴야 할까? 그가 고독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고독은 그가 어느 정도 자처한 면이 있다. 학문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조용한 세계를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그의 조용한 고집이 다른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는 선하고 참을성 많고 성실한 성격이었으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낙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이었다. 21세기 한국의 독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진 나는 종종 가슴을 쳤다. '이 사람아, 왜 당하고만 있어. 찍소리라도 내봐야지. 딸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캐서린을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과 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상상.

하지만 작가와 스토너는 끝까지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악의 무리는 승승장구했다. 상황을 단번에 바꿔주는 극적인 반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몹시 아쉬워하다가 결국 깨달았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본문 맨 뒤에 붙은 옮긴이의 말이다. 그런데 옮긴이가 지적한 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가 과연 악의 무리였을까? 내가 잘못 독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부족한 인간일지언정 악의 화신은 아니었다. 스토너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결혼 전 이모와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이디스에게 청혼하며 스토너는 결혼 후 자신이 유럽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디스가 딸 그레이스에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그는 찬성하지 않지만, 두드러지게 반대하지도 않는다. 정말 딸을 사랑했다면 파국을 각오하고서라도 아내와 큰소리를 내며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기치 않은 딸의 임신 소식을 들은 부모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그 부분에서는 스토너가 참을성이 있고 담대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딸에게조차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소식을 듣고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딸이 아니라 조카라면, 대녀라면, 여동생이라면 가능했을 반응 아닌가? 찰스 워커의 경우, 분명히 문제가 많은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교수라면 그의 반항적인 행동을 포용해줄 수는 없었을까? 찰스 워커의 예비 구두시험에서 로맥스의 행동이 문제라면 동일한 정도만큼 스토너의 행동도 비판받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떨어뜨리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는, 직업으로서의 교수, 학자로서의 양심에서는 훌륭할지는 모르나, 그보다 수십 년 뒤에 태어난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이자 인생의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는 태도는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워커가 절대 교육자가 되면 안된다고 단언하는 스토너의 그 태도야말로, 교육자로서 결격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너가 몰랐을까? 평생 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슴속에 새겨가며 살아온 인물이 스토너가 아닐까?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 그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평생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 스토너는 그것을 원했고 어느 정도는 이뤄냈다고 보여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차피 소설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행위인데, 나에게 좋은 소설은 등장 인물을 얼마나 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이다. 너무나 나와 닮아서 미워할 수 없거나, 내가 꿈꾸는 삶을 보여주거나, 이상하게 공통점이라고는 없는데도 위로를 받는 것 같거나, 아니면 소설 속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연민을 자아내거나.

 

책날개 뒤쪽에 선데이 타임스 리뷰 일부가 실려 있다. "나보코프 같은 계략, 제임스 같은 반전, 콘래드 같은 묵직한 의미, 포드 같은 뒤틀림은 없다." 어쩌면 이런 점들 때문에 아직 젊은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지도. 10년쯤 뒤에 이 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달라질까? 스토너를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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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 그의 마지막 인사 | 셜록 홈즈의 사건집, 셜록 홈즈 탄생 150주년 기념판 ㅣ 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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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두껍다!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네 번째 권을 보고 든 생각이다. 672쪽. 앞의 세 권의 분량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상대적으로 여태껏 읽었던 세 권의 책이 가벼워 보일 지경. 침대에 벌렁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함부로 들고 훌쩍 누웠다가는 좀 과장해서 내 손목이 삐끗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스트랜드 매거진》에 먼저 단편을 발표하고, 또 그 단편의 책 한 권의 분량이 되면 책으로 나오고, 이런 과정을 당시에 반복했을 텐데, 앞의 세 권은 각각 단편집 한 권이지만, 이 네 번째 권은 단편집 두 권을 묶었다. 하나씩 출판하기에는 양이 좀 부족했겠지. 그래도 각각 300쪽 정도는 되기에 합쳐 놓았더니 6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첫 번째 권에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두 번째 권에서 충격적으로 실종되었으며, 세 번째 권에서 영웅이 되어 귀환했다면, 네 번째 권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생전에 아서 코난 도일은 장편 4편과 단편 56편을 썼는데, 1~4권까지는 단편이 순서대로 실려 있으며, 5~6권에는 각각 2편씩 장편이 실려 있다. 물론 단편만 죽 쓰다가 장편을 쓴 것이 아니라, 현대문학에서 장편과 단편을 나눈 후, 다시 그 안에서 순서대로 편집한 것이다.

 

주홍색 연구(1887년)-장편-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네 사람의 서명(1890년)-장편-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셜록 홈즈의 모험(1892년)-단편집-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셜록 홈즈 회고록(1894년)-단편집-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1902년)-장편-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돌아온 셜록 홈즈(1904년)-단편집-주석 달린 셜록 홈즈 3

공포의 계곡(1914년)-장편-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그의 마지막 인사(1917년)-단편집-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셜록 홈즈의 사건집(1927년)-단편집-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그러니까 생전에 장편 두 권을 먼저 쓰고 나서 단편 연재를 시작하여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가, 다시 장편을 연재하였고 이어 단편집으로 귀환을 화려하게 알렸으며, 이후 마지막 장편이 나오고 단편집으로 작별을 고한 후 마지막으로 그의 사건집을 수록한 책이 나온 셈이다. 즉,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이 책에서 홈즈의 마지막이 들어 있는 셈이다.

