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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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인공인 화자는 희곡 작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사실상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화자의 고모로, 1만명 정도의 아이를 출산시킨 산부인과 의사이다. 실력있는 의사로 인정받던 그녀는 70년대 이후에 추진된 국가 정책인 '계획생육'을 전방에서 주도하며 2000여명의 아이를 낙태시킨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강한 신념으로 수십년간 그 일을 해 온 고모는 말년에 와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소설의 형식은 작가인 화자가, 일본의 작가에게 편지를 띄우는, 일종의 서간체적인 소설이다. 작가가 첫머리에도 밝혔듯이, 실제로 작가의 고모는 산부인과 의사였으며,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작가 모옌의 고모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쓸 것을 권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소설은 자서전적인 소설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증언 문학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계획생육'이라는 것은 일종의 한가정 한자녀 정책.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정책은 폭발하는 인구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인구의 수를 조절하는 정책이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정도. 그러나 이 책에서 나온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며 잔인하다. 도시의 경우는 무조건 한 자녀, 농촌의 경우는 첫 아이가 딸인 경우에 한해서 8년 경과 후 둘째가 허용된다는 것.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사실상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므로 결국 강제로 낙태를 하게 된다. 당시 중국, 특히 농민들은 자녀의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정관 수술을 비롯한 그 어떤 피임법도 거부하며 몰래 몰래 아이를 가지고 나으려고 하며, 화자의 고모는 악착같이 임산부들을 추적하고 찾아내어 기필코 수술대에 올리고야 만다.

 

이 책은 수많은 비극과 비극이 겹쳐 있는 느낌이다. '계획생육'의 내용 자체가 비극이며, 그것도 중국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비극이다. 몇 달만 있으며 자기 힘으로 숨을 쉬고 밥을 먹게 될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것도 비극이다. 화자인 자신의 조카가 태어날 때 직접 받은 것이 고모이며, 그 조카의 부인의 낙태 수술을 집도하다가 태아와 산모 모두 잃게 되는 것 또한 동일한 인물인 고모라는 것도 비극이다. 그 고모의 수제자였던 조수가 조카의 후처가 되며,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비극이고, 미모와 지성 등 모든 것을 다 갖추었던 고모 또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도 비극이다. 젊은 시절 사랑하던 사람은 타이완으로 넘어 갔고, 문화대혁명 시절 고초를 겪었으며, 늦게서야 결혼을 하게 되고 평생 아이가 없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극이다.

 

소설을 보면서 이 사람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인간이란 원래 모순적인 존재이며,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비극에 가깝고, 그것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 소설 속 중국의 모습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너무나 이질적이라 답답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 대를 잇기 위해 공공연히 대리모를 들이는 현실이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맹목적인 신념이 말도 안 되게 굳건한 한 인간을 독자로서 보고 있는 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측면에서는 분명히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야만적으로 보여 갑갑했다.

 

작가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의 원작 소설의 작가라고 한다. 본명은 관모예로, 필명 모옌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중국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지만,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의 화자는 작가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우유부단하면서 겁도 많고, 그러면서 실속은 챙기고 싶어하며 물욕도 있는, 나약하고 줏대없는 모습을 보여서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어떤 중국 사람들은 모옌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갖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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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완전판) - 에지웨어 경의 죽음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노지양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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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타 애덤스라는 탁월한 재능의 여배우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제인 윌킨슨을 한 연극에서 모방하였다. 그 연극은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그리고 당사자인 제인 윌킨슨도 관람했다. 연극이 끝난 후 제인 윌킨슨 일행,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칼로타 애덤스는 사보이 호텔에서 각각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고 제인 윌킨슨은 이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한다. 이 날 제인은 푸아로에게 이혼을 원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고, 푸아로를 만난 에지웨어 경은 이미 6개월 전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이혼할 의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푸아로를 다시 만난 제인은 그런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단순히 사고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상황. 얼마 후 에지웨어 경이 자택에서 살해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별거 중이던 아내 제인. 얼굴이 알려진 이 여배우가 남편의 저택으로 사건 당일 들어가는 것이 저택에 있던 이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간에 한 파티에 참석 중이었으며, 열 네 명의 목격자로 인해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급하게 칼로타의 집을 찾아낸 푸아로. 그러나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다. 인기 여배우가 등장하는 세계를 다루어서인지 다소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에도 심리적이 요소가 매우 비중있게 등장한다.

