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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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원제는 ‘Das Buch’, 독일어로 ‘그 책’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The Book’이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너무 평범한 제목이 될 테고 그래서 제목을 바꾸었나보다. 원제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관심을 끌만한 제목이다.

 

한 남자가 있다. 책을 사랑하는 남자. 단순히 취미가 독서인 정도가 아니라 책 그 자체(책의 삽화, 활자, 종이, 냄새 등 책의 모든 것)를 사랑하는 남자이다. 이 남자가 어느 날 ‘The Book’이 되어버린다.

 

독일 소설이고 사람이 다른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것 때문에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또한 공통적으로 그에는 훨씬 못 미치는 소설이라는 것도 함께 느낄 것이다. 일단 내용도 너무 짧은데다가(뭘 좀 느낄 만하다가 끝나버리는 느낌이다) 대체 이 작가가 여러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서 뭘 말하고 싶은지 주제의식을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다. 아마 작가는 뭔가를 특별히 말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책을 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알아서 느끼게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열된 에피소드들이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참 매력적이다. 책의 디자인, 종이의 질감, 삽화 등이 내용을 떠나서 계속해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Das Buch’인 동시에 책 속에 나오는 ‘Das Buch’와도 닮았다. ‘Das Buch’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Das Buch’인 것이다. 물론 책을 읽은 우리는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공포를 준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사실 이 책이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책의 설정이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단순히 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이 책이 된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고 작가의 능력이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가히 출판물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는데도 출판계는 호황이고(그렇게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7위의 출판 국가란다) 신문의 book 섹션에는 매주 신간이 넘쳐난다. 대체 이 많은 책들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좋은 책, 그저 그런 책, 나쁜 책들이 범람하는 이 시기에 다른 이의 기준에 휩쓸리지 말고 정말 나에게 맞는 책을 선택해 오래오래 사랑하며 보는 것이 진짜 독서가가 아닐까. 책에 대한 과한 집착도, 기준이 없는 무분별한 책읽기도, 책을 등한시하는 것만큼 독자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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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는 연인들을 위한 초콜릿
케이 알렌보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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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열 살이 되기

내가 만약 열 살 소녀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모든 일들은 가장 좋은 쪽으로 개선될 텐데. 진심으로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나는 그 날 하루 동안은 다시 열 살짜리 소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몇 가지 기본적인 규칙들을 정했다. 무슨 물건을 사더라도 지폐로 계산하지 않기, 누구와 만날 약속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기.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의 어린 부분을 내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기술을 배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매직펜으로 무지개를 그리고, 만화를 읽는다. 때때로 담요로 만든 텐트 안에 들어가 달콤한 잠에 빠지기도 한다.

 

운명의 바로 그 버스

“한 번도 신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 때 플린트에서 좀 더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도 있었고, 좀 더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버스를 탔잖아.”

운명이란 그렇게 오묘한 것이다. 나는 그 앞의 버스도, 혹은 그 뒤에 도착한 버스도 타게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를 만나게 된 내 삶은 하늘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난 오로지 바로 그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절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꽃처럼

“어떤 사람은 내가 쓴 시를 의심했던 선생님처럼 처음부터 축복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단다. 감추어진 축복이지. 너희들에게 도전해오는, 그리고 가끔은 굉장히 불친절하게 도전해오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절대 놓치지 않도록 하거라. 그의 도전을 한 번 이겨낼 때마다, 너희들의 인생은 바뀌게 되는 것이란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축복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거라.”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

이같이 평범한 교훈을 배우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이때 얻은 것들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인기란 극히 피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일단 내가 ‘이거면 됐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 쓰는 건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또 나 자신을 믿는다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그때 내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을 아직도 증오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를 받으면서, 내가 많이 성장했음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증오의 다른 일면이 수용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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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날들 -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시간
김신회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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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은이에게 여행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가장 보통의 날들’일뿐이다. 여행이 축제가 아니라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일상이 축제가 된단다. 지은이의 여행의 하루하루는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보통의 날인 것이다.

 

여행 책은 차고 넘친다. 그것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쓴 여행기, 특히 책을 후루룩 넘겨보니 분위기 있는 유럽 국가들의 사진이 들어온다. 짤막짤막한 글들과 함께. 이쯤 되면 편견이 생길 만하다. 꼭 금방 여행 다녀 온 여자들의 미니홈피를 보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의 편견 또한 깨졌고, 어느새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알고 보니 내가 알만한 유명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공감을 자아냈나 보다. 그녀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림은 글과 함께 이중의 찌릿함을 주고 나의 추억 또한 생각나게 한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여자인 그녀. 사회에 발을 디딘지 몇 년이 되었을 그녀. 가장 화려해 보이지만 또한 가장 경쟁이 치열할 곳에서 일하는 여성인 그녀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또 어떤 마음으로 매번 여행 가방을 쌌을 지는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일상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그녀의 글은 공허하지 않고 사진은 겉멋이 들지 않았다.

