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슬립케이스 일반판
스티븐 달드리 감독, 케이트 윈슬렛 외 출연 / 다일리컴퍼니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시놉시스만 접했을 때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인생을 버리고 만 여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의 방점은 뒤에 찍혀 있고, 개인적으로 클라이맥스는 성인 마이클이 중요한 사람의 딸을 찾아가 나누는 대화의 장면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결말까지 다다르는 앞의 내용이 아름답고 아릿하고 슬프다. 몰라서 저지르는 죄 또한 죄다. 마이클이 딸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에서는 전후 독일인의 철저하고도 뼈저린 반성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원작 소설 작가의 다짐이 읽혀서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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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반 형사 빅토르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8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선명한 초록색 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힘들 때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상 빅토르가 뤼팽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끝까지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신이 사나울 때는 활극이 제일이다. 요즘 들어 이 책을 읽을 때가 그리워진다.

 

「강력반 형사 빅토르」는 뤼팽 시리즈 장편들 중에서는 드물게, 역사나 전설 등에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구하지 않고도, 현재적 사건과 기발한 플롯만으로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수작이다. 각 장(章)이 그보다 하위 장들로 다시 세분되면서 숨가쁘게 빠른 장면 전환을 가능케 하는 기법은 「813의 비밀」에서 이미 한 차례 선보인 것으로, 좌충우돌 전개되는 이 재기발랄한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적절하게 부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압권은 그 엄청난 반전에 있으며, 작품을 처음 대하는 독자는 물론, 그 결말을 알고 있는 뤼피니앵이라도 빈틈 없이 맞물리는 추리적 구조와 곳곳에 숨은 재치 넘치는 복선을 짚어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해설에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 거론해보기로 한다.

 

1.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력반 소속 빅토르가 일요일 오후 시네-발타자르에 들어선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기껏 마음 먹은 미행이 그만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오후 네 시 경, 이 북적대는 클리시 대로에 내동댕이쳐진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장터 축제의 혼잡을 피해 그는 어느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석간신문을 눈으로 훑다가, 이런 짤막한 기사에 시선이 멈추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아르센 뤼팽이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 수요일에는 동부에 위치한 어느 도시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그에 따라 파리에서도 일군의 형사대가 급파되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또 한 차례 그가 경찰의 손아귀를 따돌리는 일이 발생할 듯싶다.

 

"빌어먹을!"

빅토르는 모든 악당을 개인적인 원수처럼 여기고, 그들에 대해서는 인정 사정 없는 거친 말투를 얼마든지 사용하는 엄한 경찰관의 태도로 중얼거렸다.

 


2. 회색 챙 모자

'월요일, 파리에서 출발한 여섯 시 기차의 객실 안에서 마담 샤생은 레스코 영감 가까이 앉아 있다. 이혼 소손 중에 있는 기혼녀로서, 보통은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는 한, 애인과 함부로 속삭이는 일은 되도록 삼가는 편이다. 월요일, 그녀는 무의식 중에 노란 봉투를 슬쩍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날만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뭔가 맡길 물건이 있다는 얘기를 애인한테 귀띔해주었고, 필경 짬을 내서 돌돌 말아 끈으로 묶은 문제의 봉투를 은근 슬쩍 애인의 품속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바로 그 동작을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도트리 남작이 간파했을 터. 이미 신문은 빠뜨리지 않고 읽는 타입이라...... 노란 봉투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니...... 과연 우연이라고만 넘길 일이었겠는가?...... 이윽고 기차는 생-클루에 도착했고, 마담 샤생은 자리를 뜬다. 레스코 영감은 그대로 앉아 가르슈까지 간다. 막심 도트리도 같은 역에서 내려 영감을 미행한다. 결국 그 숙소까지 알아두고, 화요일과 수요일, "라 비코크" 주면을 어슬렁대다가 마침내 목요일 결단을 내린다......'

빅토르는 카페에서 나와 문제의 아파트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을 전개해갔다.

'...... 이상 그려진 그림에 대한 딱 한 가지 반론 가능성이란?...... 그 모든 일들이 너무도 손쉽게 척척 맞아떨어지고, 너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점! 한제, 진실이란 그렇게 즉흥적이지 않고, 그토록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주어지지도 않는 법이거든......'


3. 남작의 정부

빅토르는 여자가 말하는 투로 봐서 사전에 미리 정해진 대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진실이란 때로는 거짓말과 똑같은 어조로 말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4. 체포

바실레예프 공주라? 빅토르와 라르모나가 그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일사천리 조사해내는 데에는 단 하루면 족했다. 즉 그런 성(姓)을 가진 러시아 출신의 유구한 혈통으로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가문은 단 하나뿐이며, 부모형제 모두 체카(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창설된 비밀 경찰 조직/역주)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한 뒤,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 혼자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 국경을 넘어왔다는 사실. 그의 가문은 아직도 유럽 내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안하고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음. 개성 강하고 다소 길들여지지 않은 성격의 그녀는 러시아 망명인 사회의 몇몇 귀부인들과 친목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여전히 알렉산드라 공주로 불리고 있는 실정. 나이는 이제 서른.


5. 바실레예프 공주

결국 그 자는 바실레예프 공주와 같은 때에 같은 층을 택해 이 호텔에 묵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337호로 가기 위해 복도 왼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알렉산드라와 합류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꺾어든 것은 아닐까?

빅토르는 여자의 방을 지나치면서 가능한 한 발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숙소에 다다라서는 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줄기차게 귀르 ㄹ기울였다.

그런 식의 긴장된 대기 상태가 계속되었고, 몹시 불편한 기분 속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바로 저 영국인 비미쉬의 친구가 아르센 뤼팽이며, 그가 곧 알렉산드라 공주의 애인일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추진해온 지난(至難)한 수사활동이 드디어 진일보하게 된 셈이었다. 한편, 그 남자의 젊고 근사한 풍모를 빅토르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이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6. 국방공채

"하지만 자동차가 중간 어디에 정차한 일도 없다는데?"

"그러니까,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딱 두 가지가 있을 뿐이죠. 우선 운전기사와 타협을 해서 그에게 꾸러미를 맡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아니라면, 그냥 몰래 자동차 안에 꾸러미를 놔둔다......"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왜요?"

"그러다 아무나 차를 탄 사람이 가져가면 어쩌려고! 세상에 그런 엄청난 거금을 자동차 좌석에 방치해두는 사람은 없지요!"

"그야 그렇죠. 단, 차 안 어디에든 숨겨둘 수는 있겠지요."


7. 공범 만들기

"지금 숙박부를 조회 중이네. 혼자 머물고 있는 영국인 이름을 골라내고 있어. 덩달아 다른 모든 외국인도 조사 대상이라구."

"그건 또 왜 그런가?"

"어차피 뤼팽의 부하 이름을 모르니까, 그게 확실히 영국인일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아래로 불러 내리든지, 아니면 일일이 객실로 찾아다니며 신분증을 조사한다는 거야. 자네도 틀림없이 조사대상에 들어갈 걸세."

8. 캉브리주 호텔의 대접전

빅토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긴,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가 이곳을 뜬다거나, 그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빅토르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그 여자가 굳기 죽치고 앉아 기다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부아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9. 적진 깊숙이

"그는 계단을 올라갔고, 열쇠를 사용해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집, 결단코 자기 집으로 들어간 겁니다. 다른 어디도 아닌 자기 집 말이죠. 비록 시선은 마구 흔들리고, 머리도 지끈거렸지만, 어떻게 자기 아파트, 자기 집 현관을 못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10. A.L.B. 문건

"여자는 막심 도트리가 도둑질뿐만 아니라 살인혐의로도 몰리고 있다는 사실에 여간 당황해하는 게 아니었죠. 한데, 빅토르 형사가 그때 길길이 화를 내는 걸로 인식한 여자의 반응은, 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호들갑을 떠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기 애인이 채권 다발을 훔쳐낸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으나, 레스코 영감을 죽였으리라고는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여자는 남자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과 더불어 사법당국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여자의 내심을 도트리는 여지없이 간파해버린 것이죠. 결국 그는 여자가 언젠가는 자신을 고발해버릴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떄문에 여자를 다시 만나 얘기를 해보려고 한 거죠. 물론 그에겐 아파트 열쇠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의 의중을 떠보았고, 여자는 위협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트리도 덜컥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냥 저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 건가? 국방공채를 손에 넣어 이제 목표를 거의 거머쥐었는데...... 더군다나 그를 위해 이미 사람까지 죽인 마당에 말입니다...... 과연 마지막 순간에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할 것인지...... 마침내 도트리 남작은 또다시 살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껴온 여인이지만, 배신할 것이 너무도 뻔하다보니 갑작스런 증오심이 휘몰아쳤다고나 할까요? 결국 여자를 죽이고 맙니다. 1분 후,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얌전히 차에 올라타 있습니다. 교통경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지요. 빅토르 형사 역시 전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11. 불안

빅토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그는 왼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막 달려들려는 브레삭을 향해 브라우닝 권총을 들이대고 있었다.

"소동부리지 마, 뤼팽! 여차하면 개죽음당하는 수가 있어!"

버럭 소리친 뒤, 그는 여전히 수화기에 대고 이랬다.

"......알겠습니다, 국장님! 늦어도 45분 안에 이리로 오겠다구요. 물론 내 목소리는 알아보시겠죠? 틀림없겠죠? 그렇죠, 마르코스 아비스토...... 그러니까......결국, 그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면서, 우선 브레삭을 향해 씽긋 미소를, 다음 여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보낸 뒤, 저만치 방구석을 향해 권총을 냅다 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다름 아닌 강력반 형사 빅토르라 이겁니다!"


12. 뤼팽의 승리

수수께끼가 해결된 것은 그 다음날 아바스 통신사(AFP의 전신으로 근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통신사. 1835년 설립/역주)가 전 세계로 타전한 아르센 뤼팽의 저 유명한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문제의 전언 내용이 사람들을 온통 환희와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 내용을 한 줄 빠뜨리지 않고 여기 게재한다.

 

바로잡음

이제는 대중에게 강력반 소속 빅토르 형사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얼마 동안 국방공채 도난사건과 관련해서, 그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아르센 뤼팽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이제는 더 이상 사법당국과 일반 대중을 무지 속에 방치해선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인데, 그것은 또한 아르센 뤼팽의 빛나는 성품과 존경할 만한 이름을 가로채고 행세해온 앙투안 브레삭 선생의 뻔뻔스런 가면을 벗겨내는 역할이기도 했다. 강력반 형사 빅토르는 더없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뛰어듦으로 해서, 그 같은 작태에 대해 얼마나 거부감을 가지고 증오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여준 셈이다.

빅토르의 활약에 힘입어 이제 가짜 뤼팽은 철창 신세를 지고 있으며, 강력반 형사 빅토르라는 인물은 개운하게 임무를 완수한 뒤 그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다만, 경찰로서의 깨끗한 명예에 단 한 점 오명의 씨앗도 허용치 않겠다는 투철한 생각과 더불어 한 개인으로서의 양심마저 경탄할 만한 수준까지 정화시키기를 바라는 심성에서, 그는 마침내 아홉 장의 국방공채를 이대로 자신이 맡아 가지고 있기보다는 나에게 의뢰해 파리 시 경찰청에 전달해주기를 정식으로 요청해온 바이다.

한편, 1000만 프랑을 어떻게 찾아냈느냐의 문제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난제를 척척 풀어대는 한 사나이의 기발한 천재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그 세세한 전모를 공개해야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무슈 세리포스가 소지하고 있던 서류들 중 하나에는 앙투안 브레삭의 추적에 단서가 되는 'A. L. B. 문건'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것을 브레삭은 '알바니아 문건'으로 해석했고 말이다.

 

그 즉시 빅토르는 앙투안 브레삭의 해석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A. L. B. 라는 세 글자는 다름 아닌 앨범(album)의 처음 세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간파해버린 것이다. 무슈 세리포스의 전 재산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 프랑은 알바니아 문건에 들어있는 게 전혀 아니고, 단순히 아동용 우표 앨범 안에 그만한 가격을 호가하는 희귀 우표 컬렉션 형태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 수완이라면 강력반 형사 빅토르에게 1000만 프랑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지 않을까? 만약 내게 묻는다면 당연히 오케이다.