 

앨리스 베넷은 어떤 것도 허락해 줄 성 싶었다. 대부분의 조심스럽고 의심 많은 여성들은 한번 믿기 시작하면 무조건적으로 믿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푸아로가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찬성했을 터였다.

 

이런 부분은 읽으면서 감탄이 났다. 인간의 심리 상태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가 모순되는 행동을 보일 때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절묘하다. 또 이런 부분도 있다.

 

제럴딘이 자기 아버리를 죽였을 거라고 한 제인 윌킨슨의 경솔한 말은 내게는 당치 않은 망언처럼 느껴졌다. 아마 두뇌가 텅 빈 사람이나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바를 푸아로에게 전했다.

"두뇌, 두뇌라. 자네는 그 단어가 뭘 의미한다고 믿는 거지? 만약 자네 의견대로라면 제인 윌킨슨은 토끼 정도의 두뇌를 갖고 있는 사람이겠군. 멸시의 표현이지. 하지마 토끼를 한번 생각해보게. 토끼는 열심히 번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안 그런가? 어쩌면 생존 본능은 고매한 정신보다 더 우수한 걸지도 몰라. 우리 사랑스러운 에지웨어 부인은 역사나 지리나 고전에 대해서는 완전히 까막눈이지. 상 두트(아마) 노자라고 하면 무슨 북경 강아지가 아닌가 할 테고, 몰리에르는 메종 드 쿠튀에(재단사)이름 인 줄 알거야. 하지만 옷에 관해서라든지, 또 부와 명성을 한 번에 거머쥘 수 있는 결혼이라든지,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방면에 있어서라면 그녀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지. 에지웨어 경의 살해범에 대한 철학자의 고견은 내게는 아무 필요도 없어. 그리고 철학자의 고나점에서 보통 살인의 동기는 절대 다수의 절대 선을 위한 것이라고 볼 테니 판단이 어려워. 사실 자기네 철학자 중에는 살인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그 속성을 몰라. 하지만 에지웨어 부인의 지나가는 한 마디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그녀의 관점은 철저히 유물론적인 데다 인간 본성의 사악한 측면을 알고 있는 데서 비롯된 거야."

 

이 부분은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미심쩍인 부분들이 한번에 해소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살인에 대해서, 고차원적으로 앞뒤 맥락을 따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좀 더 단순한 차원에서 봐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이 부분은 이어지는 사건의 결말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 소설이 기존의 크리스티 소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살인자의 캐릭터일 것이다. 크리스티의 소설 중 이런 살인자는 <비뚤어진 집>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평생 동안 범죄에 대해서, 또 그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크리스티는 연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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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결사 (완전판)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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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한번 그녀의 주인공들은 누가 있는지 죽 살펴볼 때가 있었다. 꽤 많은 탐정 목록에 부부탐정이 있었다. 부부탐정?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것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토미와 터펜스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두 명의 탐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며, 마지막에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아마도 이 소설 다음부터는 부부가 된 두 사람이 등장하는 모양이다. 전문 탐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둘의 모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마음 졸이게 하며, 오히려 그 부분이 재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 때문에 이 소설은 더욱 흥미로우며, 아마도 이후의 이 부부탐정들은 좀 더 노련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빠른 시간 내에 이 이후의 부부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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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책을 통해 그러한 기술을 접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직접 미행해 본 적은 없었다. 토미는 실제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갑자기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아타는 경우가 있다. 책에서는 간단하게 다른 택시를 잡아타거나 아니면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올라타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번째 택시가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다. 그럴 경우 토미는 택시를 쫓아 부지런히 뛰어야만 할 것이다. 런던 거리를 젊은 남자가 질주한다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큰길에서라면 그저 버스를 따라 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길에서 뛴다면 참견하길 좋아하는 경찰관이 그를 불러 세워 꼬치꼬치 물어볼 것이다.

