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
엘러리 퀸 지음, 김성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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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빨리 엘러리 퀸의 다른 이야기도 읽고 싶다.
엘러리 퀸 시리즈로는 처음이고 작가의 전체 소설로 확장하면 Y의 비극 다음으로 두번째다. 국명 시리즈도 비극 시리즈도 다 좋다. 매력적인 작가로구나.


독자에의 도전

범인은 누구일까? 나는 지금까지 쓴 소설 가운데서 범죄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들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 독자 여러분의 지혜에 도전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서도 전례에 따라서 도전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었다면,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엄밀한 논리를 구사해서 추론하면 여러분은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누가 범인인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뒤에 이어질 해설을 몇 장 읽어보면 금방 알게 되겠지만, '만일……'이라든지 '그렇지만……' 같은 조건을 전혀 붙이지 않고도 정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논리에 행운의 신의 도움 따윈 필요도 없겠지만, 부디 여러분들이 신중히 판단하여 멋지게 맞출 수 있도록 기도하는 바이다.

엘러리 퀸

자고로 추리소설이란 이런 맛이다. 엘러리 퀸 시리즈는 실제 탐정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회고록을 들려주며 독자도 같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자고 독자의 손을 소설 속으로 잡아끄는 느낌이 든다.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것인데 마치 반다인의 소설이 어디 독자 너 나랑 한번 겨루어 볼래? 어차피 너가 지겠지만, 같이 느껴진다면 퀸의 경우에는 한번 봐봐, 힌트는 다 주었으니 열심히 고민하면 맞출 수도 있어!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랄까.



엘러리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탁 쳤다.
"아버지, 아주 멋진 걸 생각해 냈습니다!"
"얘야!"
노경감도 조금 전의 기분좋은 얼굴은 간 곳이 없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도 방금 생각이 나는구나! 네가 그 턱없는 대륙 횡단의 술래잡기를 하는 바람에 비행기니 뭐니를 마구 타고 돌아다녔으니, 아마 집의 저금 통장의 반은 썼을 게다. 계산은 나한테 돌릴 작정이냐?"
엘러리는 낄낄 웃었다.
"이 문제도 한 번 논리를 적용해 보죠. 가능한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제가 쓴 경비를 낫소 군에다 청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아이샴 지방 검사의 얼굴을 보았다. 검사는 깜짝 놀라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고 침착성을 잃은 다부진 얼굴에 얼빠진 웃음을 띠며 의자에 기댔다.
"아니, 그건 도저히 실현이 어려울 것 같군요.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그 손실을 제가 부담하는 거죠." 엘러리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내저었다. "안되지, 그래서는 너무 지나치게 박애주의에 치우치게 되지……. 제가 방금 아주 멋진 걸 생각해 냈다고 했지요?"
본 경감이 투덜거리 듯이 말했다.
"아니, 당신은 그걸 교제비로 적어놓을 수도 없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지도 않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경감님." 엘러리는 천천히 말했다. "내가 이 사건을 재료로 해서 소설을 쓰지요. 그리고 그 표제는 저의 유식함을 과시해서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고 붙이지요.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비용을 부담해 줄 테니까요."

이 부분은 작가의 귀여운 변명이라고 할까. 사실 읽다보면 이집트랑은 1도 관련없는데 나라이름으로 시작하는 시리즈를 만들려다보니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반 다인의 6글자 살인사건 시리즈에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에 한 표.


다음은 옮긴이의 작가 소개이다.

현대의 미스터리소설은 미국의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된다. 그의 <<모르그 거리 살인 사건>>이 미스터리소설의 가장 오랜 고전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스터리소설은 발생지인 미국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이식되어 그곳에서 먼저 본격적인 꽃을 피우고 붐을 일으켰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르블랑의 뤼뺑이 독자에게 불러일으킨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미국에서도 포의 뒤를 이으려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첫째로 등장한 사람이 학자이면서 익명으로 미스터리소설을 쓴 반 다인이다. 곧이어 3년 뒤에 그를 추격하듯 나온 사람이 엘러리 퀸이다.
엘러리 퀸 역시 본명이 아닌 익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두 사촌 형제의 합작에 의한 필명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이 협력하여 작품을 써서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셈이다. 그들의 본명은 각각 프레드릭 대니, 맨프리드 B. 리다. 둘 다 1905년생이며 대니가 10월, 리가 1월이니 리가 형뻘이 된다.