 

한마디만 더, 내가 보기에, 강력반 형사 빅토르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이번 싸움에 매달린 진짜 이유는, 어디까지나 최초에 영화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 여인, 저 파렴치한 사기꾼 앙투안 브레삭이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컷 우롱했던 그 가련한 여인을 향한 기사도적인 흠모의 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여인에게도 귀한 혈통의 마나님에 어울리는 생활과 고귀하고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완벽한 위상을 되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내가 그 여인을 자유롭게 놔주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부디 그녀가 현재 은둔해 있는 안전한 피난처에서나마 강력반 형사 빅토르와 페루인 마르코스 아비스토의 이 작별인사와 더불어, 나 아르센 뤼팽의 심심한 인사 또한 받아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아르센 뤼팽

 

이어지는 목요일 오후 두 시,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 공주는 은신해 있던 여자친구의 아파트를 벗어나 튈르리 공원을 한참 동안 산책했고, 그대로 리볼리가(街)로 접어들었다.

복장은 무척 단순한 편이었으나, 항상 그렇듯 이국적이면서도 경이로운 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시선들을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고, 얼굴을 가리는 일도 없었다. 하긴 이제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 중에 뭔가 의심의 눈초리로 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인 비미쉬도 앙투안 브레삭도 그녀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오후 세 시, 여자는 생-자크 소광장으로 들어섰다.
낡은 탑의 그늘 속 벤치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처음에 약간 주저했다. 저 남자가 그 사람이라구? 페루인(人) 마르코스 아비스토와도, 강력반 형사 빅토르와도 거의 닮은 점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코스 아비스토보다 얼마나 젊고 우아하며, 빅토르 형사보다는 또 얼마나 섬세하고 유연하면서 품위가 넘치는가 말이다! 저 젊은 모습, 저 다정다감하고 유혹적인 분위기는 이전 그 어느 떄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쨌든 여자는 다가가보기로 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지만, 틀림없이 동일인물이었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 곁에 앉았다.

둘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상태가 두 남녀를 때로는 하나로 묶었다가 때로는 흩어놓는 가운데, 두 사람 누구도 그 감미로운 느낌을 끊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해설 : 아르센 뤼팽의 작품론 4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문학적 가치

요컨대, 스토리의 발단이 되는 발상만 던져놓고 억지로 작품을 끌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발상이 마무리되는 스토리의 대단원까지 정확한 청사진을 마련한 다음에야 집필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맨 위에 인용한 저자 자신의 표현대로, 상상력을 날것 그대로 던져두지 않고, '그것으로 하나의 작품, 즉 문학작품을' 형상화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의미이며, '단순히 꿈꾸는 것'을 넘어 그것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구조에 신경을 쓰는', 이른바 장인적인 작업태도와 소명의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배려 덕분에, 처음에는 엉뚱하게만 보이는 발상과 어지럽게 진행하는 스토리 라인으로 다소 황당한 느낌에 휘둘리다가도, 작품의 말미로 치달을수록 하나하나 지리멸렬해 보이던 요소들이 절묘하게 맞물려 정돈되는 과정에 혀를 내두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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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7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살구빛의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시작부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비극이 일어나고, 거기에 대해서 대체 어떻게 결론을 낼 것인지 예측하기도 어렵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사건의 해결에 다다르게 되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 결말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두 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은 프롤로그에 암시된 바처럼 (알고 보면) 극히 단순한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그 전개 방식과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에서 매우 참신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제목 자체가 수수께끼인 이 당돌한 작품은 한마디로 '착각과 오해가 한바탕 소동을 부리는 요지경 극(劇)'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아르센 뤼팽의 익살과 여유, 밉살맞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재치가 다른 어느 에피소드보다 더 톡톡 튀는 작품이다. 사건의 해결을, 전혀 상상치 못할 매듭에서 풀어내는 모리스 르블랑의 짓궂은 버릇(?)은 이제 이 능청맞은 작가가 아예 작정하고 독자의 뒤통수 때리기에 재미 붙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대담하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기조차 하다. 모험의 치열함과 격렬함에서는 다소 미진하다는 평이 있기도 하지만, 늘 우리 무릎을 치게 만드는 뤼팽만의 매력에 민감한 뤼피니앵들에게는 결코 빠트릴 수 없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번 해설에서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가지는 특징과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한다.

 

1. 프롤로그: 기이한 상처

단 이쯤에서 한 가지 기억해둘 것은 당시 그 상황은 완벽히 안전한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그 장면이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끊어질 어떠한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화잉었다. 정말이지 느닷없이, 덜컥 발생한 사건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각자 느낀 바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분명 목격한 것을 확신하는 내용만큼은 하나같이 똑같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한마디로 전혀 예측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었던 사건이 마치 폭탄이 터지듯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는 사실!(실제로 나중 목격자들의 진술에는 그와 같은 과격한 표현이 공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일단 살인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물론 그것에 사용된 흉기라든가 총알 혹은 살인 용의자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이 일어났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모두 합해 마흔두 명에 이르는 참석자들 중 다섯 명이 어디선가 번쩍 하는 섬광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그 다섯 명 모두 섬광이 비친 장소나 방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증언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나머지 서른일곱 명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세 명은 뭔가 둔탁한 폭발음을 들었다고 증언한 데 반해, 나머지 서른아홉 명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2. 금발의 클라라

꺽다리 폴의 정부(情婦)이자, '금발의 클라라'로 알려진 여인이 15시 47분 리지외발(發) 368호 열차에서 목격되었음. 고르주레 형사반장을 즉시 급파할 것. 열차가 도착하기 전, 구인영장은 따로 인편을 통해 생-라자르 역에서 그에게 전달될 것임.

여자의 인상착의는 다음과 같음.

웨이브 진 금발을 양 갈래로 늘어뜨렸고, 눈동자는 푸른색. 20에서 25세 정도. 예쁜 얼굴에 옷차림은 수수한 편. 전체적으로 우아한 자태임.

 
3. 중이층에 사는 신사

그가 거하는 장소는 관리인 숙소 바로 위이자, 후작의 개인비서가 사용하는 방들 바로 밑이었다. 처음 어두컴컴한 현관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거실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고, 오른쪽으로 돌면 방 하나, 왼쪽으로는 목욕탕이 구비되어 있었다.


4. 2층에 사는 남자
후작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프랑스 한복판의 온천도시에서 그토록 흥겹게 시작되었던 감미로운 연애사건이 몽실몽실 떠오르는 것이었다. 당시 테레즈는 가정교사의 자격으로 어떤 영국인 가족을 수행하고 있었다. 장 데를르몽에게 그때 일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난 일종의 변덕스런 장난질에 불과했다. 워낙 무사태평하고 이기적인 성격이었던 젊은 귀족은 자신한테 몸과 마음을 다해 순정을 바쳐오는 여자를 진지한 관심으로 대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따라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 시간의 희미한 추억거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테레즈에게는 그 일이 보다 심각하고, 평생을 떠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단 말인가? 아무 말도 없이 갑작스레 단행된 이별이 정녕 고통의 씨앗을 남긴 거란 말인가? 하나의 떨어져나온 생명, 바로 이 아이를 말이다......


5. 불법침입

"다시 말해 후작 주변을 염탐하고 있었단 얘기로군요?...... 당신과 같은 이유로 말입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한번은 내 앞에서 후작에 대한 치명적인 원한에 사무쳐 있다는 얘길 한 적이 있긴 해요."

"이유가 뭐랍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그 자의 부하들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나요?"

"아라비안이라는 사람만 조금......"

"그 자는 어딜 가면 볼 수 있습니까?"

"몰라요. 혹시 몽마르트르의 술집에 가면...... 언젠가 들릴 듯 말 듯 그 술집 이름을 중얼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요......"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요?"

"네...... 에크레비스라고......"

남자는 그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 날은 여자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6. 최초의 격돌

"만약 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면, 내 곁에 있는 한 위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겁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요. 손에 온기(溫氣)가 감돌고 나면,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용기를 가져도 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부여잡은 채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몇 분이 지난 뒤, 다소 안정을 되찾은 여자가 말했다.

"이제 가요."

남자는 관리인 숙소 문을 두드려 대문을 열게 했고, 여자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7. 성채 경매

"네 이놈, 당장 나오지 못할까!"

순간 권총을 쥐고 있던 손이 쓱 사라졌다. 고르주레가 기둥 모퉁이를 돌아들었을 때는 그뒤로 이쪽 아치에서 저쪽 아치까지 쭈글쭈글 드리워진 송악의 장막밖에는 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형사반장은 분명 있던 적이 연기처럼 사라졌을 리 없다는 생각에서 추격 속도를 늦추지 않았가. 그런데 이번에는 그 장막처럼 드리워진 송악으로부터 권총 대신 무쇠 같은 주먹을 내세운 팔 한 짝이 덜컥 튀어나와 달려드는 고르주레의 턱주가리를 정통으로 명중시키는 게 아닌가!


8. 이상한 협력자

"......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건, 그 문제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고, 내 관심을 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이 죽임을 당하고 보석을 도난당했습니다. 즉각 그에 대한 조사가 단행되었죠. 다른 모든 목격자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취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당신은 죽은 여자와 당신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또 무슨 이유로 이 성채를 매입한 걸까요? 별도로 무슨 조사라도 해본 겁니까? 그 당시 신문에서 내가 읽은 사실들말고 더 아는 건 없나요? 볼니크의 비극과 당신이 도둑맞은 유산 사이에 모종의 관계라도 있는 겁니까? 두 개의 사건이 같은 근원과 같은 전개양상 그리고 같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벌어지기라도 한 겁니까? 이상이 내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정확한 답을 필요로 하는 의문점들입니다."


9. 꺽다리 폴을 쫓아서

아무튼 라울은 그 여자를 생각할 때마다 자기도 깜짝 놀랄 정도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가 머리 속에 떠올리는 여자의 모습은 볼니크 성에서 라울 자신이 자꾸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던 불안해보이고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앙토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어떤 숙명의 법칙에 이끌리듯, 후작의 서재에 잠입해 떳떳치 못한 어둠의 작업에 여념이 없던 음험하고 번민에 찬 앙토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의 뇌리에 각인된 여자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때, 즉 중이층 비밀장치의 화면에 떠오른 귀엽고도 매혹적인 앙토닌이었다. 얼떨결에 잘못 찾아든 방문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앙토닌은 삶의 행복과 희망에 들떠 있는, 천진하면서 아리따운 아가씨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매섭고 혹독한 운명 속에서 덧없이 스쳐지나간 순간이었지만, 정말이지 감미롭고도 상큼한 흥분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다만-사실 이건 요즘 들어 라울의 머리 속에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출몰해온 난감한 문제였는데-다만 그 몇몇 수수께끼 같은 행동들의 이유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어떤 비밀스런 계획이 있기에 후작의 신임을 얻으려고 그 앞에서 알짱댄 것일까? 혹시 그가 자기 아버지라는 걸 눈치챈 건 아닐까?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는 걸까? 아니면 재산을 노리는 것일까?"


10. 에크레비스 술집

에크레비스 술집은 다분히 수상쩍은 인간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낙오한 그림쟁이나 기자들, 실직했으되 딱히 일자리를 원치도 않는 근로자들, 얄궂은 복장을 한 창백한 젊은이들, 깃털 장식 모자와 화려한 빛깔의 블라우스를 걸친 여자들로 언제나 북적댔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얌전히 술만 마시는 분위기였다. 그것말고 만약 좀더 다채롭고 특별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바깥의 막다를 골목을 택해 들어가, 뒷방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맨 먼저, 푹 꺼진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은 어느 뚱뚱보 남자, 즉 이 술집의 주인이 손님 하나하나 들어서는 모습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곳으로 말이다.


11. 카지노 블루

여자는 한동안 지극히 멋진 자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올이 매우 섬세한 황금빛 천이 머리와 얼굴 일부를 살짝 덮고 있었다. 물론 그 틈으로는 경탄할 만한 가냘픈 금발 타래가 살며시 비어져 나와 있었고......

"맙소사!"

갑자기 라울이 악다문 어금니 사이로 내뱉었다.

"뭔데 그러나?"

어느새 그의 곁에 와 있던 고르주레가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12. 두 개의 미소

"그렇지...... 두 여자가 서로 싸우고 있어...... 그러다 이따금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철저히 따돌리고 말이야...... 결코 같은 미소를 공유할 수 없는 두 여자의 존재라...... 왜냐하면 당신이 가진 두 가지 이미지를 구별해주는 게 바로 그 서로 다른 미소이거든...... 하나가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면서 순박하고 어린 티가 나는 미소라면...... 다른 하나는 보다 음울하면서 어딘지 환멸을 담은 미소라고나 할까......"


13. 함정

마드모아젤, 주인님께서 부상당한 채 층계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중이층 서재에 누워 계십니다. 상태는 좋아지고 있습니다만, 주인님께서 마드모아젤을 보고 싶어하시는군요. 그럼 이만.