 

단편 56편을 네 권으로 연이어 읽다 보니, 만약 홈즈의 이 활약을 주석없이 읽었더라면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금 과장해서 주석의 절반 가까이가 소설의 오류를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이 소설이 왜 이렇게 오류가 많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쉬지 않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 의문에 대한 수많은 학자들의 설명을 읽다 보면,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과정 자체 때문에 지칠 지경이었다. 평생을 셜로키언 혹은 홈지언을 자처하며 살았을 수많은 학자들의 그 노력들이 가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나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작품이 과연 그렇게 찬사를 받는 일이 온당키나 한 일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실망은 이게 다가 아니다. 시리즈에 실린 단편 중 절반은 이미 내가 읽어본 소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중 상당수의 소설에서 범인과 범죄 수법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크리스티 소설 전집을 독파한 다음에 읽어서 내 눈이 밝아진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아서 코난 도일의 한계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후대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한다. 특히 내가 애정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는. 같은 영국 출신의 작가여서인지는 모르나 직접적으로 그녀의 소설에 홈즈가 등장하는 부분도 꽤 많으며, 홈즈에 대한 크리스티의 존경과 애정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많다. 아마도 셜록 홈즈가 없었다면, 추리 소설의 여왕 크리스티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결론은 절대 지나친 게 아니라고 생각된다. 홈즈와 왓슨의 관계는 푸아로와 헤이스팅스로 변주되었고, 아서 코난 도일이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쓴 첩보물은 크리스티의 작품에서는 제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바뀌었다. 다만, 버터 속의 파슬리와 같이, 홈즈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상당수의 사건들이 그저 언급만 되고 지나버리는 데에 반해서, 크리스티는 자신이 직접 썼던 소설 속 사건들을 이후에 이어지는 소설 속에 계속해서 집어넣어서 환기시킨다. 그로 인해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작가가 축조해 낸 세계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고,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꼼꼼함을 잃지 않기 때문에 허술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홈즈의 활약상 중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띌 때마다 열렬한 독자들은 스스로 의문을 해결한다. 아마도 왓슨의 친구인 아서 코난 도일이 개인적으로 첨가한 부분이라고 해석하거나, 의뢰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왓슨이 의도적으로 이름과 배경에 손을 대다 보니 실수가 일어났다고 변명해 주는 부분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머릿말에서 명확하게 밝혔듯이, 홈즈와 왓슨은 그저 작가의 상상 속 인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가 실존 인물일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놀라운 부분이다. 다만, 셜로키언 또는 홈지언이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은, 그들이 셜록 홈즈를 처음 알게 되었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활기찼고 즐거웠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살면서 그게 언제이든지 소설 속 인물에 푹 빠져서 인생의 상당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반짝거리는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셜로키언들의 열정을, 홈지언들의 신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의 마지막 인사

『그의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야기 일곱 편이 영국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1917년 10월 22일이다. 존 머리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 초판 발행 부수는 1만 684권이었다. 그와 동시에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식민지판 단행본 1만 122권이 G. 벨 앤드 선스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미국 초판도 같은 달 조지 H. 도런 출판사에서 나왔다.


  머리말


  등나무 별장

『그의 마지막 인사』는 일곱 편의 이야기를 모아 1917년 단행본으로 나왔다. 머리말에서 왓슨이 밝힌 것처럼 홈즈가 은퇴를 했다 해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않은 사건이 많이 남아 있어서 독자를 기쁘게 했다. 왓슨이 「그의 마지막 인사」에 덧붙인 여섯 편의 이야기는 「소포 상자」를 제외하고 1908년부터 1917년 사이에 간간이 《스트랜드 매거진》에 발표된 것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등나무 별장」에 대해 왓슨은 사건 시점을 1892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의 실수로 보인다. 1891년 「마지막 문제」사건 이후 홈즈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홈즈는 「금테 코안경」에서처럼 정치적 망명자를 다루는데, 이번에는 남아메리카 출신이다. 20세기 스릴러에서는 부두교가 약방의 감초 격이지만, 영국 도서관에 그 방면의 책이 가장 처음 선보인 것은 1893년이다. 따라서 이번 이야기는 부두교에 관한 선구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평소와 달리 홈즈는 이번 사건에서, 왓슨의 이야기에 잘 등장하지 않는 유능한 지역 정치가의 도움을 받는다.


  붉은 원
    비밀 메시지

소설가 마리오 푸조와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마피아를 낭만적으로 그려내기 오래전, 「붉은 원」사건에서 홈즈가 이탈리아 비밀 조직과 너무 깊이 연루되는 바람에 왓슨은 이 조직의 이름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의 이탈리아인 거주지는 풍경이 매우 독특했고, 이곳 사람들은 다른 주민들과도 확연히 구분되었다. 정전에서 이탈리아인이 범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사건과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뿐이다. 여기서 홈즈는 미국 최고의 사립탐정 사무소인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탐정과 힘을 합쳐서 대서양을 오간 살인자를 잡고자 한다. 핑커턴 사무소는 『공포의 계곡』에도 나오지만, 거기서는 홈즈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 여기서 홈즈가 아리다운 여성에게 속아서 진짜 살인범을 놓아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
    정부의 임박한 변화
    해전
    라소의 무반주 다성 성가곡

참신한 단서와 기발한 이야기 전개로 탐정사상 최고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는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두 번째 사건이다(첫 번째는 「그리스인 통역사」). 이번 사건에서 셜록은 「그리스인 통역사」에서 말한 것과 달리 자기 형이 영국 정부의 단순한 회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다. 떄로 그의 형이 곧 영국 정부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의 '브루스파팅턴호' 잠수함 개발 계획이 이번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 마이크로프트는 이 계획이 성공하면 잠수함의 막강한 위력 때문에 해전이 불가능해질 거라고 예견한다. 잠수함에 매료된 코난 도일은 1914년에 「위험!」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쓰기도 했다. 그 단편에서는 잠수함 전쟁의 위험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일찌감치 그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왜 영국 정부가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브루스파팅턴호' 잠수함 개발에 실패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죽어가는 탐정

