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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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닌데, 작가가 이야기하는 달리기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고 수필은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연수는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목청을 높이지 않고, 야단치지 않고, 억지로 위로를 짜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겪을 이야기를 말한다. 그게 위로가 된다. 한 때 그 또한 많이 불안해했고, 두려워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용기내 떨치고 꾸준히 계속해 와서 지금에 이르렀고, 그 과정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기에. 그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젊은 시절을 허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고,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 학교 선배나 막내 삼촌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받는 느낌이랄까.

 

 마라톤에서 승부보다 완주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다. 뛰면서 내 옆을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계절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다. 결승선에 들어설 때까지 고통스럽다는 것도, 그것을 알면서도 또 반복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다.

 

 이 책을 소장하고 시간 날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들쳐보고 싶다는 마음과, 딱 한 번의 울림으로 가슴에 새기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다만 이 시간은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에 행복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 일단 저질러 보라는 것, 그냥 아무 생각하지말고 끝까지 한 번 해보라는 것,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삶은 정말 겪은 만큼 행동한 만큼 나에게 온다는 것, 늘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이었지만 과연 이것이 옳을까, 하고 고민하던 나에게 김연수가 자신의 삶으로 증명시켜 준 것 같다. 지금 너는 잘 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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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disc)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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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남녀가 각자의 상처를 서로의 존재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러브스토리.

 

 그냥 완벽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은 부족하다. 세상이 미친놈, 미친년이라 부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 감정의 여과 없이 머리보다 말이 앞서는 팻과 티파니의 만남은 시작부터가 여태까지의 영화 속 사랑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폭력을 휘둘러 아내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자는 양극성장애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편이 사고로 죽은 젊은 미망인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회사의 전직원와 성관계를 가진 후 해고된 상태다. 팻은 친구의 처제인 티파니를 만나자마자 “남편이 어떻게 죽었죠?”라고 물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티파니는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 팻에게 “내가 싫어하는 풋볼 유니폼을 입었지만 불 끄고 하면 상관없어요”라며 원나잇을 제안한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게 욕설과 육두문자를 퍼붓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위로나 격려도 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들은 그 둘만이 아니다.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팻의 친구 대니는 말할 것도 없고, 티파니의 형부이자 팻의 친구인 로니는 회사와 가정, 양쪽에서 압박감을 느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로니의 아내이자 티파니의 언니 베로니카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만드는 데 강박적이다. 압권은 팻의 아버지다. 전재산을 풋볼 내기에 걸 정도로 스포츠 도박에 미쳐 있는 데다가, 탁자 위의 리모컨 각도를 맞추고, 늘 같은 손수건을 손에 쥐고, 아들 팻이 함께 경기를 봐야 응원하는 풋볼팀이 이긴다는 징크스 때문에 온 가족과 충돌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아무 문제 없는 상태가 과연 인간에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며, 언뜻 보았을 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온 세상이 미쳤다고 낙인찍은 사람들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는 아이러니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영화의 주제가 드러난다. 먹구름 속에 있는 태양이 구름 밖으로 살며시 비치는 모습, 이 구름만 지나가면 밝은 날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우리 인생의 흐리고 밝은 것은 그저 일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우리 주변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 내민 손을 맞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말이다. 세상이 내 아들을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아들을 감싸는 팻의 부모와, 서투르지만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가득한 팻의 형, 스스로도 큰 상처를 받았고 현재도 극복하려 몸부림치면서도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티파니,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팻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들.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결국 사람이라는 것. 자세히 살펴보면 내 주변의 실버라이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실버라이닝이 되어주라는 것. 참 감동적이고 이쁜 영화다.

 

