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데 그때 문득, 번쩍 하고 스치는 생각은, 사실 대부분의 역사가 바로 그것 아니었느냐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생애의 상당 부분을 휴일에 관해서, 새로 구입한 그물침대에 관해서, 또는 길 건너편에 멈춰선 전차에서 내린 젊은 아가씨의 발목이 얼마나 예쁜지에 관해서 생각하며 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이런 것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같이 우연적인 것으로, 즉 진지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미주리 협약이나 장미전쟁에 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런 반면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하는 것, 재미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의 역사를 배우거나 또는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받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가?

(중략)

그리하여 나는 집 안을 한번 여행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그 각각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될 것이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가 될 것이고, 뭐, 그런 식이었다. 결국 나는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었다.

(중략)

집이란 놀라울 만큼 복잡다단한 일종의 보고였다.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뭔가를 발견하건, 뭔가를 만들건, 또는 뭔가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건 간에-이런저런 방식으로 결국 누군가의 집에서 끝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전쟁. 기근, 산업혁명, 계몽주의 등등. 이 모두는 누군가의 소파와 서랍장 속에 들어 있었으며, 누군가의 커튼 주름 속에, 누군가의 베개의 푹신한 부드러움 속에, 누군가의 벽에 칠해진 페인트 속에, 누군가의 배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속에 들어 있었다. 따라서 집 안 생활의 역사는 내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처럼 단순히 침대와 소파와 부엌 난로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혈병과 구아노와 에펠 탑과 빈대와 시체 도둑질을 비롯해서 지금껏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에 관한 역사였다. 결국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책의 서문 중 일부이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먼저 쓰고 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우주에 대해 논했지만, 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는 일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망원경을 가지고 이 세계에 대해 파노라마식 서술을 한다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현미경을 가지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만, 분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제목만 보아서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또한, 평소 가지고 있던 관심사나 기본 지식에 따라 재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각 장에 대한 재미도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독파한 이후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영국 하녀들의 이야기가 나온 제5장을 읽을 때 집중도가 높았고, 제9장 지하실에서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드윗 클린턴이 뉴욕 주를 관통하여 이리 호수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가리켜 '클린턴의 폴리(Clinton`s Folly)'라고 불렀다면서 "어리석음"이라는 뜻과 함께 "큰 돈을 들여서 만드는 쓸모없는 건축물"이라는 뜻이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 중 'Dead Man`s Folly'라는 소설이 있으며, 이 소설 또한 그 두 가지 의미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장 전체에 대한 재미가 올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요즘 셜록 홈즈를 읽고 있는데, 제10장 복도에서 미국의 벼락 부자들이 현금에 굶주린 유럽의 귀족들을 찾아내서 자기 딸을 그쪽으로 출가시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운 결혼이 유행을 넘어 증후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이 셜록 홈즈의 단편에 나와 있다. 시리즈 1권에서 다룬 『셜록 홈즈의 모험』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독신 귀족」에서 영국의 몰락한 귀족이 미국의 부유한 여성을 신부로 맞고 나서, 결혼식 후 실종된 신부를 찾아달라며 홈즈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석에서는 당시의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영국의 여성들이 신랑감을 미국 여성들에게 뻇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는 설명도 있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이 책은 꼼꼼하며, 알차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묘사는 생생하며, 지식은 풍부하고, 서술은 유려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러모로 딱 맞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이 책은 입문서로는 좋은 책이지만, 왠지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새롭게 업데이트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문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학설은 또 바뀔 것이기에. 재미로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고, 여기 나와 있는 상식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히 책 값 이상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

제1장 연도
제2장 배경
제3장 홀
제4장 부엌
제5장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제6장 두꺼비집
제7장 거실
제8장 식당
제9장 지하실
제10장 복도
제11장 집무실
제12장 정원
제13장 보라색 방
제14장 계단
제15장 침실
제16장 화장실
제17장 육아실
제19장 다락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역자 후기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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