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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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의미한 삶. 그러나 나는 이 생애 속에서 축제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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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완전판) - 할로 저택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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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첫 작품으로부터 26년이 흐른 뒤이니, 크리스티의 원숙함이 무르익었을 때의 작품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젊은 시절에는 아이디어와 패기가 돋보이고, 나이가 들수록 노련함과 교묘함이 엿보이는데, 이건 크리스티 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들의 비슷한 경로일 것이고, 작가뿐 아니라 어느 분야의 예술가든, 아니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꿔 말한다면, 초기 소설의 경우 누가 범인인지 참 알기 어려운데, 후기로 갈 수록 범인이 누구인지는 생각보다 빨리 눈치를 채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혹은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그것도 전자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에는 추리 소설의 작가로서 독자에게 지키기 위한 예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추리 소설의 완결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어떻게'가 중요한 것이지, 사실 크리스티가 작가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왜'의 문제라는 것이다. 

 

수영장. 무대 장치. 연극 무대.

누가? 누구를 위해서?

터음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에르퀼 푸아로 자신을 위해셔였다고 의심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곧 아주 불쾌한 장난으로 여겼지만.

여전히 불쾌한 일이긴 했지만....... 장난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푸아로는 고개를 저었다. 알 수가 없었다. 조금도.

푸아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공무원 헨리 경, 도무지 종잡을 수 없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레이디 앵커텔. 자기 자신보다 존 크리스토를 더 사랑한 헨리에타 세이버네이크. 점잖고 소극적인 에드워드 앵커텔. 까무잡잡한 피부에 활달한 미지 하드캐슬. 손에 권총을 쥔 게르다 크리스토의 멍하고 당황한 얼굴. 사춘기 특유의 예민하고 적대적인 성격을 지닌 데이비드 앵커텔.

이들 모두가 법의 그물에 걸려 있다. 이 모든 사라들이 갑작스런 죽음의 여파로 한데 묶여 있었다. 이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비극과 의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성격들과 감정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딘가에는 진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에르퀼 푸아로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탐구보다 더 매력적인 단 한 가지는, 바로 진실에 대한 추구였다.

푸아로는 존 크리스토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 크리스토가 있다. 그에게는 순종적인 아내 게르다가 있고, 정부인 조각가 헨리에타가 있으며 15년전 헤어진 첫사랑인 배우 베로니카가 있다. 세 여자가 동시에 한 저택에 머물렀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정황상 아내가 가장 유력하지만, 또 다른 증거들이 등장하며 아내는 용의자에서 벗어난다.

크리스티는 첫번쨰 결혼을 남편의 외도로 끝냈고, 두번째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으나 그것은 대외적인 것일뿐, 두번째 남편의 외도로도 마음 고생을 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크리스티가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나온 흔적이 아닐까 싶다. 추리 소설만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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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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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는 선생님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어떤 사건을 맡으셨는지, 그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요. 선생님께서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시죠? 심리학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리적인 것들....... 그러니까 담배꽁초와 발자국, 유리조각은 사라져 버리죠. 더 이상은 그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사건의 모든 증거들을 살펴볼 수 있고, 어저면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모두들 아직까지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의자에 앉아 생각해 보실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으시겠죠."

 

20대 초반의 미모의 여성이 푸아로를 찾아온다. 유명한 화가의 딸로, 다섯 살에 사망한 부모의 유산을 최근 상속받았고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이다. 걱정거리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푸아로를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여성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16년 전, 아버지를 독살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1년 후 감옥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한다. 사망하기 전 어머니가 딸에게 남긴 편지에 자신이 결백하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재판까지 완료된 사건인데다가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점에서 <누명>이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는 크리스티의 어떤 탐정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미 목격자에 의해 알리바이가 입증된 후,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은, 사실 의뢰를 받은 푸아로조차 의뢰인의 어머니가 과연 무죄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 푸아로는 탐문을 시작한다. 탐문의 내용은 목차만 살펴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장 : 칼라 레마챈트

 

제1부

 

피고 측 변호사

검사

젊은 변호사

늙은 변호사

경찰 총경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머물렀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 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꿀꿀꿀' 울었네

 

제2부

 