단행본 『그의 마지막 인사』에 실린 새로운 사건 일곱 가지 가운데 홈즈가 1894년 실종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은 바로 「죽어가는 탐정」뿐이다. 학자들은 사건 시점을 대체로 1887년에서 1890년 사이로 잡는다. 이번 사건에서 홈즈가 가장 가까운 친구인 왓슨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여기서 홈즈는 환자인 척하며, 즉 꾀병으로 살인자를 속인다. 그러면서 왓슨에게도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믿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의사인 왓슨의 능력을 짐짓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홈즈가 극적으로 범인을 체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홈즈와 왓슨의 사이가 어긋나 보이는 모습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홈즈가 왓슨을 속인 일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1891년 「마지막 문제」때 더욱 크게(그리고 더욱 잔인하게) 속인 적이 있다. 그가 죽었다고 3년이나 믿도록 했으니 말이다. 이번 이야기가 뒤늦게 발표된 것은 왓슨이 사랑하는 친구의 성격이 한편으로 냉혹하다는 것을보여주기가 싫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
    “그녀를 매장해버릴 수…….”

이번 사건에서 왓슨은 여느 때와 달리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홈즈는 "여우들의 세상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 병아리"를 찾아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달라고 왓슨에게 부탁한다. 이번 이야기에는 19세기 후반에 여자를 보는 사회적 관점과 홈즈의 '남성 우월주의'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병아리"란 중년의 부유한 독신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여성을 홈즈는 이렇게 규정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계층 가운데 하나......, 타인의 범죄를 자극하는 존재." 왓슨은 정열적으로 이 사건에 매달린다. 그러나 홈즈는 평소처럼 왓슨의 성과를 얕잡아 본다. 홈즈 역시 이번 사건에서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학자들은 꼬집는다.


  악마의 발

아프리카 탐험은 19세기 중반 유럽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악마의 발」사건이 일어난 1897년 (혹은 발표된 1910년) 무렵에는 이 대륙도 더 이상 미지의 땅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대단한 사자 사냥꾼이자 탐험가"의 길을 걸은 이 사건의 핵심 인물, 리온 스턴데일 박사는 이례적인 존재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샅샅이 파헤쳐서, 콘월의 위치와 '악마 같은 약'(환각제를 연상시키는 약물)의 성격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이야기의 진정한 가치는 홈즈와 왓슨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이야기에는 홈즈와 용의자 사이의 잊을 수 없는 재치 문답도 나온다. "뒤를 밟았습니다." "나는 아무도 못 봤소I saw no one." "내가 쫓아갈 때 상대가 볼 수 있는 게 바로 그겁니다."


  그의 마지막 인사

「그의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홈즈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첩보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난 도일은 1916년 전선을 여행하는 동안 홈즈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홈즈의 근황을 알지 못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너무 나이 들어서 군 복무를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인사」는 왓슨의 1인칭 시점이 아니라 3인칭 시점으로 기록되었는데, 정전의 또 다른 3인칭 시점의 예로는 「마자랭 보석」밖에 없다. 3인칭 시점이라는 집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이것도 왓슨의 저술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렇지 않다면 머리말을 단 단행본에 이번 작품을 포함시키지 않앗을 것이다. 이번 사건 때 왓슨은 잠깐만 동참을 했기 때문에,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데는 전지적 관점을 택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읗ㄹ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우리는 홈즈가 은퇴해서 그 유명한 양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왓슨 또한 은퇴를 했다는 암시가 나온다. 이번 이야기는 독자들이 감상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이야기로 꼽힌다. 배질 래스본과 나이절 브루스가 홈즈와 왓슨 역을 맡은 1940년 영화에도 여기 나오는 애국적인 주제가 반영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해인 1917년에 발표된 이번 이야기에서 "동풍(대륙에서 잉글랜드로 부는 바람)"이 불어올 거라는 홈즈의 통찰력은 당시 평화를 갈망하는 세상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셜록 홈즈의 사건집

『셜록 홈즈의 사건집』단행본 초판은 1927년 6월 16일 존 머리 출판사에서 1만 5150부를 발행했다. 자회사인 머리스 임피리얼 라이브러리에서는 식민지판 5000부를 같은 날 발행했다. 미국에서도 같은 날 같은 제목으로 조지 H. 도런 출판사에서 초판을 발행했다.


  머리말


  유명한 의뢰인

단편 모험담들을 엮은 단행본으로는 마지막 책인 이번 『셜록 홈즈의 사건집』은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스트랜드 매거진》에 발표된 열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아서 코난 도일이 머리말을 달았다. 이 책에서 왓슨이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도 모두 왓슨이 썼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일부 이야기는 왓슨의 아내나 친척이 썼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아서 코난 도일이 썼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유명한 의뢰인」은 사건 시점이 1902년으로, 원숙한 홈즈의 모습을 보여준다. 홈즈는 습격을 받지만,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에서처럼 언론의 힘을 이용해서 악당을 속인다. 홈즈는 왓슨을 중국 도자기 전문가로 변장하게 했지만, 학자들은 그런 방법이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잔뜩 멋을 낸 제임스 데이머리 경을 다루면서 홈즈가 은근히 속물을 비꼬는 또 하나의 예를 보여주며 사건이 시작된다.


