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I'll hold you in my heart.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울기 좋은 방>의 저자 용윤선의 블로그로 들어가니 이사오 사사키의 이 음악이 배경 음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닮았다. 책은 저자를 닮았을 것이니, 저자는 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데, 아직 흘러넘치지는 않아, 누군가 여기에 마중물 한 그릇만 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혹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이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자꾸 긴장감만 고조되어 가고 얇아지는 고무풍선의 두께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연약해져 가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핀 하나로 톡 찔러서 이 바람을 전부 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푸쉬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편안히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울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며칠 째 지지부진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마중물이 필요해. 작은 핀이 필요해.

 

용윤선이라는 사람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블로그를 훑어보니 카페를 경영하며 커피 수업도 하는 바리스타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블로그에서도, 책에서도 커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재생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연한 회색의 책의 속지도, 신명조체같지만 정확히 알 바 없는 글씨체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는 사진도, 전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적당히 바래져가며, 손때가 묻어가며, 낡아가는 책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런 책은 소장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대체불가능해질 것 같다.

 

하나, 아침이 된다
:멕시코 Mexico Altura Orizaba
둘, 그 사람 손을 본다
:콜롬비아 Colombia Narino Supremo
셋, 고맙다고 말한다
:인디아 몬순 India Monsooned Malabar AA
넷, 버지니아 슬림
:과테말라 Guatemala Antigua SHB
다섯, 왜 또 그러니?
:브라질 이파네마 Brazil Ipanema Euro, Natural
여섯, 내 남자거든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Ethiopia Sidamo Guji, Natural
일곱, 읽지 못하였고 쓰지 못하였다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 Sigri AA
여덟, 우리는 內海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Ice Americano

 

아홉, 사과해라, 나를 사랑한 것을
:케냐 피베리 Kenya Peaberry

내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월해질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 같은 것이다.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어머니라는 자리의 몫 절반쯤은 해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에 대해서 "사랑 표현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엄마"라고 일축한다. 한번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찾아갔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나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검사가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도 학교에 가셨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그렇게 사랑한 것을 사과하라고.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이 죄라는 노랫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상담선생님 말씀은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딸아이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법으로만 사랑했으니 사과하라는 뜻이다. 나는 심리적 통찰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심리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교육받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부족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어 귀한 생명을 우울하게 살게 했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사람은 왜 부족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던데.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다리를 뻗고 앉아서 날이 저물 때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쳐본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밥을 차려주고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준다. 딸아이는 케냐 피베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앉아 책을 읽는다. 마치 하루종일 읽고 있었던 책처럼 능숙하게 중간부터 펼쳐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였나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딸아이를 향해 돌아앉지 못한다.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후, 다시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 딸아이를 불러 마주 앉는다. 그리고 나는 사과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열, 형
:케냐 AA Kenya Nyeri AA
열하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코스타리카 타라주 Costarica Tarrazu
열둘,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네
:에티오피아 아리차 Ethiopia Aricha
열셋, 에스프레소 가르쳐줄래?
:에스프레소 Espresso


열넷,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이다
:탄자니아 AA Tanzania Kibo AA

삼 년을 만나고 이십 년을 만나고 아니 평생을 만나도 사람은 모른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말없이 떠난 사람이 있었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사람을 믿지 않는 모순의 자기애이기도 할 테지만 모른 채 사는 것이 상처를 덜 주고받는 생존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와 턱을 괴고 웃는다. 다시는 가슴에 나무를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고 바람을 일으킨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열다섯, 잘 지내세요
:르완다 Rwanda Bourbon
열여섯, 커피하는 사람
:에티오피아 코케 Ethiopia Koke, Honey

