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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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려 있는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레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삽질'이었다.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데, 알고 보니 파야 할 땅은 그 땅이 아니었다거나, 애초에 땅을 팔 필요조차도 없었다거나, 혹은 아무리 파려고 노력해도 삽만 허공에서 버둥댈 뿐 아무 성과도 없거나.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악독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아니 오히려 평범하다기보다는 조금 더 착하고 순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면서 의도치 않게 실수하고, 몰랐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며,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사람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라 한 때 분명히 그랬던 적이 있었고, 요즘엔 아주 조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또 아니라, 읽다 보면 특정할 수 없는 모두에게, 혹은 내 옆의 누군가에게 연민을 품게 되는, 그런 소설들.

 

 

행정동
 -만지긴 누가 뭘 만졌다고 그래!

-아까 분명......

오재우는 말끝을 흐렸다.

-밀친 거야, 밀친 거라구! 아까 다 봤다며!

-그러니까 그때 분명......

오재우는 그때 잠깐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너, 내가 그렇게 일을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계속 이러는 거야? 응?

-아니, 난 아까 정말 다 봐서......

-남자 새끼가 치사하게 같은 조 사람 흠이나 잡으려고 들고......

여자는 그렇게 말한 후,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오재우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무언가 갑자기 그의 몸에서 쑤욱, 빠져나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재우는 다시 뛰다시피 여자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여자의 어깨를 잡앗다.

-이 개새끼야!

여자가 메고 있던 가방으로 오재우를 내리쳤다.

-싫다잖아! 내가 싫다고! 내가 아니라잖아, 이 개새끼야!

여자는 제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뺵, 소리를 질렀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어쨌든 그 사건 조사하면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구속할 수 있었지. 모양새가 좋잖아. 불순좌경세력들이 폭력까지 휘둘렀으니까, 우리가 예상한 그림보다 훨씬 좋은 그림이 나온 거야. 문제는...... 네 삼촌이었는데, 분명 모임엔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까 기소를 하는 게 마땅한데, 그러기엔 내가 좀 미안한 거야. 그래서 내가 우리 반장한테 사실 저 친군 빨대가 맞다고, 내가 활동비로 따로 포섭한 친구라고 말해 거지. 그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었던 게, 그 프라이드를 살 떄 내가 네 고모 명의로 넣어둔 돈 중에서 30만원이 빠져나갔거든. 물론 네 고모는 그떄 잠깐 빌려 쓴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이야......

-삼촌도, 삼촌도 그걸 알게 되었나요?

나는 술잔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럼, 잘 알지. 네 삼촌 조사 끝나고 나갈 떄 내가 다 말해줬으니까. 그떄 30만원이면 꽤 큰 돈이었거든.

나는 그제야 프라이드가 후진되지 않는 이유를, 그 수수께끼를 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것은 그 30만원과 관계된 일일지도 몰랐다.

-거기에 삼촌이 좋아했던 여자도 한 명 있었다던데...... 혹시, 모르세요?

-모르긴, 잘 알지. 주동급이어서 내가 직접 조서 꾸몄는 걸...... 걘, 그때 형기 받고 그다음 해에 바로 청주로 갔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김 박사님, 김 박사님...... 김 박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어요. 하지만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당혹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하지만 그는 또 한편, 이 아이가 기증자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가 얼핏 생각한 기증자의 아이는,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채 열 살도 되지 않는 꼬마아이였다. 삼십대 후반이라는 기증자의 나이 떄문에 자동적으로 그런 그림이 그려진 것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능성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는, 어쩌면 누군가의 문병을 온 학생일 수도 있고, 장염이나 빈혈 떄문에 입원한 환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환자복을 입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 상복을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가능성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여자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탄원의 문장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또 한편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그녀앞 소파로 다가갔다.

-아니, 나는 어쨌든 P에 대해선 최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교수님도 P에 대해선 잘 아실 거 아니에요? 그 개자식 말만 들으셨으니까.