  피부가 하얘진 병사
    보어 전쟁

「피부가 하얘진 병사」는 왓슨이 아니라 홈즈가 쓴 두 편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하나인 「사자의 갈기」도 『사건집』에 실려 있다. 어느 쪽도 문학적 개가라고 볼 수는 없다. 「글로리아스콧호」나 「머스그레이브 씨네 의식문」에서 홈즈가 보여준 탁월한 이야기 솜씨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 모두 홈즈만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해결한 사건을 선보이고 있는데, 아서 코난 도일은 그런 초기 스타일의 추리물을 공공연히 경멸한 적이 있다. 영국인들에게 보어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진 1926년에 발표된 이번 이야기에서 홈즈는 탐정 솜씨보다 의학 지식을 과시한다. 또한 이번 이야기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1903년에 일반인들이 정신병과 전염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씁쓸하게 되돌아볼 수 있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실제 의사 제임스 손더스 경은 셜로키언들에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오늘날 '제임스손더스경협회,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의 피부병학적 자손'이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이 협회 회원들은 해마다 모임을 갖고 엄격한 '자격 갱신' 시험을 치른다.


  마자랭 보석
    「마자랭 보석」의 저자

「마자랭 보석」은 「그의 마지막 인사」처럼 3인칭으로 쓰였다. 이야기가 왓슨의 감회로 시작하는데도 대다수 학자들은 이것을 왓슨이 썼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련의 모든 사건이 베이커 스트리트의 하숙집 방에서 벌어지는데, 이번 이야기가 아서 코난 도일 경의 희곡 「왕관 다이아몬드」를 본인이 각색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코난 도일은 그 희곡을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올려 꽤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홈즈는 전에 없이 매우 냉소적이다. 이야기의 일부는 왓슨의 「빈집」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 스트리트의 거실 배치에 대한 묘사는 왓슨의 다른 이야기와 다르다. 그라나다 방송국에서 「마자랭 보석」을 텔레비전용 드라마로 제작할 때, 과거 39편의 홈즈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제러비 브렛이 너무 아파서 홈즈 역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연출자는 이야기를 고쳐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를 탐정으로 내세웠다. 「마자랭 보석」은 실화가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각색을 한 것도 충분히 용서가 된다.


  세 박공 집

이번 이야기를 왓슨이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스티브 딕시에 대한 홈즈의 신랄한 냉소에는 분명 오늘날 보기에 인종주의적 편견이 짙게 배어 있어서, 「노란 얼굴」에서 명백히 보여준 타 인종에 대한 관용과는 그 태도가 사뭇 다르다. 탐정 활동을 하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다. 또 홈즈는 입구 홀에 있는 짐 꾸러미 단서를 포착하는 데 굼뜬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리한 재능을 보여주긴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십 칼럼니스트' 랭데일 파이크와 홈즈의 관계가 끈끈한 것을 보면 홈즈에게 '조직'이 있었다는 우리의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홈즈는 '사교계'와 '상류층' 정보통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거리의 소년들)도 "뚱땡이" 신웰 존슨도 그런 정보는 제공해줄 수 없었으니까. 홈즈가 이사도라 클라인과의 만남에서 보여준 고압적인 모습은 그답게 보인다. 재판정에 세우지 않고 스스로 재판하는 모습을 앞서 여러 차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보스콤밸리 사건」, 「푸른 석류석」, 「애비 농장 저택」에서). 개인 소장자가 지니고 있는 이번 원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지 않는 한, 「세 박공 집」의 저자가 누군지는 확실히 밝혀낼 수 없을 듯하다.

 

  서식스의 뱀파이어
    “그런데 뱀파이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뭐지?”

「서식스의 뱀파이어」가 왓슨의 이야기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즉, 정전의 몇몇 이야기는 진짜 저자가 누군지 의심스러운데, 여기서는 다행히 한 점 의혹도 없다. 홈즈의 대단한 색인집에 관한 왓슨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의심치 않는다. 위조범 빅터 린치, "아직 세상에 알릴 수 없는 이야기"라는 수마트라의 거대한 쥐, 반더빌트와 금고털이, 서커스단의 미녀 비토리아, 그리고 해머스미스의 명물 비거 등이 그것이다. 왓슨이 블랙히스 팀의 럭비 선수로 뛰었던 청년 시절에 대한 언급도 믿을 만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그런 이야기에 대해 왓슨의 친구인 아서 코난 도일 경은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관한 기록은 없다. 1924년 무렵 '영지주의자 요한 바울로'로 알려진 도일이 초자연적인 존재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데 열을 올린 것으로 볼 때, 아마 도일도 「서식스의 뱀파이어」를 특히 좋아했을 것이다. 도일과는 사뭇 대조되는 성격의 홈즈는 스스로 확고한 회의주의자임을 밝히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설명이나 전설에 대해 홈즈는 이렇게 말한다. "탐정 일이란 확실한 근거에 입각해서 하는 것이고, 언제나 그래야만 해....... 유령들이 끼어들 필요는 없지." 이러한 태도는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에서 보여준 홈즈의 실용적인 태도와 일치한다.


  세 명의 개리뎁 씨

"개리뎁"이 정작 누구인가를 알아낸 학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독특한 성씨는 이번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 명의 개리뎁 씨」는 분명 후기의 사건인데, 사건 시점은 아마도 1902년일 것이다. 범인은 왓슨의 독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범죄 수법이 「빨강머리연맹」과 「증권회사 직원」의 수법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홈즈와 왓슨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자못 주목할 만하다. 후기의 다른 사건인 「악마의 발」에서처럼 홈즈가 왓슨의 안전을 염려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어느새 홈즈의 나이(48)도 지긋해졌다는 표시로, 아니면 1903년의 은퇴를 눈앞에 두었다는 표시로, 홈즈와 왓슨의 관계가 1881년의 단순한 룸메이트 관계에서 더없이 가까운 친구 사이로 원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토르교 사건
    전편 이야기 줄거리
    「토르교 사건」 원작

왓슨이 「토르교 사건」의 저자인 것은 분명한데, 여기서 그는 "인도 육군"에 복무했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한다. 이번 이야기가 발표된 1922년에 고희를 맞은 홧슨의 기억이 어느덧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이야기에서 왓슨은 돈과 힘을 지닌 "황금왕" 닐 깁슨이라는 익명의 인물과 맞선 홈즈의 활약상을 기록한다. 미국인 백만장자의 정체가 무엇인가는 많은 추리를 불러일으켰지만, 아무튼 이 부자에게는 '도금시대' 미국인에 대한 영국인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미국인은 터무니없이 돈이 많으며 거칠고, 완고하고, 냉혹하고, 폭력적이라는 생각 말이다. 또한 아름다운 여성 가정교사, 검은 머리의 남아메리카 미녀 등 홈즈의 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도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는 아니다. 홈즈는 돌난간이 떨어져 나갔다는 단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기어다니는 남자
    “무엇보다도 큰 수수께끼는 자네가 말한 그 날짜야.”