열일곱, 횡단보도에서 만나다
:하우스 블렌드 House Blend

몇 년 후 나는 그와 결혼했다. 건축학과에 다닌다는 그 사람에게 "우리 학교에 건축학과가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나는 커피집에서 하우스 블렌드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메뉴의 가장 위에 있는 것, 1번을 주문한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렇다. 그런 것부터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헌신은커녕 결혼해서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매 순간 고뇌에 빠져 있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하면 네가 어머니처럼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은 착각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결혼하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처럼 변할 줄 알았다. 아니 세상 모든 남자가 우리 아버지 같은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방을 닦아주고, 일찍 퇴근하여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갈치 살을 밥 위에 놓아주는....... 세상 모든 남자가 그런 줄 알았다. 조금 더 함께 살면 이십 년을 살게 될 것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쯤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은희라는 교육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시간은 지루한데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사람과 나는 가끔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데, 몇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아마 십육 년 정도 함께 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너와 결혼한 것은 내 운명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밤하늘에 큰 달이 침묵을 지키며 빛만 내보내고 있었다. 포기와 체념 같은 것이 맑은 소주와 뒤섞여서 목구멍으로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의 혈관으로 한 사람이 저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운명인가...... 탄식하던 적도 있다. 이제 헤아리지 않는다. 그만 헤아리겠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착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 없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깨가 넓고 얼굴이 기다랗다. 머리카락만 회색이 되었다. 잘 웃던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뱀눈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다 괜찮다.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면 헤어지는 일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고 살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손해와 이득이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관계, 결국 하나일 텐데 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분명 둘인데 하나라고 우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에 몽상가이며 환상과 착란 혹은 착각에 잘 빠지는 기질을 갖고 있는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갈 데도 없냐고 다그치면 생뚱맞은 얼굴로 어딜 가냐고 대답한다. 이제는 푸짐하게 나온 그의 배 위에 과민한 내 머리를 기대고 밤새 잠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는 커피집의 하우스 블렌드 같은,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든든한 묵직함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그 사람의 큰 손을 가만히 잡아볼 때가 있다. 손톱 모양새를 물끄러미 본다. 소년의 손톱 모양과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길을 건너던 횡단보도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여덟, 꿈
:카푸치노 Cappuccino
열아홉, 붉은 양파와 푸른 오이
:아침 커피 Morning Coffee
스물, 아침 산책
:에콰도르 Ecuador Loja SHB
스물하나, 차를 끓일까요?
:모카 Mocha
스물둘, 푸안루에서 버스를 타면
:샤커레토 Cafe Shakerrato
스물셋, 눈빛에도 표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Indonesia Java
스물넷, 내가 못 살아
:도미니카 Dominica Santo Domingo
스물다섯, 사랑, 그 허망한 푸닥거리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fe
스물여섯, 타고나지 못했으면 노력을 해야죠
:운남성 云南省
스물일곱, 부디 그 말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스물여덟, 나는 코시체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예멘 Yemen Mocha Mattari
스물아홉, 힘들었어요?
:민트 커피 Mint Coffee
서른, 사랑하다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이름
:아포가토 Affogato
서른하나, 아름답게 살기로 하였다
:룽고 Lungo

서른둘, 고백하지 마라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고백은 비겁한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밀이니 혼자만 알고 있어달라고 한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이 갖고 가야지. 털어놓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가벼워지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폭로하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어디다가 감히 고백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쓰는가.

내가 말을 잘 들어주게 생긴 모양인지 아니면 넉넉한 몸과 보름달 같은 얼굴이 후덕하게 보이는지, 종종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고백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들이다. 즉 제3자의 이야기들이다. 그게 무슨 고백이냔 말이다. 고백은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기 떄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눈의 깜박임, 손짓, 발짓, 숨소리, 머리카락...... 차라리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인 사람의 일생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른셋, 며칠 전에 말을 들었다
:파나마 게이샤 Panama Geisha
서른넷, 알지 못하는 형편
:아메리카노 Americano
서른다섯,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 미칠레 Ethiopia Michille
서른여섯, 기차가 타고 싶어서
:아이리시 커피 Irish Coffee
서른일곱, 죽어도 나는 못하겠다
:커피 루왁 Kopi Luwak
서른여덟, 동거
:도피오 Doppio
서른아홉, 굴라쉬 수프
:브랜디 커피 Brandy Coffee
마흔, 호수는 낙엽만 떨어져도 상처받죠
:우간다 Uganda Bugisu AA
마흔하나, 이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페루 찬차마요 Peru Chanchamayo
마흔둘, 섬유유연제와 그 남자에 대한 기억
:하와이안 코나 Hawaiian Kona Extra Fancy
마흔셋, 당신
:네팔 굴미 Nepal Gulmi
마흔넷, 벌을 서고 싶어서
:도이창 Doi Chang
마흔다섯, 우리, 절에 갈래요?
:온두라스 Honduras Santa Barbara
마흔여섯, 걱정 마세요
:카페오레 Cafe au Lait
마흔일곱, 그 사람을 제게 주세요
:에티오피아 하라 Ethiopia Harrar Longberry
마흔여덟,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페루 오가닉 Peru Organic
마흔아홉, 북쪽에 방이 있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블루문 Indonesia Blue Moon
쉰, 오리 마을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Brazil Santo Antonio
쉰하나, 당신이 잘 보이는 자리
:니카라과 Nicaragua, Honey
쉰둘, 지금을 쓰면 된다
:코스타리카 호르헤 Costarica Jorge
쉰셋, 적당했다
:파나마 보큐테 Panama Boquete