 부록 DVD에서는 삭제된 장면이 약 30분 정도 나오는데 아까울 정도로 공들인 장면이 많았다. 제니퍼 로렌스는 솔직히 얼굴만 봐서는 왜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브래들리 쿠퍼도 기존의 잘생긴 바람둥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고. 로버트 드니로의 아버지 연기나 친구인 크리스 터커도 마찬가지. 영화 전체에서 단 한 군데도 힘이 과하게 들어가거나 힘이 살짝이라도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놀랍게도 영화 속의 집착하는 옆집 소년이 감독의 큰아들이라고. 배우지망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 영화가 남다르다고 말하는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마음 한 쪽이 찡했다. 유능한 감독이 개인적인 동기까지 가졌으니 명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이 영화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미국 정신의학회장의 인터뷰까지 보면서 영화 한 편, 소설 한 편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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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 - [할인행사]
류장하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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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봤으면 지루했겠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최민식의 "엄마, 나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이 대사 참 뜨거웠고,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에 충실한 모습이 감정의 과잉을 빼고 은은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10년 전 영화이다. 여기 출연한 배우들이 지금 전부 다 잘 되었는데도, 이 영화 찍을 당시의 상황에 자꾸 내가 끌려들어가는 생각이 들었는지 부디 잘 되었으면, 이들이 모두 다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참 한국적인 영화이다. 출연하는 배우들, 화면, 줄거리, 대사, 음악... 하나하나 절대 넘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최민식은 힘을 주는 연기 뿐만 아니라 힘을 빼는 연기 또한 최고다. 지금 나의 상황 때문일까... 도시가 아닌 강원도의 소박한 모습에 눈이 편안했고, 배우들의 대사와 음악을 들으며 귀가 편안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엔딩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사는 과정이 꼭 클라이막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살아가는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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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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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미 세 편의 심리 에세이를 낸 소설가이다. 나는 세 편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사람 풍경'을 읽고 추천서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라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정신분석이라는 것은 그 유명한 프로이트가 창시한 것으로 환자의 어린시적의 정신적 상처가 억압되어 생긴 무의식적 갈등으로 발생한 문제를 역동적으로 추구하여 무의식 체험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치료 단계에서 먼저 성공적인 치료과정을 위하여 참여하는 환자 및 치료자의 현실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이것을 치료적 동맹이라고 하고, 실질적인 진정한 변화를 수반하기까지 환자가 해석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것을 훈습과정이라고 한다.

 

저자의 네 번째 심리 에세이의 이 책은 심리 '훈습' 에세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만, 이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아득함, 어쩌면 그만큼의 반복과 거기에 수반하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리라.

 

카우치에 누워서 치료자와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완벽히 고립된 환경에서의 정통 정신분석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겠다. 분석적 정신치료라는 것은 정신분석 이론에 기초하되 정통 정신분석보다 유아적 갈등이나 무의식은 덜 다루면서 현재 갈등과 정신역동을 다룬다. 증상 완화가 치료 목표로 이것은 다시 표현형과 지지형으로 나뉘는데 정신분석→표현형→지지형으로 갈수록 보다 덜 격식을 차리고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참여하는 독서모임과 그 모임 일원들의 이야기가 익명으로 나온다. 이 책은 정통과는 좀 거리가 많이 멀고 분석적 정신치료, 그 중에서도 지지형에 많이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

 

지지형 정신치료는 분석가와 환자관계가 완벽한 중립을 지켜야 할 것이 요구되지 않으며, 치료자가 환자를 안심을 시키고 격려하며 긴장이 풀리도록 지도하여 강하고 긍정적인 치료자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저자는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견해지만, 지나치게 냉정하게 느껴진다. 저자 또한 모임의 한 일원일 뿐이며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가 평등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또 이해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 모임은 저자의 존재가 절대적이며 모임의 경영 자체가 상당부분 저자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저자와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는 절대로 평등할 수 없고, 따라서 저자는 일정정도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포지션에서 좀 더 다른 입장을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냉담함 때문에 혹은 거리두기 때문에 저자에게 상처를 받았고, 모임을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오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등의 멤버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칭찬과 감정 이입을 억제한 저자의 책임이 일정부분 있다고 생각된다.

 

어쨌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니까, 치료이든 아니면 친교이든, 바탕에 애정과 관심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며, 일단 상대의 말에 긍정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순서상 먼저가 되어야 하고 또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저자가 '정신분석은 ~야 해, 이 사람은 지금~하니까 ~야 해'라고 지나치게 틀 안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나도 잘 모르는 게 많은 분야라서 정확히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었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살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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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폴 퀸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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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협을 해야 결혼 생활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자주 타협을 하면 결혼 생활이 즐거워진다. 한쪽이 져도 심통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부부싸움에서는 지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다투면서 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미혼이거나 이혼한 사람이거나 곧 이혼당할 사람일 것이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가끔 져주자. 비기는 것조차 포기하자.

 

 나는 게임을 안다. 규칙도 안다. 큰 물고기와 겨룰 때는 매듭을 제대로 매야 한다는 것도 안다. 빈손은 몸에서 떼어야 풀려나가는 플라이라인이 손을 둘둘 말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기념비적인 물고기를 잡으려면, 기술과 지식을 모아 도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흥분하면 지식과 기술이 싹 없어질 수 있는 것은 낚시꾼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 늘 큰 물고기만 잡는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큰 물고기를 잃어서 즐겁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반가웠다. 대어를 놓쳐야 한다면 열정 속에서 놓치자.