쿠르빌

 

쿠르빌의 필채를 잘 아는 하인마저도 혹할 만큼 잘 위조된 글씨들이었다. 그만하면 더 이상 클라라를 만류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긴, 설사 만류한다 해도 어찌 그게 가능하겠는가?


14. 대결

"참 바보 같은 질문이로군. 데를르몽 후작이야 거기 초대된 손님들 중 하나였을 뿐 아닌가?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게 전부이지."

"그건 경찰에서 내세운 얘기이고, 현실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

"그래, 그 현실이 어떤 건데?"

"엘리자벳은 다른 아닌 데를르몽 후작에 의해 살해되고 도난당했어."


15. 살인

그제서야 쿠르빌은 호주머니 속에서 신문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을 낚아 채 읽자마자 라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신문 제 1면 1단 기사가 굵은 활자로 다음과 같이 게재되어 있었다.

 

꺽다리 폴 살해되다! 그의 옛 정부였던 금발의 클라라는 범행현장에서 형사반장 고르주레의 손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녀를 살인 용의자로 확신하고 있으며, 아울러 카지노 블루에서 그녀를 납치했던 해로운 애인 라울 씨도 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이 공범은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16. 조조트

워낙 감당하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인 고르주레로서는, 만약 마담 고르주레가 붉은 머리채 풍성한 육감적이고 매혹적인 여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남편에 대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지지 못했다면, 그만큼 오래 가지 못했을 연애결혼이었다. 탁월한 살림꾼이면서도 다소 가벼운 데가 있고, 남자들 앞에서 애교도 심한 편인 아내는 고르주레 씨의 체면에는 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동네 댄스홀을 자주 드나드는 편이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 자체에 대한 남편의 잔소리 시도는 일절 용납치 않는 것이었다. 대신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남편이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적절히 받아줄 줄 아는 여자였다.


17. 불안

나중 얘기지만, 그러던 어느 한순간, 지극히 단순하고 자연스런 현실에 맞닥뜨리고, 그때까지의 수수께끼가 깔끔한 해결책을 동반한 채 뒤통수를 때리자, 라울은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을 오히려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었다. 라울 스스로 생각해봐도, 실재하는 무엇이라면 적어도 삶이 매일같이 제공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상처럼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 만져보고 감지할 수 있는 인간적인 진실 파악 능력만 제대로 활용해도, 어떤 사태이든 상황에 휩쓸리다가 마지못해 납득하기 훨씬 전부터 대번에 그 정곡을 꿰뚫을 수 있어야 옳았다. 자고로, 사방 백일하에 그 전모가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도록 문제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18. 두 개의 미소에 얽힌 사연

라울의 삶-즉 아르센 뤼팽의 인생-은 분명 모든 논리적인 현실과는 상반되는 놀랍고도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사태들, 도무지 불가사의한 현상들과 충격적인 상황들로 북적대는, 그런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훗날 아르센 뤼팽이 고백한 바에 따르면-그 날 금발의 클라라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눈앞에 나타났던 일이야말로 그의 가장 깊은 내면부터 뒤흔들어버린 최고의 충격적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19. 고르주레, 광분하다

고르주레 부부간의 대화는 마치 폭풍우를 연상시켰다. 다분히 허구적인 인물에 대해서 남편이 공연한 질투심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조조트는 세련되고 예의 바르며 행동거지가 무척이나 섬세한, 그야말로 재치만점의 매혹적인 신사가 가질 수 있는 온갖 장점들을 끌어다가 심술궂게도 그 인물을 잔뜩 치장했다.


20. 승리냐? 패배냐?

"아하!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황공하구만그래! 정말로 당신 그 여자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쩌라구? 내가 좀 거부할 수 없는 존재여야 말이지! 앙토닌도 날 좋아하고, 올가도 날 좋아하고, 조조트도 날 좋아하고, 쿠르빌도 날 좋아하고, 고르주레도 날 좋아하고......"


21. 라울의 맹활약

"......너 혹시 「몽테-크리스토 백작」읽어보았니?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등장했는지 기억나? 세상 곳곳에서 그를 알았던 몇몇 사람들이 함께 점심을 들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 수개월 전 정확히 그 날 정오에 나타날 거라 약속을 한 건데, 여행 길이 불확실한 데도 불구하고 주인은 반드시 정확한 시각에 그가 나타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어. 그리고 정오의 종소리가 울렸더랬지. 마침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주인이 이렇게 말했단다. '여러분, 몽테-크리스토 백작님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지금 그와 같은 믿음과 불안감을 함께 간직하면서 기다리는 듯하구나......"


22. 페르세우스 성좌(星座)의 범행
"......이 돌멩이는 분명 사건 수사 시 경찰의 눈에도 띄었을 것입니다만, 아무도 특별하게 주목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총알이라든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뭔가를 찾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내 눈에는 이 돌이 여기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강력한 현길의 증거로 보였답니다. 물론 이것말고 다른 증거들도 있지요. 우선 사건이 일어난 시기 말입니다. 8월 13일. 지구가 문제의 유성군 아래를 지나가는 시기죠. 솔직히 말해서 이 8월 13일이라는 날짜가 내 정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었습니다...... 그 다음 또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데, 이건 그저 논리적인 추론을 돕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과학적인 증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제 나는 이 돌멩이를 비시에 소재한 한 화학 및 생물학 실험실로 가져갔습니다. 거기서, 새카맣게 탄 인간의 신체조직 일부가 옻칠로 표면 처리된 상태에 있는 걸 보게 되었죠...... 네, 불붙은 화구(火球)에 맞아 새카맣게 타버린 생체로부터 피부와 모발이 포함된 상태 그대로 떨어져나간 조직 덩어리였습니다. 한데 그 돌조각에 아예 찰싹 달라붙어서 세월이 지나도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하여튼 그 적출물(摘出物)은 화학자의 손에 의해 잘 보관되어서 공식적인 연구논문의 소재가 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무슈 데를르몽이나 고르주레 선생이 원하기만 하면 아마 언제든 제출 받아 검토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해설: 아르센 뤼팽의 작품론 3

-시대상의 반영, 아르센 뤼팽 시리즈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단순한 추리 모험소설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당대의 사회상과 시대적 조류를 충실히 담아낸 풍속소설로서도 뜻깊게 읽혀질 수 있다. 실제 작품이 쓰여진 연대로 보자면 1900년대에서 1910년, 1920년, 1930년대로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웬일인지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의 모험담 대부분을 1900년대에서 제1차세계대전 전까지의 소위 벨 에포크(Belle Epoque)라고 불리는 '좋은 시절'에 할애하고 있다.

 

이처럼 뤼팽의 모험담이 애써 위치하고자 한 시대는 20세기로 들어선 파리라는 대도시가 그 이전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였으며, 이를 향수 어린 마음으로 추억하는 후대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붙인 별칭이 바로 벨 에포크인 것이다. 코르셋을 과감히 떨쳐버린 여성들의 맵시 있는 패션과 러시아 발레단의 전위적인 무용, 큐비즘으로 대표되는 혁신적인 예술 운동, 온갖 대중 잡지의 폭발적인 발간, 사진과 영화의 대중화, 그리고 엑스선과 무선 전신, 자동차, 비행기 등, 나날이 현대의 기적을 일신하는 과학문명...... 가히 벨 에포크는 모든 것이 놀랄 만한 속도로 변화하는 긍정과 모험의 자유분방한 시절이었다.

아르센 뤼팽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1905년 당시 체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정부주의자이자 도둑인 알렉상드르 자콥을 모델로 했다는 설도 잇고, 실제로 그 당시 사교계의 살롱마다 우아한 취향의 사기꾼이 심심치 않게 출몰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지고 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에 얽매인 그 무엇도 없이 자유와 방황, 미녀와 예술품, 삶의 희열을 찾아 끝없는 모험을 계속하는 아르센 뤼팽 자신의 운명이야말로 벨 에포크라는 시대의 산물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예찬이든, 시대유감이든, 아르센 뤼팽은 시대를 무대로 해서 한바탕 운명의 도박을 펼쳐가는 당대의 주인공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뇌리에 아직까지도 아르센 뤼팽의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깊이 각인되어 잇는 레오 퐁탕의 삽화 속 모습 역시 단연 벨 에포크의 하이클래스 신사복장이다. 실제로 소설 속 뤼팽이 그와 같은 복장을 갖춘 일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복장 자체에 대한 묘사도 중구난방이지만 어느새 뤼팽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버린 시르햇에 외알 안경, 흰 장갑에 말쑥한 지팡이, 검은색 프록코트 차림새는 사실 그 당시 부르주아 신사들의 보편적인 전유물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파리지앵들을 주요 독자로 발행된 잡지에 연재를 통해서 탄생된 뤼팽 시리즈가 그 시대의 사회 분위기와 정서를 가장 민감하게 대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종종 실제 사건들이나 인물들, 심지어 그 당시 유행어 등이 불쑥불쑥 언급되면서 뤼팽이라는 허구의 인물은 더없이 강력한 현실성을 부여받곤 한다.

 

이처럼 단편적이고 재치 만점의 테크닉들은 어쩌면 대중 문학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경쾌한 자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뤼팽 시리즈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루어지는 사건 자체를 동시대의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들에서 직접 가져와 시대적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데에 앞장선다.

 

그런가 하면 「수정마개」의 사건이 세계사적으로도 너무 유명한 '파나마 운하 스캔들'을 모델로 한 것임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경향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더더욱 적극성을 띠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직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813의 비밀」에서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일명 카이저)의 모습이 그나마 위엄을 갖춘 군주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데에 반해서, 이미 전쟁이 터지고 난 후인「포탄 파편」에서 그려지는 황제는 그저 허세로 가득 찬 적군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의 변화야말로 경쟁국가의 원수에서 침략군의 수뇌로 그 대상이 변함에 따라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쪽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와 맥락은 다르지만 아르센 뤼팽에 등장하는 영국인에 대한 혐오감 내지 경멸 어린 태도 또한 그 당시로는 확실한 이유가 있는 정서를 밑바탕으로 한 것이다.

 

뤼팽 시리즈를 읽는 현대 독자들의 눈에는(더구나 이방인으로서!) 이처럼 지나치게 애국주의적이다 못해, 국수주의적이기까지 한 요소들이 다소 불만일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당대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라는 데에 먼저 공감을 하는 것이 참다운 뤼팽 시리즈 감상을 위한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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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바 / 에메랄드 반지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6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바리바'란 'Barre-y-va'라고 쓰며, Barre는 '만조 때 강어귀로 밀려드는 높은 파도', 'y va' 는 '그곳에 가 닿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붙여서 읽으면 바리바로 읽히는 것이다. 사실 이 제목만 안다고 해서 소설의 트릭을 전부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핵심 키워드가 어디쯤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실린 단편 '에메랄드 반지'가 더 재미있었다.
 
 
이번에 감상하게 되는 「바리바」와 단편 「에메랄드 반지」는 국내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바리바」에서는 센 강 하류 계곡지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둘러싼 서스펜스가 뤼팽 특유의 화통하면서도 세련된 재치와 결합되어 독자의 상상력을 쉴새없이 소용돌이치게 만든다. 수수께끼적인 요소가 대거 등장하면서, 오랜만에 암호문을 실마리로 삼은 추리의 과정도 만끽할 수 있으며, 작품 후반에 이르기까지 범인을 베일 속에 가려두는 수법도 「호랑이 이빨」 이후 오래간만에 즐길 수 있는 테크닉이다. 저자의 ‘추리소설론(「기암성」해설 참조)’에서도 독특한 작가의 입장을 확인했지만, 「에메랄드 반지」라는 제목의 단편작품은 아마 추리문학에서 모리스 르블랑의 독창적인 입장을 가장 훌륭하게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애당초 본격 심리주의 작가가 꿈이었던 르블랑은 이 세련된 단편을 통해서 추리의 범주를 무의식이라는 영역으로까지 확대, 심화하는 비기(秘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해설에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활용된 참신한 기법과 테마를 간략히 살펴보고 그 선구적인 가치를 가늠해본다.
 
 
바리바
1. 밤의 방문객
 
극장의 저녁 공연이 끝난 뒤, 라울 다브낙은 집으로 돌아와 현관의 거울 앞에 멈춰 섰다. 거기에서 그는 우아한 실루엣과 떡 벌어진 어깨, 셔츠 가슴받이를 힘차게 부풀리고 있는 당당한 가슴팍 등, 고급 재봉사의 솜씨가 고스란히 밴 의복 차림의 멋진 몸매를 한동안 뿌듯한 기분으로 들여다보았다.
 