쉰넷, 등을 보며 살았다
:콜롬비아 마라고지페 Colombia Maragogype

길을 걸을 때마다, 두 분의 등을 기억했다. 굽어가는 등을 생각하면서 가던 길에서 멈추기도 했으며 좀더 걸아가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니 두 분께서 두려워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나 그 길을 걸어들어가고 싶어 미쳐 돌아갈 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등을 생각했다. 더 굽어질 등 때문이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나에게 당부했고, 그 당부가 결국 내 자신을 가두었으나 두 분의 등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지금을 산다. 두 번 다시 두 분의 등이 나로 인해서 굽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

그런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쯤, 나를 생각하느라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부모란 자식이 허물어뜨려도 일어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았어도 어쩌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한참 후에 알았다.


쉰다섯, 혼자 먹어보기
:에티오피아 코체르 Ethiopia Kochere
쉰여섯, 일어서는 중이에요
:케냐 키아와무루루 Kenya Kiawamururu AA
쉰일곱, 이 냄새일 거예요
:인디아 아티칸 India Attikan
쉰여덟, 호텔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Earl Grey Latte Macchiato
쉰아홉, 바람언덕 가는 길
:블랙커피 Black Coffee
예순, 무조건
:가요 마운틴 Gayo Mountain
예순하나,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예멘 모카 Yemen Mocha Sanani
예순둘, 목적이 없다
:인디아 아라쿠 India Araku
예순셋, 살고 싶은 사람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Ethiopia Kochere Peaberry

 

예순넷, 가방 들어주는 사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Papua New Guinea Marawaka Blue Mountain

사람들이 말한다. 커피가 다 같은 맛이지 커피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것은 커피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작정한 후부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커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에 빠질 떄가 있다. 얼마 전에 상담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분석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이해나 위로보다는 심리학이나 그와 연계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밥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구경꾼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기에 내게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당신이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깊고 기나긴 숙고 없이 한마디의 말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피상담자와 그 주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진정한 상담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게 당신 연구를 위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담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상담을 해준다는 행위를 자각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은 결국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치는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게 물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나의 말은 그를 며칠 밤잠 못 이루게 할 거싱고 결국 그를 위한 약이 되기도 할 것인데, 이 사람에게 왜 나는 넘치고 있는가. 대강 적당히 바라보다 헤어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붉은 얼굴은 터질 듯하였다. 그 사람은 큰 손짓을 하면서 목소리 높여 밝고 명랑하게 내게 질문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나는 성인이고 중간에 나와 그 사람을 소개해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지인도 있었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나와서 나에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그 사람은 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야 내 가방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두 손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싫었다. 당신이 내 가방을 그렇게 들고 있으면, 갑자기 진정성 있는 상담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조금 편할 뿐이겠지.......


예순다섯, 북창동
:세상의 모든 커피 All the coffee in the world
예순여섯, 과메기 브런치
:더치커피 Dutch Coffee
예순일곱, 거닐다
:브룬디 Burundi Mpanga
예순여덟, 끝까지 감싸안겠다
:에티오피아 첼바 Ethiopia Chelba
예순아홉,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렵니?
:인도네시아 토라자 Indonesia Toraja
일흔, 오음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Guatemala Huehuetenango
일흔하나, 밀양
:에티오피아 이디도 Ethiopia Idido
일흔둘, 사이
:라테 그리고 모카 Cafe Latte and Cafe Mocha
일흔셋, 當身, 사로잡히다
:카페 콘파냐 Cafe Con Panna
일흔넷, 그냥 한번 살아보겠다
:핫 코코아 Hot Cocoa
일흔다섯, 하노이 보드카
:베트남 핀 드립 Vietnam Pin Drip
일흔여섯, 커피값은 제가 낼 테니
:파나마 게이샤 줄리엣 Panama Geisha Juliette

 