 

생소한 나라로의 여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벌써 그 나라를 다녀온 후 적은 그녀의 소감 덕분에 걱정했던 마음이 줄어들고 힘이 난다. 그 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재미있단다. 나도 두려움은 떨치고 며칠 동안을 그녀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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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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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가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찾아보았다. 2분짜리의 예고편만 보아도 영화가 짐작이 간다. 황량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 냉정할 정도의 결말. 책 이상으로 영화화해낸 것을 보고 감탄이 나왔다. 캐틀 건이라는 것은 책으로 읽을 때는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영화 예고편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온몸이 오싹하다. 역시 난 영상 세대이구나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코맥 맥카시 자신이 아닐까? 33년생인 그는 정말 노인이다. 베트남전, 걸프전, 911, 이라크전, 수많은 유명 인사들에 대한 공개 저격 사건들, 고등학생들의 총격전, 대학생들의 총격전, 시시때때로 터지는 크고 작은 테러, 범죄... 간혹 미국 범죄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도 끔찍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만 저 나라는 대체 어떤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총기 규제에 대한 정책이 지지부진하며 범죄는 날이 갈수록 극악해진다. (미국이 수사물이 발전한 이유가 범죄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란다.) 나라는 어지럽고, 젊은 시절 희망을 가졌을 그도 이제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모국을 바라보며 될 대로 되어버리라는 심정을 갖지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모스의 운명은, 시거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읽어나가다가 결국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이 결말 때문에 여기까지 왔던가.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과학수사가 발전한 이유가 미결된 사건, 잡지 못한 범인이 유독 많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처음부터 코맥 매카시가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10년만 젊었어도 이 소설은 이렇게 결말을 맺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미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이자 역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더 로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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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기욤 아레토스 그림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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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오히려 자국인 프랑스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를 끌어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판은 절판되고 개정판이 나왔단다. 생각보다 꽤 오래된 책이구나 하며 읽었는데도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구식이 아니다. 아마도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10년이 넘어서도 고루한 책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쯤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 읽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을 좇아가는데 급급했을 것 같은데 지식과 경험이 쌓인 지금은 여유 있게 이 백과사전의 ‘상대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항목에서는 과거에는 검열 때문에 정보가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대중에게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열이 사라진 요즘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범람하는 정보 중 일부만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진보나 도전은 나타날 수 없고 기성에 묻혀 버린다. 검열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던 상식(절대적)을 뒤집어서 그 이면(상대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뼈대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뼈대가 안쪽에 있으면 살은 수없이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통해 근육이 단단해지고 섬유의 저항력이 증가한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뼈대가 겉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에 쉽사리 다치지는 않는다. 대신 일단 외부 위험에 노출되면 피해는 치명적이다. 안쪽에 있는 살이 그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졌기 때문이다. <출중한 지력>이라는 갑각을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보이지만 일단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껍질을 뚫었을 때, 그 타격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아주 사소한 이견,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비록 모든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더라도 정신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격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독창적이면서도 많은 예민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광기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으며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특히 작가는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는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삶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말. 멋지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관점도 놀랍도록 새롭다. 이 말이 요즘이 아니라 10년도 더 전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기의 숨은 곳을 점점 알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관찰을 통해 단 몇 년 만에 모기의 변이가 일어났다고 추론하는 것이나 박테리아에 관한 이야기, 가장 평범한 것이 오히려 비범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렘수면의 경우, 방해받을 때마다 꿈의 내용은 전부 달라졌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며 아마도 방해받은 뇌가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 하는 것 같다는 연구내용도 재미있다. 멕시코 원주민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스페인 사람 구에레로의 이야기나 십자군 전쟁의 이면도 흥미 있었다. TV 프로인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처음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생후 8개월쯤이 최초로 사람이 겪는 불안이라는 것. 이방인에 대한 공포, 소중한 존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고독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은 다윈의 말처럼 좋은 것이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도.(좋고 나쁜 것의 기준도 애매할뿐더러 자연의 힘은 다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현상으로 파동을 설명하면서,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고정되지 않고 곧 섞여 버리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그 만남이 고착화될 수도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는 대목은 작가의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설명한 여러 개의 현실은 얼마 전에 읽은 ‘다시 한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호르몬과 페로몬에 대한 비교, 페로몬을 통해 개미는 인간과 다르게 동일한 감정을 똑같은 정도로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인간의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이성에서 나올 뿐 이라는 부분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늘 감탄시키는 그의 원천이 여기서 나오나보다. 잡식성으로 여러 정보를 얻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뒤집어보는 그의 창조적 습관. 군데군데 다소 황당하거나 개미에 대한 그의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애정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책 구절구절 마음에 드는 모든 구절을 옮기려면 거의 책의 절반을 써야 할 것 같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수피즘 철학에서 함께 있기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행위도 없이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음 쓰거나 떠벌릴 필요 없이 그저 함께 있음을 말없이 즐기는 것이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으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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