이쯤에서 정리해보는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

로마 모자 미스터리(The Roman Hat Mystery), 1929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The French Powder Mystery), 1930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The Dutch Shoe Mystery), 1931
그리스 관 미스터리 (The Greek Coffin Mystery), 1932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The Egyptian Cross Mystery), 1932
미국 총 미스터리 (The American Gun Mystery), 1933
샴 쌍둥이 미스터리 (The Siamese Twin Mystery), 1933
중국 오렌지 미스터리 (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
스페인 곶 미스터리 (The Spanish Cape Mystery), 1935

옮긴이는 이 중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최고라고 하는데 확실히 재미는 있지만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봐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일단 최고점수는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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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탑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
P.D. 제임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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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알라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소개.

 

애거서 크리스티와 나란히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추리작가로 손꼽히는 P. D. 제임스는 1920년 8월 3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여자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딸에게 고등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아버지 탓에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17세부터 세무사무소 비서, 영화 스태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41년 군의관이던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복무 후 정신병을 얻어 돌아온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1964년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후 영국 국가보건기구(NHS), 내무성 경찰국과 범죄정책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1979년 은퇴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시인 겸 경관인 애덤 달글리시가 등장하는 첫 소설 《그녀의 얼굴을 가려라》는 1962년이 되어서야 출간됐다.

이후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표작 ‘달글리시 시리즈’ 14권을 포함, 20여 권의 추리소설 및 여러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 유일한 SF인 《사람의 아이들》(1992)은 영화 <로마>,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2006년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기술공헌상을 받는 등 지금까지도 ‘역사에 남을 걸작 SF’로 손꼽히고 있다.

 

P. D. 제임스는 영국 왕립문학회와 왕립예술회 회원이었으며, BBC 운영이사와 예술위원회 산하 문학자문단 단장을 역임했고, 영국문화원 이사, 미들섹스와 런던의 치안판사로 일했다.

영국법정변호사협회의 명예회원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추리작가협회 양쪽에서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와 다이아몬드 대거 칭호를 받았고, 국가예술클럽의 문학 부문 명예훈장을 포함, 여러 상을 받았다.

영국의 일곱 군데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에는 대영제국 4등 훈장을, 1991년에는 ‘홀랜드 파크 남작 제임스’라는 당대귀족 칭호를 수여했다.

1997년 영국저작권협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2013년 8월까지 직무를 수행했고, 2014년 11월 27일, 옥스퍼드 자택에서 9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본명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Phyllis Dorothy James).

 

 

그러니까 보건, 경찰, 정책 분야의 공무원으로도 일했고, 치안판사로도 일했으며,

추리 소설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작품 중에서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원작 소설도 있고,

영국 왕립문학회와 왕립예술회 회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 예술 단체에서 임원으로 일했으며

대영제국 훈장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고

자택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것인데...

 

여기까지 읽으면 군의관인 남편의 발병 및 사망으로 자신과 두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는 부분이 잊혀질 정도로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와 명예와 장수까지... 다 누린 사람이니까.

 

상대적으로 한국에 덜 알려져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녀의 이력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원작 소설을 썼다는 점이었고, 그 점 때문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전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달글리시 시리즈의 달글리시가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하는데, 은퇴를 번복하고 죽을 위기를 넘기는 등의 내용을 보면 이 소설은 달글리시 연대기의 중간쯤 해당하는 것 같다. 찾아보니 맞는 것 같고.