「기어다니는 남자」는 추리 이야기라기보다는 SF에 더 가깝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과학은 황당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의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홈즈는 존경할 만한 프레스베리 교수가 딸 또래의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면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 홈즈는 『주홍색 연구』에서 자신의 추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냉혹하게(잔인하지는 않아도) 개를 독살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개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홈즈는 개를 집안의 거울로 보고, 심지어는 개에 관한 논문을 쓸 생각까지 한다. 약물을 이용한 '젊음의 샘'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보여주는 이번 사건이 오늘날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데가 없지 않지만, 프레스베리 교수와 당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젊어지고자 한 강박 관념은 오늘날의 의료계 뉴스에서 엿볼 수 있는 강박관념과 다를 게 없다.


  사자의 갈기

「사자의 갈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된 의문점은 홈즈가 이것을 왜 썼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이 범죄의 모습을 띠고는 있지만, 홈즈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해내는 것만으로 수수께끼를 푼다. 사실상 범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이야기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정전에서 홈즈의 은퇴 이야기를 다룬 유일한 글이기 때문이다. 1907년 7월에 홈즈는 서식스 주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번 이야기에는 알려진 홈즈의 집 가운데 가장 나중에 살았던 집(홈즈가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다고 독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집)의 위치에 관한 단서가 많이 나온다. 이번 사건 희생자인 약혼녀인 모드 벨라미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인데, 홈즈가 그녀에게 '정feelings'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언급이 설득력은 있지만, 결국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인사」에서 그녀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베일을 쓴 하숙인
    홈즈의 이력

「베일을 쓴 하숙인」은 왓슨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짧고, 사실상 수사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붉은 원」에서처럼, 고민이 있는 집주인 여자가 홈즈에게 하숙인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한다. 하숙인은 살해 음모가 잘못되어 크게 낙담한 여성이다. 주저 없이 사회규범을 무시하곤 하던 홈즈도 여성이 자살하려는 것은 막고자 한다. 이번 이야기를 정말 왓슨이 썼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미심쩍은 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높은 정의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는 홈즈의 태도는 「푸른 석류석」과 「보스콤밸리 사건」에서 보여준 태도와 일치한다. 또한 "정치인과 등대, 길들인 가마우지와 관련되 이야기"를 운운하는 화자의 어투가 왓슨의 것이라는 데 어깃장을 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쇼스콤 고택

「쇼스콤 고택」은 왓슨이 홈즈에 대해 마지막으로 쓴 이야기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이 이야기가 발표된 1927년에는 왓슨의 나이가 어언 76세였다. 아마 왓슨은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노쇠로 더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의 성화 때문에, 또는 아내의 죽음 때문에 펜을 놓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은폐된 죽음과 지하 납골당의 비밀을 조사하는 이번 사건은 최후의 이야기로 손색이 없다. 이번 이야기에 나옷듯, 홈즈는 여전히 최첨단의 탐정 기법을 보여준다. 그가 수사 도구로 현미경을 사용한 것은 매우 선구적이다. 왓슨은 경마에 심취한 모습을 보인다(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 짐작되는 1902년에는 아무튼 그랬다). 「기어다니는 남자」에서처럼 홈즈는 개를 관찰함으로써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수수께끼를 푸는 데 이용한다. 그리고 부도덕한 로버트 노버턴 경과 대면했을 때 또다시 상류층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인다. 홈즈는 그에게 싸늘하게 대꾸한다. "당신이 한 일의 도덕성이나 품격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
    카리나의 정체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는 홈즈의 이야기 마지막 권에 있는 마지막 단편이다. 왓슨이 75세 생일을 맞은 1926년 말경에 쓴 이번 이야기는 홈즈가 1903년 은퇴하기 여러 해 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 것이다. 왓슨은 이제 자기 인생에서 사라진 72세의 홈즈를 회상하며 이번 사건에 적극 참여한 것을 즐거워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홈즈는 이 사건이 단지 "케케묵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판단한다. 바람난 아내와 배신한 친구 이야기 말이다. 그는 왓슨에게 조사해보라며 사건을 넘겨주는데, 홈즈의 말에 따르면 왓슨은 중요한 것을 모두 놓치고 만다. 그러다가 "서리 해안의 언짢은 라이벌"(전에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 등장하자, 홈즈는 냉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야기에 허술한 구석이좀 있고, 왓슨의 설명에도 흠이 없지 않지만, 진짜 셜로키언이라면 이번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는 어느 학자의 논문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에 관한 책을 이제 덮어야만 하는 마지막 이야기가 가짜라니! 이번 이야기가 맨 끝에 실린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존 왓슨이 아니라, 머리말을 쓴 아서 코난 도일이 『사건집』을 편집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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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3 - 돌아온 셜록 홈즈, 셜록 홈즈 탄생 150주년 기념판 ㅣ 주석 달린 셜록 홈즈 3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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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세 번째 권이다. 코난 도일의 단편들은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되었고 현대 문학에서 나온 전집은 연재된 순서대로 단편들을 수록하였다. 두 번째 권의 「마지막 문제」에서 홈즈는 사망한 것으로 암시되었다. 이후 독자들의 엄청난 반발과, 아마도 작가인 코난 도일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1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홈즈는 다시 등장한다. 소설 속 세계에서 홈즈는 3년만에 왓슨 앞에 나타났지만, 왓슨은 홈즈의 부탁으로 10년 동안 홈즈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고 설명되며, 10년 후 홈즈는 완전히 은퇴했기에, 그의 허락을 받아 홈즈의 실종 후 3년부터의 사건을 다시 세상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빈집」이 바로 절벽에서 왓슨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 후 3년 만에 왓슨을 찾아온 홈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코난 도일 입장에서는 홈즈의 부활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아무래도 작가가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 버리려고 마음 먹었던 인물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살려낸 탓에, 이야기가 종종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홈즈 연구가들은 나름의 상상력으로 그 부분을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아서 코난 도일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오류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마지막 문제」에서 홈즈와 맞서 싸운 악당의 이름은 모리아티라고만 제시되고, 그의 동생 이름이 '제임스 모리아티 대령'이라고 나온다. 대령은 홈즈가 자기 형을 죽였다고 비난했다는 내용과 함께.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라고 풀네임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형인 모리아티 교수와 동생 모리아티 대령은 둘 다 이름이 제임스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코난 도일의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된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 부분에서 부주의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편집자의 실수가 더 컸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셜로키언, 혹은 홈지언들은 여기서 나오는 동생은 「빈집」에서 홈즈와 맞선 모런 대령이며, 실제 두 사람은 피붙이 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모런 대령은 권위를 확보하고 일당을 다시 소집하기 위해 모리아티의 이름을 빌려썼다는 해석을 한다. 이 정도면 원작자인 코난 도일과는 별개로 홈즈는 살아 숨쉬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셜록학'이라는 단어가 전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심지어 단 세 개의 단편에만 등장하는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를 두고 그가 자기 동생과 모리아티 교수를 모두 도운 이중 첩자였으며, 당연하지만 홈즈를 돕기 위해 그가 덫을 친 것이라는 논문도 있다고 한다. 셜록은 왓슨이 마이크로프트를 쓸데없이 경계하거나 지나치게 자신을 걱정할까 봐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꿈보다 해몽이라는 우리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정말 뛰어난 문학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재능을 뛰어넘기 때문에 문학사에 남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즉, 애초에 작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결과적으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의도와 재능의 총합보다 커져서 고전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셜록 홈즈 시리즈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보다 셜록 홈즈 시리즈야말로, 작가의 역량과, 그 작가가 빚어낸 산물과의 격차가 크다고 할 것이다.