나중에 저 모든 커피를 마셔가며 각각의 해당하는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오겠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졌으니.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예순 넷에서 멈칫했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챕터의 일화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민함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일지언정, 그 칼날이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은 그냥 인간으로서 맞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몸에 차오르는 독기를 매번 발산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독기를 글쓰는 데에만 발휘하면 모를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분출하는 것을, 글쓴이의 과거 어린 시절과 사생활을 바탕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지, 너무 유아적인 태도 아닌가? 나에게는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보다, 하고 결론내리는 것은? 글 전체를 보면 저자는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시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시인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마저 끌어안고 대신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독자로서 나는, 스스로의 아픔을 유치하게 남에게 발산하며 거기에 대해 자신의 사생활로 합리화하는 사람의 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당 부분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부분을 본 순간 이 사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시가 필요하지, 누군가의 감정 표출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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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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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책 제목을 보고 나면 묘한 희망이 샘솟게 된다. 표지를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이 글귀. 본문 중 한 부분이며 편집자들로 하여금 책 제목에 영감을 주게 만든 본문의 한 부분을 책 바로 앞에 실어놓았다. 토닥 토닥, 위로를 해 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놀러와>에 출연한 그룹 백두산과 부활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나의 전설들은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며 카운터에 앉아서 기타를 연습하는 베이시스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음악 활동을 하는 드러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하긴, 요즘 누가 헤비메탈 음악을 듣나. 불러주는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기분 좋게 포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글쎄, 포기하지 않았어도 거머쥐긴 힘들었겠지만) 시간을 선택했다. 바쁘게 사는 대신 한가한 삶을 선택했다. 즐겁게 포기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부러울 게 없다.

 

이 부분이 참 좋았다. 흔히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저 돈을 벌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포기했다고 친구 관계를 희생했을 것이라고 독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배고픔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그 둘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은 신선했다. 보통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거나,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한심하다고 평가하며 인생의 어느 한 요소에만 특별히 집중하기 마련인데, 사실 인생이란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진리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므로 과도한 비판도 주제 넘는 칭찬도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과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생각났다.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타로의 책 『어른들(은, 이, 의) 문제야』에는 나처럼 산만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權이나 군軍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心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몇십 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누명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산만해도 괜찮다고, 산만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고미 타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잡생각'이라는 단어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잡생각하지 말라고, 공부에 집중할 때 잡생각하지 말라고. 부모님 말씀 덕에 나는 잡생각을 죄악시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덕에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가서 취직해서 밥 먹고 산다. 하지만 간혹, 그 어린 시절에 한없이 뻗어나갔던 잡생각을 가지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지 탓에 뿌리마저 뒤흔들린 어른이 되었을까. 비록 지금은 뿌리가 튼튼한 어른이 되었다만, 한번쯤 바람에 가지들이 휘둘리고 엉키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전부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사람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여겨진 적도 있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책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발명가 김씨'라는, 김중혁이 직접 그린 만화와 함께 이런 저런 발명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는데, "안전벨트를 꼭 매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의 목숨을 걱정해주는 걸까요? 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할까요? 가끔 안전벨트가 그려진 옷을 입어보고 싶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분명히 작가는 웃자고 쓴 말인지 확실히 알겠음에도 불구하고 죽자고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의 편식에 대해 옹호하면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다 큰 어른이 편식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렸을 때 편식하는 것은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공부를 잘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반장을 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저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그 주문, 어머니의 그 주문을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안 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부분들 때문에 이 책 전체의 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김중혁의 산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따스하며, 발랄하고, 살짝 살짝 발칙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좋다.

 

마지막으로 책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러스트가 압권이다. 책을 펼지면 두 페이지에 걸쳐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는 배경으로 본문은 흰색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괜히 뭉클해진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친구들과 저렇게 놀면 참 재미있겠다 싶다가도 텐트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늘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집에 들어와서 자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제가 밖에서 좀 많이 잤죠. 어머니), 지금은 그 말의 깊은 뜻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 어찌나 예민하신지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얘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자라."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긴 힘들었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우주에 나 혼자뿐이라는 기분이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역사가 없어지고 미래는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호들갑을 떠는 것이겠지만, 외로웠다.

