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줄리안 무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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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안 것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였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만일 고등학교 시절 대학입시를 위해 수많은 시들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커서 자발적으로 시를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짧지 않았던 시 목마와 숙녀는,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제대로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막연하게 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슬픈 느낌이 왠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국적인 이름이 발음할 때마다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떤 책을 남겼는지 대강은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의 버지니아 울프, 1951년 미국 LA의 로라 브라운, 2001년 미국 뉴욕의 클래리사 본, 이렇게 서로 다른 시공간의 세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세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는 자살, 불치병 또는 난치병, 동성애 등의 소재들 때문인지, 결국 세 여자는 마치 동일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삶 속에서 질식하는 듯한 여자들의 인생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주제가 풍성하게 와 닿는다고 할까.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20년대의 여류 작가나 50년대의 가정 주부 뿐 아니라 2000년대의 출판 기획자도 느낀다는 것이 참 새롭다. 단순히 시대가 바뀌고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 여성들 주변에 있는 남성들이 전부 여성을 위하며, 일정 정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거나 올인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성들의 파트너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니 말이다. 역시 결혼 생활을 해 봐야만 이 영화도, 원작 소설도, 버지니아 울프의 서적과 그녀의 인생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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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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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본 기사 중 '지대넓얕'이 있었다.

지대넓얕.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줄임말로 채사장이라는 분이 팟캐스트로 먼저 시작한 아이템이었고, 이어서 책으로도 출판된 것에 대한 기사였다. 팟캐스트라는 것을 이용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화제가 되는 팟캐스트는 나중에 출간이 되는 경우 활자의 형태로만 접했기 때문에 이 기사는 여러 모로 나에게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넓고 얕은'이라는 말.

 

이 세상이 얼마나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는가. 나 또한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쉽지 않겠다는 절망감, 그러면서도 특정 분야에서는 무조건 전문가만 찾고 전문가의 권위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는 마음, 등등으로 가득차 있는 요즘이었는데 대놓고 '좁지는 않지만, 깊지도 않은'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과정은 최대한 넓은 분야에 대해 얕게나마 알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전문가를 알아볼 만한 얕은 지식, 그게 아닐까.

물론 '지대넓얕'을 읽어보지도 않고 내 맘대로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이 아마도 과학 분야에서는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싶다. 책이 꽤 두꺼운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것의'라는 당당하다 못해 거만해 보이는 제목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한글로 옮기면서 빠져버린 short의 의미를 되살린다면, 그야말로 '넓고 얕은 지식'을 다룬 이야기인 것이다. 과학적 분야에 한정된 '지대넓얕'인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글쓴이는 양성자며 단백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쿼크, 준성도 생소한 단어였고 협곡의 바위 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아내는 방법에도 무지했다. 정말 아는 것이 거의 없던 작가가 직접 전문가를 찾아내며 끈질기게 질문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3년을 한 끝에 나온 책이다. 빌 브라이슨은 이미 유명한 작가이다. 그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인 그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과학 교과서를 끝으로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다가, 전혀 생소한 이 분야에서 제너럴리스트로 도달한 것이다.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서 통달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추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 시절에 접한 책, 음악, 영화, 경험 등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 그리고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등등이다.

 

당연하지만 이 책은 과학의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 서적이 아니다. 과학과는 젼혀 무관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어른들, 혹은 아직 뇌가 말랑말랑한, 그래서 아직 어느 쪽에 자신이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읽으면서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반가움이 있었고,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연대기적으로 이해하면서 새롭게 생기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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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꽃피다 - 대한민국 여성들의 멘토 남인숙의 서른 살 응원가
남인숙 지음 / 이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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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에게 당당하게 속물이 되어라! 고 외쳤던 남인숙은 그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중국에까지 번역되어 역시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아마도 그 책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동안 체면 때문에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까놓고 이야기하면 속물이라고 비판받았던 그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는 것이고, 실천 사항들은 구체적이며 어렵지 않았고, 읽기 쉬웠으며 독자들을 20대 여성으로 제한함으로써, 한정된 독자층에서 오히려 밀도 높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비법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0대를 위한 책이나 30대를 위한 책이나, 작가의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여다 보면, 작가의 20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고, 소위 '글쟁이'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늘 걱정하며 불안해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 시기를 겪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의 삶에서 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자신의 힘들었던 20대를 돌이키며 글을 썼기에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74년생인 이 작가의 출세작인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는 2004년에 세상에 나왔다. 작가가 태어난지 30년만의 일이다. 그 이후로 그녀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책을 여러 권 펴냈고, 그 중 일부는 중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내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중간중간 강연 활동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 우리나이로 마흔 두 살인 그녀. 즉 그녀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꽃피게 된 것은 그녀 인생 중 삽십대의 일인 것이다. 그녀의 책 여기 저기에서 얼핏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그녀는 꽤 결혼을 빨리 한 편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녀의 나이 서른 즈음에는 결혼, 출산이 끝나 있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육아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뭔가 미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힘든 20대를 보내고 나서 쓴 20대 여성을 위한 글에서 무릎을 치고, 밑줄을 그을 정도였다면, 상대적으로 갖춰진 30대를 보낸 후 쓴 30대 여성을 위한 글에서는 기발함이나 재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이 20대 여성을 위한 그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읽으면서 으쌰으쌰하는 힘이 나고, 뚜렷이는 모르겠지만 왠지 격려가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구체적인 방향성을 잘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12년으로 우리나이로 그녀 나이가 서른 아홉일 때이다. 책 서문에서 그녀는 삼십대 여자의 삶을 위한 책을 써달라고 수차례 부탁받았으나 자신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삼십대의 모델을 작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해 엄두를 못내었다고 적고 있다. 이 말, 삼십대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20대와는 다르게 내 인생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드는 압박감.