 

 

돌아온 셜록 홈즈

단행본 영국 초판은 조지 뉸스 출판사에서 1905년 3월 7일 1만 5000부를 발행했다(시드니 패짓의 삽화도 실렸다). 그와 동시에 자회사인 롱맨 콜로니얼 라이브러리에서 1만 5000부를 발행했다. 미국 초판은 1905년 2월 매클루어 필립스 출판사에서 찰스 레이먼드 매콜리의 삽화를 넣어 발행했다. 이 미국판은 2만 8000부 이상 인쇄되었다.

 


  빈집
    대공백기
    바리츠
    어두워지는 하늘
    모런 대령이 쏜 총알의 진로

전체 정전 가운데 박수갈채를 가장 많이 받은 이야기가 바로 「빈집」이다. 《스트랜드 매거진》에 발표된 것은, 「마지막 문제」를 통해 홈즈가 죽었다고 알려진 지 10년 만인 1903년 10월이다. 이때 잡지 표지에는 '셜록 홈즈'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고, 본문 이야기 첫 면에는 팡파르를 울리듯 우람한 활자로 '돌아온 셜록 홈즈'라고 인쇄한 후, 「빈집」이라는 제목은 그 아래 조그맣게 인쇄했다. 1903년 9월 《스트랜드 매거진》은 미리 이렇게 광고했다. "정황 증거를 토대로 한 [홈즈의] 사망 소식은 천만다행히도 오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독자들은 홈즈와 왓슨의 감격적인 재상봉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러나 이번 이야기에는 엉성한 구석이 많다. 예를 들어 모런이 지나가는 승합마차 위에서 총을 쏜 게 아니라면, 로널드 아데어를 살해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이 범죄 후 모런이 왜 교수형을 당하지 않았는지도 수수께기다. 한편 이번 이야기에서는, 길 건너편의 '빈집'을 묘사한 대목을 통해 베이커 스트리트 221번지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추리해볼 수 있다.


  노우드의 건축업자
    셜록 홈즈와 지문

「빈집」을 발표한 1903년 홈즈가 은퇴하자(독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지만), 왓슨은 마침내 홈즈의 사건집에 나오는 모든 사건을 마음대로 골라서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홈즈가 돌아온 해인 1894년에 해결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노우드의 건축업자」다. 이것은 정전 가운데서 지문을 핵심 단서로 삼은 최초의 사건이다. 홈즈는 당시 경찰은 물론이고 법정보다 먼저 지문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학자들은 홈즈의 의뢰인이 쓴 이상한 유언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홈즈가 법에 무지한 것을 꼬집었다.