필립 블레이크의 이야기

메러디스 블레이크의 이야기

레이디 디티셤의 이야기

세실리아 윌리엄스의 이야기

안젤라 워런의 이야기

 

제3부

 

결론

푸아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다

사건의 재구성

진실

결론

 

칼라 레마챈트는 본명이 캐롤라인 크레일로, 죽은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비운의 사건 이후로 캐나다로 건너가 삼촌과 지내며 이름까지 바꾼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푸아로는 당시 재판의 변호사 몬태규 디플리치를 제일 먼저 만난다. 검사였던 험프리 루돌프는 사망했기에, 후임인 포그 검사를 그 다음에 만나고, 그 다음에 젊은 변호사 조지 메이휴를 만난다. 메이휴의 아버지 역시 변호사로, 동료이자 법정에서 꽤 승률이 높았던 디플리치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것이다. 현재는 고인이 되었기에 아들을 대신 만났지만,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아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대신 크레일 가 전속으로 일하고 있던 변호사로, 지금은 은퇴한 아버지의 지인 조너선을 만날 것을 추천한다. 조너선이 운영하던 법률 사무소는 한 번도 범죄 소송을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메이휴 변호사에게 일임했고, 메이휴 변호사는 디플리치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것이다. 디플리치의 변론은 훌륭했으나, 정작 용의자였던 캐롤라인이 재판 내내 마치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패배주의자적 태도를 보였고, 배심원들의 동정을 사는데 실패하여 결국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그렇게 늙은 변호사와의 만남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푸아로는 퇴직한 경찰 총경인 헤일을 만난다.

 

용의자는 총 다섯 명. 용의자 이전에 당시 사건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 있던 사람을 먼저 다섯 명 만나는데 그 다섯 명은 직접적으로 사건과 연관이 없는 사람도 있으므로 일부러 숫자를 맞췄다는 느낌이 든다. 용의자의 딸이 등장하며 사건이 시작되고, 당시 사건을 가장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용의자를 제외한 다섯 명과, 용의자 다섯 명, 그리고 마지막의 푸아로의 마무리. 1-5-5-1 의 대형. 수미상관의 구조인 것 같기도 하고, 축구의 포지션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수학적으로 대칭을 이루는데, 읽어가는 내내 하나하나 블럭을 쌓아서 거대한 건축물이나 선박의 모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블럭이 쌓이면, 왠만한 충격에는 분리되거나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며, 모든 낱개의 블럭은 딱딱 아귀가 맞지 않는가.

 

푸아로는 이어서 용의자 다섯 명을 차례로 만나러 간다. 재미있는 것이, 용의자에 대한 설명을 초반에 디플리치로부터 들으면서, 푸아로는 마더 구스의 노래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마더 구스의 노래란, 영어권 국가에서 민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로,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 속담, 술집이나 병영에서 부르는 노래, 행상인이 외치는 소리, 발라드의 단편, 고대 의식에서 기도할 때 부르던 노래등이 전부 포함되는 것이다. 내용이 잔인한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tongue twist라고 해서, 일부러 의미 없는 단어를 운율만 맞추고 단어를 적절히 배열하여 어린 아이들이 낱말을 빨리 익힐 수 있는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 마더 구스의 노래가 등장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소설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이 있다. 나는 이 두 편에 나온 마더 구스의 노래를 보고 처음에는 크리스티가 온전히 창작해낸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널리 불리던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섬에 모인 사람과 노래 속 병정은 똑같이 열 명이며, <쥐덫>의 눈 먼 쥐는 세 마리로, 역시 소설 속 특정 상황의 세 명의 인물과 맞아떨어진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 원래 존재하던 마더 구스의 노래와 이 책 속 다섯 용의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살인 양상이 정확히 마더 구스의 노래와 일치했던 것처럼, 이 소설도 용의자 다섯 명의 캐릭터가 마더 구스의 노래 속 아기 돼지의 캐릭터와 일치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다섯 마리 아기 돼지>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다섯 명이 있었다고? 어떤 사람들인가?"