 

터펜스는 자신의 방에 숨어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구입한 물건의 포장을 풀었다. 5분 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분장용 펜슬로 눈썹을 약간 다르게 그린 데다 풍성한 금발 가발을 쓰자, 휘팅턴과 직접 마주치더라도 전혀 못 알아볼 만큼 달라 보였다. 신발 안에는 키 높이 깔창을 넣을 것이고 모자와 앞치마를 두르면 완벽한 변장이 될 것이다. 터펜스는 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간호사가 간호사복만 벗어도 환자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홀 박사는 멍하니 줄리어스를 바라보았다.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을 보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아니에요."

줄리어스가 그의 시선에 대해 대답했다.

"저는 미치지 않았어요. 그 일은 완벽하게 가능합니다. 미국에서는 영화를 찍기 위해 매일매일 그런 일을 하는걸요. 영화에서 기차가 부딪히는 장면을 본 적이 없나요? 기차를 사는 것과 선박을 사는 게 뭐가 다르겠어요? 물건만 구할 수 있다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홀 박사는 그제야 제 목소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 비용이 문제입니다.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돈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줄리어스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홀 박사는 마치 도움을 청하듯이 제임스 경을 바라보았다.

제임스 경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헤릇사이서 씨는 재산이 많소. 그것도 아주 많다오."

홀 박사의 시선은 다시 줄리어스에게로 옮겨졌다. 미묘하지만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시선이었다. 앞에 앉은 사람은 더 이상 나무에서 떨어진 괴팍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홀 박사의 시선에는 진짜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계획입니다. 아주 대단해요."

홀 박사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계속 이어서 말했다.

"영화라....... 물론 가능할 겁니다! 어쩌면 촬영하는 방법에 있어서 영국이 조금은 뒤떨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흥미로운 건 사실입니다. 그 계획을 정말로 실행에 옮길 생각입니까?"

"전 재산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홀 박사는 그의 말을 믿었다. 왜냐하면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영국인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했다면 그의 정신 상태를 심각하게 의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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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졸업 : 스페셜 에디션 콤보팩 (2disc: BD+DVD) - Blu-ray & DVD Double Edition
마이크 니콜스 감독, 앤 밴크로프트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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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잘 몰랐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결혼식이 끝나기 전, 신부를 낚아채어 밖으로 뛰어가던 순박한 모습의 젊은이, 그리고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달려나가는 신부의 장면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영화니까.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지금과는 다르게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영화, 특히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세련된 영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리라.

 

영화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몰랐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장면 때문에, 사랑하는 남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혼을 하지 못했고,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용감한 청년의 행동으로 극적인 해피엔딩에 골인하였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부모의 반대일 것이고, 부모가 반대하는 이유는 양가의 집안 격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소박한 더스틴 호프만의 외모가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고, 그 외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내 나이가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고.

 

뚜껑을 열어 본 이 영화의 내용은 어렴풋이 내가 믿고 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더스틴 호프만은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는 청춘이 아니라, 부잣집 도련님에 명문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각종 클럽 활동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그야말로 엄친아였던 것. 그럼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지지 못할 뻔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 여자의 어머니와 불륜 관계였기 때문에.

 

어머니뻘 되는 유부녀, 그것도 자신의 부모와 가까운 사이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도 영화에서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이지 실제로는 참 힘든 상황인데다가, 심지어 그녀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 그것도 모자라 결혼식 당일 그녀와 함께 도주하는 결말이라니. 이거 아무리 할리우드라지만 뭐 이런 막장 스토리가 있나 싶다. 법적으로는 딸이더라도 입양을 했거나, 혹은 남편의 전처의 딸이라는 설정 등으로 생물학적으로는 남이라고 설정하는 식으로 피해가지 않고 왜 굳이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든 것일까? 아마도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면, 아무래도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역시, 원작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각은 좀 더 나아갈 수 있다. 대체 원작자는 왜 이런 스토리를 만든 것인가?

