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마이클 앨머레이다 감독, 지나 데이비스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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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마조리 프라임을 멋지게 의역한 제목의 작품.
여기서 다루고 있는 기억은 전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공유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다. 즉 나 혼자 갔던 여행, 나 혼자만의 짝사랑, 나 혼자 서러웠던 아픔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AI에 주입되는 기억이니까. 사람과 똑닮은 AI 지만 그 사람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동일한 시공간에 함께 있었더라도 서로의 기억은 다르다. 느낌이 감정이 정서가 같을 수 없을 테니까. 상대가 나와 똑같이 그 순간을 추억했으면서 바라다가도, 이 영화를 보며 한 순간 그게 얼마나 섬뜩할 수 있는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AI 가 과연 당신일 수 있을까. 당신을 대체할 수 있을까. 기억은 곧 그 인간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곧 나다. 나는 나의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이니까. 치매 환자분들의 기억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가족들, 특히 자녀들의 마음이야말로 산산히 무너지는 마음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죽어서도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아마도 최근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코코도 그러한 염원이 담겨있겠지. AI야 영원히 살아남고 그에게 남겨진 나의 기억도 그러하겠지만 과연 그게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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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잉그리드 버그만
스티그 비요르크만 감독, 알리시아 비칸데르 목소리 / 인조인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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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에 사심을 담아 별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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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의 아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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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러 (손에 든 편지를 보며) 이 편지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면 이 편지는 대체 뭐란 말이오? 물론이지, 그 애는 내 아들이었어. 하지만 래리는 그들 모두가 내 아들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군. 그들이 내 아들이었던 것 같아. 곧 내려오겠소. (집안으로 퇴장한다.)

아서 밀러라는 극작가는 문학에 큰 조예가 없는 나에게는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의 남편으로 더 친숙하던 사람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이외에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나에게 이 희곡은 여러 모로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제목만 보더라도 아서 밀러가 어떤 의미로 작품을 썼는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이 희곡은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는 어렵다. 연극 막바지에 가서야 이 제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이자 소재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조 켈러는 전쟁 발발 이후 전투기 부품 군납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던 중 결함이 있는 부품을 그대로 출하하는 바람에 21명의 조종사가 전투기 사고로 사망한다. 납품을 제때에 못 하면 계약이 취소되고, 그 경우 아들들에게 물려줄 사업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조는 병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출근하지 않은 채, 동업자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린다. 재판 과정에서 조는 전화 통화의 증거 입증이 어려워 무죄가 되고, 그의 지시를 따른 친구이자 이웃인 스티븐은 감옥 형을 선고받고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다. 조는 이런 과거를 묻은 채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며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스티븐의 딸 앤이 이들을 찾아온다. 그는 조의 둘째아들이자 전쟁에서 비행 사고로 사망한 래리의 약혼녀였고, 현재는 조의 큰아들인 크리스의 구애를 받고 있다. 조는 아버지와는 관계를 끊었다는 앤에게 출소 후 자신이 돌봐 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신경을 쓴다. 이러던 중 앤의 오빠 조지가 오랜만에 아버지를 면회했다며 나타나 잊으려 했던 과거를 폭로하게 되고, 둘째 아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죄를 부정하는 큰아들에게 앤은 약혼자 래리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보인다. 래리는 아버지에 의한 죄의식으로 스스로 비행 사고를 일으켜 자살하고, 그 계획을 사전에 편지로 약혼자에게 부쳤던 것이다. 아들의 사망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조는 총으로 자살을 한다.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던 것이,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한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고, 워낙 인기 있는 드라마라 줄거리는 기사를 통해 늘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강의 내용은 파악이 가능하나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틀릴 수도 있겠다). 아마도 작가가 모티브를 따 왔을 수는 있겠다. 남의 아들은 망가지든 말든 내 아이의 행복만을 위해 달려가는 부모, 그러나 정작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고 부모가 만족하고 있을 무렵 자식은 이때까지 부모가 자신을 위해 해 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얽매었다는 것을 어쩌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알려 준다. 무너져 버린 부모가 총으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까지. 읽을수록 소름이 끼쳤다. 한편으로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의 미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놀랍도록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후대에는 어떤 삶의 방식을 알려주어야 할지 갈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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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5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박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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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테의 가장 초기작품인 새로운 인생을 그대로 수록한 1부와, 단테와 로세티의 생애를 요약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왜 두 작가를 같이 다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로세티의 full name 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세티의 아버지부터 자식에게 단테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단테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였고, 이는 그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서문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썼는데, 로세티의 초기 이탈리아 시인들에 있는 서문 중 새로운 인생과 단테 알리기에리에 관한 내용을 축약했다고 한다. 2부의 단테의 생애는 역시 평생 단테를 존경했던 조반니 보카치오가 썼고, 로세티의 생애에는 따로 누가 적었는지 별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 아마도 옮긴이가 쓴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갓 아홉 살이 된 것 같고, 나는 거의 아홉 살이 끝나 갈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은은하고 예쁜 주홍빛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감각들이 자신이 지각한 것들을 가져가는 높은 방 안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령이 경이감에 가득 차서, 특히 눈의 정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축복이 출현했도다.” 그 순간 인간의 영양분을 관리하는 곳에 사는 수명의 정령은 울기 시작했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이제부터 계속 시달리겠구나!”