  춤추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알파벳

힐튼 큐빗이 아내의 은밀한 과거를 파헤치기 위해 셜록 홈즈를 고용했을 때, 홈즈는 '춤추는 사람들'이라는 암호를 풀어야 했다. 이번 이야기가 홈즈의 몇 안 되는 실패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비극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인을 잡아들이긴 했다. 정전의 여러 사건에 미국인이 등장하지만, 범인이 미국인인 이야기는 『주홍색 연구』와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둘뿐이다. 그런데 뉴욕 경찰 윌슨 하그리브를 홈즈의 친구라고 언급한 이번 이야기는 홈즈가 미국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코난 도일은 순회강연차 뉴욕에 가본 적이 있다. <어둠의 천사들>이라는 연극을 보면 왓슨도 한동안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왓슨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서스턴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것, 당구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씀씀이가 헤프다는 것이 그것이다. 당시 암호해독학은 셜록 홈즈만이 아니라 암호해독 아마추어와 전문가들이 열렬히 연구하던 분야였다. 여기 나오는 암호의 기발함과 독창성 덕분에 왓슨의 이번 이야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독자가 많다.


  홀로 자전거 타는 사람
    셜록 홈즈 시대의 자전거 타기

이번 이야기에서 우리는 당시 영국에서 '미개척지'라고 여겼던 곳 가운데 하나를 엿보게 된다. 남아프리카의 광산이 그것이다. 이 광산에서 바이올렛이라는 여성이 예기치 않은 위험에 맞닥뜨린다(곤경에 처해서 홈즈의 도움을 받는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정전에 네 명이나 나온다.) 1895년을 무대로 한 이 사건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크게 인기를 끈 자전거가 중심 역할을 한다. 왓슨이 『주홍색 연구』에서 홈즈가 노련한 권투 선수라는 얘기를 한 적 있지만, 그의 권투 솜씨에 대한 언급은 딱 두 곳에만 나온다. 「해군 조약문」과 이번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학자들은 당시 잉글랜드의 결혼법과 악당들의 터무니없는 행위에 관해 흥미로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프라이어리 스쿨
    홀더니스 공작
    자전거는 어느 쪽으로 갔는가?

이번 이야기는 아주 우스꽝스럽게 시작한다. 소니크로픙트 헉스터블 박사가 베이커 스트리트 221번지에 등장하자마자 곰 가죽 깔개 위해 너부러진다. 그러나 유괴되어 큰 위험에 빠진 소년을 홈즈가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분위기가 곧 가라앉는다. 결국 유괴범이 밝혀지자 홈즈조차도 놀란다. "홀더니스 공작"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다. 아이 아버지의 실명, 자전거 바큇자국에 대한 홈즈의 대단한 추리(그리고 그가 엄청난 요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이 토론에 열을 올렸다.


  블랙 피터

이번 이야기에서는 범죄자와 희생자 중에 누가 더 악당인가를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살인과 누명의 이야기인 「블랙 피터」는 홈즈가 푸줏간에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푸줏간에서 홈즈는 얄궂게도 죽은 돼지를 향해 한참 작살을 던졋다. 우리는 홈즈를 따라, 정전에서 가명을 쓰지 않은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한 곳에 이른다. 포리스트 로(로 숲)의 브램블타이 호텔이 그곳인데, 오늘날 이 호텔에서 자랑하는 술집이 바로 블랙 피터 바다. 홈즈는 12년 전의 수수께끼를 해결함으로써 누명을 쓴 젊은이를 구한다. 이번에 왓슨은 발표하지 않은 두 사건을 또 들먹여서 독자를 감질나게 한다. "토스카 추기경의 돌연사"와 "악명 높은 카나리아 조련사"가 그것인데, 전자는 1998년 J. 리지스 오코너가 『비밀의 봉인』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파헤쳤고, 후자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7퍼센트 용액』(1974)으로 대성공을 거둔 작가 니컬러스 마이어가 홈즈와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인 『카나리아 조련사』에서 깊이 있게 다루었다.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 사건에서 협박과 회유가 실패로 돌아간 후, 홈즈와 왓슨은 범법자가 된다. "런던에서 가장 못된 인간"의 공갈 협박 음모를 막기 위해서. 그러다 뜻하지 않게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이 윤리적이었는지, 살인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있다. 이 사건의 발생 시점이 홈즈의 대공백기인 1891-1994년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왓슨은 1904년까지 발표를 미루었다. 왓슨의 발표로 명예가 훼손될지 모를 희생자들을 배려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경찰이 홈즈와 왓슨을 추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손꼽히는 이번 이야기에서는 「푸른 석류석」에서처럼 홈즈가 보석 도둑을 쫓는다. 그런데 홈즈가 도둑을 쫓는 동안 레스트레이드는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광인만 뒤쫓는다. 홈즈가 탐정 경력을 접는 마지막 해에 일어난 이번 사건 때는, 그동안 런던 경찰국을 줄곧 낮잡아 보던 홈즈가 경찰에 경의를 표한다. 고의적인 뉴스 조작에 관한 이야기로는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에서 홈즈는 이런 얄궂은 말을 한다. "왓슨, 언론기관은 더없이 소중해. 이용할 줄만 안다면 말이야."


  세 학생
    초기 영국 헌장 연구

학자들이 홈즈의 대학 생활에 대해 배경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세 학생」이다. 여기서도 물론 범죄가 일어난다. 시험 때 부정행위를 하려는 한 학생과 관련된 이번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에 비해 짜임새가 부족하지만, 대학 생활과 관련한 풍성한 일화 덕분에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번 사건을 더욱 기억에 남도록 하는 것은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앤드루 랭이 셜록학 최초의 발표문이랄 수 있는 글 가운데 하나를 쓰면서 이번 사건을 치밀하게 파헤친 일이다. 이번 이야기는 전혀 실화 같지가 않아서, 홈즈의 옛 친구와 왓슨이 홈즈를 신비화하기 위해 심심풀이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더러 있다.