 

다른 시리즈에서의 달글리시는 어떤 인물일지 궁금하다. 여기에서는 경찰 일에 회의를 느끼고 사건 앞에서도 한 발 담갔다가 뺐다를 반복하는 느낌인데,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탐정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그들이 나가자 달글리시는 침대에 드러누워, 마치 방금 이 방에 처음 들어온 것처럼 그 몇 평 안 되는 소독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손을 살짝 대기만 해도 물이 나오는 세면대. 뚜껑 있는 주전자가 놓여 있는, 깔끔하고 낭비가 없도록 고안된 사이드테이블. 비닐이 씌워져 있는 방문객용 의자 두 개. 머리맡에 동그랗게 말려 있는 이어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무늬 커튼이 쳐진 창.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이런 을씨년스럽고 개성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장소에서 죽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이곳은 호텔방과 마찬가지로 잠시 머무를 나그네를 위해 설계된 방이다. 여기서 지내던 사람이 이 방에서 나갈 떄는, 제 발로 걸어나가든 아니면 영구차에 실려 나가든,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들의 불안과 고뇌, 그리고 희망의 기억조차도.

죽음의 선고는 달글리시가 늘 상상하고 있던 것과 같은 형태로 내려졌다. 즉, 침통한 얼굴들, 일종의 연극 같은 성실함, 은밀하게 오가는 말들, 하나마나한 것까지 포함된 갖가지 검사, 그리고 달글리시가 강경하게 요구하기 전에는 절대로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진단 결과와 예후. 그런 식으로 병이 한 고비를 넘긴 뒤에 약간의 궤변을 곁들여 내려진 완쾌 선고는 달글리시를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다. 그토록 분명히 죽음을 선고해 놓고 이제와서 완쾌되었다니, 아무리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 해도 달글리시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한 아쉬움 없이 자신이 얼마나 담담하게 일과 즐거움을 단념했는지 이제 와서 새삼스레 떠올려본들 모두 부질없었다. 그것들은 좋게 말해서 마음의 위안, 나쁘게 말하면 시간과 정력의 낭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그것들에 열중하여 그런 것은 소중한 것, 적어도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라고 다시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소중하다고 다시 한번 믿을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체력이 회복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생활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또다시 인생에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일시적으로 뒤틀린 분노와 나태함은 건강의 악화를 구실로 삼을 수 있고, 그 덕분에 잠시동안 쉴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동료들도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줄 것이다. 옛날에는 섹스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말을 다들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세상이 된 대신, 죽음이 그 터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상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기 전에 주위 사람들이 '명대로 살다가 좋은 세상으로 갔다'고 덕담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죽는 것은, 오늘날에는 최대의 악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에서만 그런지, 다른 소설에서는 인물의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왠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탐정 달글리시는 시인 겸 경관인데, 이것도 특이하다. 예술과 공직, 양쪽에 걸쳐 있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을 읽자마자 책에 대한,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인상을 규정한 것은 가장 앞에 나오는 작가의 비망록이었다.

 

도싯(Dorset 영국의 지명)을 사랑하는 분들께, 내가 아름다운 도싯 주(州)의 지형을 멋대로 차용한 것, 특히 토인턴 농장과, 퍼벡 연안에 있는 검은 탑이라는 두 개의 가공 장소를 지어낸 무모함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들의 풍광은 빌려왔지만 등장인물은 순전히 나의 창작에 의한 것이며,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때때로 창작의 자유라는 화두가 등장할 때가 있다. 역사 왜곡까지 가지 않더라고, 특정 지역이 언급되거나,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가 작품에 등장할 떄 그렇다.

 

이 작품은 지명만 가져온 것 같은데, 어쩌면 이런 말을 책을 읽기도 전에 덧붙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책에 몰입하는 정도를 줄여버릴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넣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공직에 오래 있었던 작가의 이력을 떠올리게 하고, 또 소설의 내용을 상당히 바꿔버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 대하여 원작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과 연관하여서는 예술적 허구와 그것이 실제로 발현되는 현실의 논리에서 확고한 주관을 가진 작가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대체로 유명한 탐정들-지금까지 읽은 동서미스터리북스를 기준으로 보면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드루리 레인, 브라운 신부, 피터 윔지 경, 파일로 밴스 등 대체로 공직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에 묶여 있지 않아 자유롭고, 그래서 틀을 깨는 발상을 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달글리시는... 마지막에 가서야 전모를 알게 된다.