스톡홀름의 한 호텔에 누워 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 스톡홀름 시내에서 가장 싼 호텔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고시원 정도의 크기였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잇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창피한 얘기지만, 그때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글쎄, 누가 죽인대?)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글쎄, 누가 돌아가지 못하게 한대?) 가족들도 만나고 떡볶이도 먹고 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주 작은 호텔, 그중에서도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의 코딱지만 한 침대에 누워서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캠핑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나처럼 유치한 마음이야 먹지 않겠지만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간섭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다음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하는 의지를 되새긴 후 돌아오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스톡홀름의 작은 호텔방에서 외로워했던 것처럼 지금 이시간 서울의 어딘가 작은 쪽방에서도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모두들 외로워하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울은, 도시는, 야생보다 더욱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 자,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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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주홍색 연구 |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탄생 150주년 기념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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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앞의 네 권이 단편을 수록하였고, 이 책에서는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 두 장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연속으로 장편을 두 편 연재한 후 단편을 연재했다. 이 두 소설은 현재 일어난 사건이 알고 보니 과거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까지 드리워진다'(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의미였던)는 구성이다. 물론,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전부 읽었음이 분명한 크리스티가 선배 작가에게 영향을 받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확실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다소 거친 면이 많다.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 매끈한 도자기라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랄까. 결혼으로 인해 콤비 관계가 종료되는 설정도 푸아로와 헤이스팅스의 관계와 동일하지만, 이후 푸아로가 다른 조력자와 함께 활동하거나, 헤이스팅스가 푸아로와 동행할 때마다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에 반해서, 왓슨의 결혼 이후에도 종종 홈즈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설명 없이 그려져 있어, 후대의 학자들은 왓슨이 사별했다거나, 별거했다거나, 이혼했다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는 형편이다. 또 베이커 221B에 살고 있는 홈즈가 그의 행동 반경을 영국 밖으로 확장시키지 않는 반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 푸아로는 영국은 물론이고 온 유럽과 아시아까지 돌아다니는 탐정이다. 셜록 홈즈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소설 자체의 오류는 눈감아주기에는 많은 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셜록 홈즈 소설들의 장점을 잘 문질러 더 빛나게 했고, 단점은 영리하게 제거하였다. 주석 달린 홈즈 시리즈는 분명히 재미있었지만, 크리스티 소설 속 완벽한 세계가 가끔 그립기도 했다.

 

 

주홍색 연구

『주홍색 연구』는 1887년판 《비턴의 크리스마스 연감》에 다른 희곡 작품 두 편, C. J. 해밀턴의 「네 잎 클로버」와 R. 앙드레의 「화약밥」(화약밥은 전시 징병된 신병을 뜻하는 말-옮긴이)과 함께 발표되었다. 『주홍색 연구』단행본은 1888년 7월 워드, 록앤드 컴퍼니에서 처음 발행했다. 미국 초판은 1890년 J. B. 리핀콧 컴퍼니에서 발행했다. 워드, 록 앤드 보든 출판사(당초 출판사의 후신)에서 발행한 1893년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행인 주석'이 추가되었다. "셜록 홈즈 씨가 대중에게 처음 소개되고, 그의 추리 방법이 묘사된 『주홍색 연구』가 그랬듯이, 코난 도일의 은사이자 셜록 홈즈의 모델인 의사 조지프 벨이 최근 《북맨》에 기고한 글 또한 《북맨》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자못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우리 발행인들은 생각했다. 환자를 다루는 의사 조지프 벨의 '직관력'은, 그의 제자였던 의사 코난 도일이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우리에게 말했듯이, "그저 경이로운" 것이었다. 아래 코난 도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알 만하군요.' 벨 선생님이 말했다. '당신은 술 때문에 아픈 겁니다. 코트 안주머니에 술병을 갖고 다닐 정도니 말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제화공시군.'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몸을 돌리고, 그 남자의 바지 무릎 안쪽이 닳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제화공이 무릎에 끼고 가죽을 두드리는 무릎돌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그건 제화공들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징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모습-뚜렷한 이목구비, 매부리코,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눈-은 줄곧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앉아서(그는 손재주가 아주 뛰어났다), 앞에 선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학생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친구처럼 아주 자상하고 정성스러웠다. 내가 학위를 받고 아프리카로 떠난 뒤에도, 은사의 탁월한 개성과 남다른 솜씨에 대한 깊은 인상을 한시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어느 날 갑자기 의학을 저버리고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덕분에 의사 코난 도일은 "의학을 저버리고 글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셜록 홈즈 씨는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어, 거의 공인이 되기에 이르렀으니, 의사 도일이 초기에 받은 교육과 훈련의 몇 가지 특징을 언급한 글, 곧 의사 도일이 면밀한 관찰을 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 의사 조지프 벨의 다음 글이 많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읽히기를 우리 발행인들은 바라 마지않는다. 의사 도일과 벨에게 감사드리며, 그 글의 게재를 허락해준 《북맨》의 편집자와 사주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의사 벨의 글은 이번 이야기 말미의 부록에 실려 있다.)