여학생이 갑자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해 나는 어, 한 상태에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 개자식이 종종 언니한테 손찌검한다는 것도 말하던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입증 불가능한 것들은, 어쩌면 입증 가능한 사실들로부터 나오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것은 '발견'의 영역이지, '발명'의 영역은 아닌 것이다. 사실들과 사실들 틈 사이에서 불가능한 것들은 시작되고 피어난다는 것, 그래서 숙명적으로 사실들의 세계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 거기에서부터 최의 탄원서는 시작되었다.

 

 

이정(而丁)-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
"언젠가 수환 학생이 이정 선생의 이름을 처음 말하면서 그게 '고무래가 되겠다'라는 뜻 아니냐고 물어왔던 적이 있고. 나는 그때 그런 뜻도 있지만 그건 그냥 글자 모양 그대로 보는 게 맞을 거라고 말해주었소. 그러니까 쇠스랑(而)과 망치(丁)가 맞을 거라고...... 우린 해석하기보단, 보이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화라지송침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게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한계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나 아내나, 우린 둘 다 기종 씨를 참아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의 그것과 아내의 그것이 다를 수 있고, 나의 짐작과 아내의 진실이 같을 순 없을지라도 기종 시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아내나 나는 같은 사람이었다. 나느 가끔 내가 그를 참아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그랬다면, 아내는 나 또한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결코 아내를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역시도 아내의 입장이었다면, 그건 또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내나 나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는 선에서,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게 조금 쓸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또 우리였으니까.

 

내가 양돈축사를 떠나기 직전, 꽁지머리 남자에게서 들은 일화는 이런 것이었다. 기종 씨의 아버지가 양돈축사에어 가까운 폐비닐하우스에서 목을 맸다는 것, 의자를 밟고 올라가 목을 맸다는 것, 그 아래에서 기종 씨가 꼬박 사흘을 지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남자는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장님이 그 청년 아버지가 장사를 치러주었다고. 그다음부터 계속 머슴처럼 부렸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나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이 맞잖아? 그치, 형? 그래야 속옷이 되는 거잖아, 응?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계속 형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화도 통 없던 형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나는 오래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이산 가족처럼 오래오래, 두서없이 말을 했다.

한데, 깊이 잠들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형이 갑자기, 툭, 한 마디 던졌다.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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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ㅣ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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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도, 말콤 글래드웰도, 조엘 오스틴도 아니었다. 이른바 행복 멘토라고 불렸던, 한 여성 유명 인사가 몇 년 전 유명을 달리한 사건.

 