한 명 한 명 용의자에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다가, 이 범죄가 왜 생겼을까 동기를 찾다가, 마지막에 등장하게 된 범인과 동기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지금까지 읽은 추리 소설의 동기와는 사뭇 멀어져 있다.

그래서 신선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여운이 남았다.

범인보다는 그 동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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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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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남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주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가 살인을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어딘지 나약한 성품이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이제까지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 본 적 없는 나약한 마음이지요. 아마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드러내지 않을지 모릅니다. 만일 그 나약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존경하고 그 역시 죽을 때까지 편할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는 돈에 몹시 궁했지요. 아니, 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꽉 막혀 버렸다고 합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떤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사에 관계되는 비밀을 말입니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이것을 공표하여 선량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그의 나약한 성격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납니다. 이건 돈이 생길 좋은 기회다. 더욱이 막대한 큰돈이다라고요. 그 남자는 돈 때문에 몹시 난처해 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구나 그 돈을 얻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침묵만 지키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져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남자는 발 밑에 금광에 그만 취해 버립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집니다."

 

"아마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돈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너무 지나치게 쫓았던 거지요. 영국의 격언과 같이 금덩이를 낳는 거위를 죽여 버린 격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사실이 폭로될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현재의 그는 벌써 과거의 그, 1년 전의 그가 아닙니다. 이제 도덕 관념도 흐려져 있습니다. 자포자기가 되었습니다. 점점 지고 있는 싸움에서 그는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의 폭로란 바로 그 자신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단검이 꽂혀졌던 것입니다."

 

"그 단검이 뽑혀진 뒤 그는 다시 여느 때의 평범하고 동정심 많은 남자로 돌아갔겠지요. 그러나 만일 필요할 때는 다시 단검을 휘두를 겁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다른 버전인 황금가지 출판사의 크리스티 전집으로 이미 읽었다. 따라서 반전을 정확히 알고 읽었다.

이 책이 반전을 알고 나면 반응은 딱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교활한 속임수를 썼다고 비난했던 반 다인과 같은 반응, 하나는 앨러리 퀸과 같이 극찬하는 반응이다. 중간은 없다. 당연히 없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였다. 물론... 정통 미스터리 트릭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독서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단연코 이 소설은 압권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반전 때문에 멍해졌는데, 시간이 한동안 흐르고 나서 반전을 다 안 상태에서 책을 다시 읽으니 책 전체에 교묘하게 깔아놓은 복선이 보였다.

다 알고 봐도...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추리 소설은 읽다 보면 그 반전과 트릭에 치여서 지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의무이자 책임은 재미이거늘... 지나치게 추리물의 트릭의 정교함에 집중하다 보면 소설 자체의 재미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그냥 막 읽어도 재미있다. 사건도 재미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사건의 진짜 모습도 재미있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대화도 재미있고... 어쩌면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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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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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의 모든 게 아주 낯선 것뿐이었어요. 오랫동안 저는 숱한 근심을 했거든요. 거기는 이제껏 제가 익숙해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떄문에 마음에 안 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오랫 동안 잠자코 있었다.

"섭섭했니?"

아버지는 나중에야 이렇게 물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전 언제나 서당을 우리 집으로 생각해야만 했어요."

"내 곁으로 들어오너라."

아버지는 손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너는 아직 소동파의 시를 잘 알고 있을 테지?"

나는 다시 생각해 보고는 그렇다고 했다. 항행하는 시인의 노래를 작년에 배웠다.

"그것을 읊어봐라."

나는 막히지 않고 읊었다.

"너는 저 <영탄가>를 읊을 수 있니?"

나는 그것도 읊었다. 50절이 끝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젠 네 마음이 좀 진정되었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내 이부자리로 들어갔다.

"내일 또 학교에 가겠느나?"

"네,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제 나쁜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너는 분명히 말해 줘라. 그건 조금도 나쁜 시대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이고, 그것은 갓 시작된 것이라고. 예를 들자면, 눈이 많은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진달래가 피고 뻐꾸기가 우는 것과 같이 온다고 말이야. 나는 '현대'를 그렇게 생각한다."

