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반 형사 빅토르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8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선명한 초록색 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힘들 때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상 빅토르가 뤼팽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끝까지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신이 사나울 때는 활극이 제일이다. 요즘 들어 이 책을 읽을 때가 그리워진다.

 

「강력반 형사 빅토르」는 뤼팽 시리즈 장편들 중에서는 드물게, 역사나 전설 등에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구하지 않고도, 현재적 사건과 기발한 플롯만으로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수작이다. 각 장(章)이 그보다 하위 장들로 다시 세분되면서 숨가쁘게 빠른 장면 전환을 가능케 하는 기법은 「813의 비밀」에서 이미 한 차례 선보인 것으로, 좌충우돌 전개되는 이 재기발랄한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적절하게 부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압권은 그 엄청난 반전에 있으며, 작품을 처음 대하는 독자는 물론, 그 결말을 알고 있는 뤼피니앵이라도 빈틈 없이 맞물리는 추리적 구조와 곳곳에 숨은 재치 넘치는 복선을 짚어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해설에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 거론해보기로 한다.

 

1.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력반 소속 빅토르가 일요일 오후 시네-발타자르에 들어선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기껏 마음 먹은 미행이 그만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오후 네 시 경, 이 북적대는 클리시 대로에 내동댕이쳐진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장터 축제의 혼잡을 피해 그는 어느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석간신문을 눈으로 훑다가, 이런 짤막한 기사에 시선이 멈추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아르센 뤼팽이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 수요일에는 동부에 위치한 어느 도시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그에 따라 파리에서도 일군의 형사대가 급파되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또 한 차례 그가 경찰의 손아귀를 따돌리는 일이 발생할 듯싶다.

 

"빌어먹을!"

빅토르는 모든 악당을 개인적인 원수처럼 여기고, 그들에 대해서는 인정 사정 없는 거친 말투를 얼마든지 사용하는 엄한 경찰관의 태도로 중얼거렸다.

 


2. 회색 챙 모자

'월요일, 파리에서 출발한 여섯 시 기차의 객실 안에서 마담 샤생은 레스코 영감 가까이 앉아 있다. 이혼 소손 중에 있는 기혼녀로서, 보통은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는 한, 애인과 함부로 속삭이는 일은 되도록 삼가는 편이다. 월요일, 그녀는 무의식 중에 노란 봉투를 슬쩍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날만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뭔가 맡길 물건이 있다는 얘기를 애인한테 귀띔해주었고, 필경 짬을 내서 돌돌 말아 끈으로 묶은 문제의 봉투를 은근 슬쩍 애인의 품속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바로 그 동작을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도트리 남작이 간파했을 터. 이미 신문은 빠뜨리지 않고 읽는 타입이라...... 노란 봉투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니...... 과연 우연이라고만 넘길 일이었겠는가?...... 이윽고 기차는 생-클루에 도착했고, 마담 샤생은 자리를 뜬다. 레스코 영감은 그대로 앉아 가르슈까지 간다. 막심 도트리도 같은 역에서 내려 영감을 미행한다. 결국 그 숙소까지 알아두고, 화요일과 수요일, "라 비코크" 주면을 어슬렁대다가 마침내 목요일 결단을 내린다......'

빅토르는 카페에서 나와 문제의 아파트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을 전개해갔다.

'...... 이상 그려진 그림에 대한 딱 한 가지 반론 가능성이란?...... 그 모든 일들이 너무도 손쉽게 척척 맞아떨어지고, 너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점! 한제, 진실이란 그렇게 즉흥적이지 않고, 그토록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주어지지도 않는 법이거든......'


3. 남작의 정부

빅토르는 여자가 말하는 투로 봐서 사전에 미리 정해진 대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진실이란 때로는 거짓말과 똑같은 어조로 말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4. 체포

바실레예프 공주라? 빅토르와 라르모나가 그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일사천리 조사해내는 데에는 단 하루면 족했다. 즉 그런 성(姓)을 가진 러시아 출신의 유구한 혈통으로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가문은 단 하나뿐이며, 부모형제 모두 체카(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창설된 비밀 경찰 조직/역주)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한 뒤,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 혼자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 국경을 넘어왔다는 사실. 그의 가문은 아직도 유럽 내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안하고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음. 개성 강하고 다소 길들여지지 않은 성격의 그녀는 러시아 망명인 사회의 몇몇 귀부인들과 친목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여전히 알렉산드라 공주로 불리고 있는 실정. 나이는 이제 서른.


5. 바실레예프 공주

결국 그 자는 바실레예프 공주와 같은 때에 같은 층을 택해 이 호텔에 묵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337호로 가기 위해 복도 왼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알렉산드라와 합류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꺾어든 것은 아닐까?

빅토르는 여자의 방을 지나치면서 가능한 한 발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숙소에 다다라서는 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줄기차게 귀르 ㄹ기울였다.