그 사건이 충격이었던 것은, 평범한 가정주부를 지내다 활발한 방송활동을 통해 '행복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절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행복과 긍정을 강조했다는 점이었다. 함부로 고인을 욕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고인이 유서에서 직접 밝혔듯이 70여가지의 통증은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무한한 긍정이라는 것, 그 한계라는 게 너무나 아프고 따갑게 느껴질 뿐이다. 이런 저런 언급도 이미 돌아가신 분께는 참 죄송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주장했던 긍정의 힘, 오히려 그것이 그분의 족쇄가 되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스스로 규정한 그 틀에서 벗어났더라면, 안타까운 그 결말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저자가 유방암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출발한다. 다른 환자들에게서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도의 긍정적인 태도를 목격하면서 미국에 얼마나 긍정주의가 깊숙이 퍼져있는지 확인했고,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어떤 방식으로 활개를 치고 있으며, 그 실상과 결과를 보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암은 축복'이라는 부분은 정말 경악할 노릇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또한 미국 못지 않게 긍정의 힘에 대해 노래하는 나라이다. 그 유명한 시크릿이라는 책, 처음 보았을 때 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낙관주의, 긍정주의를 믿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가 일정정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듯이,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다룬 최초의 역작인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출판된 것이 1936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면만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깊은 무력감이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에는, 이른바 돈냄새가 나는데, 흔히 말하는 동기 유발 사업의 시장 규모는 대략 200억 정도라고 이 책은 추산하고 있다. 기업 뿐 아니라 초대형 교회, 대중 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무한긍정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엉망진창인 현실, 바뀌는 길은 요원해보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게 사실상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게 돈 좀 쓰고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의 정도가 아니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2001년 9월,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비행기 테러 사건의 경우, 불길한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왔으나 당시 부시를 비롯하여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긍정주의로 인해 그 경고들은 전부 무시되었고, 암 환자들에게 낙천성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제 2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긍정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조엘 오스틴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항공기 갑질 사건, 그와 유사하게 1등석 항공기에서 소란을 피운 조엘 오스틴의 아내는 300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었고, 승무원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그 소송은 기각되었다. 저자는 직접 오스틴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사건을 언급하며 부부는 단순히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승리라며 청중들 앞에서 감격해했다고 한다. 대체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에 간 것인지? 우리 나라의 사이비 교주들의 행태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단자와 다를 게 없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2년 전, 글로벌 책임자는 CEO에게 부동산거품을 경고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하자며 건의했다고 한다. 바로 그는 해고당했고, 파산하는 시점에서도 CEO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더없이 사치스러운 세계에 격리되어 살아가고, 듣고 싶은 거짓말만 들으며 부정적인 의견에 눈과 귀를 닫았다. 리먼브라더스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는 현재 미국 경제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대안으로 심리학자 줄리 노럼의 '방어적 비관주의'를 제시한다. 긍정적 사고의 대안이 절망은 아니며,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만큼이나 망상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에,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위험과 기회, 죽음의 확실성과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주장한다. 조종사도, 자동차 운전자도,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할 때에도, 자녀를 키울 때에도, 높은 수준의 경계심을 가지고 실패를 의식하며 예상까지 하는 수준의 현실주의는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편으로는 눈앞을 가리우고 있던 막이 벗겨지는 느낌이 드는 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그나마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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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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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생전에 선정한 best 10에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대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독자 입장에선느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녀 스스로 밝혔듯이 이런 트릭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그 약속을 깬 것이다. 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그녀가 스스로 선정한 best 10에 들어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그 트릭 때문에 best에 들어갔다면, 이 책은 왜 들어간 것일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의 여왕이다. 그러나 그녀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이름으로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여섯 편의 소설들은 전부 '여성의 삶'을 주제로 했다는 공통점과 함께 그동안 그녀가 써왔던 추리 소설이 아닌, 심리 서스펜스부터 로맨스, 대하소설까지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생전에 그녀가 이 책에 애착을 가졌다는 것도 당연해보인다. 아마도 그녀는 장르 소설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셜록 홈즈의 아서 코난 도일의 경우, 이른바 '진지한' 문학 작품을 쓰고 싶어서 자신의 책에서 홈즈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을 낸 적이 있는데, 결국 다음 책에서 그를 부활시킨다. 홈즈가 모든 이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인물로 독자들의 원성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이른바 그가 구상한 '진지한' 문학이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사람들 마음은 다 비슷할 것이다. 크리스티도 도일도. 길이길이 문학사에 평가되는 작품, 스스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녀가 76세에 쓴 작품으로, 굉장히 원숙하고 우아한 느낌이 있다. 특히 제 2장과 3장의 묘사는 인상적이며,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케빈에 대하여가 떠오르기도 한다. 살인자에 대한 심리와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의 비중을 더 늘렸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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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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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실 영화로 먼저 접했다.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의 감독 데뷔작,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배우 콜린 퍼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역시 영국 출신의 니콜라스 홀트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의 평은 콜린 퍼스가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는 것. 평론가가 아닌 그저 관객에 불과한 내 눈에도 콜린 퍼스의 연기는 훌륭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매튜 구드의 연기도 훌륭했다는 점. 그리고 어바웃 어 보이에서 그저 똘망똘망하고 귀여웠던 소년 니콜라스 홀트의 성인 모습이 반가웠고, 엑스맨 시리즈에서는 알지 못했던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 그리고 톰 포드는 의외로 이 작품을 잘 연출해냈다는 점.

