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의사 김종성 영화를 보다
김종성 지음 / 동녘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신경과의사가 본 영화 속 신경과 질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에, 뇌 구조나 신경세포에 대한 그림과 영화 속 장면들이 컬러 도판으로 어우러져 보기 좋은 교양서이다. 다만 너무 많은 영화를 다루려는 욕심 때문인지 다소 장황한 느낌도 들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입문서로는 참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맥베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맥베스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청소년 명작 소설, 고전 전집을 통해 이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공연을 본 적은 없었는데 영상으로 보는 순간 마녀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맥베스가 살인을 하는 장면, 반대편을 죽이고 또 그 반대편이 맥베스를 죽이는 장면까지 영화 내내 곤두서고 스산하고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보는 내내 주인공의 연기에 감탄하면서도 다소 괴로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그래서 그 이후로 이 영화를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맥베스는 원래의 형태와 동일하게 연극으로 올려지는 것은 당연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그대로 만들어지거나 모티브를 주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 영화 평을 보면 ‘셰익스피어도 흐뭇하겠어’, ‘고전은 어떻게 부활해야 하는가에 대한 황홀한 답’, ‘앞으로 맥베스는 패스벤더의 전과 후로 나뉘어질 것이다’ 라는 평들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을 제대로 구현해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이 더 보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이 보고 싶어져서 원작을 봤고, 원작을 읽으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맥베스에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이, 맥베스 부인에는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1막 3장 마녀들의 유혹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맥베스와 뱅코. 한 명은 왕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 명은 자손이 왕이 된다는 말을 듣는다. 맥베스는 안 그런 척 하지만 동요하였고, 뱅코는 겉으로는 재미있어하는 듯이 보여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 결국 맥베스는 마녀를 만나기 전부터 권력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마녀를 만나면서 욕구가 깨어났으리라. 그러고 보면 마녀는 결국 맥베스가 원하는 것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 사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기억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고, 똑같은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보아도 기억하는 장면은 사람마다 다르다. 결국 수없이 떠다니는 말들 중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겉으로는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원하는 것들만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21세기인 요즘 아직까지도 사주, 점성술, 타로 등등을 찾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그런 이유가 있겠다.

맥베스 (방백) 글래미스, 코도 영주.
그 다음엔 대권이다. (로스와 앵거스에게) 수고하셨습니다ㅡ
(뱅코에게) 후손들이 왕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오?
코도를 내게 준 것들이 그 못잖은 약속을
그들에게 했지 않소?

뱅코 그 말을 다 믿다간
장군이 코도 영주 외에도 왕관을
탐할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이상하죠.
어둠의 수족들은 우리를 해치려고
가끔씩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소소한 정직으로 우리를 유인하여
중대한 결말에서 배반한단 말입니다.

1막 7장 망설이는 맥베스를 부추기는 맥베스 부인의 대사는 섬뜩한데, 특히 웃는 얼굴로 젖을 먹고 있는 아기에서 젖꼭지를 뽑아서 골을 깰 수도 있다는 부분은 언제 읽어도 무시무시하다. 아주 어릴 때 소년소녀전집에서 원작에서 상당히 각색된 형태의 맥베스를 읽은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죽 다른 대사는 몰라도 이 대사만큼은 확실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식까지도 희생할 수 있다는 이 부분을 보다 보면 문학에서 창조해 낸 최고의 악녀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맥베스 제발 그만.
남자다운 일이면 난 무엇이든 감행하오.
더 할 사람 없을 거요.

맥베스 부인 그럼 무슨 짐승이
내게 이 계획을 발설하게 시켰어요?
이 일을 감행코자 했을 때 당신은 남자였고
전보다 더 과감해져 훨씬 더 큰 남자가
되려고 했어요. 당시엔 시간과 장소가
안 맞아도 당신이 맞추려고 했는데
저절로 맞춰지니 이젠 그 적절함 자체가
당신 기를 꺾는군요. 난 젖 빨린 적 있어서
내 젖 먹는 아기 사랑 애틋함을 알아요.
난 고것이 내 얼굴 보면서 웃더라도
이 없는 잇몸에서 젖꼭지를 확 뽑고
골을 깼을 거예요. 내가 만일 당신처럼
이 일 두고 맹세했더라면.