 
"세상 참! 하긴 당신이 너무도 매력적이라,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용건으로 찾아와주셨다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랍니다! 그러니까 마치 사람들이 셜록 홈스를 찾아 베이커 스트리트의 그의 집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이곳을 찾아온 거라 이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이제 필요한 모든 얘기를 차분히 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마드모아젤. 성심껏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자, 어서 말씀해보십시오."
 
남자는 먼저 의자부터 정중히 권했다. 그런데 라울의 예의 바르고 상냥한 태도 덕분에 많이 안정을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안색이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처럼 싱싱하면서 우아한 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까지 이따금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눈빛만큼은 차분한 신뢰감을 담고 있었다.
 
 
2. 테오도르 베슈의 자초지종
 
"좋아, 그럼 이제 내가 자네의 이야기를 대신 풀어내줄까? 만약 내가 틀리거든 그때그때 잡아내도록 하게. 물론 전혀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야. 아주 기초적인 얘기야. 지금부터 잘 들어보게나. 바리바의 장원은 옛날에 바슴가(家)의 영지에 속했었는데,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르 아브르의 어떤 선주(船主)한테 매각된 곳이지. 그의 아들인 미셸 몽테시외는 바로 거기에서 성장해 결혼도 했지만, 아내와 딸을 차례차례 여의고 나서, 결국 베르트랑드와 카트린이라는 손녀 두 명과 더불어 독신으로 살았다네. 지금 자네가 얘기한 두 명의 자매가 바로 그들인 셈이지. 할아버지는 마음 둘 곳을 못 찾아서 그런지 파리로 이사해 정착해보았지만, 1년에 두 번씩은 항상 이곳을 찾는다고 하네. 부활절을 즈음해서 한 달 정도, 그리고 사냥철이 되어 또 한달을 머물다 간다는 거야. 손녀들 중에서 맏이인 베르트랑드는 비교적 일찍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무슈 게르생이라고, 파리에 터를 잡은 실업가이면서, 미국에서도 대규모 사업을 운영한다더구만. 어때, 여기까지 동의하나?"
 
 
"한편 어린 카트린은 미셸 몽테시외와, 또 하나,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주인한테 매우 충직한 하인 아르놀드-자기들끼리는 무슈 아르놀드라고 부른다는구만-이렇게 셋이서 살았다네. 한데 그녀는 자라나면서 공부는 그럭저럭만 하는 대신, 워낙 성품 자체가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데다, 약간은 몽상적이고 황당무계하며, 운동과 독서에 열광하는 타입이라더군. 그래서 그런지 오직 바리바 같은 곳에서만 마음을 활짝 펴는가 하면, 오렐천(川)의 차가운 물 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나서 풀숲, 사과나무 고목 아래에 벌러덩 드러누워 몸을 말리는 게 유일한 낙이어싿고 하네.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무척 사랑하셨다는데, 그 양반 역시 성격이 보통 과묵하고 괴팍한 게 아니라서, 평소에는 화학이나 심지어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 학문에만 몰두했다는 거야. 어때, 내 얘기 따라오기는 하는 건가?"
 
 
"그러던 중, 벌써 스무 달이나 된 애기인데, 그때가 9월 말 정도였다고 하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그 무렵이면 한번씩 머물다 오는 노르망디에서 떠나던 날 저녁, 몽테시외 할아버지가 그만 파리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 거야. 그 당시 언니인 베르트랑드는 남편과 함께 보르도에 있었지. 하지만 즉시 돌아와서, 그때부터 두 자매가 함께 살고 있다는군.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적은 유산을 물려주었고, 별다른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았지. 결국 바리바 영지는 그때부터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거야. 장원의 철책들과 정문은 열쇠로 단단히 걸어 잠가둔 상태로 말이야. 아무도 더는 그곳을 드나들 수가 없게 된 거지."
 
 
"그런데 올해 들어와 갑자기 두 자매는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작정했어. 베르트랑드의 남편인 무슈 게르생마저 프랑스로 돌아온 다음 다시 떠났다가, 또 이번에 돌아와서 두 자매와 상봉을 하게 되어 있었다네. 두 자매는 그곳으로 가면서 무슈 아르놀드는 물론, 베르트랑드를 지난 수년간 시중 들어온 요리사 겸 하녀 한 명도 함께 데려가기로 했지. 뿐만 아니라, 마을에 들러 임시로 두 명의 현지 소녀를 더 고용해, 이 참에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저택 청소와 정원 다듬기에 나섰던 거야. 그 결과 장원 일대가 그야말로 진짜 파라두도 저리 가라가 된 거라네!(파라두[Paradou]는 에밀 졸라[1840-1902]의 소설 「무레 신부의 과오(La faute de l'abbe Mouret)」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정원 이름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이 자연주의 소설의 대가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저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발표했을 때 열광적인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졸라를 흠모했다/역주) 어떤가, 내 얘기에 동의하나?"
 
 
"그런데 카트린은 얼마 전에 속을 발칵 뒤집어놓은 일련의 심각한 사태 때문에 여전히 우울한 기분이었을 텐데도 의외로 밝게 웃곤 하더군. 그 날 나는 밤 10시 30분 정도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네. 물론 밤새 별다른 일은 없었고 말이야. 무엇인가 수상쩍은 소리 하나 없었지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뜬 정오가 되어서야, 베르트랑드 카트린의 시중을 드는 샤를로트가 헐레벌떡 달려와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니겠나! '마드모아젤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개천에 빠지신 것 같아요......'"
 
 
"자살이라도 했다는 건가?"
 
 
"아들이 그처럼 돈도 없고 신분도 별볼일 없는 여자와 결혼하는 걸 백작의 어머니가 싫어하셨지. 그러던 중 어제 아침 피에르 드 바슴의 편지가 카트린에게 배달된 거였네. 우리가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자기는 곧 떠날 예정이라는 내용이더군. 자기 어머니가 억지로 6개월간의 장기 여행을 명하셧다는 거야......잔뜩 의기소침해서 떠나긴 떠나지만, 제발 자기를 잊지 말고 꼭 기다려달라고 카트린에게 간청을 하는 편지였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즉 아침 열 시, 카트린은 집을 나섰고 그 후론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거야."
 
 
3. 살인사건
 
"방금의 대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눈 것입니다, 예심판사님. 나는 저가 있는 저 강철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무슈 게르생은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장소나 거리에 대해 충분히 납득을 하시겠지요? 아마도 여기 테라스에서 저 다리 초입까지 직선 거리가 기껏해야 80미터 정도 될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실제로 확인해보시면 알 겁니다-이 테라스에 서 있는 어떤 사람도 저기 다리의 첫째 아치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물론이요, 그 너머로 걸쳐 있는 두번째 아치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든가, 작은 섬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뚜렷하게 바라볼 수가 있다는 얘기이지요."
 
 
"섬의 땅바닥 일대는 온통 가시덤불과 쐐기풀 따위의 덩굴 식물들로 북새통을 이루어서 계단까지 거의 뒤덮인 상황인데, 무슨 이유로 무슈 게르생이 굳이 비둘기 집으로 향하는 건지, 나는 계속 의아해하며 바라보고 있었지요. 마드모아젤 카트린이 그곳에 피신해 있을 가능성은 전무한데 말입니다. 과연 왜였을까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요?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아무튼 무슈 게르생은 문에서 한 서너 발짝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저기 문 또렷이 보이시죠? 우리와 바로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지요. 큼직한 석재 토대 위에 둥그스름한 벽이 올라가고, 그 안에 나지막한 아치형으로 말입니다. 맹꽁이 자물쇠 하나하고 두 개의 넉넉한 빗장으로 문이 채워져 있을 겁니다. 무슈 게르생은 허리를 수그려 맹꽁이 자물쇠를 쉽게 풀어냈답니다. 그 이유야 나중에 직접 확인해보면 아시겠지만 무척 간단하지요. 꼬챙이 중 하나가 쉽사리 빠져나오거든요. 남은 건 두개의 빗장인 셈이죠. 무슈 게르생은 위의 것과 아래 것을 차례차례 손보았습니다. 이내, 그는 걸쇠를 부여잡더니 문짝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군요. 바로 그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팔을 들어 막거나 뒷걸음질로 피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니 심지어 그런 도발이 일어나는 걸 분간할 틈도 없이, 난데없는 총탄이 발사된 것입니다! 총성과 함께 맥없이 뒹구는 무슈 게르생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4. 습격
 
'모든 게 명확해지는군. 백작부인은 아들에게서 여행을 떠나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 두 연인간의 약속은 그대로 공중에 뜬 격이었겠지. 그러다 난데없이 어제 아침 젊은이의 작별 편지가 카트린에게 배달되었고, 기겁을 한 카트린은 바리바를 벗어나, 평상시 밀회를 나누던 장소로 무턱대고 달려온 거야. 물론 피에르 드 바슴 백작은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지......'
 
 
5. '버으나우 셋'
 
"하지만 워낙 외롭게 지낸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일부러 무얼 숨긴다기보다는 무슨 일이든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거나 좀 과묵하게 넘어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답니다. 꽤 기분이 괜찮을 때조차도 오로지 내 안에서, 나 자신만을 위한 기분에 그쳤지요.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전보다 훨씬 더 내성적으로 되어버렸답니다. 언니를 무척이나 따랐었지만, 그마저 결혼을 해서 떠나버렸지요. 나중에 언니가 돌아와서 그나마 많이 나아졌는데, 더군다나 이곳으로 함께 와 살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답니다. 하지만 서로 애정을 품으면서도, 우리 사이에는 그때도 지금도 뭔가 서로 함께 해서 행복하다거나, 느긋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완벽한 친밀감이 느껴지지는 않아요. 물론 그 날못은 나한테 있지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는 약혼을 한 몸입니다. 피에르 드 바슴이라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그 역시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요. 하지만 그런 우리 둘 사이에도 역시 일종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속 시원히 드러내길 꺼려하고, 모든 충동적이고 활달한 태도를 공연히 경계하는 나의 이 천성에서 비롯된 결과죠."
 
 
"......이처럼 소극적인 태도는 보통 여성적인 은밀한 감정에 한해서는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특히 그 중에서도 다소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문제에 부닥쳤을 경우에는, 아주 괴상하게 보이기 마련이랍니다. 내가 바리바에 도착한 이후 벌어진 상황이 바로 그런 식이었어요. 정상대로라면 나를 후려쳤던 괴이한 사건들에 관해 일찌감치 얘기를 털어놓아야 했겠죠.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답니다. 실제 벌어진 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걸 혼자만 간직하고 있느라, 정작 남들한테는 어딘지 정신이 이상하고 불균형한 여자처럼 비치게 되고 만 것이죠. 결국 그러다보니 나 자신 불안에 찌들다 못해 신경질적이 되어버리고, 심지어 거친 여자로 변해버렸습니다. 내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는 싫은 이 고통과 공포의 짐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하면서 말이죠."
 
 
6. 보셸 할멈
 
"......그렇다면 정녕 내가 미쳐버린 걸까요? 언덕 위애 있는 걸로 늘 알고 있던 나무들인데...... 불과 2년 전에도 거기 있는 걸 보았었고...... 한데도 이미 그땐 그곳에 있지 않았었다는 얘기잖아요?...... 이 지도는 할아버지와 내가 5년 전에 만들어놓은 것이니 말이에요...... 내 머리가 어떻게 이런 착각에 휘말릴 수가 있는 거죠? 그동안 정말 엄연한 사실적 증거에 대항해서 싸워왔어요. 차라리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나무들이 옮겨 심어진 거라 믿고도 싶었죠. 그러던 중, 여기 이렇게 지도가 내 눈이나 기억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선 거예요. 매 순간 내가 엄청난 착각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할 판이니, 어떻게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내 전 인생이 그만 허깨비처럼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모든 과거가 한낱 허상과 거짓으로 점철된 악몽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에요......"
 
 
7. 공증인 사무소의 서기
 
매일 저녁 그렇듯, 덧문은 둘 다 닫힌 상태. 라울이 얼른 걸쇠를 벗겨냈지만, 알고 보니 그것들 모두 밖으로부터 잠겨져 있었다. 제 아무리 격렬하게 뒤흔들어보아도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라울은 이내 포기하고 옆 방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을 너무 지체했는지 정원 쪽으로 의심 갈 만한 징후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힐끗 살펴보아도 당구실 밖 덧문에 큼직한 빗장이 가로질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경 적이 퇴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날 밤 미리 장치해둔 것이 분명했다.
 