 

그래서 원작 소설이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사실 원작 소설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늘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뗄레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 더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동성연애자이며, 작가 또한 동성연애자로 주인공을 작가 자신과 같은 해에 출생한 것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출신의 감독 또한 동성연애자이고, 그 때문에 이 작품에 강하게 끌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영화를 먼저 보고, 다음에 책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잘 이 작품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기 떄문에 소설만 읽어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조롭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훨씬 풍성하기 떄문에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텀을 길게 두지 말고 보면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면서 소설 속 이야기들을 더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동성연애자에 대한 차별은 오죽했을까, 또한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도 마음껏 내색하지 못하는 슬픔은 어느 정도였을까. 단 하루 동안 이 남자의 삶을 통해서 이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아니 그 일부만이라도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이 의문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프랙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프랙탈. 임의의 한 부분이 전체와 닮은 도형을 뜻하는 말로, 우리 주변에서는 눈송이나 나무 껍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 하루 동안 이 남자의 의식을 찬찬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이 남자의 상실을, 절망을,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에게 연민을, 공감을, 위로를 보내고 싶어졌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하루만으로 부족하다면 평생이 주어져도 모자란 것 아닌가.

 

 그리고 이제 조지 주위에는 온통 남녀들이다. 매일 고속도로라는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이 공장에 공급되는 재료인 남녀들. 가공되어서 포장되고 시장에 놓일 남녀들이 조지를 향애 다가오고 온갖 방향에서 조지의 앞길을 지나간다. 흑인, 멕시코인, 유대인, 일본인, 중국인, 라틴아메리카인, 슬라브인, 노르딕인, 금발에 비해서 검은 머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학생들은 강의 시간표에 맞춰 종종걸음을 치거나, 이성을 꼬드기며 느릿느릿 걷거나, 열띤 토론을 하면서 한가롭게 걷거나, 혼자서 입을 다물고 걷는다. 걸음은 달라도 모두가 지친 표정으로 책을 들고 있다.

 학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왔을까? 공식적인 대답은 물론 있다. 앞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래서 직업과 안정을 얻고, 아이들을 키워서 그 아이들이 앞날을 준비하게 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직업과 안정을 얻게 한다. 그러나 직업 선택에 대한 갖가지 조언들, 가령, 대학교 팸플릿에서 확실한 기술을 배우는 약학과 같은 학과들이나 취업 기회가 많은 여러 전자 계통 학과들을 수입이 좋은 학과로 꼬집어 말하는 것 같은 조언들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랍게도 아직 시나 소설이나 희곡을 쓰겠다는 학생이 꽤 많다! 이들은 수면 부족으로 멍한 채, 수업과 파트타임 일과 결혼 생활 사이사이 짧은 빈 시간에 글을 휘갈긴다. 수술실에서 걸레질을 하거나,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거나, 아기의 입에 젖병을 물리거나, 햄버거를 굽는 동안, 이들의 머릿속은 단어들로 어지럽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예속된 상태 한가운데 어디에서, 광기는 속삭인다. 경험을 쌓으라고. 무엇을? '경이를!'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밤으로의 긴 여로에 오르고, 지혜의 일곱 기둥을 지나고, 공허의 선명한 빛을 찾고....... 이런 학생들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 물론이다. 최소한 한 명. 많아야 두세 명. 이 수천 명 중에서.