 

심하게 오바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 압박감을 헤쳐 나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책의 내용이었다. 작가 나이 서른에, 작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고, 자기 이름으로 된 책도 여러 권 냈다. 그 유명한 20대 여성 시리즈 말고도, 이미 20대에 동화작가로서 여러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나는 책 전문가도 아니고 그 당시 아이를 키워본 적도, 조카도 없어서 그녀의 책들이 얼마나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책을 사 줄 수 있는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20대에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왠만한 사람들은 하기 힘든 성취가 아닐까 싶다. 비록 그 책이 세상에 나온 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는지 안 읽혔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 것은 절대로 그녀의 성취를 함부로 재단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책에서도 나왔듯이,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목표를 정한 후 그녀는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의지와 재능, 노력으로 지금의 그녀의 자리까지 온 것은 분명하지만, 서른에 대한 책을 쓰기에는 그녀는 적절한 작가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최소한 결혼과 출산은 삼십대 후반에 했어야 했고, 본인의 커리어의 방향에 대해서도 서른 이전까지는 정하지 못해서 방황했던 사람이 써야 더 절절하지 않을까 싶다.

 

20대 여성을 위한 그 책들은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한참 떠나지 않는 내용들이 많았고, 한동안 그 내용들에 사로잡혀 멍했던 적도 있었고, 힘든 시기마다 각오를 다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정말 힘든 시기,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맞는 건지 불안할 때, 어느 정도의 위안과 길잡이 정도의 역할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 두시간 정도만 공부해도 10년 뒤면 박사 학위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민자이자 늦은 나이에 학업을 마치고 공직에 진출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일화도 등장한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나, 해서 좌절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것밖에 안 되나, 절망하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하던 때 이 구절을 읽으면 그래서 어쩌라고? 반문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바닥에 있는 시기를 지나면, 그래,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비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별 거 아닐지라도 미래에는 다를 거야, 하는 기분이 들 때, 이런 구절들을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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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언 레시피
사나다 아츠시 감독, 아오이 유우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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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북쪽, 호노카아 마을.

여기에서 달무지개를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자친구와 일부러 이 마을을 찾아왔다가 헤어지고,

반년 뒤 다시 이 마을을 찾아 마을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는 레오가 주인공.

 

독특한 매력을 지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가 예쁜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이런 류의 일본 영화가 정말 많은 것 같다.

이국적인 배경,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음식,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되는 과정.

당장은 카모메 식당과 흡사하고,

그 외에도 해피해피브레드, 남극의 쉐프, 달팽이 식당, 양과자점 코안도르 등등이 있겠다.

 

영화 아니더라도 만화에서 인기를 끌어 드라마로도 제작된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같은 것들도 있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세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 나라는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끝을 보는 나라라고나 할까. 아는 게 워낙 부족하여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같은 섬나라인 영국과 비교해보면 유일하게 섬나라의 특징을 따르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 배타적인 나라이지만, 음식에 있어서는 어떤 나라의 어떤 요리이든 받아들이고 또 자국화 시키면서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나라인 것 같다.

 

호불호가 명확할 것 같은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보고, '이제 이런 영화 지겨워' '뭐야, 별 내용도 없네' 라며 시큰둥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나 자신을 레오에 대입한다면,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 청춘이 즐거울 일 하나도 없던 내가 살고 있던 그 곳을 떠나, 여기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면, 그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커다란 선물이자, 위안이고, 격려가 될 것이다. 만약에 나의 지질한 청춘에 이런 일이 똑같이 생긴다면, 하고 생각하니 영화가 참 예뻐 보였다. 그리고 영화를 계속 보다 보면, 마치 내가 레오처럼 하와이에서 생활하며 달콤한 시간을 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꼭 떠나야 할 필요가 매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때, 이 영화는 떠나지 않고도 주는 영화다.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최근 이런 저런 일들에 지쳐 위로받고 싶은 사람,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 현재 의욕도 앞으로의 계획도 없는 사람, 조만간 하와이 여행 계획 중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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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일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ㅣ 인생학교 3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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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책 앞표지에 있던 카뮈의 이 말이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삶이 부패할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순간순간 숨 쉬기 힘들 때는 많다. 내 노동이 매번 영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간혹 가다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그런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다. 질식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간혹 호흡 곤란을 일으킨 적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 처한 상황도 제각기 다르기에, 이 책을 누군가는 칭찬하고 누군가는 비판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 편보다 더 명확하였고, 역시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보다는 희망적이었기에 나는 이 책이 참 좋았다.

