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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이 책은 표지의 그림부터가 눈에 확 띄었다. 그 유명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이 그림의 여주인공은 엘리자베스 시달이라고 하는 여성인데,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같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나온 단테 알리기에리의 ‘새로운 인생’을 읽었는데 바로 그 책에 나온 서문을 쓴 사람이자, 오랫동안 시인 단테를 흠모하며 직접 영역본을 번역하였고, 자신을 단테와 동일시하려고 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이다. 로세티의 그림들 중에서는 알리기에리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들도 많다.
엘리자베스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결성된 라파엘 전파라는 예술가 집단의 모든 화가들에게 인기 있던 모델이었고, 그 집단의 중심 인물의 하나였던 로세티는 그녀를 독점하고 싶어서 결혼하였으나 결혼 후 다른 여성과의 불륜에 빠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하며, 이 와중에 아이마저 사산한 후 엘리자베스는 결혼 2년 만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워낙 옛날의 이야기인데다가 인터넷의 정보이니까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는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의 뒷이야기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유명한 그림 속에 나오는 식물들은 모두 '상징' 이라고 한다.
오필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제비꽃은 ‘신뢰’, ‘육체적 순결’, ‘젊은 날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필리아 뺨 옆의 장미는 오빠 레어키스가 그녀를 ‘5월의 장미’라고 부르던 것을 뜻하며, ‘젊음’, ‘사랑’, ‘아름다움’ 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오필리아의 오른손 주변에 떠 있는 붉은 양귀비꽃은 ‘깊은 잠’과 ‘죽음’을, 그 옆의 흰색 데이지꽃은 ‘순결’, 오른편의 노랑색 팬지꽃은 ‘공허한 사랑’을, 팬지 왼편의 붉은색 작은 아도니스꽃은 ‘슬픔’을 표현한다고 한다.
오필리아를 향해 늘어져있는 버드나무 가지는 ‘버림받은 사랑’을, 버드나무 가지 뒤편에 짙은 녹색으로 보이는 쐐기풀은 ‘고통’을 뜻하고, 그림 오른편 덤불 속 세 개의 구멍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의 형상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지만, 이 그림을 보다보면 사망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하염없이 그림을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문득 비극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오필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제4막 제7장 왕비의 대사를 보면
거울 같은 물 위에 하얀 잎을 비추며
냇가에 비스듬히 수양버들 자라는데,
그것으로 네 누이가 기막힌 화환을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들국화, 그리고
입 건 목동들은 더 야하게 부르지만
정숙한 처녀들은 <죽은이 손>이라는
야생란과 엮어서 만들었지.
흰 가지에 풀꽃관을 걸려고 올라가다,
한 짓궂은 실가지가 부러져,
풀화환과 네 누이가 울고 있는 개울로 떨어졌어.
입은 옷이 쫙 퍼져 그녀는 인어처럼 잠시 뜬 채,
옛 찬가 몇 구절을 그 동안에 불렀는데,
자신의 위기에는 무감하게 되었거나,
마치 물에서 태어나고 거기에 적응된
생물 같아 보였지. 그러나 멀지 않아
그녀의 의복이 마신 물로 무거워져,
곱게 노래하는 불쌍한 그애를 진흙 속
죽음으로 끌고 갔어.
라고 나온다.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도 자세히, 눈에 그려지듯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몇 번을 곱씹어 읽어보게 된다. 밀레이의 그림은 이 부분을 완벽하게 시각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햄릿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서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이야기인 변신이야기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 작품 해설에서도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영문학사에 남을 사람이었으나 햄릿이라는 걸작 중의 걸작을 남김으로써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비극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적인 가치를 놓고 보면 이 작품은 단연 가장 먼저, 위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가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겠지만.
텍스트, 출처, 시대배경, 인물과 주제를 이해하면 당연히 작품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 부분을 전부 떼어놓더라도 그 인물 하나만 놓고 보아도 모두가 매력을 느낄 만한 인물이다. 제 3막 제 1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한 복수, 돈키호테형 인간과 대비되는 햄릿형 인간 등등 대중적으로도 햄릿은 인기 있는 소재이다. 199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은 거의 그대로 햄릿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재생산되고 재해석되는 햄릿의 인기는 당대에는 더 했던 것 같다. 당시 에섹스 백작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햄릿처럼 행동을 지연하다가 반란을 일으켰고 실패하여 처형되었다고 하는데 이 인물을 셰익스피어가 의도적으로 연결시켰다는 분석이 있다고 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몇 백 년 전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적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직도 해답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존재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하고 지성적이었기에 짓눌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햄릿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그가 결국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하게 된 결과였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