 
8. 유언장
 
아래 서명한 나 미셸 몽테시외는 예순여덟 살의 나이에 신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한 사람으로, 충분한 숙고를 거친 소견과 더불어 합법적이고 도덕적으로 내게 주어진 모든 권한에 따라 나의 두 손녀들에게 예전엔 그래도 꽃이 만발했던 바리바 영지 주변의 조촐한 땅을 (분할하지는 말되, 그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수익의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는 형식으로) 물려주는 바이다.
 
영지에 한해서는 개천의 줄기에 거의 준해서 서로 다른 크기의 두 부분으로 나눌 작정이다. 그중 개천 우측 부분, 즉 장원을 비롯해서, 내가 죽는 시점에 그 안에 포함될 모든 것을 다 합한 구역은 카트린의 소유가 될 것이다. 확신하건대, 그 애는 이 할아비와 둘이서 그랬듯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잘 가꾸어나갈 것이다. 나머지 다른 한쪽 땅은 베르트랑드의 소유가 될 것인데, 결혼해서 종종 그곳을 비울게 분명한 그 애도, 아마 거기 낡은 사냥용 별장 정도라면 가끔 들러 쉴 곳으로 흡족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에 더해서, 거길 수리하고 가구도 제법 갖추게 하기 위해, 또 두 유산의 불균형을 상쇄하는 뜻에서, 내가 죽거든 베르트랑드에게 3만5,000프랑어치의 금가루를 별도로 유증하기로 한다. 그것은 내가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유언 추가서에 그 정확한 소재지를 밝혀놓을 것이다. 아울러 떄가 도래하면 그 비할 바 없는 보물을 만들어낸 비법 또한 공개할 것이다. 보물의 진실성에 관해서는 언젠가 내가 그중 몇 그램 정도를 보여준 적이 있는 베르나르 선생만이 유일하게 보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나는 두 손녀들이 내 의지를 준수하는 데 서로간 하등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걸 지금까지 그 애들을 비추어봐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둘 중 하나는 결혼을 했고, 나머지 하나 역시 조만간 하게 될 것인 바, 둘 사이 여하한 오해를 초래할 만한 해석상의 오류도 철저히 차단키 위해, 나는 영지의 지형을 묘사한 도면을 작성해서 내 책상 오른쪽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것을 보면 결코 어떤 혼동도 없을 만큼 확실한 방법으로 표시를 해두었음을 알 것이다. 즉 영지 내부의 두 소유지 경계선은 카트린이 즐겨 숨어들었던 세 그루의 버드나무 중 가운데 놈에서 출발하여, 곧장 정원의 정문 철책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들 중 맨 서쪽 기둥에까지 도달할 것이다. 아울러 쥐똥나무 생울타리라든가, 아니면 말뚝 울타리로 경계선을 표시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각자 아무런 불만 없이 편안할 일이며, 오로지 그 원칙에 입각하여 이 유언의 규정들을 정하는 바이다.
 
 
9. 용의자 두 명
 
"알아요...... 그러지 않아도 엄청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린 돈이 너무도 궁했고, 카트린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그 금가루 얘기가 남편의 정신을 돌게 만든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황금 제조의 비법을 발견했으며, 장원과 더불어 개천 우측 땅덩어리를 몽땅 카트린한테 넘기면서, 무한정한 보물 역시 물려주려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렇다 해도 카트린은 분명 당신과 그것을 나누었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워낙 남편 고집이 강한지라, 난 어찌 할 도리가 없었어요. 나약하기도 했고, 비겁하기도 한 거죠...... 때로는 울컥하는 심정도 없진 않았고요.; 정말이지 그때 생각으로는 너무도 부당하고......심한 처사라 여겨졋습니다!......"
 
 
"사실 그쯤 되자 나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카트린에게 죄다 일러바치겟다고 위협했거든요. 게다가 우린 점점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기도 했고요. 사실 올해 동생 결혼을 앞두고 카트린과 함께 이곳에 머물기로 했을 때만 해도, 이걸로 영영 갈라서게 되는구나 싶었답니다. 그런데 두 달 후 남편이 불쑥 찾아와서 난 굉장히 놀랐지요. 남편은 파므롱과의 일에 관해선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도무지 누가 그이를 죽였고, 또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고 있답니다."
 
 
10. 큰 모자를 쓴 사나이
 
"아, 이제야말로 독안에 든 쥐다, 이 놈!"
 
그런데 이에 맞서 귓가에 들려온 것은 처량하게 애걸하는 나약한 목소리였다.
 
"아, 이런...... 대체 왜 이러나? 이거 놓지 못해?"
 
베슈의 목소리였다.
 
라울로서는 길길이 날뛸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 시간에 하필 이런 데서 잠을 청하긴가? 젠장, 멍청하기는! 그래, 누구와 함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베슈 역시 보통 화가 나 있는 게 아니었고,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는 듯 바짝 뻗대면서 엄청난 괴력으로 라울의 몸을 흔들어댔다.
 
"멍청한 게 누군데 이래? 지금 자네가 어떤 와중에 끼어든 건지 알기나 하나? 도대체 왜 우리를 방해하는 거야?"
 
"우리라니, 그게 누군데?"
 
"당연히 그 여자지! 제기랄! 이제 막 입을 맞추려던 참이었단 말이야! 처음으로 여자가 정신을 놓고 있었는데...... 당장 입을 맞추려는데, 자네가 모조리 틀어놨다구! 이 답답한 친구 같으니라구!"
 
화도 났고 한편 허탈하기도 했지만, 라울은 그가 망쳐놓은 유혹의 장면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는, 허리가 끊어져라 폭소에 또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하하하하...... 요리사였어!...... 요리사!...... 베슈가 드디어 요리사를 품어보려고 했다 이거야!...... 세상에, 내가 그 알량한 예식을 중단시켜버리다니...... 오, 하느님 맙소사! 이런 포복절도할 일이 있나! 베슈가 요리사에게 입을 맞추려 하다니! 돈 후안이 따로 없구만그래!"
 
 
11. 함정에 빠지다
 
아침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정오가 되었을 텐데, 그 어떤 탈 것 이동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필경 두 자매는 전보를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라디카텔을 떠났을 것이다. 릴르본에서 기차를 잡아타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라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성당 종소리가 오후 한 시를 규칙적으로 알리는 가운데, 그리 멀지 않는 느낌의 외침소리가 이렇게 들려온 것이다.
 
“라울! 라울!”
 
영락없는 카트린의 목소리였다.
 
아울러 베르트랑드의 목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라울! 라울!”
 
라울은 여자들의 이름을 번갈아 고래고래 외쳐댔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두 젊은 여자는 그밖에도 여러 차례 라울의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어쩐지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적막......
 
 
12. 복수
 
“혹시 파리로부터 당신들한테 전보 온 것 있습니까?”
 
대답은 베슈가 대신했다.
 
“그렇다네. 첫 기차로 자네한테 와달라는 내용이었어. 자네 집에서 만나자고 말이야.”
 
“그런데 왜 가지 않은 거지?”
 
“난 그러자고 했지. 한데 여자들이 원치 않더구만.”
 
“이유는?”
 
“의심이 간다는 거야. 자네가 그런 식으로 자기들을 떠날 리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 모두 나서서 자넬 찾아보기로 했다네...... 우선 바깥 숲부터 뒤졌지. 그런데 얼마 안 가 우리도 갈피를 못 잡겠더군. 도대체 자네가 떠난 건지 아닌지부터가 말이야. 영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시간만 흘러갔지. 그뒤론 잠도 한숨 못 잤다네.”
 
 
13. 논고(論告)
 
“천만에, 베슈! 그래서 자넨 늘 안 되는 거야. 아르놀드는 살인을 하지 않았네.”
 
 
“모두가 장원을 떠나게 하자는 거였지.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황금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장원에 사람이 죄다 빠져나가서 아무도 보는 눈이 없어야만 황금을 손에 넣기 위한 작업을 벌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그것도 9월 12일이라는 정해진 날짜가 도래하기 전까지 몽땅 빠져나가야만 했어.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자매가 기겁을 해서 떠날 결심을 할 만큼, 무시무시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할 수밖에 없었지. 원체 사람 죽일 천성은 못 되기에, 살인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고 말이야. 하지만 반드시 여기서 내쫓기는 해야만 할 일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는 카트린의 침실 창문으로 잠입해 들어와, 여자의 목을 다짜고짜 조르기 시작했지. 자네가 보기엔 진짜로 공격을 한 거라 볼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저 그런 시늉만 했을 뿐이라네. 목을 조르되, 죽을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살해할 시간여유는 있었어. 하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어차피 죽일 목적은 전혀 아닌 것을 말이야. 그래서 적당히 해두고 냅다 도망쳐버린 거라네.”
 
 
“그녀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아르놀드의 공범이라네.”
 
“아니지, 그녀가 자네를 구해낸걸?”
 
“회한이 들었던 게지! 지금까지는 아르놀드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의 행태에 적극 협조해온 게 사실이라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이따위 범죄행각이 더는 싫어졌고, 적어도 아르놀드가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거지.”
 
“아니, 그건 또 왜? 그가 무슨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나?”
 
“정녕 알고 싶은가?”
 
“그렇네.”
 
“아르놀드가 범죄자가 되는 걸 그녀가 왜 못마땅해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그렇다니까!”
 
“그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지.”
 
“뭐, 뭐라구? 지금 뭐라고 했나? 감히 뭐라고 지껄인 거야?”
 
“나는 샤를로트가 아르놀드의 정부(情婦)라고 말하는 것이네.”
 
순간, 베슈는 주먹을 한껏 치켜들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14. 황금
 
진짜로 라울이 지목한 곳을 보니 동그란 쇠틀에 체의 그것과 똑같은 촘촘한 쇠망이 자리한 사내끼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떤가, 베슈, 설마 개천에 들어가는 게 낫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싫어? 그럼, 가만히 낚기나 하다가, 체를 따라 바닥을 죽 긁어오게.”
 
“상류 쪽으로 말이지?”
 
“그래, 개천이 원래 방향으로 흐르면서 황금가루들을 운반해와, 결국 체에서 걸러지니까 말이야.”
 
베슈는 즉시 시킨 대로 했다. 사내끼의 손잡이가 긴 편이어서, 기슭의 큼직한 돌멩이에 올라선 채로도 개천의 4분의 3까지 미칠 수가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숙한 시간이었다. 라울이 예견한 바가 과연 옳을 것인가? 정말 저 수초들과 섬세한 조약돌들이 즐비한 개천 바닥에서 몽테시외 씨는 자신의 더없이 소중한 황금가루를 거두어들였던 것일까?
 
드디어 베슈가 일을 끝내고서 사내끼를 들어올렸다.
 
금속 망 속에는 조약돌과 얼기설기 수초들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뭔가 반짝거리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분명 황금가루와 그 조각들이었다.
 
 
15. 집정관의 재산
 
아직 젖은 상태인 나무뿌리와 가시덤불이 맨 먼저 제거되었고, 파묻혀 있던 오솔길이 복구되었다. 이어서 원형의 공간이 드러났고, 그 기저를 이루는 자갈층에 곡괭이질이 가해졌다.
 
하나의 장애물이 무너지자 또다른 장애물이 나타났고, 거기에는 보다 섬세한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모자이크의 흔적과 더불어 역시 조각상 같은 게 세워 올려졌을 다른 토대가 드러났는데, 이제 두남자의 발굴작업은 바로 그 지점에 집중되는 것이었다.
 
사방으로부터 물이 스며들어 적당히 고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개천 쪽을 향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내리친 곡괭이가 석벽을 그대로 뚫고 텅 빈 공간으로 쑥 빠져들었다. 부지런히 구멍 넓히는 작업에 들어갔고, 잠시 후 라울이 램프 불을 켜 확장된 구멍 속으로 들이밀었다.
 
과연 예견했던 대로, 사람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동굴이 휑하니 열려 있는데, 아마도 장례실로 쓰이던 공간 같았다. 중앙에 뻗은 기둥 하나가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는 유약 바른 흙으로 구운 투박스럽고 뚱뚱한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지금도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흔히 보는 기름 보관용 단지들과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그중 네 번째 항아리에서 떨어져나간 파편들이 끈적끈적한 훍바닥에 흐트러져 있었고, 황금빛의 반짝거리는 가루가 그 가운데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6. 에필로그: 둘 중 누구를?
 
“나는 당신 둘 다 사랑합니다......”
 