  머리말

오늘날 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셜로키언들도 『주홍색 연구』(1888)를 매혹적인 창세기로 여기게 되었다. 이 글에서 셜록 홈즈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베이커 스트리트에 살기 전의 왓슨을 잠깐 엿본 후, 셜록 홈즈의 '보즈웰'인 존 H. 왓슨 박사가 병원 실험실에서 홈즈를 처음 만나는 중요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발견했어! 내가 발견했어!" 이것이 홈즈의 첫말인데, 과연 홈즈다운 적절한 말이다). 두 사람은 하숙집을 같이 쓰기로 한다. 왓슨은 홈즈가 세계 유일의 자문탐정이라는 이색적인 작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이어 왓슨은 복수와 살인이라는 어두운 세계의 이야기에 휘말리게 된다. 홈즈의 뛰어난 탐정 활동에 대한 왓슨의 이야기는 '회상'을 중심으로, 익명의 작가가 1인칭 시점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는 브리검 영의 지도 아래 있던 유타 주의 모르몬교도들이 등장한다. 모르몬교도와 미국 서부의 역사에 대해 흡인력 있게 생생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왜곡된 견해가 드러나 있다.

왓슨을 처음 만났을 때 27세였던 청년 홈즈에 대한 이번 묘사와 다른 정전의 일반적인 묘사를 비교해보면,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홈즈라는 인물이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밀을 잘 털어놓지 않는 무거운 입, 보헤미안 기질, 경찰을 낮잡아 보는 태도 등이 이번 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한 홈즈의 마약 사용에 대해서는 암시만 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 악덕과 미덕을 여기서 일찌감치 독자에게 두루 선보이고 있다. 『주홍색 연구』초기 출판본은 저자에게 거의 돈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단편 시리즈를 발표해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제1부 전 육군 군의관 존 H. 왓슨 박사의 회고록 재판
    제1장 셜록 홈즈 씨
    제2장 추리의 과학
    제3장 로리스턴 가든 사건
    제4장 존 랜스의 증언
    제5장 광고를 보고 찾아온 손님
    제6장 토비아스 그레그슨 형사의 솜씨
    제7장 어둠 속의 빛

  제2부 성도들의 나라
    제1장 알칼리 대평원에서
    제2장 유타의 꽃
    제3장 존 페리어, 선지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제4장 목숨을 건 탈주
    제5장 복수의 천사
    제6장 의사 존 H. 왓슨의 회상 계속
    제7장 결론

  부록 「셜록 홈즈 씨」―의사 조지프 벨의 에세이


네 사람의 서명

『네 사람의 서명』은 1890년 2월 「네 사람의 서명, 그리고 숄토가의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리핀코츠 매거진》에 실렸다. 『네 사람의 서명』으로 출간된 것은 1890년 10월 영국의 스펜서 블래킷 출판사에 의해서였다. 미국판과 영국판 책들 중에는 저작권을 허가받은 책도 있고 해적판도 허다했다. 원본은 특정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서 손에 넣기 쉽지 않았던 터라 텍스트 변용 사례가 무수히 많았다. 뉴트와 릴리언 윌리엄스의 『주석 달린 '주석 달린 책'』은 주석이 소설의 가치를 전혀 떨어드리지 않는 대단히 유익한 서적이다.


  머리말

『주홍색 연구』의 신입 탐정 홈즈는 이제 잊어라. 『네 사람의 서명』(1890)에서 홈즈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수수께끼 같은 과거의 일로 고통 받던 미모의 의뢰인 메리 모스턴 양의 사건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고 깊이 빠져든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탐정 이야기인 『네 사람의 서명』에서 홈즈는 거의 모든 장면에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왓슨은 나름대로 인생의 장밋빛 순간을 맞이하여 홈즈와 함께하던 생활을 끝내게 되고, 베이커 스트리트에 홀로 남겨진 홈즈는 마약에 빠진다. 『주홍색 연구』사건이 해결된 지 7년, 홈즈는 그사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가 해결하고자 한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인도 폭동이라는 역사적 항쟁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험은 기묘한 난쟁이와 의족을 한 사나이, 믿음직한 개, 템스 강 아래로의 숨막히는 추격전 등 영화와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네 사람의 서명』결말 부분에서 범인이 털어놓는 살인과 강도, 배신과 복수의 뒷이야기에서는 영국 식민정책의 속국이었던 인도의 모습과 식민정책이 빅토리아 시대에 미친 영향이 잘 요약되어 있다.