 

원작은 62년, 영화는 67년. '졸업'의 벤자민이 대학교를 '졸업'한 시기는 60년대. 그 당시 미국은 그야말로 혼란의 세대였다고.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 젊은이들이 히피라는 이름으로 현상화된 것이 바로 이때이다. 주인공 벤야민도 마찬가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젊음과 부, 집안 등 모든 것이 풍족해보이는 이 청년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방황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이 아마도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 이 말일 것이다. 벤자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한번씩 한다. 부모도, 친척도, 이웃들도. 부모는 그에게 대학원을 가라고 하고, 한 어른은 당시 첨단 산물 중 하나였을 '플라스틱'을 언급한다. 벤자민은 그 어떤 어른들의 말대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딱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저런 현실적 제약으로 꿈만 꾸어야 하는 것과, 능력과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둘 중 어떤 쪽이 젊은이에게 더 불행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방향을 잡지 못하는 60년대 미국 청춘의 이야기는 2010년대의 대한민국의 청춘에게도 유효하다는 것. 50년이 지난 이 영화가 당시에도 감독에게 아카데미 상을 안겨줄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고전이 되어 수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라서가 아닐까? 주제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지금 보아도 세련된 부분이 많다. 카메라의 기법이나 화면 구도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로빈슨 부인이 유혹하는 장면에서 두 인물의 위치, 그리고 로빈슨 부인의 특정한 신체 부위에 카메라가 집중하는 것, 수영장에서 유유히 떠 있던 벤자민이 밖으로 훌쩍 뛰어넘는 장면이 바로 침대 위 로빈슨 부인에게 달려드는 장면으로 연결되는 것,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들의 목소리가 무음으로 처리되고 두 남녀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등 지금 보아도 놀라운 장면들이 많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젊은 남자와의 외도로 공허함을 달래는 로빈슨 부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기성 세대를 의미하겠지. 그녀의 딸 일레인은 순수하면서도 당돌하고, 진실된 젊은 세대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절연하고 딸과의 관계를 새롭게 쟁취한 벤자민은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이 상징성 때문에 벤자민이 관계를 가지는 두 명의 여자는 반드시 혈연관계여야 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당시의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와 생물학적으로는 연결되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혹은 다르다고 믿고 있는 부류였을 테니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환희에 빛나던 두 젊은이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표정이 다소 심란해진다. 아마도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겠지. 이 부분에 대한 해석도 사실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다. 바로 이 장면을 영화관에서 함께 보면서,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남자는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후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DVD의 특별 영상에서 이제 중년이 된 더스틴 호프만은 25년 후,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 자녀가 있는 이른바 졸업의 두번째 이야기를 구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결국 저 둘은 얼마 안 되어 헤어질 것이라고 예감했는데 말이다.

 

이 영화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OST. 사이먼 앤 가펑클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으며, 영화의 엄청난 흥행과 함께 사이먼 앤 가펑클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의 그룹 SG 워너비의 뜻이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을 본받고 싶다는 의미라고. SG워너비의 초기부터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들이 그토록 본받고 싶다는 그 그룹은 대체 어떤 그룹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갑자기 그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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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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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티는 상당수의 책에서 맨 앞장에 '~에게'라는 말을 꼭 붙인다. 때로는 절친한 지기일 때도 있고, 때로는 바로 그 소설에 영감을 준 사람일 때도 있다. 특이한 것이 이 소설의 첫 장에는

가장 충직한 친구이자 가장 사랑스러운 동반자.

다른 어떤 개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피터에게

라는 글이 있다. 애완견에게 이 책을 바치다니? 하고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면 아, 하는 생각이 든다. 벙어리 목격자. 말 못하는 목격자라니.

