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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본 기사 중 '지대넓얕'이 있었다.
지대넓얕.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줄임말로 채사장이라는 분이 팟캐스트로 먼저 시작한 아이템이었고, 이어서 책으로도 출판된 것에 대한 기사였다. 팟캐스트라는 것을 이용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화제가 되는 팟캐스트는 나중에 출간이 되는 경우 활자의 형태로만 접했기 때문에 이 기사는 여러 모로 나에게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넓고 얕은'이라는 말.
이 세상이 얼마나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는가. 나 또한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쉽지 않겠다는 절망감, 그러면서도 특정 분야에서는 무조건 전문가만 찾고 전문가의 권위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는 마음, 등등으로 가득차 있는 요즘이었는데 대놓고 '좁지는 않지만, 깊지도 않은'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과정은 최대한 넓은 분야에 대해 얕게나마 알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전문가를 알아볼 만한 얕은 지식, 그게 아닐까.
물론 '지대넓얕'을 읽어보지도 않고 내 맘대로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이 아마도 과학 분야에서는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싶다. 책이 꽤 두꺼운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것의'라는 당당하다 못해 거만해 보이는 제목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한글로 옮기면서 빠져버린 short의 의미를 되살린다면, 그야말로 '넓고 얕은 지식'을 다룬 이야기인 것이다. 과학적 분야에 한정된 '지대넓얕'인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글쓴이는 양성자며 단백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쿼크, 준성도 생소한 단어였고 협곡의 바위 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아내는 방법에도 무지했다. 정말 아는 것이 거의 없던 작가가 직접 전문가를 찾아내며 끈질기게 질문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3년을 한 끝에 나온 책이다. 빌 브라이슨은 이미 유명한 작가이다. 그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인 그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과학 교과서를 끝으로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다가, 전혀 생소한 이 분야에서 제너럴리스트로 도달한 것이다.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서 통달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추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 시절에 접한 책, 음악, 영화, 경험 등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 그리고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등등이다.
당연하지만 이 책은 과학의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 서적이 아니다. 과학과는 젼혀 무관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어른들, 혹은 아직 뇌가 말랑말랑한, 그래서 아직 어느 쪽에 자신이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읽으면서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반가움이 있었고,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연대기적으로 이해하면서 새롭게 생기는 즐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