 "4.5킬로그램쯤. 어쩌면 5킬로그램쯤요. 그래요, 큰 물고기였어요. 물고기 씨한테 배운 게 있습니까?"

 사이먼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큰 걸 배웠소."

 나는 다시는 5킬로그램쯤 되는 물고기를 보지 못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게 가르쳐주었다. 좋은 관계는 어떤 일을 놓고 한 번의 말다툼으로 깨지는 게 아니라 점점 작은 균열이 벌어져서 어느 날 가깝다고 여기는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보면 서로 멀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인간관계의 '대륙이동설'이라고 부르는데 제이가 그걸 일깨워주었다.

 인간관계에도 단층선이 생긴다. 떄로 두 사람은 아주 잘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지층에 서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언젠가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균열선이 드러나게 된다. 나중에 다시 땅이 흔들리면, 금이 쭉 간다. 해결책이 없으면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점점 멀어진다. 한참 후, 양쪽에 대륙의 분리가 점점 선명해지고, 아주 대단한 일이 벌어지거나 심리상담가를 불러들이지 않으면 관계는 틀어지고 만다.

 

 우리 사이는 그대로 끝났다. 영원히. 심한 처사란 걸 알지만, 일단 누가 어떤 선을 넘으면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매달려도 소용없다. 사실 난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상대가 그 선을 넘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이런 단점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선을 넘고도 그런 줄 모르는 사람들과 낚시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깝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아버렸다. 인생은 너무 짧은 것을.

 

 행위든 말이든 어떤 제안, 선물, 선심은 가치와 가격표를 가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가격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가격표를 무시하는 위험을 저지른다.

 나 역시 선심, 특히 내가 베푸는 선심을 애매하게나마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뭔가를 '공짜로' 줄 때 내가 바라는 건 뭘까? 진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때때로 주는 기분이 좋고, 그러면 내가 멋진 사람이 되니까 받는 것보다 선심을 베풀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 만족을 위해서 그런다. 훨씬 의심스럽다. 완전한 익명이 아니라면, 선심은 타인에게 의무감을 부과한다. 미묘하게든 은근하게든 보답을 기대한다.

 돈을 빚지면 계산도 하고 장부도 있고 고지서도 있고, 관련법도 있어서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문제가 없다. 정신적인 빚에는 육감과 본능, 머릿속에 있는 장부밖에 없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머릿속에 기록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려면 이 작은 장부를 무시하면 안 된다.

 장부가 저녁 식사 빚이나 낚시 여행, 어떤 종류의 정신적, 사교적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됐다고 하면, 금방 빚을 갚도록 하자. 시간을 끌지 말자. 복리 이자가 더해지니까.

 머릿속의 장부가 빌려준 것을 받으라고 하면 얼른 받자. 시간을 끌지 말자. 복리 이자가 더해지니까.

 우리가 때맞춰 정신적인 빚을 갚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신세를 갚도록 격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 상호 관계의 법칙을 깨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만큼 중요한 이 법칙은 인간이 상호 관계를 맺게 하고, 평등하게 나누게 해준다. 나눔은 품위 있게 주는 것뿐만 아니라 품위 있게 받는 것도 의미한다. 친구가 내게 바가지를 씌우려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우리 사이의 빚과 의무를 청산해야 되는 것을 너무 오래 모른 체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평등한 관계를 지향했더라면, 사정은 달라져 있을 텐데. 

 그날 용서할 수 없었기에 그 강에서 친구를 잃고 몇 년 지난 후, 나는 찾던 교훈을 얻었다. 그것을 셰익스피어의 글귀에서 발견했다. 그는 "지나친 선심은 가슴을 돌로 만든다"라고 썼다.

 

 앤은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두 가지를 믿었다. 아무리 비싸거나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이 가슴으로 소망하는 것을 거부당하면 안 된다는 것.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것.

 그대를 사랑해서 그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값비싼 장난감을 갖게 해주고, 물고기를 찾아서 온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열정을 후원하는 여인이라면 진정으로 특별하고 멋진 인간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충만하고 즐거운 생활이다. '즐거움'을 강조하며 산다. 찰리 채플린의 말마따나 "웃음이 없는 하루는 하루를 낭비"한 것이다. 나는 하루에 약간의 독서와 약간의 배움, 약간의 돈벌이, 약간의 글쓰기, 약간의 사랑, 약간의 나눔, 그리고 훌륭한 식사나 낚시를 덧붙인다. 그런 것이 없는 하루는 하루를 낭비한 것이다.