 

"네가 이 학교에서 충분히 재주가 없더라도 괜찮아! 우리들에게 그렇게까지 서투른 문화는 맞지 않는거다. 지난 일을 생각해보아라. 너는 얼마나 쉽게 고전이며 시를 배웠었니! 넌 총명했단다. 너를 괴롭히는 새 학교에서 나오너라. 그리고 올 가을에는 송림촌으로 가거라. 휴양하러 말이다. 그곳은 제일 작은 땅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농토다. 밤이며 감이며 많이 있다. 거기 가서 푹 쉬어라. 우리 일꾼들과 그들의 일을 익혀라. 한적한 마을에서는 네가 이 불안스런 읍에서보다 훨씬 더 잘 자랄 거야. 너는 옛 시대의 아이다."

그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언제나 새 학문에 대한 재능이 없을까 두려워했었다. 아버지가 이끌어준 이것만이 우리에게 더 높은 문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내가 4년간 열중했던 공부를 재능이 없다고 해서 집어치우고 퇴학을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아주 슬프게 만들었다.

'"너는 그렇게 할 테냐?"

내가 잠자코 있는 동안 어머니가 물었다.

"물론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나는 맥빠진 대답을 하였다.

"아이구, 기특한 내 자식아."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방문을 나섰다.

 

"너는 지금까지 도회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생각해 봐라,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은퇴하여 시골에 온 많은 선비들도 있지 않았느냐? 그들은 밤에 붓을 들기 위해서 낮에는 호미를 쥐었다. 그들처럼 너도 몹쓸 세상이 좋아질 때까지 이 고요한 속에서 지내라."

새 왕조가 이룩되기만 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농군들은 믿고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민족의 보다 더 화려한 앞날을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반대는 안 했다. 더욱이 내가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그분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불손하게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주의 가정과 소작인의 가정을 한집안으로 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옛부터 내려오는 좋은 풍습이었다. 나는 즐겨 그렇게 불렀고, 수많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소위 택호를 붙였다. 그래서 한 사람은 '윗골 아저씨', 그 부인은 '윗골 아주머니', 또 '뒷섬 아저씨', '뒷섬 아주머니'라는 식으로 불렀다. 소작인 농군들은 으레 나를 '도회지에서 온 조카'라고 했고 진짜 조카처럼 친절히 대접해 주었다.

 

"과거를 너무 생각지 마라."

끝으로 어머니는 말하였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궁궐의 이끼 낀 긴 담장을 따라서 오래되고 조용한 길을 걸었다. 이 궁궐의 담장 안에는 전 왕실의 후예가 수백 명의 시종과 시녀를 데리고 살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언제나 조용하고 고요했다. 나는 이 길을 걸을 때마다 항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고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들 왕족의 인기척이나마 듣고 싶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발짝 소리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5백 년 왕조의 저 후손들은 지극히 조용해졌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학문, 철학, 자연, 인간의 생활-이 우리에겐 무의미하게 보였다. 아니 더럽게 보였다. 우리가 시체 해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나올 때, 우리는 더운물로 깨끗이 목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의 신체를 보아야 하며 피부를 손으로 만지는 게 겁이 났다.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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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의 매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
대쉴 해미트 지음, 양병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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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의 저자부터 알아보자.

저자는 대실 해밋. 하드보일드 장르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사람이며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말타의 매'이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원래 계란이 완숙된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예술 장르에서는 비정, 냉혹, 누와르와 유사하다. 그러니까 주인공 탐정이 인간미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사건을 해결하고 돈을 받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1차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가 탄생시키고 즐긴 문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겹치지는 않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홈즈나 벨 에포크 시대의 루팡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드보일드가 태동했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홈즈나 루팡은 어떤 면에서는 신선놀음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로도 유명하다던데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으로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연상되었는데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진짜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이었다! 영화는 100 대 영화로도 선정되었으며 이미 이전에 2번 영화화가 된 적이 있지만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세번째 영화가 워낙 높게 평가받아 앞의 두 영화는 묻힌 것 같다. 책 자체의 리뷰를 보면... 아마도 이 작품은 원작 소설과 영화의 위상이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상당한 화제작이었겠지만(그러니까 영화화도 되었겠지) 현대에 와서는 미스터리 문학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그 유명한 영화의 원작 소설 정도의 위치가 대체적인 평인 듯하다.