4막 3장 맥베스가 맥더프의 아내와 자식을 전부 살해했다는 사실을 접한 후의 대사이다.

맬컴 진정하오.
자 우리, 위대한 복수의 약을 지어
치명적인 이 비탄을 치료해 봅시다.

맥더프 그에겐 자식이 없어요. ㅡ 귀여운 것 모두를?
모두라 하였소? ㅡ 오, 지옥 솔개 갔으니! ㅡ 다?
아니, 귀여운 병아리와 암탉을 모두 다
일격에 낚아채?

이 부분에 대해서 주석에서는 세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1) ‘그’는 맬컴이며 그가 만일 자기 자식이 있다면 슬픔의 치료제로 복수를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는 맥베스이며 그가 자식이 없기 때문에 맥더프는 같은 식으로 복수할 수 없다. 3) ‘그’는 맥베스이며 그가 만일 자기 자식이 있다면 맥더프의 자식들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냐면, 1막 7장에서 맥베스 부인의 대사로 미루어봤을 때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 사이에서는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시점에서는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 희곡에서는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데, 2015년 작 영화에서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죽은 아이를 장사지내는 장면이 나오고, 이 들이 자식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여기까지 일을 벌였다, 즉 이 부부 캐릭터의 핵심은 상처와 결여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해석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해되기 어려운 맥베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하여 감독 나름의 정리를 한 것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1막 7장에서의 맥베스 부인의 대사는 무시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아이가 죽고 나서 하는 대사였다면 말이다. 만약 더 이상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맥베스 부부에게 남은 최고의 욕심은 왕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고, 자식이 있는 뱅코의 입장에서는 자자손손 내 자식들이 훌륭한 자리에 오르는 것이 더 큰 욕심이었을 것이다.

5막 8장

맥베스 내가 왜 얼간이 로마인 행세를 하면서
내 칼로 죽어야 해? 산 놈들이 보이는 한
멋지게 베어주자.

이 부분은 주석에 따르면 로마의 장수들인 카토, 브루투스, 안토니처럼 전쟁에 졌을 때 사로잡히는 굴욕을 면하기 위하여 자결하는 그런 바보 같은 관습을 맥베스 자신을 따를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끝까지 삶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는 모습 때문에 맥베스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고 있는데 아직 남아 있는 리어 왕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두 편인 햄릿이나 오셀로에 비해 맥베스가 훨씬 더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4대 비극 주인공 중 맥베스가 가장 잔인한 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이나 오셀로보다 맥베스가 훨씬 더 매력 있는 주인공이다. 햄릿이나 오셀로의 경우 그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지긋지긋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연민, 자살 혹은 자기 파멸로 마무리 되는 결과에서 자의식의 과잉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햄릿도, 오셀로도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그 태도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자기 불행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는데 주변의 온도와 그 슬퍼하는 정도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자기변호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맥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고 주저하고 회의하고 결국 마지막 부분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껴안고 끝까지 삶 위에 서 있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지어내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은 가장 인상 깊었던 맥베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5막 9장

맥베스 항복하지 않겠다.
나이 어린 맬컴의 발밑 땅에 입 맞추고
잡놈들이 욕 퍼붓는 놀림감은 안 될 거다.
던시네인 언덕으로 버남 숲이 오기는 했지만
대적하는 네놈이 여자 소생 아니긴 하지만
난 끝까지 해보겠다. 이 도전의 방패를
내 몸 앞에 던진다. 덤벼라, 맥더프. 그리고
“멈춰.”라고 하는 놈은 지옥에나 떨어져라!
(싸우며 모두 퇴장. 경종. 싸우며 다시 등장하고 맥베스가 살해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셀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니스의 상인을 보고 셰익스피어도 그 당시 유럽의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인종차별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이 책을 보면 생각이 완전히 뒤집힘을 느낀다. 무어 인이란 아라비아인, 베르베르인, 흑인의 혼혈로 구성되며 좁은 의미로는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무슬림, 넓은 의미로는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하지 않고 북서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총칭하며, 현대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몰타, 모리타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중세 무어 인의 후세들이라고 한다. 무어 인은 인종학적인 명칭도 아니고 단일 민족이 아니기에 연대감이 약하며 무어 인이라는 용어 자체도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이러한 무어 인을 주인공을 삼아 비록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자존심이 강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그리고, 피부색만으로 그를 미워하고 의심하는 백인들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오셀로 증후군이라는 말도 연관검색어에 뜨는데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이니만큼 배우자의 정조를 의심하는 부정망상을 설명하기에 딱 좋은 단어인 것 같다. 대체 왜 오셀로처럼 유능하고 고귀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다. 어느 것이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3막 3장에서 음모를 꾸미는 이아고의 대사를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자고 있던 열등감을 이아고가 자극시켜 깨운 것이 시작일 것이다.