 

돈과 의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언젠가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지금의 일을 접고 돈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는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작가의 말에 조금 놀랐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만 고민하고 힘들어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개념들이 나온다. 직업과 자아를 최대한 일치시켜 일하는 삶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들이다.

 

의미, 몰입, 자유. 일에서 실제로 기대하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

high achiever vs wide achiever.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개념들이었는데 이 책에서 한 번 더 확인하니 분명해진다.

 

이 단계를 지나면, 작가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단계에 들어간다.

만약, 직업을 바꾼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떻게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이른바 천직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작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서라고 설명한다. 물론 직업이라는 것이, 마음 먹는다고 하고 싶다고 다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현대 사회는 이전의 계급 사회와 비교하면 본인의 능력과 적성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이 있으며, 직업의 가짓수도 현저하게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지를 제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최적화된 선택을 하기 위해 불안과 시간낭비를 감수하는 것보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만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서 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기에, 성취감을 주는 직업의 핵심요소를 숙고해서 선택의 폭을 좁히고, 그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에서 추구하는 의미이며, 동기부여의 원천은 이 책에서 말했듯이 돈, 지위, 열정, 재능, 기여 정도일 것이다.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사회적 지위는 어느 위치인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나의 열정과 재능에 부합하는지.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직업은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기에, 이 중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작가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돈은 최우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다고 말한다. 사회적 지위도 비슷한 설명을 통해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작가의 생각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열정이 세상의 필요와 교차하는 지점을 찾으라는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제너럴리스트와 연속 스페셜리스트라는 개념을 통해 두루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취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과정을 통해 선택의 폭을 좁혔다면, 이제는 행동할 차례인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기 위해 행동부터 하고 나중에 고민할 것을 권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직업을 그만두지 않은 상태에서 잠재적 자아가 무엇인지 시험해 보는 것이다. 견습, 자원봉사, 강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분야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여기에서 몰입, 의미, 자유의 개념이 등장한다. 천직의 요건이란 몰입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의미를 얻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유라는 것은 자영업자의 경우 순도 100%로 누릴 수 있겠지만, 직장인에 비하여 그만큼 책임이 커질 수 밖에 없으며, 대기업의 경우 제한된 자유 대신에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쯤 되어서 작가가 예로 든 인물이 있다.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대시인이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어느 보험회사에 취직해 부사장까지 승진한다. 절대 워커홀릭이 아니었으며, 매일 저녁 퇴근한 뒤에는 펜을 들었다. 두 가지 삶을 완전히 분리했던 것이다. 그는 비록 돈을 벌지는 못해도 시를 쓰는 일이 자신의 '진짜 직업'이라고 여겼으나, 전업작가가 되어서 자신의 기술을 상업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퓰리처상 수상 후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제안받지만, 거절하고 계속 보험회사에 다녔다. 직장생활을 인생의 중요 프로젝트로 삼는 대신, 더 큰 꿈을 추구할수 있게 해주는 경제적 안전망으로 활용한 것이다.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육아에 대한 걱정 또한 작가는 언급한다. 일에 집중하는 단계, 다음에는 육아에 헌신하는 단계, 다시 일로 돌아가는 단계. 즉,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지 말고 긴 시간동안 하나씩 잡으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며, 더 큰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작가는 전업으로 아이를 키우던 부모 중 육아라는 새로운 영역을 접하면서 유아용 식품이나 기구 등의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을 예로 들며 긍정적인 희망을 제시한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제시한 예는 퀴리 부인.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좇았으며 그녀의 연구 결과는 세상이 진보하는 데 기여했다. 평생을 소박하게 살았고 오로지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경영한 것이다. "누구한테나 인생은 쉽지 않은 법이다. 끈기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어떤 일엔가 재능이 있다고 믿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든 그것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녀다운 말이다. 처음부터 퀴리 부인의 목표가 방사능 물질 연구는 아니었으며, 쉬지 않고 과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서서히 키워나간 목표이다. 여기서 작가는 책 전체의 결론을 내린다. 천직을 키워나가려면, 의미와 몰입, 자유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헌신하다 보면, 목표는 점점 확실해지고 천직을 찾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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