“바로 그게 문제예요! 둘 다라는 말...... 둘 다 고만고만할지언정, 둘 중 누굴 더 사랑하는 건 아니죠!”
 
여자의 말에 라울이 발끈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다시 또 여자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아니에요! 인정할 건 인정하세요...... 어차피 베르트랑드나 나나, 우리 둘의 감정은 당신이 모를 리가 없을 겁니다...... 한데도 당신은 우리 둘 다를 향한 감정으로만 그에 응하고 있어요...... 장원에서도 당신은 우리 둘 다를 위해, 그야말로 공동의 선(善)을 위해 싸우셨지, 그 두 사람을 따로따로 분리해 대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여겼어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당신한테 우리 두 사람 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거예요. 하지만 자고로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는 그렇게 되어선 곤란하죠...... 이곳 파리에 돌아온 이래, 당신은 하루 건너 번갈아 우리 두 사람을 제각기 따로 보러 왔어요. 그러는 동안 우린 헛된 자존심 반, 질투 반의 심정으로 당신의 결단이 내려지기만을 고대해왔죠. 그런데 이제는 당신이 결코 결단을 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언제까지나 우리 두 자매를 똑같이 사랑하려고만 들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뭡니까?”
 
라울은 목이 멘 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대신 우리가 내린 결정을 말씀드리려고 이렇게 온 거예요. 당신은 결정을 내리지 못할 테니까 말이에요.”
 
“그래, 어떤 결정을 내렸나요?”
 
“떠나기로 했어요.”
 
라울은 펄쩍 뛰었다.
 
 
 
에메랄드 반지
 
“마담, 당신은 필경 어떤 의혹 섞인 동작, 경계하는 행동을 실행에 옮겼을 겁니다. 비록 그 상황에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고, 당신의 성향에도 배치되는 짓이지만, 원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냥 저지르고 만 것이죠. 왜냐하면 무슈 데르비놀의 이름이 어떻든 간에, 덮어높고 그를 에메랄드 반지를 능히 훔칠 수 있는 자로 본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울화가 치밀더군요. 나는 길길이 소리를 질러댔죠.
 
‘내가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한 단 말입니까? 그런 파렴치한 의심을 했다구요?’
 
데느리스 남작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 물론 그런 건 아니죠. 대만, 당신의 무의식이란 놈이 수작을 부려, 마치 당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몰아간 겁니다. 그 놈은 당신의 시선과 사고가 닿지 않는 곳에서 몰래 장난을 쳤답니다. 흔히 끼고 다니는 모조보석 반지들과 무려 8만 프랑에 달하는 진짜 에메랄드 보석 반지 사이에서 재빠른 선택을 하게 만든 거지요.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선택이 이루어졌고, 반지들이 우르르 외발 원탁 위에 놓여졌을 때,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에메랄드 반지를 역시 무의식 중에 모든 의심스런 시도로부터 차단한 겁니다.’
 
그때만 해도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만한 모함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요.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그랬다면 내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리가 없죠!’
 
‘한데 까마득히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자체가 바로 증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 에메랄드 반지가 내 수중에 있어야 하잖아요!’
 
‘아니죠. 그건 당신이 놓아둔 곳에 얌전히 있습니다.’
 
‘내가 놓아둔 곳이라뇨?’
 
‘바로 외발 원탁 위 말입니다.’
 
‘거긴 없어요. 없다는 건 당신도 보고 있잖아요?’
 
‘있습니다.’
 
‘뭐요? 보시다시피 저긴 내 손가방밖에는 없어요!’
 
‘그러게요! 그러니 반지는 당신 손가방 안에 있는 겁니다, 마담.’
 
 
“어쨌든 올가 당신은 반지를 지켜냈고, 데르비놀은 자기 돈을 간수한 셈이로군요. 결국 아무것도 빼앗긴 물건이 없으니, 당신 얘기대로 일을 해주고 알아서 챙기는 게 능사인 바르네트의 원칙에는 정면으로 위배된 경우라 하겠어요. 스스로 손가방 안을 뒤져서 에메랄드 반지를 충분히 후무릴 수가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거예요. 그건 틀림없이 반지보다 더 좋은 걸 바란다는 뜻이겠죠. 그러고 보니 누군가 해준 얘기 하나가 생각나네요. 한번은 그가 일을 해준 뒤 아무 보상도 청구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채무자의 여자를 슬쩍 빼돌려 함께 유람여행을 떠났다고 하죠! 어때요, 올가, 정말 보상 청구치고는 아주 멋들어진 방법 아닌가요? 당신이 지금까지 들려준 그 남자의 모습이나 성향에 정말 잘 어울리는 수법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올가?”
 
 
 
해설: 아르센 뤼팽의 작품론 2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독창적인 테마들
 
① 이중적인 캐릭터
 
두말할 것도 없이 ‘괴도+신사’라는 아르센 뤼팽의 정체성이야말로 문학에서 최고 수준의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이중적 캐릭터’라고 할 것이다. 특히 시리즈가 횟수를 거듭함에 따라 도둑에서 탐정으로 점차 변모되어가는 이중적 혹은 분열적 주인공의 양상은 아르센 뤼팽이라는 존재의 정체성 자체를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제시함으로써 스토리를 더욱 긴장감 있게 이끌어나가는 동인(動因)이 된다. 처음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완전한 도둑으로 출발한 뤼팽의 정체성은 대작 「813의 비밀」에 이르면서부터 출발점과 완벽한 대극을 이루는 경찰(혹은 탐정)의 이미지로 둔갑을 하며 독자의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813의 비밀」에서부터 현란하게 선보이는 이름 철자 바꾸기(anagramme) 기술과 이전부터도 워낙 유명한 변장능력은 뤼팽의 이중적 정체성을 지탱하는 정교한 테크닉이다. ‘범죄자는 곧 경찰이 될 수 있다’는 고전적인 명제는 누구보다도 버도크(1775-1857)라는 실존인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레미제라블」[1862])과 발자크의 보트랭(「고리오영감」[1834-1835])이 바로 그를 모델로 해서 태어나는가 하면, 급기야 20세기 초 아르센 뤼팽에 이르러 그 가장 완벽한 전형이 탄생한 셈이다. 요컨대, 「813의 비밀」에 등장하는 르노르망 치안국장과 폴 세르닌의 1인 2역 드라마는 선과 악의 이중적 캐릭터가 추리문학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최초의 케이스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당연히 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 당시부터 수많은 추종세력을 불려나갔고, 양상은 좀 다르지만 팡토마스2)라든지 사이먼 템플러3)처럼 한층 발전된 또 하나의 범죄자 유형으로 그 화려한 명맥을 이어간다. 뤼팽 연구가들의 연구 결과,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棺)의 비밀」(1932) 같은 수작 역시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영향권 안에서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② 암호화된 전언에 의해서 진행되는 범죄의 테마
 
예컨대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서 희생자가 정해진다든다, 기존의 문서에 나타난 단서대로 범죄의 장소나 시기가 결정된다는 식의 설정 역시 뤼팽 시리즈에서 큰 효과를 본 추리적 장치이다. 「서른 개의 관」을 보면 노스트라다무스 스타일의 아리송한 시구 철자 하나하나에까지 집착하면서 광기 어린 살인극을 저지르는 광인 보르스키가 등장한다. 중세의 한 수사가 그저 운을 맞추기 위해 끄적여놓은 시구 하나하나가 범행의 시기와 희생자의 수를 결정하는 운명적인 예언이 되고 만다.
 
이처럼 암호화된 코드나 언어적 단서가 범죄 자체를 성립시킨다는 테마는 반 다인의 「비솝 살인사건」(1929)이라든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1940)5) 그리고 엘러리 퀸의 「더블, 더블」(1950)6)보다 한 발 앞서서 활용되었다. 「서른 개의 관」과 더불어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중 “도끼를 든 귀부인” 역시 수수께끼 같은 언어유희에 의거해서 범죄가 엮어지는 테마로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③ 복제된 장소의 테마
 
어떤 하나의 장소가 제시되고, 마치 복제된 듯 그것과 똑같은 장소가 새롭게 범죄에 활용됨으로써,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알리바이가 가능해딘다는 테마는 뤼팽 시리즈 중 「불가사의한 저택」의 주요 테마이다. 이는 분명 「엘러리 퀸의 새로운 모험」(1939)이라든가 프레데릭 다르의 「기중기」(1961)보다 10년 이상 앞선 선례라고 할 수 있다.
 
④ 그밖의 테마와 기법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중 추리적 관점에서 참신한 기법과 테마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은 역시 장편보다는 단편들에서 찾을 수가 있다. 즉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와 「바르네트 탐정사무소」 그리고 「아르센 뤼팽의 고백」 같은 단편 모음집 안의 주옥같은 작품들에서 독자들은 보다 많은 추리적 장치들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낀다. 미국 출신의 유명한 추리문학 전문가인 하워드 헤이크 래프트7)는 특히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를 두고, 추리소설의 줄거리 얼개 면에서 최고 수준의 작품성을 지닌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테레즈와 제르맨”에서의 밀실 변사체, “눈 위의 발자국”에서의 조작된 발자국 등의 테마는 그 방면의 고전적 전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화 속의 단서”에서 현실이 허구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테마는 체스터턴류의 발상이 앞서 나간 예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바르네트 탐정사무소」의 단편들 중 “흰 장갑...... 하얀 각반......”에서 선보인 눈에 보이면서도 목격되지 않는 용의자의 테마나 “바카라 게임”에서 알리바이가 형성되는 수법 등도 당시로서는 매우 독창적인 추리적 기법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아르센 뤼팽의 고백」 중 “백조의 자태를 지닌 여인”에서, 별개의 두 사람으로 등장했던 사람이 결국 동일인물이었다는 식의 발상은 「브라운 신부의 지혜」를 통해서 체스터턴이 그보다 1년 뒤에야 본격적으로 천착한 테마이기도 하다.
 
 
2) 피에르 수베스트르(Pierre Souvestre)와 마르셀 알랭(Marcel Allain)의 공저로 이루어진 범죄 소설 시리즈의 백미로서, 「팡토마스(Rantomass)」(1911)를 시작으로 「팡토마스의 최후(La Fin de Fantomass)」(1913)에 이르기까지, 단기간에 총 32편이라는 경이로운 시리즈가 선을 보였다.
 
3) 소위 ‘세인트(Saint)’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레슬리 차터리스(Leslie Charteris, 1907-1993)가 창조한 20세기형 로빈후드라고 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점에서 아르센 뤼팽으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얻어 창조된 캐릭터이다. 1928년 「호랑이와 맞서라(Meet the Tiger)!」로부터 시작해 작가 본인이 직접 집필한 시리즈만 총 19편에 달한다. 프랑스에서의 인기도 대단해, 번역본말고도 수십 여 편에 이르는 모작 시리즈가 프랑스어로 집필, 출판도기도 했다.
 
5) 국내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6) 국내에는 「일곱 번의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7) 「즐거움을 위한 살인, 탐벙 스토리의 생명과 시간(Murder for Pleasure: The Life and Times of the Detective Story)」(1941)이라는 저서에서, 일반 추리소설 팬들이 추리문학 감상의 주춧돌로 삼을 만한 명작 리스트(1841-1938 출간)를 70여편 이상 추려 제시한 바가 있는데, 그 중 뤼팽 시리즈의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가 당당히 올라 있다.
 
 
(http://home.comcast.net/~dwtaylor1/haycraft.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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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저택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5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 소설이 시작할 때는 아, 또 그렇고 그런 뤼팽의 모험담 중 하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솔직히 흘러가는 이야기도 다소 김이 빠지는 부분도 있었고.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 트릭이 공개되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한다.

 

「불가사의한 저택」이라는 을씨년스런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서는 1년간의 모터보트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르센 뤼팽이 장 데느리스 자작이라는 새로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첫 장부터 글자 그대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꼬리를 무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 전개는 후반부에 들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한꺼번에 풀리기 직전까지 독자의 의식을 완벽한 미궁으로 몰아간다. 까마득한 과거사 속에서 스토리의 발단을 구하는 모리스 르블랑의 장기가 여전하며, 전작(前作)에 이어 베슈 형사와 뤼팽 간의 유머 섞인 재치 만점 대결도 그대로이다. 뤼팽 시리즈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 대담무쌍한 발상을 이야기 저변에 깔되, 특히 이 작품은 과도한 비약보다는 치밀하게 점진적인 구성을 견지함으로써, 모처럼 퍼즐 맞추기식(式)의 지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이번 해설부터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작품론을 다루기로 하며, 그 첫걸음으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대한 같은 추리작가들의 촌평을 발췌 소개해본다.