 

영화로 만들기 편한 소설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물에 대한 복잡한 심리묘사는 없는데, 옷차림이나 행동에 대한 묘사는 읽으면서 동시에 눈앞에 그려질 정도다. 장황하지 않고 깔끔하며 힘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부분을 곱씹어 읽게 된다. 예를 들면...

 

스페이드의 굵은 손가락이 정성껏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우선 둥글게 만 종이 안쪽에 황갈색의 썬 잎담배를 알맞게 덜어놓는다. 그리고 가운데를 가볍게 누르며 양쪽 끝에도 담배가 고루 가도록 편 다음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종이 안쪽 끝을 우겨넣고 둘째 손가락으로 종이 바깥쪽을 누르면서 말아간다. 그리고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ㅇ로 만 담배 양쪽 끝을 고르게 매만지며 이음매를 혀로 핥는다. 그리고 왼쪽 둘째 손가락으로 담배 한쪽 끝을 잡고 오른쪽 둘째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축축한 이음매를 꼭꼭 누른다. 그런 다음 한쪽 끝을 살짝 비튼 뒤 다른 한쪽 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런 부분도 있다.

 

그는 목덜미를 긁고 나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얇은 흰 바탕의 유니언슈트(셔츠와 바지가 하나로 된 콤비네이션)에 회색 양말, 검은 양말대님, 그리고 짙은 갈색 단화를 신었다. 구두끈을 매고 나자 수화기를 들고 그레이스턴 4500번을 돌려 택시를 불렀다. 녹색 줄무늬가 든 흰 와이셔츠에 흰 소프트 칼라, 녹색 넥타이, 낮에 입었던 회색 양복에 풍신한 트위드코트, 그리고 검은 회색 모자, 이리하여 몸치장이 끝났다. 담배와 열쇠와 돈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현관 벨 소리가 났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그려지면서, 이 인물이 어떤 성격일지 짐작이 간다. 유니언슈트를 입고 낮에 입었던 양복을 입고 풍신한 코트를 입는 사람. 흰색 녹색 회색 갈색 검정색 만으로 몸치장이 끝나는 사람. 열쇠와 돈보다도 담배를 먼저 챙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 몸치장을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울리는 벨 소리.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다.

 

촘촘한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인 탐정부터 꼼꼼하고 치밀한 면도 있지만 그 못지 않게 허술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기법이니 트릭이니 다 떠나서 읽는 내내 정말 흥미진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장르든 교훈이든 실험적이든 뭐든지 간에 소설은 무조건 재미 아닌가. 재미있다. 정말 충분히 재미있다.

 

아,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핑커톤 탐정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핑커톤 사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 여러 나라에 사무실을 둔 기업이라고 한다. 전직 탐정이 쓴 탐정 소설이다. 이래저래 매력적이다.

 

가장 인상깊은 구절 중 하나. 소설 전체와는 큰 상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프리트클래프트는 선량한 시민이자 선량한 남편이며 아버지였소. 그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지요. 다만 본디부터 주위와 잘 어울리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오. 그는 그렇게 자라온 거요. 그가 아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사람뿐이었소. 그가 알고 있는 인생은 질서 있고 깨끗하며 건전하고 책임감 있는 것이었소. 그런데 그때 떨어져 내린 쇠들보가 인생이란 결코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 준 거요. 선량한 시민이며 남편이며 아버지인 자기도 이처럼 사무실에서 레스토랑으로 가는 잠깐 동안에 떨어지는 쇠들보에 맞는 우발적 사고로 간단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인간은 그런 식으로 우연히 죽어버리는 존재로서, 맹몽적인 운명이 눈감아주는 동안만 살아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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