작가가 9살에 역시 9살이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봤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는 부분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앞의 서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후에 단테가 자신의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엉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처럼 소문이 나도록 했다거나, 그가 경멸했던 “창가의 여인”과 결혼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보고 나면, 대체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을 할 때의 나 자신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이야기들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영영 박제되어 버린 첫사랑이자 채워지지 않는 창작욕의 근원이었을까. 정략 결혼을 하고 따로 애인과 정부를 두었던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 시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단테의 이런 모습은 순수하다고까지는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자아도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조차도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경애하는 그 대상이 알고 보니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단테를 위해서도 베아트리체는 마리아와 비등한 존재로 남아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단테도 나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첫 작품인 이 책을 시간이 흐르고 부끄러워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죽고 난 후 다른 여성과 결혼하였고, 이 결혼에서 태어난 딸에게 후에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이 따른 수녀가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을 때에는,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 같지만 베아트리체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가족들에게까지 베아트리체의 힘이 미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는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테는 어쩌면 현실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던 사람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는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 아닐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고전인 신곡이 그가 현실 정치에서 강제로 떨려져 나간 유배 기간 동안에 씌어졌다는 사실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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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2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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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천국편

그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빛이 반사되는 건
맞지만, 반사된 빛은 더 멀리 뻗어 나가기
때문에 더 희미해진다고. 그러나

이런 반론쯤은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기술의 원천인 실험으로
금방 물리칠 수 있어요.

거울을 세 개 들고서 그중 두 개를
그대로부터 같은 거리에 양쪽으로 두고
그 사이로 세 번째 거울을 당신 정면에

멀리 두고 나서 그것들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당신 등 뒤에 불을 켜 한꺼번에
세 거울에 비치게 하고 어느 거울에서 반사된 것이

그대에게 돌아오는지 살펴보세요. 가장 먼 곳에 있는
빛이 다른 두 거울에 비친 빛보다 그 양에서는 약하지만,
성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관찰할 겁니다.

그렇다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속에서
눈[雪]이라는 실체가
그 본래의 흰색과 차가움을 포기하듯이,

그대의 지성도 깨끗하게 포기되겠지요.
나는 이제 아주 반짝거려서 그대 눈에는
별처럼 초롱초롱할 진실을 보여 주겠어요.-천국편 2곡

이 부분은 주석에 따르면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신곡을 읽는 내내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거기에 오르기 위해 땅에서
발을 떼려 하지 않고, 내가 만든
규범은 쓰레기처럼 뒹굴고 있다.

수도원의 성벽은 이제 짐승의 소굴이 되었고,
수도승이 걸치는 옷은 부패한
밀가루를 담은 자루가 되었다.- 천국편 22곡

단테가 이 책을 쓸 무렵 종교가 얼마나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지나온 일곱 개의 하늘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우리의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을 가볍게 보는 정신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
사고의 방향을 돌리는 사람이 진정 현명하다.-천국편 22곡

어쩌면 이 부분은 단테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일 것이다.


스승이 결론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질 때까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신 무장을 하는 학생처럼,

나 역시 그녀가 말하는 동안
마음을 모아 내 논점을 정리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을 주기 위해 준비했다.-천국편 24곡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고 연옥에 가는지는 사실 작가의 마음이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인물이며 로마시대의 역사적인 인물까지 작가가 마음대로 천국에도 보내고 지옥에도 보내고 연옥에도 보낸다. 작가 나이 9살에 처음 만났고 18살에 두 번째로 만났으며 작가가 25살이 되었을 때 사망했다는 베아트리체는 천국에서 작가의 길잡이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상화의 극치다. 현실이 괴로운 만큼 나의 즐거움과 기쁨과 환희는 죽은 베아트리체의 세계에서나 있다는 것일까? 데카메론을 읽고 나서 신곡으로 넘어왔는데 두 작품의 연결성을 고려하더라도 어떤 부분에서 대조가 되는지는 알 것 같다. 베아트리체는 아내 젬마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출생한 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팔자 좋은 귀족의 다소 답답하고 뜬구름 잡는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5남 1녀 중 유일한 딸의 이름을 후에 베아트리체로 개명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잠깐 비커밍제인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최소한 제인 오스틴은 연애라도 했었다. 단테는 1304년 지옥편을 구상하고 1320년 천국편은 완성 후 바로 배포되었으며 출판되었고 1321년 사망한다. 신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는데,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작가가 베아트리체를 두 번째 만났다는 1283년부터 써 온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의 글들을 모은 새로운 인생이라고 한다. 다음 독서의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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