 

아르센 뤼팽의 미출간 회고록에서 발췌함

나의 지난 모험들 중 몇몇을 되도록 충실하게 기술한 책들을

지금 다시 훑어보노라면, 한마디로 그 각각은 여인을 쫓아다니느라

나 자신을 던지는 순간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생각이든다.

황금 양털(Toison d'or)이 모양만 변했을 뿐 내가 이제껏 손에 넣으려고

그토록 헤매온 것이 바로 그 황금 양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상황에 따라 내 이름과 성격을 달리 해야만 했기에 그때마다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느낌이었고 이전까지는 결코 사랑해본 적도 없으며

이후에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매번 새롭게 다져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로 눈을 돌려볼 때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이나 소냐 크리슈노프,

돌로레스 케셀바흐 혹은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 등과 대면했던 남자는

아르센 뤼팽이 아니었으며 각각 라울 당드레지, 샤르므라스 공작, 폴 세르닌

그리고 리메지 남작이었다. 그들 모두는 각기 다른 인물임과 동시에 그 어느

하나도 나와 똑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그들이 겪은 다채로운 사랑을

나 자신은 겪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재미나거나

짜증스럽고, 때로는 지그시 미소를 짓거나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마치 이름 모를 형제들처럼 나와 비슷하게 닮았던 그 모든 풍운아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친구를 꼽으라면 아마도 마도로스 신사이자

탐정신사인 데느리스 자작일 것이다. 그는 파리의 어여쁜 모델이자 지고지순한

아를레트의 마음을 얻고자 저 불가사의한 저택을 둘러싼

험난한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던 것이니......

 

1. 여배우 레진

그 매혹적인 발상은 그러지 않아도 자선행사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즐기는 너그러운 파리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다름이 아니라 발레의 막간을 이용해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재단한 옷을 연예계 혹은 사교계의 아리따운 여인 스무 명에게 입혀서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올리자는 것이었다. 관객들은 투표를 통해서 그 날 선보인 가장 아름다우 의상 세 벌을 선정하도록 되어 있고 그를 제작한 작업실에 입장 수익 전액을 골고루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파리 양장점의 들뜬 아가씨들 상당수가 저 유명한 리비에라 휴양지로 보름간의 휴가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된다.

 

2. 모델 아를레트

"하긴 꽤나 엉뚱한 얘기지...... 애들 생각처럼 유치해...... 난 딱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대규모 양장점의 중역이나 사장이 되고 싶어. 직원 복지에 큰 비중을 두도록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갖춘 회사 말이야...... 그리고 또 여자 노동자들한테 지참금을 듬뿍듬뿍 나눠주는 거야...... 그래서 모두들 자기 맘에 맞는 곳으로 얼마든지 시집을 갈 수 있도록 말이지......"

제 입으로 엉뚱한 꿈이라면서 해맑게 웃는 아를레트...... 하지만 듣는 동료 아가씨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3. 탐정신사 데느리스

데느리스는 부드러우면서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두르고서 여자 쪽으로 잔뜩 몸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잘 생각해봐요, 아를레트. 그냥 겉으로 부닥쳐서 뻔히 드러난 외적인 사건들을 기억해내라는 얘기가 아니야. 당신 마음 먹기에 따라 기억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일 따위는 말고...... 의식을 어렴풋이 스치고 지나갈 뿐이어서 그만 잊어버리고 만 일들을 생각해내보라는 거야. 뭔가 비정상적이거나 특별한 점 말이지......"

 

4. 형사 베슈

멜라마르 백작은 이 모든 광경을 일견 초연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왠지 묘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떨어져나간 가슴받이를 예심판사가 불쑥 내밀며 추궁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입술을 씰룩거려 볼썽 사나운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대뜸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중얼댔다.

"내 누이동생, 어디 갔나요?"

늙은 하녀가 대신 대답했다.

"마담은 침실로 건너가신 것 같은데요."

"그 애한테 나 대신 작별인사나 전해주구려. 아울러 내 뒤를 따르라고 해주오."

백작이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관자놀이를 겨눈 뒤 방아쇠를 당기는 것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유독 그의 행동을 주의해 관찰하고 있던 데느리스가 부리나케 몸을 날려 팔꿈치를 쳐냈기 때문에, 총알은 살짝 비쪄나가 유리창을 박살내고 말았다. 동시에 형사들이 우르르 멜라마르 씨를 덮쳤다.

 

5. 그는 적(敵)인가?

때는 1840년, 현 백작의 증조부 되는 쥘 드 멜라마르는 멜라마르 가문의 가장 출중한 인물로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다가 왕정복고 시절에는 대사직을 역임한 인물이었는데, 어인 일인지 그만 살인절도죄로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급기야 그는 감방 안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에 문제를 좀더 치밀하게 파고들기로 했다. 그렇게 오래 된 자료들을 있는 대로 파헤친 결과, 일부 묻혀 있던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문서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1868년 바로 그 멜라마르의 아들이자 아드리앵 드 멜라마르 백작의 조부가 되는 알퐁스 드 멜라마르가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전속부관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살인과 절도죄를 범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그는 뒤르페가(街)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머리에 권총을 발사해 자결을 했고 황제는 모든 사건을 불문에 부쳐버렸다.

이상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세간에 대단한 소란을 몰고 왔다. 졸지에 어떤 단어 하나가 현재의 사태를 환하게 규명해주는 듯했고, 일거에 상황을 요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격세유전(隔世遺傳)이라는 말...... 비록 백작가문의 두 남매가 대단한 재산가는 아니라고 해도, 파리에 대저택을 소유한 데다 투렌에는 성채도 하나 지니고 있는 터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고 있으며 오히려 여러 자선사업에 투자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오페라 극장의 사건과 다이아몬드 절도 건에 대해 무슨 물욕(物慾)이 있어서라고 설명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결국 격세유전에 의한 범행인 것, 멜라마르 가문은 일종의 도벽(盜癖)을 본능적으로 지닌 집안이다. 멜라마르 남매도 분명 조상으로부터 그러한 형질을 물려받았을 게 뻔하다. 그들이 이번에 도둑질을 한 것은, 물론 자기들 재력을 상회하는 생활수준을 넘보기 위한 면도 없지는 않겠으나, 그보다는 좀더 강력한 유혹, 즉 격세유전적 필연성 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때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조부인 알퐁스 드 멜라마르처럼 아드리앵 백작도 자살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보라! 그 역시 격세유전의 증거인 셈이다.

 

6. 멜라마르 가문(家門)의 비밀

"그럼요! 물론이고말고요!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또 당했을 겁니다. 이 저택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바로 이곳에 멜라마르가(家)의 악령이 있어서 우리를 포위하고, 급기야는 망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 남매가 지금 숙명의 섭리에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바로 그 악령의 저주를 거슬렀기 때문이랍니다. 어느새 과거를 깡그리 잊고 그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저택에 입성하는 것만 즐거워하면서 시골을 떠나와 이곳 뒤르페가(街)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우리 남매는 음산한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답니다. 특히 오빠가 더 그랬어요. 나야 한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몸이니 행복도 불행도 골고루 겪은 셈이지만, 아드리앵의 경우는 다짜고짜 침울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지요. 워낙 저주에 대한 확신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강하게 자리잡은지라, 그는 아예 결혼도 포기하기로 작정했으니까요. 멜라마르 가문의 혈통에 그런 식으로라도 종지부를 찍는다면 운명도 피할 수 있고 계속되는 불운도 중단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 멜라마르가(街)의 최후의 생존자가 되고자 한 것이죠. 정말 무서워했어요!"

 

7. 구원자 파즈로

별다른 겉치레 없게 단순히 내뱉은 말 같았지만, 분명 아를레트를 향한 의미 있는 시선이 동반된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방 안에 자리잡은 사람들 위치상, 그 순간 어느 누구의 얼굴도 데느리스의 시야에 포착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는 이 말이 질베르트 드 멜라마르에게 건네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약간의 의혹이 있었다면 지극히 짧은 순간뿐이었고 그것은 베슈의 두 견갑골 중안 부위에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어김없이 찍어 꽂는 것이었다. 반장 입장에서는, 과연 인간의 손가락이 마치 고문용 집게와도 같은, 이런 괴력을 발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데느리스는 그곳을 벗어나면서도 앙투안 파즈로에 대해, 그리고 아를레트에 대해 당최 심기가 편치 않았다. 규방을 빠져나와 현관 바닥을 밟으면서도 오히려 발소리가 들켰으면, 그래서 지금의 이 더러운 기분을 왈칵 쏟아낼 수 있었으면 하는 오기까지 들었다.

 

8. 방화범 마르탱 가문(家門)

데느리스는  급기야 파즈로를 향해 노골적으로 물었따.

"당신 저 여자를 사랑합니까?"

"한없이 사랑하오."

열정 어린 대답이었다.

"아를레트도 당신을 사랑하오?"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요?"

파즈로는 자만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가 최고의 사랑의 징표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요?"

"우린 약혼한 사이죠."

"뭐? 당신들이 서로 약혼을 했어?"

 

9. 아를레트의 약혼

아무래도 앙투안 파즈로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장의 허를 찌르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도 되는 듯했다. 아를레트와의 관계하며, 전혀 예기치 못했던 약혼설, 그들 커플한테 향하는 멜라마르 백작 남매의 적극적인 호의, 상상도 못할 저택 구입 소식 등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마치 일상적인 삶의 극히 평범한 일들처럼 이 자의 입을 통해 술술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10. 주먹질

"멜라마르가(家)의 비밀이라! 그동안 얼마나 고심해왔던가! 처음, 레진과 아를레트가 납치 당했을 때부터,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어. 지금 우리는 머나먼 과거를 통해서만 현재가 제대로 해명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 거라고...... 따지고 보면 그런 종류의 문제들일수록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빼앗겨왔는지! 해결한 것도 숱하게 많지! 아무튼 이번 경우에도 딱 한 가지 요점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걸로 떠오르더구만. 즉 멜라마르 남매는 결코 범인일 수가 없다는 사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남매의 저택을, 모종의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무대로 활용했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 그것이 실은 앙투안 파즈로의 논조였지. 그런데 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믿고 사법당국도 그쪽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파즈로에게 엉뚱한 실익이 돌아가더라 이거야. 또 하나 의문인 건 과연 아를레트와 레진이 멜라마르 남매와 프랑수아 부부의 주의를 끌지 않고도 응접실까지 이끌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느냐는 문제였지......"

 

11.애첩(愛妾) 발네리

불가사의한 기적이었다! 멜라마르 저택의 안뜰을 벗어난 지 10여 분 만에 또다시 멜라마르 저택의 안뜰에 와 있는 것이다! 분명 센 강을 건넜고, 그것도 딱 한 차례 건넜다! 그렇다고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무슨 원을 그린 것도 아니다. 뒤르페가(街)를 벗어나서 무려 3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훌쩍 지나왔는데도 불구하고(3킬로미터라면 옛날 파리 시가지로 볼 때 앵발리드에서 레 보즈 광장에 이르는 거리이다), 지금 멜라마르 저택의 안뜰로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사물들끼리 일치한다는 것, 즉 두 안뜰 저만치 세워진 건물의 두 전면(前面) 생김새와 색깔, 윤곽 등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세월의 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 근처 강물로부터 실려온 습한 공기를 머금은 채 제한된 장방형 벽체들 사이를 감도는 뭔가 모를 기운마저 서로 똑같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놀라운 기적이었다.

분명 똑같은 채석장에서 똑같은 크기로 깎아 대령한 건축용 석재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아스라이 묻어난 세월의 때도 완벽하게 똑같았다.

 

"발소리까지 똑같네."

현관을 걸어 들어가며 중얼거리는 백작의 목소리마저도, 자기 집을 걸어 들어갈 때 실내 가득 울려퍼졌던 그 목소리와 똑같은 울림을 내고 있었다.

 

12. 아르센 뤼팽

"자네의 그 호각은 아마 말을 듣지 않을걸."

순간, 데느리스가 내뱉듯 말했다.

베슈는 있는 힘껏 호각을 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구멍 틈새로 빠져 달아나는 바람 소리가 고작이었다.

 

에필로그 : 아를레트와 장

"아무 걱정 마세요. 그냥 인생에 자신을 내맡겨봐요. 당신의 은둔처를 가르쳐준 것도 레진 자신이랍니다. 이 배하고 밀짚 모자와 푸른 작업복 모두 내가 돈 주고 정정당당하게 산 것이고요. 모든 게 잘될 겁니다. 휴가를 원한다면서 무엇 하러 지체한단 말입니까?" 