  금테 코안경

홈즈가 돌아온 1894년 이후, 홈즈와 왓슨은 분명 바쁜 나날을 보냈다. 「금테 코안경」에서 왓슨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같은 해에 다섯 건 이상의 미발표 사건을 다루었고, 적어도 세 건의 발표된 사건을 다루엇다. 홈즈는 "대로 암살자"를 생포한 공로로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를 훈장을 받아서, 프랑스와도 연고가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이야기의 러시아 배경에 대해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물론 1904년 당시 폭력이 난무한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들이 대중에게는 여간 뜨악하지 않았을 것이다(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일어났고, 1903년 러시아의 총파업이 온 세상에 보도되었다). 경찰국가 러시아의 독재자들에 대한 공포와 환멸에 관련된 언급은 정전 중에서 이번 이야기에만 나온다.


  실종된 스리쿼터백
    럭비 규칙

이것은 정전 가운데서 아마추어 스포츠와 관련된 유일한 사건이다. 코난 도일과 왓슨 모두 단체 스포츠 경기를 즐겼다. 도일은 크리켓에 심취했고, 왓슨은 럭비 선수였다(「서식스의 뱀파이어」에 나오듯이). 홈즈도 펜싱이나 목검술, 권투 등 일대일 스포츠에 능했다. 이번 사건에서 홈즈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스타 럭비 선수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여기서는 다른 두 선수가 주목을 받는다. 잉글랜드에서 어쩌면 가장 부자이자 가장 인색한 마운트 제임스 경, 그리고 가장 관심을 끄는 악당으로 여겨졌다가 친구인 것으로 밝혀지는 레슬리 암스트롱 박사가 그들이다. 케임브리지가 사건의 무대라서, 학자들은 두 달 먼저 발표된 「세 학생」과 더불어 여기서도 홈즈의 대학 생활에 대한 단서를 찾는 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기서 홈즈는 개를 이용해 추적에 성공함으로써, 『네 사람의 서명』에서 잡종 토비를 이용했다가 실패한 것을 만회한다.


  애비 농장 저택

스탠리 홉킨스 경위가 등장하는 네 편의 이야기(모두 『돌아온 셜록 홈즈』에 나오는 것으로 「실종된 스리쿼터백」,「블랙 피터」,「금테 코안경」,「애비 농장 저택」) 가운데 하나인 이번 이야기에서 우리는 홈즈가 와인에 해박하다는 것을 아렉 된다. 이런 사실은 「독신 귀족」에서 그가 상류층을 경멸한 것과 사뭇 모순된다. 대담한 여주인공과 그녀의 선원 친구를 동정하면서, 피살자인 부자 귀족 유스터스 브래큰스톨 경에게는 무심한 것도 홈즈의 복잡한 견해를 여실히 드러낸다. 독립심이 강한 메리 브래큰스톨 양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에 대한 홈즈의 관심을 자극한다(홈즈가 「글로리아스콧호」와 「보스콤밸리 사건」에서 보여준 관심 말이다). 그래서 홈즈는 앞서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법을 집행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보인 동정심은 지나친 감이 있다. 이 사건에서 영악한 여자 악당이 홈즈를 속였다고 믿는 학자도 많다.


  제2의 얼룩
    벨린저 경과 트렐로니 호프 경의 정체

「해군 조약문」에서 왓슨은 「제2의 얼룩」사건을 이렇게 언급한다. "막중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왕국 최고 가문들의 인물 다수가 연루되어 있어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공개하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 사건은 분명 이 사건과 다르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 「제2의 얼룩」역시 국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고, 홈즈가 정치범죄와 연루된 몇 안 되는 사건 가운데 하나다(정치 사건으로는 「해군 조약문」,「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가 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은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생각나게 한다. 홈즈는 『주홍색 연구』에서, 「도둑맞은 편지」의 탐정 C. 오귀스트 뒤팽을 "매우 못난 친구"라고 일컬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홈즈는 뒤팽이라는 한 시대의 다른 유명한 탐정을 본받으며, 그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2의 얼룩」은 홈즈가 은퇴하기 전에 다룬 마지막 사건으로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홈즈의 은퇴 소식과 함께  『돌아온 셜록 홈즈』로 알려진 단편 시리즈도 여기서 막을 내리고, 독자는 1908년이 되어서야 다시 홈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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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낼 권리 - 밥벌이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닥터K의 심리 상담소
김병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자기 계발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여러 사례를 모은 수필집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쓴, 직장인들의 심리를 섬세히 어루만져주는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언제부터인지 책 소개와 비등한 정도로 '닥터 K의 고민상담소'를 기다리게 되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아직 잘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마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불안석인 시기에, 다소 뭉툭하지만 핵심은 지긋이 눌러주는 이 코너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느날 이 코너가 막을 내린다는 이야기를 닥터 K가 직접 이야기했을 때,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 못한다.

 

꾸준히 듣던 방송에서 '닥터 K의 고민상담소'가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책을 구매하였다. 물론,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이야기가 상당수 많았지만, 한번 듣고 흘려보내기에는 주옥같은 조언들이 많았기에, 활자로 보관하여 틈틈이 꺼내보고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으로 나오면서 '닥터 K의 고민상담소'는 이름을 바꾸었다. '버텨낼 권리'.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격언의 방점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피하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든 버텨낸다는 말에는 어떻게든 현실에 나를 맞출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 버텨내는 주체가 직장인이라면, 약자의 수동적인 행위라는 의미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이 책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버텨내는 것은 내 권리라는 것. 현실에 순응해버리고 마는, 주체성이 상실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 이 직장에서 버텨내기로 한 것 자체가 나의 능동적인 선택이며, 그 선택에 따라 줄줄이 딸려오는 일들은 어쩌면 나의 권리일 수 있다는 것.

 

어떤 이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화를 벌컥 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닥터 K의 조언들을 한문장 한문장 읽어나가다 보면, 내게 주어진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아직 사회에 나온지 몇 년 되지 않은 나에게, 하루 하루 버텨낸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나에게, 이 책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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