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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평점 :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맥베스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청소년 명작 소설, 고전 전집을 통해 이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공연을 본 적은 없었는데 영상으로 보는 순간 마녀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맥베스가 살인을 하는 장면, 반대편을 죽이고 또 그 반대편이 맥베스를 죽이는 장면까지 영화 내내 곤두서고 스산하고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보는 내내 주인공의 연기에 감탄하면서도 다소 괴로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그래서 그 이후로 이 영화를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맥베스는 원래의 형태와 동일하게 연극으로 올려지는 것은 당연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그대로 만들어지거나 모티브를 주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 영화 평을 보면 ‘셰익스피어도 흐뭇하겠어’, ‘고전은 어떻게 부활해야 하는가에 대한 황홀한 답’, ‘앞으로 맥베스는 패스벤더의 전과 후로 나뉘어질 것이다’ 라는 평들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을 제대로 구현해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이 더 보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이 보고 싶어져서 원작을 봤고, 원작을 읽으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맥베스에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이, 맥베스 부인에는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1막 3장 마녀들의 유혹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맥베스와 뱅코. 한 명은 왕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 명은 자손이 왕이 된다는 말을 듣는다. 맥베스는 안 그런 척 하지만 동요하였고, 뱅코는 겉으로는 재미있어하는 듯이 보여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 결국 맥베스는 마녀를 만나기 전부터 권력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마녀를 만나면서 욕구가 깨어났으리라. 그러고 보면 마녀는 결국 맥베스가 원하는 것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 사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기억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고, 똑같은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보아도 기억하는 장면은 사람마다 다르다. 결국 수없이 떠다니는 말들 중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겉으로는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원하는 것들만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21세기인 요즘 아직까지도 사주, 점성술, 타로 등등을 찾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그런 이유가 있겠다.
맥베스 (방백) 글래미스, 코도 영주.
그 다음엔 대권이다. (로스와 앵거스에게) 수고하셨습니다ㅡ
(뱅코에게) 후손들이 왕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오?
코도를 내게 준 것들이 그 못잖은 약속을
그들에게 했지 않소?
뱅코 그 말을 다 믿다간
장군이 코도 영주 외에도 왕관을
탐할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이상하죠.
어둠의 수족들은 우리를 해치려고
가끔씩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소소한 정직으로 우리를 유인하여
중대한 결말에서 배반한단 말입니다.
1막 7장 망설이는 맥베스를 부추기는 맥베스 부인의 대사는 섬뜩한데, 특히 웃는 얼굴로 젖을 먹고 있는 아기에서 젖꼭지를 뽑아서 골을 깰 수도 있다는 부분은 언제 읽어도 무시무시하다. 아주 어릴 때 소년소녀전집에서 원작에서 상당히 각색된 형태의 맥베스를 읽은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죽 다른 대사는 몰라도 이 대사만큼은 확실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식까지도 희생할 수 있다는 이 부분을 보다 보면 문학에서 창조해 낸 최고의 악녀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맥베스 제발 그만.
남자다운 일이면 난 무엇이든 감행하오.
더 할 사람 없을 거요.
맥베스 부인 그럼 무슨 짐승이
내게 이 계획을 발설하게 시켰어요?
이 일을 감행코자 했을 때 당신은 남자였고
전보다 더 과감해져 훨씬 더 큰 남자가
되려고 했어요. 당시엔 시간과 장소가
안 맞아도 당신이 맞추려고 했는데
저절로 맞춰지니 이젠 그 적절함 자체가
당신 기를 꺾는군요. 난 젖 빨린 적 있어서
내 젖 먹는 아기 사랑 애틋함을 알아요.
난 고것이 내 얼굴 보면서 웃더라도
이 없는 잇몸에서 젖꼭지를 확 뽑고
골을 깼을 거예요. 내가 만일 당신처럼
이 일 두고 맹세했더라면.
4막 3장 맥베스가 맥더프의 아내와 자식을 전부 살해했다는 사실을 접한 후의 대사이다.
맬컴 진정하오.
자 우리, 위대한 복수의 약을 지어
치명적인 이 비탄을 치료해 봅시다.
맥더프 그에겐 자식이 없어요. ㅡ 귀여운 것 모두를?
모두라 하였소? ㅡ 오, 지옥 솔개 갔으니! ㅡ 다?
아니, 귀여운 병아리와 암탉을 모두 다
일격에 낚아채?
이 부분에 대해서 주석에서는 세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1) ‘그’는 맬컴이며 그가 만일 자기 자식이 있다면 슬픔의 치료제로 복수를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는 맥베스이며 그가 자식이 없기 때문에 맥더프는 같은 식으로 복수할 수 없다. 3) ‘그’는 맥베스이며 그가 만일 자기 자식이 있다면 맥더프의 자식들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냐면, 1막 7장에서 맥베스 부인의 대사로 미루어봤을 때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 사이에서는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시점에서는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 희곡에서는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데, 2015년 작 영화에서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죽은 아이를 장사지내는 장면이 나오고, 이 들이 자식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여기까지 일을 벌였다, 즉 이 부부 캐릭터의 핵심은 상처와 결여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해석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해되기 어려운 맥베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하여 감독 나름의 정리를 한 것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1막 7장에서의 맥베스 부인의 대사는 무시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아이가 죽고 나서 하는 대사였다면 말이다. 만약 더 이상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맥베스 부부에게 남은 최고의 욕심은 왕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고, 자식이 있는 뱅코의 입장에서는 자자손손 내 자식들이 훌륭한 자리에 오르는 것이 더 큰 욕심이었을 것이다.
5막 8장
맥베스 내가 왜 얼간이 로마인 행세를 하면서
내 칼로 죽어야 해? 산 놈들이 보이는 한
멋지게 베어주자.
이 부분은 주석에 따르면 로마의 장수들인 카토, 브루투스, 안토니처럼 전쟁에 졌을 때 사로잡히는 굴욕을 면하기 위하여 자결하는 그런 바보 같은 관습을 맥베스 자신을 따를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끝까지 삶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는 모습 때문에 맥베스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고 있는데 아직 남아 있는 리어 왕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두 편인 햄릿이나 오셀로에 비해 맥베스가 훨씬 더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4대 비극 주인공 중 맥베스가 가장 잔인한 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이나 오셀로보다 맥베스가 훨씬 더 매력 있는 주인공이다. 햄릿이나 오셀로의 경우 그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지긋지긋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연민, 자살 혹은 자기 파멸로 마무리 되는 결과에서 자의식의 과잉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햄릿도, 오셀로도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그 태도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자기 불행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는데 주변의 온도와 그 슬퍼하는 정도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자기변호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맥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고 주저하고 회의하고 결국 마지막 부분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껴안고 끝까지 삶 위에 서 있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지어내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은 가장 인상 깊었던 맥베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5막 9장
맥베스 항복하지 않겠다.
나이 어린 맬컴의 발밑 땅에 입 맞추고
잡놈들이 욕 퍼붓는 놀림감은 안 될 거다.
던시네인 언덕으로 버남 숲이 오기는 했지만
대적하는 네놈이 여자 소생 아니긴 하지만
난 끝까지 해보겠다. 이 도전의 방패를
내 몸 앞에 던진다. 덤벼라, 맥더프. 그리고
“멈춰.”라고 하는 놈은 지옥에나 떨어져라!
(싸우며 모두 퇴장. 경종. 싸우며 다시 등장하고 맥베스가 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