이 손수건을 카시오의 숙소에 떨구고
그가 발견토록 해야지. 질투하는 사람에겐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물건도
성경 말씀처럼 강력한 확증이야.
이게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무어인은 벌써 내가 준 독약 먹고 변했어.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맛이 고약한 줄 처음엔 거의 모르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불처럼 타는 거야. 그렇다고 했잖아.

질투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생각은 이아고의 대사 뿐 아니라 3막 4장에서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와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의 대사에서도 나타난다.

데스데모나 어쩌나, 난 절대 원인 제공 안 했어!
에밀리아 질투하는 이들에게 그건 답이 아니에요.
그들은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투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거라고요.
그건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태어나는
한 마리 괴물이랍니다.

어쩌면 오셀로는 완벽하게 열등감을 극복하지는 못한 인물이었고, 어쩌면 아내 데스데모나는 그가 적어도 그 자신에게, 그리도 남들에게 나는 나의 처지를 완벽히 극복했다는, 그래서 나의 처지에서 오는 열등감과 싸워 이겼다는 증표이지 않았을까. 금이 간 댐에 점점 물이 스며들다가 터져 버리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숨죽이고 있던 열등감이 자극되어 깨어나면서 심리적 안정도 같이 무너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오셀로가 카시오에게 가지고 있는 열등감은 젊은 나이와 백인이라는 것, 그리도 아내인 데스데모나는 젊은 나이의 백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하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가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 그렇지만 그것을 가진 상대에게 끌려 사랑에 빠지고 이제 나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다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역시 너는 ‘그것’을 가지지 않아서 안 되겠다고 잔인하게 버림당했다고 믿게 되는 정황. 시대적인 설정을 들어내면 이것을 현대에도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영원히 현대적인 걸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햄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표지의 그림부터가 눈에 확 띄었다. 그 유명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이 그림의 여주인공은 엘리자베스 시달이라고 하는 여성인데,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같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나온 단테 알리기에리의 ‘새로운 인생’을 읽었는데 바로 그 책에 나온 서문을 쓴 사람이자, 오랫동안 시인 단테를 흠모하며 직접 영역본을 번역하였고, 자신을 단테와 동일시하려고 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이다. 로세티의 그림들 중에서는 알리기에리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들도 많다.
엘리자베스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결성된 라파엘 전파라는 예술가 집단의 모든 화가들에게 인기 있던 모델이었고, 그 집단의 중심 인물의 하나였던 로세티는 그녀를 독점하고 싶어서 결혼하였으나 결혼 후 다른 여성과의 불륜에 빠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하며, 이 와중에 아이마저 사산한 후 엘리자베스는 결혼 2년 만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워낙 옛날의 이야기인데다가 인터넷의 정보이니까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는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의 뒷이야기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유명한 그림 속에 나오는 식물들은 모두 '상징' 이라고 한다.
오필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제비꽃은 ‘신뢰’, ‘육체적 순결’, ‘젊은 날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필리아 뺨 옆의 장미는 오빠 레어키스가 그녀를 ‘5월의 장미’라고 부르던 것을 뜻하며, ‘젊음’, ‘사랑’, ‘아름다움’ 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오필리아의 오른손 주변에 떠 있는 붉은 양귀비꽃은 ‘깊은 잠’과 ‘죽음’을, 그 옆의 흰색 데이지꽃은 ‘순결’, 오른편의 노랑색 팬지꽃은 ‘공허한 사랑’을, 팬지 왼편의 붉은색 작은 아도니스꽃은 ‘슬픔’을 표현한다고 한다.
오필리아를 향해 늘어져있는 버드나무 가지는 ‘버림받은 사랑’을, 버드나무 가지 뒤편에 짙은 녹색으로 보이는 쐐기풀은 ‘고통’을 뜻하고, 그림 오른편 덤불 속 세 개의 구멍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의 형상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지만, 이 그림을 보다보면 사망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하염없이 그림을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문득 비극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오필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제4막 제7장 왕비의 대사를 보면