"음, 먼저 필립 블레이크. 그 사람은 크레일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지. 사건 당시에 그 집에 머무르고 있었어. 지금도 살아 있고 가끔씩 골프장에서 마주치곤 한다네. 세인트 조지 힐에 살고, 주식 중개인이야. 주식 투자를 해서 재미 좀 본 후 꽤 성공해서 부유하게 살고 있어."

"그렇군. 다음은 누구지?"

"그 다음은 블레이크의 형이야.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지. 집에만 처박혀 있는 그런 사람이야."

순간 푸아로의 머릿속에 노래 가락이 떠올랐다. 그는 억누르려 했다. 항상 동요 가락이나 떠올리고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최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동요 가락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도 그 노래 가락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있네.......'

푸아로는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집에만 있었다고?"

"그런 사람이었어. 이것저것 약이랑 약초를 다루는....... 약사처럼 말이야. 그게 그 사람 취미였어.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문학가랑 똑같은 이름이었는데....... 아, 생각났어. 메러디스, 메러디스 블레이크. 아직 살아 있는지 어쩐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 모든 문제의 원인인 엘사 그리어야."

"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

푸아로가 중얼거렸다.

디플리치는 푸아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아주 부유한 여자긴 하지. 수완이 좋아서 그 사건 이래로 남편을 세 번이나 갈아 치우면서 이혼 법정을 맘껏 들락거렸어. 그래도 매번 더 나은 상대를 고르긴 하더군. 레이디 디티셤이 현재 그녀의 이름이야. 태틀러 지(영국 귀족 사회 소식지-옮긴이) 아무 거나 펼쳐봐도 그 이름을 발결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한 명은 가정교사야.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꼼꼼하고 유능한 여자였지. 톰슨, 존스,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캐롤라인 크레일의 배다른 여동생이었지. 그 때가 열다섯 살 정도였을 거야. 이젠 유명 인사가 됐어. 뭘 발굴하고 먼 오지로 탐험도 떠난다던데....... 그래 워런, 이름이 워런이었어. 안젤라 워런, 요즘 보기 드문 대단한 아가씨야.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네."

"그렇다면 꿀꿀거리며 우는 작은 돼지는 아니겠군?"

몬태규 디플리치 경은 푸아로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곤 냉담하게 대꾸했다.

"자기 외모 때문에 꿀꿀거리며 울었을지도 모르지! 자네도 알다시피 그 아가씨 외모가 영 볼품없잖아. 얼굴 한 쪽에 길게 흉터가 졌으니. 그 아가씨는....... 아닐세, 자네가 직접 만나보는 게 낫겠지."

 

노래의 순서대로, 용의자를 차례 차례 만나며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푸아로는 당시의 일을 종이로 적어 자신에게 줄 것을 부탁한다. 다섯 명의 사람으로부터 푸아로에게 도착한 다섯 통의 편지. 그리고 푸아로는 다시 다섯 명을 차례 차례 찾아가 각각 하나씩 총 다섯 개의 질문을 던진다.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사실, 그리고 서로 간에 어긋나는 기억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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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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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책들이에요?"

터펜스는 책을 한 권 집어 들며 물었다.

"『바스커빌 가문이 개』....... 아, 이 책은 다음에 한번 더 읽어봐야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

토미가 조심스럽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매일 30분간 이 분야의 대가들을 만난다고나 해야 할까. 터펜스, 아무래도 우리는 이 방면에서 아직 아마추어야. 하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라도 소위 말하는 '기술'을 배워둬서 나쁠 건 없겠지. 이 책들은 모두 이 분야의 거장들이 쓴 추리 소설이야. 나는 여러 방식을 시험해보고 그 결과를 서로 비교해 볼 생각이야."

"흠....... 저는 이 탐정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지 종종 궁금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손다이크 박사(영국의 추리작가 오스틴 프리먼이 만들어낸 법의학자 탐정-옮긴이) 흉내를 내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의학적 지식도 없는데다 법률 지식도 그저 그렇고, 과학에 강한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주 멋진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으니까 그것으로 발자국 같을 걸 찍어 사진으로 확대해 볼 생각이야. 이제 몬 아미(친구), 자네의 작은 회색 뇌세포를 사용해 보라고. 저걸 보고 뭐 떠오르는 거 없어?"