 군대는 내게 효율성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배워야 할 것은 남이 가르쳐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독학하라. 늦게 시작하더라도 확실히 끝내라.

 요즘은 게임의 선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남이 방법을 가르쳐줄 때까지, 혹은 남이 줄의 맨 앞으로 이끌어줄 때까지 기다린다. 또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린다. 그런 식으로는 잘되지 않는다. 인생은 보호 장치가 된 연습장이 아니다.

 어떤 게임에서든 대단한 천재여야 선두가 되느 것은 아니다. 매일 참석하고, 제수와의 딸기 따기 경쟁은 피하고, 옆에 있는 사람보다 열심히 똑똑하게 임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먹고살기 위해 누군가를 위해 일해도 좋지만, 직장에서 집에 가져오는 게 돈 뿐이라면 그것은 본인의 잘못이다.

 물론 나는 일을 망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이 일 저 일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얼른 실수한다. 일을 망치려면 빨리 망치는 게 낫지 않은가? 여기서 1초를 아끼고 저기서 1분을 되찾고, 저 멀리서 1시간을 구하면 곧 1주 내내 낚시 여행을 가게 된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심리학자로서 힘들이지 않고 남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모든 선입견, 전형적인 타입, 가정은 옆으로 내려놓고, 개인적인 정보를 알아내서 한 사람이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이해를 끌어내야 한다. 이 임무에서 실패하면, 환자뿐만 아니라 자신과 직업에 대해서도 실패하게 된다.

 

 욕망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볼 때 느끼는 것이고, 그녀가 그에게도 같은 느낌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은 늦게 올 수도 있다.

 

 나이 드는 것의 좋은 점은, 젊을 때처럼 사물에 대해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하며 고기 떼가 수면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는 걸 보느라 차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거나, 송어를 잡으려고 너무 깊은 물에 들어가는 따위으 멍청한 짓을 하다가 얼떨결에 죽는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이 드는 것의 나쁜 점은, 젊을 때만큼 사물에 대해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하며 고기 떼가 수면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는 걸 보느라 차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거나, 송어를 잡으려고 너무 깊은 물에 들어가는 따위의 멍청한 짓을 하다가 얼떨결에 죽는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루라기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존재를 믿지 않게 되면 낚시를 중단할 것이고, 낚시를 중단하면 호루라기 물고기를 결코 잡지 못할 테니까."

 질문: 인생은 낚시를 하며 보내는 나날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기다림의 끝에 오는 낚시가 인생일까?

 

 인생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런 도움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만 확인하면, 빡빡한 세상의 끝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어떤 때, 어떤 곳에서, 이 강이나 저 호수, 인생 저 앞에서 우리는 도움을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여성들은 배울 필요도 없는 교훈이고, 남성들은 결코 배우지 못하는 교훈이다. 간단한 수술과 약간의 간호만 받으면 될 노인이, 직업인이든 자원 봉사자든 타인의 친절에 의존하기보다 권총 자살을 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불명예보다 죽음'을 택할 뿐 아니라 '의존보다 죽음'을 택해야 한다고 믿는 남성이 너무 많다.

 낚시 가이드, 랍비, 신부, 코치, 선생, 목사, 심리치료사는 모두 아주 비슷한 일을 한다. 특별한 지식을 갖춰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고, 상대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그들에게 남을 돕는 일은 신념이며 명예로운 의무가 된다. 낚시 가이드가 어렵고 도전적인 물살 속에서 물고기를 찾는 법을 지도하는 반면, 종교 지도자나 선생님들은 어렵고 도전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평온과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지도해 준다.

 

 린든 존슨(미국 36대 대통령-옮긴이)은 사람과 사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줄 아는 거장 정치가였다. 그는 국회의원에 처음 출마해서 선거 운동을 할 때, 차의 연료통을 반쯤 비워놓았다. 서부 텍사스의 인구가 적은 시골의 작은 주유소마다 들러서 몇 달러어치의 기름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선거 인구가 거의 없고, 마을도 뚝뚝 떨어져 있었다. 존슨은 연료를 넣으려고 자주 주유소에 들러서 사람들과 사귀어 정치 선전도 하고, 선의도 베풀었다.