  제1장 추리의 과학
  제2장 사건 진술
  제3장 해결책 모색
  제4장 대머리 남자의 이야기
  제5장 폰디체리 저택의 비극
  제6장 셜록 홈즈의 현장 조사
  제7장 통에 얽힌 일화
  제8장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
  제9장 끊어진 고리
  제10장 원주민의 최후
  제11장 아그라 보물 상자의 비밀
  제12장 조너선 스몰의 이상한 이야기

  부록 『네 사람의 서명』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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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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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문득, 번쩍 하고 스치는 생각은, 사실 대부분의 역사가 바로 그것 아니었느냐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생애의 상당 부분을 휴일에 관해서, 새로 구입한 그물침대에 관해서, 또는 길 건너편에 멈춰선 전차에서 내린 젊은 아가씨의 발목이 얼마나 예쁜지에 관해서 생각하며 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이런 것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같이 우연적인 것으로, 즉 진지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미주리 협약이나 장미전쟁에 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런 반면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하는 것, 재미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의 역사를 배우거나 또는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받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가?

(중략)

그리하여 나는 집 안을 한번 여행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그 각각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될 것이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가 될 것이고, 뭐, 그런 식이었다. 결국 나는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었다.

(중략)

집이란 놀라울 만큼 복잡다단한 일종의 보고였다.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뭔가를 발견하건, 뭔가를 만들건, 또는 뭔가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건 간에-이런저런 방식으로 결국 누군가의 집에서 끝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전쟁. 기근, 산업혁명, 계몽주의 등등. 이 모두는 누군가의 소파와 서랍장 속에 들어 있었으며, 누군가의 커튼 주름 속에, 누군가의 베개의 푹신한 부드러움 속에, 누군가의 벽에 칠해진 페인트 속에, 누군가의 배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속에 들어 있었다. 따라서 집 안 생활의 역사는 내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처럼 단순히 침대와 소파와 부엌 난로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혈병과 구아노와 에펠 탑과 빈대와 시체 도둑질을 비롯해서 지금껏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에 관한 역사였다. 결국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책의 서문 중 일부이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먼저 쓰고 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우주에 대해 논했지만, 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는 일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망원경을 가지고 이 세계에 대해 파노라마식 서술을 한다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현미경을 가지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만, 분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제목만 보아서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또한, 평소 가지고 있던 관심사나 기본 지식에 따라 재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각 장에 대한 재미도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독파한 이후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영국 하녀들의 이야기가 나온 제5장을 읽을 때 집중도가 높았고, 제9장 지하실에서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드윗 클린턴이 뉴욕 주를 관통하여 이리 호수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가리켜 '클린턴의 폴리(Clinton`s Folly)'라고 불렀다면서 "어리석음"이라는 뜻과 함께 "큰 돈을 들여서 만드는 쓸모없는 건축물"이라는 뜻이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 중 'Dead Man`s Folly'라는 소설이 있으며, 이 소설 또한 그 두 가지 의미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장 전체에 대한 재미가 올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요즘 셜록 홈즈를 읽고 있는데, 제10장 복도에서 미국의 벼락 부자들이 현금에 굶주린 유럽의 귀족들을 찾아내서 자기 딸을 그쪽으로 출가시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운 결혼이 유행을 넘어 증후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이 셜록 홈즈의 단편에 나와 있다. 시리즈 1권에서 다룬 『셜록 홈즈의 모험』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독신 귀족」에서 영국의 몰락한 귀족이 미국의 부유한 여성을 신부로 맞고 나서, 결혼식 후 실종된 신부를 찾아달라며 홈즈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석에서는 당시의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영국의 여성들이 신랑감을 미국 여성들에게 뻇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는 설명도 있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이 책은 꼼꼼하며, 알차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묘사는 생생하며, 지식은 풍부하고, 서술은 유려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러모로 딱 맞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이 책은 입문서로는 좋은 책이지만, 왠지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새롭게 업데이트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문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학설은 또 바뀔 것이기에. 재미로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고, 여기 나와 있는 상식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히 책 값 이상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