그는 책장의 맨 아래쪽 선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최신형 실내복과 터키제 슬리퍼, 그리고 바이올린이 놓여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셜록 홈즈 흉내를 내봤지."

토미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활로 아무렇게나 줄을 켜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터펜스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냈다.

 

<비밀 결사>의 토미와 터펜스가 부부의 연을 맺은지 6년이 지났다. 첩보기관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토미와, 집안일에만 열중하는 터펜스는 행복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정보부의 옛 '대장' 카터의 제안으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편 비밀 작전을 돕게 된다. 위에 인용한 부분처럼, 젊은 부부는 수많은 소설 속 탐정들을 모방하는데, 거의 장마다 새로운 탐정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 부분이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 당대의 모든 추리 소설을 크리스티가 전부 섭렵했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애 80여편의 소설을 써냈다는 것은 엄청난 양인데, 그 수많은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파트의 요정

카터의 방문. 테오도르 블런트라는 이름으로 국제 탐정 사무소 운영 계획을 세우다. 카터의 지시는 러시아 우표가 붙은 파란색 편지를 찾으라는 것. 몇 해 전 이 나라로 망명한 아내를 찾으려는 어떤 육류 도매상의 편지로 우표에다 물기를 적시면 16이라는 숫자가 보인다고. 또 누군가 사무소를 찾아와 16이라는 숫자를 말하면 곧바로 알리라는 것.


차 한 잔

우유부단한 청년 세인트 빈센트. 사무소의 홍보와 함께 두 남녀를 이어주는 터펜스의 재치.


사라진 분홍 진주

여러 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벽을 의심받는 여사. 그리고 하녀. 비누를 반으로 잘라 안을 도려내고 보석을 넣은 다음 뜨거운 물로 접합하여 꺠끗이 봉하는 고전적인 수법.


불길한 고객

러시아 우표가 붙은 파란색 편지 봉투의 발견. 그 직후 등장한 수상한 고객.
 

킹을 조심할 것

'나는 하트 3에 걸겠다. 12점을 딴다. 스페이드 에이스. 킹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

신문지로 만든 옷으로 피살자는 자신을 찌른 사람을 오해하고 잘못된 다잉 메시지를 남긴 것.
 

사라진 여자

살을 빼기 위해 잠적까지 해버린 여자.
 

장님 놀이

아내를 잃어버린 육류 도매상의 등장. 물론 이 모든 것은 암호화된 내용이다. 제 분을 못 이겨 감전사한 가짜 공작.
 

안개 속의 남자

순경도 똑같은 인간. 사랑도 증오도 결혼도 하는.
 

지폐 위조단을 검거하라

출처를 알지 못하는 돈을 쓰고 다니는 레이들로 부부. 아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위조지폐인 것은 확인하였으나 공급처를 알지 못한다. 아내의 추종자인 행크 라이더는 단순하지만 굉장한 미국 부자.
 

서닝데일 사건

마치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 <골프장 살인 사건>이 연상되는 소설. 그 골프장에 가본 적이 있던 토미의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점심 식사 도중에 바로 해결.
 

죽음이 깃든 집

의뢰인이 사망해버린다. 젊고 미인이며 최근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은 상속인으로 독살 위험을 가까스로 넘겼지만 의뢰한 날 티타임에 샌드위치를 먹은 모든 사람이 사망한다. 단 한 명만 빼고. 그녀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있다.
 

완벽한 알리바이

매력적인 여성과의 내기로 찾아온 청년. 그녀가 제시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뒤집으면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한 여성. 결론은? 쌍둥이!
 

목사의 딸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숙모로부터 집과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인. 알고보니 재산은 보잘것 없었고, 하숙을 치면서 생활비를 그럭저럭 벌어들이던 중, 집에서 폴터가이스트(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는 일, 혹은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가 일어나고 연달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레드 하우스

누가 복음 11장 9절,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암호를 풀고 발견한 금화와 진주. 이제 부자가 된 목사의 딸은 알고 보니 터펜스 아버지의 목사보로 일하던 사람의 딸이었다.
 