그런 식의 긴장된 대기 상태가 계속되었고, 몹시 불편한 기분 속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바로 저 영국인 비미쉬의 친구가 아르센 뤼팽이며, 그가 곧 알렉산드라 공주의 애인일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추진해온 지난(至難)한 수사활동이 드디어 진일보하게 된 셈이었다. 한편, 그 남자의 젊고 근사한 풍모를 빅토르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이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6. 국방공채

"하지만 자동차가 중간 어디에 정차한 일도 없다는데?"

"그러니까,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딱 두 가지가 있을 뿐이죠. 우선 운전기사와 타협을 해서 그에게 꾸러미를 맡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아니라면, 그냥 몰래 자동차 안에 꾸러미를 놔둔다......"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왜요?"

"그러다 아무나 차를 탄 사람이 가져가면 어쩌려고! 세상에 그런 엄청난 거금을 자동차 좌석에 방치해두는 사람은 없지요!"

"그야 그렇죠. 단, 차 안 어디에든 숨겨둘 수는 있겠지요."


7. 공범 만들기

"지금 숙박부를 조회 중이네. 혼자 머물고 있는 영국인 이름을 골라내고 있어. 덩달아 다른 모든 외국인도 조사 대상이라구."

"그건 또 왜 그런가?"

"어차피 뤼팽의 부하 이름을 모르니까, 그게 확실히 영국인일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아래로 불러 내리든지, 아니면 일일이 객실로 찾아다니며 신분증을 조사한다는 거야. 자네도 틀림없이 조사대상에 들어갈 걸세."

8. 캉브리주 호텔의 대접전

빅토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긴,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가 이곳을 뜬다거나, 그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빅토르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그 여자가 굳기 죽치고 앉아 기다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부아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9. 적진 깊숙이

"그는 계단을 올라갔고, 열쇠를 사용해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집, 결단코 자기 집으로 들어간 겁니다. 다른 어디도 아닌 자기 집 말이죠. 비록 시선은 마구 흔들리고, 머리도 지끈거렸지만, 어떻게 자기 아파트, 자기 집 현관을 못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10. A.L.B. 문건

"여자는 막심 도트리가 도둑질뿐만 아니라 살인혐의로도 몰리고 있다는 사실에 여간 당황해하는 게 아니었죠. 한데, 빅토르 형사가 그때 길길이 화를 내는 걸로 인식한 여자의 반응은, 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호들갑을 떠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기 애인이 채권 다발을 훔쳐낸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으나, 레스코 영감을 죽였으리라고는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여자는 남자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과 더불어 사법당국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여자의 내심을 도트리는 여지없이 간파해버린 것이죠. 결국 그는 여자가 언젠가는 자신을 고발해버릴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떄문에 여자를 다시 만나 얘기를 해보려고 한 거죠. 물론 그에겐 아파트 열쇠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의 의중을 떠보았고, 여자는 위협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트리도 덜컥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냥 저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 건가? 국방공채를 손에 넣어 이제 목표를 거의 거머쥐었는데...... 더군다나 그를 위해 이미 사람까지 죽인 마당에 말입니다...... 과연 마지막 순간에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할 것인지...... 마침내 도트리 남작은 또다시 살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껴온 여인이지만, 배신할 것이 너무도 뻔하다보니 갑작스런 증오심이 휘몰아쳤다고나 할까요? 결국 여자를 죽이고 맙니다. 1분 후,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얌전히 차에 올라타 있습니다. 교통경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지요. 빅토르 형사 역시 전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11. 불안

빅토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그는 왼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막 달려들려는 브레삭을 향해 브라우닝 권총을 들이대고 있었다.

"소동부리지 마, 뤼팽! 여차하면 개죽음당하는 수가 있어!"

버럭 소리친 뒤, 그는 여전히 수화기에 대고 이랬다.

"......알겠습니다, 국장님! 늦어도 45분 안에 이리로 오겠다구요. 물론 내 목소리는 알아보시겠죠? 틀림없겠죠? 그렇죠, 마르코스 아비스토...... 그러니까......결국, 그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면서, 우선 브레삭을 향해 씽긋 미소를, 다음 여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보낸 뒤, 저만치 방구석을 향해 권총을 냅다 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다름 아닌 강력반 형사 빅토르라 이겁니다!"


12. 뤼팽의 승리

수수께끼가 해결된 것은 그 다음날 아바스 통신사(AFP의 전신으로 근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통신사. 1835년 설립/역주)가 전 세계로 타전한 아르센 뤼팽의 저 유명한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문제의 전언 내용이 사람들을 온통 환희와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 내용을 한 줄 빠뜨리지 않고 여기 게재한다.

 

바로잡음

이제는 대중에게 강력반 소속 빅토르 형사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얼마 동안 국방공채 도난사건과 관련해서, 그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아르센 뤼팽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이제는 더 이상 사법당국과 일반 대중을 무지 속에 방치해선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인데, 그것은 또한 아르센 뤼팽의 빛나는 성품과 존경할 만한 이름을 가로채고 행세해온 앙투안 브레삭 선생의 뻔뻔스런 가면을 벗겨내는 역할이기도 했다. 강력반 형사 빅토르는 더없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뛰어듦으로 해서, 그 같은 작태에 대해 얼마나 거부감을 가지고 증오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여준 셈이다.