 

해설: 아르센 뤼팽의 작품론 1

-추리소설가들이 본 아르센 뤼팽 시리즈

 

★ 아르센 뤼팽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는 그가 칼리오스트로의 비밀을 밝혀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매혹시키는 재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발렌티노로부터 제임스 딘에 이르기까지,1) 몇몇 인간-우상들이 자칫 그대로 신이 될 뻔한 적은 있었지만, 진정한 신격화란, 우리의 내밀한 꿈에다 살아 숨쉬는 얼굴과 육체를 부여하려고 나타난, 이른바 상상 속의 존재들을 위한 작업이라고 하겠다. 자고로 상상력이란 여성과도 같다. 그것은 오로지 강한 영웅한테만 감동하고 열광한다. 우리 각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떠받들고 있는 저 영원한 올림포스 산정에는 베토벤이라든지 나폴레옹, 니체 등 위대한 신들께서 더없이 준엄한 표정으로 잠들어 계신다. 그러나 그 신들과 인간 사이에는 약간은 가볍고도 경쾌하며 다정다감한, 날개 달린 중개자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하여 신화는 웅변과 상업 그리고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를 따로 창조해내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폭력과 향수에 반반씩 젖어 있던 금세기(20세기)의 벽두에 한 작가가 똑같은 의도로 헤르메스 같은 존재를 창조했으니, 그가 바로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아르센 뤼팽이다.

부알로-나르스작2)

 

★ 「노란 방의 수수께끼」의 저자 이름은 가스통 르루이다. 그런데 나는 혹시 이 이름이 괴도신사 아르센 륖애의 모험담을 풀어내고 있는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필명'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가끔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두 이름을 통해서 완벽하게 대칭적으로 역전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즉 '붉은 신사'는 언제나 탐정 이야기를 집필하는가 하면, '하얀 신사'는 항상 범죄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식으로 말이다.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적(赤)-백(白)의 조합이 우연의 일치 이상일 거라고 추정할 만한 무슨 진지한 이유가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이야기는 사실 무척이나 상이한 종류에 각각 속하고 있다. 가스통 르루의 작품들로 말하자면, 줄거리의 중ㅅ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좀더 엄격한 추리소설인 반면, 모리스 르블랑의 작품들은 쉴새없이 제기되는 난제(難題)들의 연속을 즉각즉각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숨가쁜 모험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작중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체에서 비롯된다. 탐정은 늘 사건의 '밖'에 위치하는 반면, 범죄자는 언제나 사건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경찰은 항상 집 밖에 있는데 도둑은 늘 집 안에 들어가 있다라고도 할 수 있다.

길버트 케이스 체스터턴4)

 

★ 내가 그를 발견한 지 너무 오래인 데다, 그때는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그 시절로 뒷걸음질을 치다보면 문득 내가 그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발견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는 이른바 대중문학, 다시 말해서 '진짜 사실' 속의 위대한 주인공이다. 그를 좋아하는 데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 설사 작품의 스타일은 유행에 뒤떨어질지라도 위대한 주인공 자체는 그렇지 않은 법이다. 나의 아버지가 아르센 뤼팽을 읽었고, 내가 그를 읽었으며, 나의 아들도 그를 읽었고, 내 손자들도 그를 읽을 것이다.

프레데릭 다르5)

 

★ 바캉스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어머니는 객실 승객들한테 나를 잠시 맡길 때면 으레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두고 보면 아시겠지만, 이 아이는 책만 손에 쥐면, 입도 뻥끗하지 않는답니다!' 보통은 그 책이라는 게 「서커스 개, 미셸」이라든가 「황금의 덫」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미끈한 얼굴에 외알 안경을 낀, 근사한 차림의 사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에 온통 넋이 빼앗겨 있었다.

제목이 「수정마개」였는데, 그때 나는 도대체 수정 병마개가 어떻게 유리 의안(義眼)이 될 수 있는 것인지 혼자 의아해하며 책을 구입했다. 솔직히 나의 그런 호기심이 시원하게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종착역에 도착할 즈음 이미 나는 여지껏 읽어온 책들과는 너무도 색다른, 게다가 상상한 내용과는 너무도 판이하고 고리타분한 삽화들 때문에 오히려 더욱 기이하게 느껴지는 그 이야기에 완전히 정복당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여름날이었는데, 숙모 한 분이 나더르 「르 주르날」지를 사오라고 시킨 뒤, 자기는 요즘 「바리바」라는 연재소설에 푹 빠져있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원에 모여 앉은 나머지 가족을 상대로 '아르센 뤼팽이 말입니다......'하며, 그 아리송한 제목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인물이 오로지 나처럼 철부지 중학생의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1929년과 1930년에 걸친 그 여름, 그렇게 나는 '위대한 인물들'이 출몰하는 문학 책에 홀딱 빠져 지냈던 것이다. 그떄만 해도 내 인생 자체가 추리문학과 더불어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아직도 "리브르 드 포슈" 판 책들에 자극을 받아 다시금 「기암성」이라든가 「불가사의한 저택」등을 정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멋진 뤼팽!'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기 일쑤다. 넓게 보면 그는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둘 중 여전히 보다 젊은 사람은 내가 아닌 바로 그인 것이다!

모리스-베르나르 앙드레브6)

 

★ 프랑스의 모든 추리소설 작가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뤼팽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나의 문화를 지탱하던 기둥 세 개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기암성」, 「무슈 리키키의 기상천외한 여행」그리고 「초록 암말」7)이 된다.

사실 이 세 작품들은 보기보다는 비슷한 점이 많다. 셋 모두 일종의 시적 리얼리즘이 독특한 미학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르블랑과 카미, 에메 모두 더없이 엄격한 논리적 요소들과 불가능한 가정들로부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것 또한 서로 비슷한 점이다.

그중에서도 뤼팽이라는 르블랑의 주인공은 일반적인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완벽 이상의 존재로서, 매혹시키는 주인공과 매혹 당하는 독자 사이의 동일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캐릭터이며, 일단 책을 덮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험담으로 태어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자신만의 '뤼팽'을 만들어볼 욕심 한번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뤼팽은 우리 추리소설 작가에게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듬뿍 불어넣어준다.

미셸 르브룅8)

 

★ 미셸 르브룅(M. L.) : ......그럼, 자네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누구인가?

레오 말레(L. M.) : 그야 당연히 아르센 뤼팽이지...... 그는 내가 읽은 첫 추리 소설들의 주인공이었다네...... 르블랑을 추리소설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어쨌든 그래......

M. L. : 그러고 보면 돈키호테에서 우리가 그리 멀리 벗어난 것도 아니야.

L. M. : 맞아. 그것도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이지. 항상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으니까...... 게다가 나도 그렇지만 항상 패턴이 비슷해. 르블랑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보물을 찾아 헤매지...... 프랑스 제왕의 보물이든 다른 개인의 보물이든 말이야...... 나로 말하자면, 진주나 보석 혹은 숨겨둔 막대한 현금이 관건이 되지. 그다지 독창적이랄 것도 없어...... 내가 보기에 모리스 르블랑의 최고 작품들만 꼽는다면, 제일 먼저 「기암성」을 들겠어...... 아주 감동적이고 정말 아름답거든...... 특히 마지막에 죽은 여인을 향한 사랑 말이야......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비웃을지 몰라도, 나는 눈물 없이 그 대목을 읽은 적이 없다네...... 자네도 알지, 레이몽드가 죽고 나서 뤼팽이 여자를 들쳐업고 하는 말......

 

그 다음에는 단연 「수정마개」를 꼽을 거야. 일종의 추적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 정말 대단하단 말일세! 나는 아직 「수정마개」가 단 한번도 영화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경실색할 정도라니까. 멍텅구리 같은 TV용 드라마말고, 진짜 영화 말이네! 「수정마개」는 시나리오를 써서 각색하기 위해 굳이 몸통을 절단하거나 할 필요도 없어. 그냥 그대로 카메라만 움직이면 된다구......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로즈 루즈' 사(社)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자 배우인 장 루죄에게 이런 모든 이야기를 했었지. 한데 그 친구 얘기가, 르블랑 영감이 글쎄 미국인들한테 완전히 당해서 이젠 불가능하다는 거야. 즉 미국에서 아르센 뤼팽의 영화 판권을 사들이고도 형편없는 졸작을 만들거나 아예 묵혀두는 바람에 거기에 묶인 나머지 프랑스에서는 그만 아르센 뤼팽으로 아무 영화도 못 만든다는 것이지...... 아무튼 참 대단한 영화가 될 터인데 말이야. 미국인들조차 그걸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워! 게다가 부패한 의원이라든가 파나마 스캔들에 대한 암시 같은 내용이, 시의적(時宜的)으로 적절한 부분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들에선 약간 시들해진 면도 없진 않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나는 「황금삼각형」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 하지만 그 재미라는 것도 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어. 뭐랄까, 나이를 잊고 싶어하는 일종의 향수(鄕愁)라고나 할까?...... 그걸 읽고 있으면 처음 그걸 읽었던 1920년대가 떠오르거든. 그때가 열한 살이었는데,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대목에선 열광보다는 왠지 반감이 일기도 했지...... 당시에 나는 국가가 뭔지 별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방면엔 완전 숙맥이나 다름없었지......

그런가 하면 「서른 개의 관」은 그 분위기와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네...... 심지어 1936년, 그 섬의 실제 모델로 여겨진던 브레아 섬에 가보았는데 완전 실망이더구만. 원래 문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모든 걸 부풀리지. 어쨌든 1914년의 전쟁 이전의 아르센 뤼팽과 그 이후의 아르센 뤼팽은 많이 다르다는 건 사실이라네. 완전히 애국투사가 되었지.....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면이 없진 않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해!...... 더 이상 괴도신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잖아...... 도둑질을 해도 과부와 고아를 돕기 위해서 하는 거야......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문제는 과부의 얼굴이 얼마나 반반하냐지...... 혈기와 활력은 아무래도 예전 같지가 않단 말씀이야......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해. 그렇게 된 건 다 나이 때문이거든. 작가의 나이 말일세......

미셀 르브룅과 레오 말레의 대담9)

 

1) 둘 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요절함으로써 더더욱 우상화된 할리우드 스타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2) 부알로-나르스작은 원래 피에르 부알로(Pierre Boileau, 1906-1988)와 토마 나르스작(Thomas Narcejac, 1908-1998)이라는 두 사람의 공동 필명이다. 원래 아르센 뤼팽의 열렬한 팬이자 추리소설가였던 부알로와, 낭트 대학교의 철학교수이자 여흥 삼아 추리소설을 써오던 나르스작은 서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냥 한번 써본 공동 작품이 소위대박을 터뜨림으로써 이후 본격적인 추리문학 작품들을 써낸다. 대개는 부알로가 전체 줄거리를 구상하고 나르스작이 집필을 하는 식이었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모작들로도 유명한 이들의 작품세계는, 특히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Les Diaboliques)"이라든가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 같은 영화들이 그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을 만큼 대중적인 호소력과 아이디어가 범상치 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3) 여기에서 '붉은 신사(monsieur roux)'는 가스통 르루를, '하얀 신사(monsieur blanc)'는 모리스 르블랑을 지칭한다. 이유는 공교롭게도 전자의 성(姓)인 르루(Leroux)에 '붉은색'을 뜻하는 'roux'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고, 후자의 성인 르블랑(Leblanc)에는 '하얀색'을 의미하는 'blanc'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탐정 이야기를 '붉은색'이, 범죄 이야기를 '하얀색'이 담당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범죄가 '붉은' 피를 연상시키고, 그것을 깨끗이('하얀') 해결하는 일을 탐정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역전된 무엇인가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 길버트 케이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은 영국 태생의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작가로, 브라운 신부라는 추리문학사상 가장 독특한 탐정 캐릭터 중 하나를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5) 프레데릭 다르(Frederic Dard, 1921-2000)는 프랑스의 추리소설가로 산 안토니오(San Antonio)라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100여 편의 작품들을 집필했다. 특히 장난스런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많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6)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

7) 마르셀 에메(Marcel Ayme, 1902-1967) 작품

8) 미셸 르브룅(Michel Lebrun, 1930-1996)의 본명은 미셸 카드, 80여 편의 추리소설 작품이 있으며, 특히 추리문학에 관한 백과사전식 박학다식으로 '추리문학계의 교황'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9) 레오 말레(Leo Malet, 1909-1996)는 프랑스의 정통 누아르 소설의 원조 작가로서 네스토르 뷔르마라는 탐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10여 편의 추리소설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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