대사의 구두

똑같은 가방, 똑같은 이니셜. 잠깐 동안 미국 대사와 상원 의원의 가방이 바뀌었으나 정작 나중에 만난 의원은 애초에 그런 가방은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사의 가방을 왜 몇 시간만 손에 넣으려 했을까? 사실은 원래 가지고 있던 가방을 안전히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겠지. 외교관의 짐은 세관에서 검사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부피가 크지 않은 물건을 밀수하기 위해서? 목욕 소금이 담긴 깡통에 숨어 있는 하얀 가루는 코카인이었다.


16호였던 사나이

러시아 태생으로 영어를 비롯한 6개 국어에 아주 능통한 변장술의 대가. 소련에서 보낸 특수 요원 16호. 대단히 비상한 이 남자의 체포와 함께 터펜스의 임신으로 젊은 부부의 활약의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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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 -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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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판사 쪽의 책 소개를 보자.

 

호화 침대열차 블루 트레인이 니스에 도착하고, 승무원은 낮잠을 자는 손님을 깨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여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녀는 얼굴을 얻어맞아 짓이겨진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한편 희생자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 중 세계 최대의 루비로 유명한 '불의 심장'이 도난당한 사실이 발견된다.

마침 그 열차에 타고 있던 에르퀼 푸아로는, 살인 용의자로 아내와 불화가 있었던 남편이 체포되는 광경을 보고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살인자가 타고 있을 것이 분명한 푸른 열차에 다시 몸을 싣는다.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여기까지만 보고도 다음의 추리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얼굴을 얻어맞아 짓이겨졌다는 것은 피해자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며, 죽은 여인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요즘 같으면 전혀 쓸 수 없는 트릭이다. DNA 검사로 간단히 해결될테니까.

 

둘째, 살인 동기는 크게 두 가지. 희생자가 가지고 있던 세계 최대의 루비와 불행한 결혼 생활. 루비를 노리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며 살인을 저지른 자와 루비를 훔친 자는 전혀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것. 즉, 독립된 두 개의 사건이 합쳐졌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셋째,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토록 잔인하고 대담하며 철두철미한 범인이라면,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람이 아니라 평생 범죄에 몸을 담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년 동안 기다릴 줄 아는, 그런 거물이라면 절대 사랑 같은 것 때문에 일을 그르칠 리가 없다는 것.

 

이 세 가지를 완벽히 배반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물론 진범의 정체와 공범의 정체 또한 사실 초반에 눈치채기가 쉽다. 크리스티가 깔아놓은 복선 때문이 아니라, 등장 인물을 묘사하는 사소한 정보 때문이다. 굳이 그런 표현은 빼놓아도 좋았을 텐데, 독자에 대한 친절함일 수도 있고, 작가의 자만일 수도 있겠다. 훌륭한 추리 소설이라면 이른바 독자와의 '밀당'이 중요한데, 1928년에 나온 이 작품은 크리스티의 8번째 장편 소설로, 아마 아직 노련함을 갖추지 못한 작가의 작은 실책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진범과 공범을 눈치챈 후에도, 그들이 이 일을 벌인 이유를 정확히 알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건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연이어서 추리 소설을 읽다 보니 내 머리가 다 어지러운 요즘이다. 시간가는 것도 모르는 채 어딘가에 몰입하게 하는 것에는 추리 소설만한 것이 없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것으로 보이지만, 무작정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느껴지는 때가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추리 소설은 훌륭한 해결책이자, 좋은 벗이겠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떄가 있다. 하루 걸러 살인을 보다 보면 그것이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사실, 실제 삶은 책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할 수 있는데도. 그러고 있던 차에 책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기차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무슈 푸아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죽어 가는데도 쉬지 않고 변함없이 달리잖아요. 웃기는 얘기죠? 하지만 탐정님은 제 말뜻을 아실 거예요."

"그럼요, 알다마다요. 레녹스 양, 사람의 인생도 기차하고 똑같답니다. 쉬지 않고 흘러가죠. 또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겁니다."

"왜요?"

"결국 기차도 종착역에서 여행을 마치니까요. 왜, 영국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여행은 끝난다.'"

레녹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아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젊습니다. 그것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차를 믿으세요, 레녹스 양. 그것을 이끄시는 분은 자비로운 하느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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