빅토르의 활약에 힘입어 이제 가짜 뤼팽은 철창 신세를 지고 있으며, 강력반 형사 빅토르라는 인물은 개운하게 임무를 완수한 뒤 그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다만, 경찰로서의 깨끗한 명예에 단 한 점 오명의 씨앗도 허용치 않겠다는 투철한 생각과 더불어 한 개인으로서의 양심마저 경탄할 만한 수준까지 정화시키기를 바라는 심성에서, 그는 마침내 아홉 장의 국방공채를 이대로 자신이 맡아 가지고 있기보다는 나에게 의뢰해 파리 시 경찰청에 전달해주기를 정식으로 요청해온 바이다.

한편, 1000만 프랑을 어떻게 찾아냈느냐의 문제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난제를 척척 풀어대는 한 사나이의 기발한 천재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그 세세한 전모를 공개해야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무슈 세리포스가 소지하고 있던 서류들 중 하나에는 앙투안 브레삭의 추적에 단서가 되는 'A. L. B. 문건'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것을 브레삭은 '알바니아 문건'으로 해석했고 말이다.

 

그 즉시 빅토르는 앙투안 브레삭의 해석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A. L. B. 라는 세 글자는 다름 아닌 앨범(album)의 처음 세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간파해버린 것이다. 무슈 세리포스의 전 재산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 프랑은 알바니아 문건에 들어있는 게 전혀 아니고, 단순히 아동용 우표 앨범 안에 그만한 가격을 호가하는 희귀 우표 컬렉션 형태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 수완이라면 강력반 형사 빅토르에게 1000만 프랑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지 않을까? 만약 내게 묻는다면 당연히 오케이다.

 

한마디만 더, 내가 보기에, 강력반 형사 빅토르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이번 싸움에 매달린 진짜 이유는, 어디까지나 최초에 영화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 여인, 저 파렴치한 사기꾼 앙투안 브레삭이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컷 우롱했던 그 가련한 여인을 향한 기사도적인 흠모의 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여인에게도 귀한 혈통의 마나님에 어울리는 생활과 고귀하고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완벽한 위상을 되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내가 그 여인을 자유롭게 놔주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부디 그녀가 현재 은둔해 있는 안전한 피난처에서나마 강력반 형사 빅토르와 페루인 마르코스 아비스토의 이 작별인사와 더불어, 나 아르센 뤼팽의 심심한 인사 또한 받아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아르센 뤼팽

 

이어지는 목요일 오후 두 시, 알렉산드라 바실레예프 공주는 은신해 있던 여자친구의 아파트를 벗어나 튈르리 공원을 한참 동안 산책했고, 그대로 리볼리가(街)로 접어들었다.

복장은 무척 단순한 편이었으나, 항상 그렇듯 이국적이면서도 경이로운 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시선들을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고, 얼굴을 가리는 일도 없었다. 하긴 이제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 중에 뭔가 의심의 눈초리로 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인 비미쉬도 앙투안 브레삭도 그녀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오후 세 시, 여자는 생-자크 소광장으로 들어섰다.
낡은 탑의 그늘 속 벤치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처음에 약간 주저했다. 저 남자가 그 사람이라구? 페루인(人) 마르코스 아비스토와도, 강력반 형사 빅토르와도 거의 닮은 점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코스 아비스토보다 얼마나 젊고 우아하며, 빅토르 형사보다는 또 얼마나 섬세하고 유연하면서 품위가 넘치는가 말이다! 저 젊은 모습, 저 다정다감하고 유혹적인 분위기는 이전 그 어느 떄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쨌든 여자는 다가가보기로 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지만, 틀림없이 동일인물이었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 곁에 앉았다.

둘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상태가 두 남녀를 때로는 하나로 묶었다가 때로는 흩어놓는 가운데, 두 사람 누구도 그 감미로운 느낌을 끊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해설 : 아르센 뤼팽의 작품론 4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문학적 가치

요컨대, 스토리의 발단이 되는 발상만 던져놓고 억지로 작품을 끌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발상이 마무리되는 스토리의 대단원까지 정확한 청사진을 마련한 다음에야 집필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맨 위에 인용한 저자 자신의 표현대로, 상상력을 날것 그대로 던져두지 않고, '그것으로 하나의 작품, 즉 문학작품을' 형상화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의미이며, '단순히 꿈꾸는 것'을 넘어 그것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구조에 신경을 쓰는', 이른바 장인적인 작업태도와 소명의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배려 덕분에, 처음에는 엉뚱하게만 보이는 발상과 어지럽게 진행하는 스토리 라인으로 다소 황당한 느낌에 휘둘리다가도, 작품의 말미로 치달을수록 하나하나 지리멸렬해 보이던 요소들이 절묘하게 맞물려 정돈되는 과정에 혀를 내두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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