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 -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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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판사 쪽의 책 소개를 보자.

 

호화 침대열차 블루 트레인이 니스에 도착하고, 승무원은 낮잠을 자는 손님을 깨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여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녀는 얼굴을 얻어맞아 짓이겨진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한편 희생자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 중 세계 최대의 루비로 유명한 '불의 심장'이 도난당한 사실이 발견된다.

마침 그 열차에 타고 있던 에르퀼 푸아로는, 살인 용의자로 아내와 불화가 있었던 남편이 체포되는 광경을 보고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살인자가 타고 있을 것이 분명한 푸른 열차에 다시 몸을 싣는다.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여기까지만 보고도 다음의 추리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얼굴을 얻어맞아 짓이겨졌다는 것은 피해자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며, 죽은 여인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요즘 같으면 전혀 쓸 수 없는 트릭이다. DNA 검사로 간단히 해결될테니까.

 

둘째, 살인 동기는 크게 두 가지. 희생자가 가지고 있던 세계 최대의 루비와 불행한 결혼 생활. 루비를 노리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며 살인을 저지른 자와 루비를 훔친 자는 전혀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것. 즉, 독립된 두 개의 사건이 합쳐졌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셋째,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토록 잔인하고 대담하며 철두철미한 범인이라면,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람이 아니라 평생 범죄에 몸을 담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년 동안 기다릴 줄 아는, 그런 거물이라면 절대 사랑 같은 것 때문에 일을 그르칠 리가 없다는 것.

 

이 세 가지를 완벽히 배반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물론 진범의 정체와 공범의 정체 또한 사실 초반에 눈치채기가 쉽다. 크리스티가 깔아놓은 복선 때문이 아니라, 등장 인물을 묘사하는 사소한 정보 때문이다. 굳이 그런 표현은 빼놓아도 좋았을 텐데, 독자에 대한 친절함일 수도 있고, 작가의 자만일 수도 있겠다. 훌륭한 추리 소설이라면 이른바 독자와의 '밀당'이 중요한데, 1928년에 나온 이 작품은 크리스티의 8번째 장편 소설로, 아마 아직 노련함을 갖추지 못한 작가의 작은 실책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진범과 공범을 눈치챈 후에도, 그들이 이 일을 벌인 이유를 정확히 알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건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연이어서 추리 소설을 읽다 보니 내 머리가 다 어지러운 요즘이다. 시간가는 것도 모르는 채 어딘가에 몰입하게 하는 것에는 추리 소설만한 것이 없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것으로 보이지만, 무작정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느껴지는 때가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추리 소설은 훌륭한 해결책이자, 좋은 벗이겠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떄가 있다. 하루 걸러 살인을 보다 보면 그것이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사실, 실제 삶은 책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할 수 있는데도. 그러고 있던 차에 책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기차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무슈 푸아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죽어 가는데도 쉬지 않고 변함없이 달리잖아요. 웃기는 얘기죠? 하지만 탐정님은 제 말뜻을 아실 거예요."

"그럼요, 알다마다요. 레녹스 양, 사람의 인생도 기차하고 똑같답니다. 쉬지 않고 흘러가죠. 또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겁니다."

"왜요?"

"결국 기차도 종착역에서 여행을 마치니까요. 왜, 영국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여행은 끝난다.'"

레녹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아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젊습니다. 그것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차를 믿으세요, 레녹스 양. 그것을 이끄시는 분은 자비로운 하느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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