거울 같은 물 위에 하얀 잎을 비추며
냇가에 비스듬히 수양버들 자라는데,
그것으로 네 누이가 기막힌 화환을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들국화, 그리고
입 건 목동들은 더 야하게 부르지만
정숙한 처녀들은 <죽은이 손>이라는
야생란과 엮어서 만들었지.
흰 가지에 풀꽃관을 걸려고 올라가다,
한 짓궂은 실가지가 부러져,
풀화환과 네 누이가 울고 있는 개울로 떨어졌어.
입은 옷이 쫙 퍼져 그녀는 인어처럼 잠시 뜬 채,
옛 찬가 몇 구절을 그 동안에 불렀는데,
자신의 위기에는 무감하게 되었거나,
마치 물에서 태어나고 거기에 적응된
생물 같아 보였지. 그러나 멀지 않아
그녀의 의복이 마신 물로 무거워져,
곱게 노래하는 불쌍한 그애를 진흙 속
죽음으로 끌고 갔어.

라고 나온다.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도 자세히, 눈에 그려지듯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몇 번을 곱씹어 읽어보게 된다. 밀레이의 그림은 이 부분을 완벽하게 시각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햄릿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서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이야기인 변신이야기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 작품 해설에서도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영문학사에 남을 사람이었으나 햄릿이라는 걸작 중의 걸작을 남김으로써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비극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적인 가치를 놓고 보면 이 작품은 단연 가장 먼저, 위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가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겠지만.
텍스트, 출처, 시대배경, 인물과 주제를 이해하면 당연히 작품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 부분을 전부 떼어놓더라도 그 인물 하나만 놓고 보아도 모두가 매력을 느낄 만한 인물이다. 제 3막 제 1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한 복수, 돈키호테형 인간과 대비되는 햄릿형 인간 등등 대중적으로도 햄릿은 인기 있는 소재이다. 199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은 거의 그대로 햄릿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재생산되고 재해석되는 햄릿의 인기는 당대에는 더 했던 것 같다. 당시 에섹스 백작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햄릿처럼 행동을 지연하다가 반란을 일으켰고 실패하여 처형되었다고 하는데 이 인물을 셰익스피어가 의도적으로 연결시켰다는 분석이 있다고 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몇 백 년 전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적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직도 해답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존재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하고 지성적이었기에 짓눌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햄릿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그가 결국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하게 된 결과였나 싶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홋카이도 반할지도 - 여름의 비에이 겨울의 삿포로 ㅣ 반할지도 시리즈
최상희.최민 지음, 엘 그림 / 해변에서랄랄라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반적인 가이드북에서 잘 소개하지 않은 장소가 소개된다는 장점은 있으나 그 장소의 선정이 다소 저자 개인의 취향이 확고하게 반영된 것이기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저자의 감성은 사진과 글에서 묻어나나 이러한 책에서 흔히 기대되는 여행지에 대한 깊은 사색까지는 찾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 단적인 예로 비에이의 풍경은 인터넷 검색에 시간을 들이면 이 책 이상의 사진은 나올 수 있기에 사진이 특별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홋카이도에서 상대적으로 알려진 삿포로나 오타루, 비에이 등 말고 최북단인 아바시리 등 덜 알려진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부족하다. 내가 이 책을 산 것은 홋카이도 여행가기 전이었는데 가기 전의 기대를 한껏 올려 설렘으로 들떠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히 흐뭇하기는 했으나 다녀오고 나서 다시 보고 나면 생각보다 책 내용이 묵직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