 

2. 크리스티의 소설의 특징은, 당대 영국의 모습을 정말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인물이나 사건 정황에 대해 성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되지 못하기 떄문이다. 다른 소설이라면, 문학적인 이유로 의도적인 누락이 가능했을 경우도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 섬세한 묘사는 필수적이며, 그것 때문에 소설 속 세계는 마치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니 내가 소설 속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3. 특이한 몇몇 풍습이 있다. 이 당시에는 보수를 받고 귀부인의 친구가 되어주는 여자들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하녀나 가정부, 집사나 비서와 비슷해보이지만 조금 다른데,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거나 약간의 봉사를 할 수는 있지만 핵심은 말벗이 되어주는 것. 이것이 정식으로 존재하는 직업의 형태였다고 하니 신기하다.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형태는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나일 강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다소 불분명한 지위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분명하게 등장했던 부분은 젊고 가진 것 많은 여성이었고, 보수를 받는 그녀의 친구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느 책에서 등장한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자 고용주가 말벗에게 결혼을 권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벗이 누군가에게 청혼을 받았던 것 같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4. 이 소설 뿐 아니라 종종 크리스티 소설에서 등장하는 콩팥요리라는 게 있다. 대체 콩팥요리는 무엇일까? 소? 양? 돼지? 닭? 그 어떤 서술도 없이 달랑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당시 영국에서는 평상시에 자주 먹었던 것 같은데.

 

5. 여기에서는 푸아로의 왓슨, 헤이스팅스가 등장한다. 둘이 함께 등장하면 늘 재미있는 부분이 쏟아져 나온다. 푸아로의 심중을 알 길이 없는 헤이스팅스와, 그를 때로는 놀리고, 때로는 격려도 하면서 함께 활동을 하는 푸아로. 요즘 말로 하면 둘의 브로맨스는 그야말로 케미가 폭발이다. 예를 들면, 추리극에 푸아로를 데려가는 실수를 저지른 헤이스팅스가 군인을 전쟁물에, 스코틀랜드인을 스코틀랜드 연극에, 탐정을 추리극에, 배우라면 어떤 연극에도 데리고 가지 말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그렇다.

 

6. 철저하게 심리에 집중하는 게임. 누군가가 죽어야만 입증이 가능한 이 사건은 마치 '커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강박관념에 싸여 있는 사람의 정신만이 가능한 것이라며 훔치거나 위조와 같은 연약한 상태의 범죄만 저질렀던 전과자를 제외시킨 점이나, 살인을 위한 계획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정신력은 있으나 자신의 욕망대로 맘껏 살아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리 없다며 푸아로는 제외시킨다.

 

7. 그 외에도 크리스티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섬세한 장치들이 눈에 띈다. 의상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옷을 좋아하는 여성, 우아하게 차려 입은 여성을 보았을 때 나중에 그의 패션을 따라하기 위해 열심히 기억해 두려고 애쓰다 나중에는 어설픈 방식으로 모방하여 우스꽝스러운 차림이 되는 경우, 한때는 구하기 힘들었던 장신구로 소수의 패션 리더들만이 착용하다가 바로 그 다음해에 쏟아져 나와 지금은 흔해진 물건들 등 읽다 보면 아, 이런 섬세한 부분이 크리스티의 장점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8.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푸아로는 한 장소에 사건의 모든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늘 그랬던 것처럼 헛기침을 하고 난 뒤 말을 시작한다. 헤이스팅스는 푸아로와 가까이 지내면서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품위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 중 한 명의 가면을 벗겨 살인자임을 푸아로가 밝혀내는 과정.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되면 드디어 사건이 다 끝났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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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크래커 2015-05-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익숙한 것을 두고 새로운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고할미 2015-05-03 06:41   좋아요 0 | URL
네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익숙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면을 자꾸자꾸 시도한 데에서 매력이 있는 거겠죠.

나이튼 2015-09-2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른 열차의 죽음에서 그런 직업을 가진 매력적인 여인이 중요한 역할로 나옵니다. 캐서린 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