 우리 낚시꾼들도 인적 드문 곳에서 선의를 베풀어야 한다.

 존슨 대통령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먹을거리와 연료, 낚시도구를 싸고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작은 마을이 낚시꾼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해줘야 한다. 집에서 모든 걸 챙겨서 몇 푼 아끼는 대신, 외진 곳에서 좋은 관계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낚시꾼뿐만 아니라 물고기를 위해서도 그게 좋다. 강과 고장과 물고기와 서식지가 개발의 위험에 처할 때, 지역민들은 그곳을 보존하는 데 투표할 테니까.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지 않아도 고아가 될 수 있다.......

 '죽음'은 돌릴 수도 막을 수도 없다. 하지만 죽음 외에 자녀를 떠나는 모든 행위는 의도적인 버림이다. 자녀로서는 '버림'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북미 대륙의 작은 호수에 낚싯배를 띄우고 홀로 누워 있자니, 문득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지는 해가 흰 구름을 분홍색, 노란색, 호박색, 진홍색,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역사 속에서, 지구라는 혹성의 역사 속에서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이런 빛과 색감과 모양의 변화가 시간의 역사 속에서 딱 한 번만 오는 것 같았다.

 

 달라이라마는 삶의 여정을 가시나무 수풀을 지나는 여정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현명한 사람을 따라서 구불구불 위험한 가시나무 숲길을 지나면 더 안전하고 즐거워지는 여정이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안내해서 가시나무 숲을 지나려면, 성직자나 승려, 심리치료사, 의사, 코치나 친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아픔과 분노와 실망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가 되어야 한다.

 가이드가 되려면 먼저 가시나무 숲길을 혼자 여행하면서 연구하고 배우고,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선생들은 이런 권리를 획득하려고 대학에 간다. 사제들은 이런 영광을 누리려고 평생을 연구한다. 의사들은 치유의 기술을 익히는 데 헌신하고, 낚시 가이드들은 강에 대해 배운다. 우리들 각자는 초보자, 순례자, 애송이에게 가이드가 되어줄 수있다.

 남에게 낚시를 가르치려면 안내자, 코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초보자에게 낚시라는 가시덤불 숲을 지나는 길을 가르치려면,모범이 되어 안내하고 그들이 안전한 길을 가게 해야 한다. 날카로운 가시를 피하는 방법도 알려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놓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낚시 이력은 연구와 경험, 지식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가시덤불 숲길에 관한 전문가가 된다. 우리는 낯선 길들을 탐험하고 살에 박힌 가시를 빼내기도 한다. 상처야말로 가장 잘 가르쳐준다. 힘들게 배웠든, 힘들게 배운 선배에게서 일부 배웠든 우리는 배우게 된다. 낚시에 대한 지식은 의학 지식처럼 후대에 전수된다.

 달라이라마는 낚시에서든 인생에서든 가시덤불을 헤치고 돌아오면 가죽으로 된 보호 장구 한 벌을 상으로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이라는 풍파에 바랜다. 그것을 다리에 차면 안전하고 수월하게 가시덤불 숲을 지날 수 있다. 가시에 찔리는 아픔 없이 통과한다.

 보호 장구는 연습과 배움, 지식으로 만들어진다. 자기만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입기도 한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남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것은, 가죽 장비를 입고 순례자들에게 가시나무 숲길을 알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길을 잘 알고, 그들은 모른다. 그들을 다른 곳에 데려가는 것은 근사한 선물이다.

 초보자에게 길을 안내하기로 했다면 가장 좋은 날씨에 가장 좋은 물에 가장 좋은 지세로 안내하라.

 그에게 정확히 어디서 큰 물고기가 헤엄치는지 알려주라.

 그가 먼저 캐스팅하게 하라.

 격려하고, 상냥하게 가르치고, 매듭을 만들어주고, 물고기를 받아주어라. 가장 근사한 상은 초보자가 아닌 그대가 받게 될 테니까. 

 

 오후에 어떤 죽음을 목격하자, 내 마음속에서 공포감이 밀려든다.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일생을 보내는 이 우주에 더 근사한 섭리 같은 것은 없는 게 아닐까. 목적이나 연민 같은 것은 없는데,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들의 상상에 불과할까.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만들어서 의미를 붙이고 '영적'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대안이란 게 워낙 불쾌하기 떄문에 그럴듯하게 꾸몄겠지. A. E. 하우스먼이 적은 것처럼 '무정한 자연, 위트도 없는 자연은 알지도 못하며 상관하지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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