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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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최근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한 인기 드라마의 대사이다.
그렇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 그런데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법적이거나 사회적으로 강한 끈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눈을 돌리는 행동이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 한 구석이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사랑이 무거우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의리나 책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 책의 연인들의 사랑은 책 제목처럼 한없이 가볍고 불안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대가의 명작에 박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걱정스럽다. 나의 무식이나 교양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마음이 안 가는 소설이라는 생각은 거듭 읽으면서 확실해진다.
나는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연애를 하고 싶지도 않고, 소설 속 남녀 모두 내가 연애하고 싶은 타입은 아니다.
수년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내 생각이 달라져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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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짐 자무쉬 감독, 골시프테 파라하니 외 출연 / 플레인아카이브(Plain Archive)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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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출근하는 패터슨은 버스 운전 기사다. 퇴근 후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반려견과 산책을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변화구를 주는 것은 시이다. 그는 틈나는대로 시를 읽고, 시를 쓰고, 그의 일상은 시가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지루했다. 지금 패터슨처럼 살고 있는 나는 때로 나의 일상이 지루해 버겁다. 지루한 일상에서 다시 접한 패터슨은 그야말로 나에게 아주 작은 보석 같은 영화였다. 반질반질 닦아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은 유심히 봐야 알아차릴만큼 작아도 들여다볼 때마다 흐뭇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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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동안 (28 Days)
소니픽쳐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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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산드라블록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영화 스피드에서 키아누리브스와 함께 나왔던 산드라블록은 얼마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는지.
이 영화의 개봉 소식도 알았고 활짝 웃는 산드라블록의 포스터를 보면서 설렜지만 보러 가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얌전했던 것 같다.

발랄하고 명랑했던 산드라블록은 이제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고 그래비티를 통해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여배우 최고 출연료를 기록했으며 연기 뿐 아니라 제작도 하고 있다. 그야말로 거물이 되었다.

사랑스럽고 친근한 매력의 여배우가 자신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작품 선택을 하게 되는 시작점이 바로 이 영화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게 된다. 산드라블록 이후의 앤 해서웨이도 엠마 스톤도 비슷한 경로를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는 여전히 생기발랄한 산드라블록을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중독이라는 소재에 경박하거나 신파스럽게 접근하지 않는다. 중독은 누군가에게는 경력의 단절을, 누군가에게는 가족과의 불화를,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가져온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는 노력하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극복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지루함, 중독, 지긋지긋함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는 삶에서 누군가는 잠시 왔다가 가고 누군가는 오래 머물다 간다. 잠시 내 인생에 왔다 가는 사람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진중하고 무게 있는 지금의 산드라블록의 모습도 멋있지만, 예전의 발랄했던 산드라블록을 보지 못 해 아쉬웠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중독에 대해, 인생에 대해 내내 냉정하게 느껴질만큼 관조적이던 영화가 점점 마지막으로 흐르면서 응원해주고 토닥여주는 것 같은 이 영화의 흐름도 좋았다. 여주인공의 극적인 변화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산드라블록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잠깐 등장하는 비고 모텐슨이나 스티브 부세미의 연기가 좋아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너가 했지만 그것은 너의 전부가 아니라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말하는 비고 모텐슨의 극중 대사는 처음 볼 때는 평범하게 느껴졌지만 산드라블록이 남친과 헤어지며 키스하는 부분과 연결되자 명장면이 되었다. 나의 전부는 분명히 아니지만 어쨌든 지긋지긋하더라도 그 또한 내가 했던 나의 과거의 한부분이라는 것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과거에 대한 안녕을 하는 성숙함은 사실 어렵다.
더는 볼 수 없는 쌍둥이빌딩의 모습이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노라면 최근 그린북에서의 비고 모텐슨과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겹쳐지며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며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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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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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특한 소재이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치매 걸린 사람의 1인칭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아온 세계가 전부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게 되고야마는 자의 절망이 느껴져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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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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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때부터 전부는 아니어도 간간이 작가의 소설은 읽었다.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여 쫀쫀한 문장이 이어지다 의외의 결말에 도달하는 건 예전부터 있던 작가의 장점인데, 이 책에는 그런 작품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작가가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겠는데, 그 변화만큼 재기발랄함은 줄어들고 결말의 찝찝합이 늘어난다. 좋았던 단편은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두 편 정도.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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