 이제 그 학생들 속에서 조지는 현기증 같은 것을 느낀다. 아, 세상에. 이 학생들이 모두 어떻게 될까? 무슨 기회가 있을까? 지금 당장 가망이 없다고 소리쳐서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조지는 그럴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어이없고 부적절하게,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조지 자신이 학생들에게 희망의 상징이기 떄문이다. 희망은 잘못이 아니다. 정말이다. 조지는 다만 거리에서 진짜 다이아몬드를 5달러에 파는 사람과 같을 뿐이다. 바삐 지나가는 대다수는 감히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을 테니,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대체 이게 몇 년 전 이야기이지? 어떻게 수십 년 전, 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가 현재 한국의 상황과 이렇게 흡사하단 말인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는 10년이 늦고 미국보다는 20년이 늦는다는 이야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돌았던 시절은 우리 나라가 경제 규모로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저 숫자는 기술이나 경제 지표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현재 기준으로는 상황이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분위기나 의식 수준은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저 숫자가 실제로는 더 클 수도 있고. 이것 뿐 아니다. 대학 교수라는 주인공의 직업 특성상, 당시의 대학 모습과 학생들에 대한 묘사가 상당수 등장하는데 놀랄 정도로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똑같은 대학생이라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도드라지는데, 이 부분은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던 시절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짙은 색의 단정한 옷, 흰 셔츠와 넥타이(강의실 안의 유일한 넥타이)는 젊은 남학생들의 공격적으로 남성적인 캐주얼웨어와 확연히 구별된다. 남학생들 대부분은 운동화와 흰 울 양말, 추울 때는 청바지, 더울 떄는 반바지(허벅지를 가리는 버뮤다팬트로, 더 짧은 반바지는 강의실에 어울리지 않는다) 차림이다. (중략) 공부하는 학생에서 한순간에도 공사장 인부나 싸움하는 갱으로 변할 것 같은 모습이다. 남학생은 여학생에 비하면 지저분한 어린아이로 보인다. 여학생들은 모두 십대 시절의 칠푼바지나 헐렁한 셔츠, 위로 부풀린 헤어스타일에서 벗어났기 떄문이다. 여학생들은 벌써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를 풍기며, 아주 고상한 파티에 참석하는 차림새로 강의에 들어온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내용이 약간씩 바뀐 게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마도 결말 부분일 것이겠지만, 그것 이외에도 중간 중간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20대 시절 이 소설을 접하고 수십 년간 그 감동을 잊지 않았으며,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감독의 말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 작품 속 조지를, 감독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 같다. 그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소설 속 조지의 몇몇 대사들이 영화에서는 바뀌었는데, 그 기준은 감독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다.

 

"아니, 환각이라고 말할 만한 효과는 없어. 처음에는 멀미가 나더군. 심하지는 않았어. 그래도 좀 무섭긴 했어. 지킬 박사가 처음으로 약을 먹었을 때도 무서웠겠지. 그런 느낌이었어. 그러다가 색이 아주 밝게 두드러져 보였어. '사람들이 왜 저 색을 못 알아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야. 식당 테이블에 어떤 여자 지갑이 놓여 잇었는데, 그 빨간색이 지금도 눈에 선해. 신문에 난 스캔들 기사처럼 생생했어. 사람들 얼굴은 캐리커처로 보였어.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사람 성격이 확 드러나 보이고, 아주 단순해지고 선명해졌어. 몹시 잘난 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자기 몸이 아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싸움만 바라는 사람도 잇어. 무엇에도 화내거나 공격적이지 않기 떄문에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람도 몇 명 보여. 이런 사람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 모든 것이 점점 삼차원이 돼. 커튼이 아주 무거워 보이지. 조각품처럼 보이기도 해. 나뭇결은 꺼끌꺼끌해보이고, 꽃과 식물도 아주 생생해져. 보랏빛 화분 하나는 지금도 눈에 선해. 움직이지는 않지만, 분명 움직일 듯 보여. 움직이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는 뱀 같아. ......그러다가 사물이 완전히 본모습을 드러내지. 방의 벽들과 주위 모든 것이 숨을 쉬고, 나뭇결이 액체처럼 흐르기 시작하지. ......그러다가 그런 모습은 서서히 다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가. 숙취는 없어. 약효가 사라진 뒤에는 괜찮아."

 

젊은 시절, 잠깐 약물을 복용하고 난 후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조지의 대사이다. 실제로 약물을 복용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이렇게 길게 구체적으로 쓰여진 글은 나는 처음 봤기에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내용이 조금 바뀌었는데, 조지는 자신의 눈썹이 보기 싫어서 밀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며 제자인 케니에게 너는 그렇지 말라고 한다. 바로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었다고. 감독이 얼마나 이 소설에, 소설 속 조지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침울하고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다니,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다. 왜 자기 삶을 이렇게 살고 있을까? 물론 보수가 적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세어 큰 희망을 가질 수 없다. 물론 회사 중역들과 섞이는 축복을 즐길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인생의 4분의 1밖에 살지 않은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위안이 되지 않나? 쓸모없는 소비재를 파는 데 도움을 주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않나? 자신이 이 나라의 직업 중 절망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직업을 가진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나?