제1장 연도
제2장 배경
제3장 홀
제4장 부엌
제5장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제6장 두꺼비집
제7장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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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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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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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책의 시작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스토너는 주인공의 이름이며, 이 책은 스토너의 일대기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지만,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부귀영화에 큰 욕심이 없는 그는 평생 학문에만 열중하고, 교수가 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세상을 떠난다. 크게 튀는 부분이 없는,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의 이야기는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21세기에 들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수많은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왜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어쩌면 나 또한 나이가 들면 이 소설이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소설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평범한 삶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대체 평범한 게 있기나 한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고, 이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 조차도 사실 열심히 노력해야만 가능한 삶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은,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청혼하여 결혼하였으며, 사랑스러운 딸을 두었고, 심지어 중년에 뜨거운 사랑도 경험하였으며, 평생 현역으로 살다가 노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체 이 사람의 인생 중 어디에 내가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지나치게 냉정한 탓일까?

 

가난했지만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의 전공을 바꾸었으며, 큰 무리 없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장 생활을 했다. 경제적 격차가 있는 집안의 여자와의 결혼도 여자의 부모가 그렇게 반기지 않았을지언정 결국 성공했으며, 실제로 결혼 후 처가로부터 약간 도움도 받는다. 사랑스러운 딸의 결혼 생활은 늘 장밋빛은 아니었지만, 평생 딸은 시댁과의 관계가 원만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시련이 없었으며 손자까지 낳으며 나름 만족하고 산다. 죽을 때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중년에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연하의 여성과 열렬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평생 미주리주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결국 보내야했기 때문에? 학과장이나 총장 등 크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체 어디에서 슬픔을 느껴야 할까? 그가 고독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고독은 그가 어느 정도 자처한 면이 있다. 학문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조용한 세계를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그의 조용한 고집이 다른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는 선하고 참을성 많고 성실한 성격이었으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낙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이었다. 21세기 한국의 독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진 나는 종종 가슴을 쳤다. '이 사람아, 왜 당하고만 있어. 찍소리라도 내봐야지. 딸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캐서린을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과 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상상.

하지만 작가와 스토너는 끝까지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악의 무리는 승승장구했다. 상황을 단번에 바꿔주는 극적인 반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몹시 아쉬워하다가 결국 깨달았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본문 맨 뒤에 붙은 옮긴이의 말이다. 그런데 옮긴이가 지적한 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가 과연 악의 무리였을까? 내가 잘못 독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부족한 인간일지언정 악의 화신은 아니었다. 스토너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결혼 전 이모와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이디스에게 청혼하며 스토너는 결혼 후 자신이 유럽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디스가 딸 그레이스에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그는 찬성하지 않지만, 두드러지게 반대하지도 않는다. 정말 딸을 사랑했다면 파국을 각오하고서라도 아내와 큰소리를 내며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기치 않은 딸의 임신 소식을 들은 부모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그 부분에서는 스토너가 참을성이 있고 담대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딸에게조차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소식을 듣고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딸이 아니라 조카라면, 대녀라면, 여동생이라면 가능했을 반응 아닌가? 찰스 워커의 경우, 분명히 문제가 많은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교수라면 그의 반항적인 행동을 포용해줄 수는 없었을까? 찰스 워커의 예비 구두시험에서 로맥스의 행동이 문제라면 동일한 정도만큼 스토너의 행동도 비판받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떨어뜨리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는, 직업으로서의 교수, 학자로서의 양심에서는 훌륭할지는 모르나, 그보다 수십 년 뒤에 태어난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이자 인생의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는 태도는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워커가 절대 교육자가 되면 안된다고 단언하는 스토너의 그 태도야말로, 교육자로서 결격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너가 몰랐을까? 평생 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슴속에 새겨가며 살아온 인물이 스토너가 아닐까?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 그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평생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 스토너는 그것을 원했고 어느 정도는 이뤄냈다고 보여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차피 소설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행위인데, 나에게 좋은 소설은 등장 인물을 얼마나 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이다. 너무나 나와 닮아서 미워할 수 없거나, 내가 꿈꾸는 삶을 보여주거나, 이상하게 공통점이라고는 없는데도 위로를 받는 것 같거나, 아니면 소설 속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연민을 자아내거나.

 

책날개 뒤쪽에 선데이 타임스 리뷰 일부가 실려 있다. "나보코프 같은 계략, 제임스 같은 반전, 콘래드 같은 묵직한 의미, 포드 같은 뒤틀림은 없다." 어쩌면 이런 점들 때문에 아직 젊은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지도. 10년쯤 뒤에 이 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달라질까? 스토너를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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