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disc)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완벽하지 않은 남녀가 각자의 상처를 서로의 존재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러브스토리.

 

 그냥 완벽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은 부족하다. 세상이 미친놈, 미친년이라 부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 감정의 여과 없이 머리보다 말이 앞서는 팻과 티파니의 만남은 시작부터가 여태까지의 영화 속 사랑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폭력을 휘둘러 아내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자는 양극성장애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편이 사고로 죽은 젊은 미망인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회사의 전직원와 성관계를 가진 후 해고된 상태다. 팻은 친구의 처제인 티파니를 만나자마자 “남편이 어떻게 죽었죠?”라고 물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티파니는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 팻에게 “내가 싫어하는 풋볼 유니폼을 입었지만 불 끄고 하면 상관없어요”라며 원나잇을 제안한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게 욕설과 육두문자를 퍼붓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위로나 격려도 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들은 그 둘만이 아니다.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팻의 친구 대니는 말할 것도 없고, 티파니의 형부이자 팻의 친구인 로니는 회사와 가정, 양쪽에서 압박감을 느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로니의 아내이자 티파니의 언니 베로니카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만드는 데 강박적이다. 압권은 팻의 아버지다. 전재산을 풋볼 내기에 걸 정도로 스포츠 도박에 미쳐 있는 데다가, 탁자 위의 리모컨 각도를 맞추고, 늘 같은 손수건을 손에 쥐고, 아들 팻이 함께 경기를 봐야 응원하는 풋볼팀이 이긴다는 징크스 때문에 온 가족과 충돌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아무 문제 없는 상태가 과연 인간에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며, 언뜻 보았을 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온 세상이 미쳤다고 낙인찍은 사람들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는 아이러니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영화의 주제가 드러난다. 먹구름 속에 있는 태양이 구름 밖으로 살며시 비치는 모습, 이 구름만 지나가면 밝은 날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우리 인생의 흐리고 밝은 것은 그저 일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우리 주변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 내민 손을 맞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말이다. 세상이 내 아들을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아들을 감싸는 팻의 부모와, 서투르지만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가득한 팻의 형, 스스로도 큰 상처를 받았고 현재도 극복하려 몸부림치면서도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티파니,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팻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들.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결국 사람이라는 것. 자세히 살펴보면 내 주변의 실버라이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실버라이닝이 되어주라는 것. 참 감동적이고 이쁜 영화다.

 

 부록 DVD에서는 삭제된 장면이 약 30분 정도 나오는데 아까울 정도로 공들인 장면이 많았다. 제니퍼 로렌스는 솔직히 얼굴만 봐서는 왜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브래들리 쿠퍼도 기존의 잘생긴 바람둥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고. 로버트 드니로의 아버지 연기나 친구인 크리스 터커도 마찬가지. 영화 전체에서 단 한 군데도 힘이 과하게 들어가거나 힘이 살짝이라도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놀랍게도 영화 속의 집착하는 옆집 소년이 감독의 큰아들이라고. 배우지망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 영화가 남다르다고 말하는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마음 한 쪽이 찡했다. 유능한 감독이 개인적인 동기까지 가졌으니 명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이 영화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미국 정신의학회장의 인터뷰까지 보면서 영화 한 편, 소설 한 편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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