 확실히 이 우울한 교수들은 모르고 있다. 알려고 노력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이 사람들은 스스로 이 직업을 택했고, 이 직업으로 살아야 한다.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을 등치는 법을 배웠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중년, 장사치, 야바위꾼 같은 다수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도 얻은 것은, 인정 못 받고 메마르고 어려운 지식 뿐이다. 그렇다. 대중은 지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중은 지식없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제품과 실용적인 응용만 바란다. 대중은 말한다. 이 교수들은 한심하다고. 어떤 지식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그 지식을 왜 알아야 하나? 우울한 교수들은 그런 대중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며, 자신이 약고 탐욕스럽지 못한 것을 남몰래 부끄러워한다.

 

아, 어쩌면 이렇게 요즘 현실과 다를게 없을까.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조지는 지금 이 취기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주 조야하게 말하면, 플라톤의 『대화』같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 그렇다. 그렇지만 『대화』같다는 말이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은 아니다. 짐짓 겸손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서로를 헐뜯는 대결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지루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도 아니다. 무엇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고, 얼마든지 주제를 바꿀 수 있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특별한 관계에 함꼐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지의 생각으로는, 여자와는 결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여자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는 남자만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화 상대 사이에는, 가령 흑인과 백인의 대화 같은, 양극성이 있어야 한다. 대화 상대인 두 사람 사이에는 상반되는 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조지와 케니의 경우처럼, 연륜과 젊음 같은. 왜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야 하나? 대화는 그 속성상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징적인 만나밍다. 대화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편이 갈라지면 안 된다. 그러므로 대화에서는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다. 굳은 자기주장이나 무시무시한 비밀이라도, 상대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설명이나 단순한 은유를 통해서 객관적인 말이 된다.

 조지는 이 모두를 케니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러나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며, 자칫 케니가 이해 못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무엇보다 조지는 케니가 이해하기를 바라며, 케니가 이 대화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믿고 싶다.

 

이것 또한 일종의 상징인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고대 그리스 시절 동성애가 활발했으며, 그것은 사랑보다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존경이나 찬사와 같은 행위이고 상대의 지식을 내 것으로 전수받고 싶다는 뜻에서 출발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소설 속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며, 여기까지 소설이 오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기류가 흐르는 것이 분명하다. 소설 속에서는 조지, 또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성애에 대한 혐오와 여성에 대한 비하가 종종 등장하는데, 그것마저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이 둘은 대화를 하고 있고, 그러면서 조지가 떠올리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최고 학자였던 플라톤의 『대화』. 그리고 이것의 진정한 의미를 상대가 알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것을 직접 설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것. 애인의 갑작스런 죽음 후 스스로 싱글맨이기를 자처하던 그가 조심스레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닥치는 종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죽을 떄까지 싱글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상대와의 진정한 소통을 갈망해야만 하는 존재일까,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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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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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책 소개 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1942년 발표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41번째 소설로, 작가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나는 혼자 런던에 머무르면서 <N 또는 M>과 이 작품을 번갈아 가며 썼다. 이 작품을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기분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17, 18년이 흘러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만족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훌륭하게 생각되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제리 버턴은 여동생과 함께 요양을 위해 라임스톡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머물게 된다.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시골마을. 그러나 추잡한 모함과 비방을 담은 익명의 편지들이 떠돌고, 편지를 받은 사이밍턴 부인이 모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그 집 하녀 역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마을 목사의 부인 모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친구 마플양을 불러오고... 제리는 우연히 또다른 살인을 위한 준비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 오히려 기대감을 많이 낮추고 보는 편이 이 책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10에 들어가며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도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대치가 많이 올라가는데 작가 스스로는 어떤지 몰라도 독자에게는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보다 특별히 이 작품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떡밥'이 많은 작품, 또는 '맥거핀'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으스스하거나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이 다른 작품들보다는 덜한 편이고, 크리스티의 몇몇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그 소설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작품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오히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쪽이다. 마플 양은 소설이 절반도 더 지나서야 등장하는데, 아예 등장하지 않았거나 초반에 등장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제리가 초반에 살인 사건을 나름대로 이리 저리 궁리하며, 내쉬 경 또한 이 사건을 제리와 합심하여 또는 제리를 배제하고 풀어나가려 애쓰고, 마지막에 마플 양까지 등장하여 사건 해결은 이리 저리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남녀 두 쌍의 로맨스가 부각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아쉽고,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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